어느 암환자의 특별한 단어장_ 김보통 <아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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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우울하고 작정하고 눈물샘을 자극하겠지. 항암치료의 고통은 어떻고 머리까지 깎으면 얼마나 절절할까.”

김보통의 <아만자>는 예상했던 암환자 이야기를 가볍게 던져버린다. 울 준비가 되어 있는 독자들에게 느닷없이 숲속 친구들을 들이민다. 암환자 아니 아만자의 투병기는 파스텔 톤 숲에서 귀여운 동물들과 함께하는 흥미진진 모험담으로 옮겨간다. 게다가 사막의 왕을 무찌른다는 거창한 미션까지.

직구를 기다리는 타자를 체인지업으로 꼼짝 못하게 만드는 투수처럼, 작가는 제대로 허를 찌른다. 어딘가 허술해 보이는 그림체로 힘을 빼놓고선 야무지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름과 달리 보통내기가 아니다.

 

아만자, 세상에서 가장 슬픈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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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만자’는 암환자를 잘못 알아들은 말이다. 외국 이름 같기도 하고 피식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막상 당사자가 되면 표정관리가 안 된다.
<아만자>는 하루 아침에 말기 암환자 선고를 받은 20대 젊은 남자가 주인공이다. 그에게는 부모님이 살아계시고 동생도 있고 뜨거운 사랑까지는 아니지만 말이 통하는 여자 친구도 있다. 취직도 해야 하고 영국에 가서 피쉬 앤 칩스도 먹고 싶고 언젠가 결혼도 할 것 같고… 하고 싶은 일도, 할 일도 많은데 그의 앞에 죽음이 성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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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만자다”라고 해봤자 재미있지도 않다. 그는 여전히 암환자다.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실없는 농담을 건네 봐도 현실의 묵직함은 가시지 않는다. 밤이 되면, 병실에서 혼자가 되면 꼭꼭 눌러왔던 불안과 절망이 엄습한다. 항암치료가 진행될수록 고통은 그를 압박해온다. 정신을 잃고 잠에 빠지는 일도 잦아진다.

그러던 중 그는 숲속에 떨어진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은 채 몸이 조금씩 부서진다는 것을 발견한다. 숲에서 만난 동물들은 사막이 늘어나는 것과 관련된 것 같다고 얘기한다. 그리곤 그에게 동쪽 숲에 있는 비커리를 만나라고 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사막을 만드는 사막의 왕은 누구인지, 또 부서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 그는 걷기 시작한다.

 

시작부터 불리한, 반전 있는 게임
<아만자>는 2013년 9월~2014년 10월 올레 웹툰에 연재됐으며 단행본으로 2권까지 나왔다. ‘2014 오늘의 우리만화’로 선정됐다.

<아만자>는 상당한 핸디캡을 안고 있는 작품이다. 왜 하필, 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난감한 소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암환자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생사가 얽혀있어 그 무게감과 진지함을 적절히 다루기가 쉽지 않다. 자칫하면 감정 과잉으로 치달을 수 있고 너무 무거워도, 너무 가벼워도 불편한 이야기가 될 소지가 크다.

그런데도 작가는 “젊은 암환자의 감정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다”며 “외로움을 알아주고 그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었다”고 밝힌다. 대신 우울하지 않게, 희망적으로, 절대 해피엔딩으로 끝내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무사히 마무리했다고 덧붙인다.

고통을 이야기하면서도 밝게, 외로움을 이야기하면서도 우울하지 않게, 죽음을 이야기하면서도 희망적으로, 게다가 해피엔딩으로. 작품은 태생적으로 이런 모순을 안고 정해진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하지만 이점이야말로 <아만자>가 기존 이야기와 구분되는 부분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암환자의 내면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전반전은 농담, 후반전은 꿈이 맡았다.

