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감옥이자 세상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우리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남자들이 술자리에서 전하는 군대에 대한 무용담은 꽤나 허구적이며, 또한 사실적이다. 삽 한자루면 산 하나 옮기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객기가 있고, 아무리 불합리한 일이라도 받아들여야 하는 절대적 상명하복에 대한 경험도 더해지니 취기와 함께 이야기는 끝날 줄을 모른다. 그런 술자리의 농담과 진실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통해 만화로 거듭난 작품이 있으니, 바로 <데미지 오버 타임(Damage over time)>이다.

01      <데미지 오버 타임>은 도트 이미지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독특한 연출방식을 보여준다.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한 군부대에 어느 날 비상이 걸린다. 국가적 위기 상황으로 인해 8백명에 이르는 부대 전체 병력 가운데 특수병과나 신병 등을 제외하고 모두 출동한다. 하지만, 완전군장으로 떠난 병력들은 모두 귀대하지 못했고, 그들을 찾으러 나섰던 나머지 간부들 또한 실종된다. 부대에 남은 간부 1명과 2백 명에 이르는 병사, 그들의 기막힌 생존기가 이 작품의 주요내용이다.

“막연히 큰일이 났을 거라는 짐작 뿐, 우리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나열되는 상황들은 가히 ‘데프콘1’에 맞먹는다. 통신장애로 인해 외부와 소통이 불가능한 것은 물론 상급부대와의 연락마저 두절된다. 여자친구와 가족들의 소식도 알 수 없고, TV를 통한 뉴스마저 끊기면서 그야말로 고립된 상황이다. 위기 속에서 자신들만이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부대 정문과 초소 부근 철책까지 좀비들이 어슬렁거리자, 이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부대 안이 된다. 그러니, 부대 내 생활의 견고함과 일사분란함을 위해 새로운 판짜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살아남은 하사관이 연대장을 맡게 되고, 선임병이 중대장 자리에 오른다. 비슷한 20대 청춘들이 모여 누군가는 쫄따구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는 2백명의 목숨을 책임져야 한다. 뭔가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 기막히기도 하지만, 그만큼 위급한 상황이다.

허무맹랑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너무 사실적이라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분명 생활밀착형으로 표현된 군대에 대한 디테일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일단, 전투복과 체육복, 군화와 활동화의 ‘깔맞춤’은 밀리터리룩에 대한 적절한 정보는 제공해준다. 각 잡힌 내무반과 단체 목욕이 가능한 샤워실 그리고 취사실에 이르기까지 군대막사에 대한 묘사 역시 정교하다. 게다가 전투식량과 부식 등 군대 고유의 먹거리에 대한 깨알 같은 표현은 이 작품이 우리 시대 수많은 예비군 남성독자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을 수 있게 만든다. 현실을 빼다 박은 듯 한 리얼리티는 이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말입니다.’와 같이 이미 대중적으로 널리 퍼진 어법을 비롯해 짬, 선탑 등과 같은 군대 전문용어(?)는 그곳의 생활을 생생하게 전달해준다. 고참에 대한 후임의 차마 뱉지 못한 속마음 역시 그 시절을 겪은 이들이 본다면 슬며시 웃음이 날만하다.

이처럼 군 생활에 대한 면면들이 작품의 사실성을 확보시킨다면, 좀비의 존재는 작품을 만화‘답게’ 만드는 독특한 상상력이다. 즉, 정