 

말장난, 웃기면서 슬픈 은유
작품에서 현실을 구축하고 이야기를 끌고 가는 건 섬세한 언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세상이 코드배열로 단순화됐다면 <아만자>에서는 말이다. 주인공이 암 선고를 받은 시점부터, 그의 단어들은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일상을 재구성한다. 남의 일이던 시한부인생이 내 이야기가 되고 시베리아와 죽음을 떠올리고 기적과 천사를 마음 한 구석으로 끌어들인다.

이러한 심정 변화는 농담을 통해 가장 날카롭게 드러난다. 암환자와 아만자처럼, 말하는 대로 발음이 비슷한 단어들의 조합은 반복되면서 의미가 강조되거나 전혀 다른 뜻을 만들어낸다. 암환자를 비롯한 인물들의 내면 깊은 곳과 맞닿아 있는 감정 선이기도 하다. 모두 거짓말이라고 치부하고 싶지만 눈앞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슬퍼하는 일만 남았다는 건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농담을 한다. 최대한 가볍게, 아무렇지 않게.

예를 들면 암에 걸린 아들, 서서히 시들어가는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복잡한 심정은 숲으로 표현된다. 아버지는 꿈속에서 아들을 본다. 아들이 ‘숲으로’ 간다는 것을 ‘슬프러’ 간다고 듣는다. 숲으로, 슬프러 가는 아들은 금세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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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암환자가 느끼는 무서움은 형광등으로 묘사된다. 형광등이 ‘깜빠악’ 거리는 것처럼 나의 깨어 있는 시간이 짧아지고 있다. 나의 인생도 ‘깜빠악’ 거린다. 암전이 계속되는 걸까, 다행이 깨어났다, 이렇게 반복되면서 나의 두려움은 더욱 커져간다.

무엇보다 암환자 가족이 느끼는 절망과 비애는 현실적이다. 진짜 가족은 병실에서 고독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회식 자리에서 가족을 외치고 있다. ‘가족같이’ 함께 가자는 건배사는 ‘가, 조가치’로 울린다.

이런 말장난은 또 다른 현실, 꿈에서도 이어진다. 숲에서 아만자가 만난 사나이의 인생은 토끼로 정의된다. 하얀색의 귀가 큰 동물인 ‘토끼’는 ‘토끼다’라는 동사로 대치되고 ‘토끼는(도망치는) 토끼’라는 말장난을 통해 살면서 늘 도망만 쳤던 한 남자의 쓰라린 기억을 더듬는다.

슬플 때 눈물보다 더 가슴 찡한 것은 웃음이다. <아만자>의 ‘웃프다(웃기다+슬프다)’는 감정은 이를 제대로 보여준다. 인물들은 눈물에 인색한 대신 웃는다. 힘껏 웃는다. 농담이 짙어질수록 슬픔도 진해진다.

 

병실 속 투병생활, 아만자의 모험
농담과 함께 작품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꿈이다. 현실에 환상적인 색채가 가미되면서 암환자의 투병은 아만자의 모험으로 닮은 듯 다른 길로 갈라진다.

병실은 암환자의 일상이다. 통증에 괴로워하고 그러다 약에 취해 잠에 빠지고 무기력하게 하루를 보내는 곳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모든 치료를 동원하다가도 기대효과와 비용을 놓고 저울질을 하는 곳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눈물은 말라가고 대신 당황, 원망, 분노, 후회, 체념 등 분출할 곳 없는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병실에 누워있을 때, 약에 취해있을 때, 통증에서 의식이 멀어질 때, 주인공이 가는 곳은 숲이다. 숲은 파란하늘과 풀밭이 있고 신기한 동물들이 뜬금없이 말을 거는 곳이다. 병실과는 달리 나는 부지런히 걷고 부딪히기도 하고 뛰어다닌다. 이미 ‘이름’과 ‘기억’이 지워졌고 몸의 일부분도 부서지고 있지만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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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되는 두 세계를 통해 작가는 암환자가 눈을 감고 있는 시간이야말로 아만자가 치열하게 삶을 이어가고 있는 순간들이라고 보여준다. 그것은 죽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살아가는 현재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암환자의 진짜 모습이기도 하다.

작품 후반부로 갈수록 암환자의 고통스런 여정과 앞을 알 수 없는 아만자의 모험은 평행을 이루다가 점차 교차된다. 마침내 두 세계가 겹쳐졌을 때 모든 감정과 에너지가 폭발한다. 한 인간의 삶이 눈부시게 빛난다.

 

이름, 존재의 이유
<아만자>에서 시종일관 강조한 것은 이름이다. 숲에서 사막으로, 아만자가 계속해서 걷고 걸었던 것은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나는 누구인지, 나는 왜 부서지는지, 사막의 왕은 누구인지, 왜 사막을 만드는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은 결과적으로 ‘나’로 모아진다.

숲에서, 병실에서, 사막에서 내가 부딪히는 근본적인 질문은 ‘내가 누구인가’이다.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이름이다. 남들이 부르는 아만자인가, 거울 속에 비친 대머리 청년인가, 아니면 무명씨인가. 답에 이르는 방법은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병실에서 숲에서 사막으로 아무리 두려워도, 몸이 부서져도, 그래도 가야하는 길이다. 혼자서 가야하는 고독한 길이지만 피할 수는 없다. 나의 인생은 ‘내’ 의지로 걸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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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사막은 가장 나의 내면과 맞닿아 있는 곳이다. 눈물이 메말라 쩍쩍 갈라지는 곳, 나의 마음들이 조각조각 흩어진 곳, 그리고 진짜 나와 마주해야 하는 곳이다. 아만자와 사막 왕의 대면, 아만자의 무용담이 완성되는 장소다. 지금까지 퍼즐조각을 맞춰서 의미를 찾아내야 하는 마지막 공간이다.

사라져, 살려줘, 살아줘… 삶을 향한 격정적인 외침

암환자의 고달팠던 여정, 아만자의 힘겨운 모험을 통해 작품이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삶이다. 죽음을 차근차근 준비해가면서도 삶에 대한 외침을 멈추지 않았다. 삶의 반대말이 과연 죽음일까, 죽음에 직면한다면 과연 나는 치열하게 살았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끈질기게 되묻는다. 왜 죽는지에 대한 물음은 왜 사는지로 이어진다. 동시에 작가는 이런 질문을 죽을 때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해야 된다고 강조한다.

“제 만화의 메시지는 굉장히 노골적입니다. 심지어 100화는 제목이 ‘하고 싶은 말’입니다. 맨 마지막 대사가 ‘살아, 눈부시게’입니다. 그냥 피동적으로 남의 인생사는 것처럼 생존하지 말고 전부 깨지고 박살이 나더라도 내 선택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중간에 액자처럼 삽입된 편의점 알바 사나이의 이야기는 작품의 메시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희망이 없는 미래, 왜 사는지도 모르고 하루하루 인간 바코드처럼 살아가고 있던 그는 아만자가 있는 숲으로 떨어지게 된다. 아만자를 따라 달리고 도망치면서 인생을 되돌아본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힘차게 자신의 이름을 외친다. 본인의 인생으로 돌아온다. 예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이런 점에서 <아만자>는 암환자, 아만자, 그들의 가족, 우리들의 인생을 격려하는 힘찬 응원가다.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것은 몸도 정신도 살아있는 것.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살아지는’ 것은 ‘사라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살아있음을 다독여준다.

‘사라져’간 사람들은 ‘살려줘’라고 눈물을 흘렸지만 마지막에 그들이 남긴 주문은 ‘살아줘’였다. 살자, 눈부시게, 치열하게, 살자.

김경임

​만화문화연구소 엇지 연구위원, 네이버 캐스트 만화대백과 필진으로 활동 중이다. 재밌는 만화, 뜻 깊은 만화, 특이한 만화 중 재밌는 만화가 으뜸이라고 생각. 통섭의 시각으로 만화를 다양한 분야와 연결시키는 작업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 루이 세폴베다의 소설 "연애소설 읽는 노인"의 주인공처럼, ‘순정만화 읽는 노인’이 되는 게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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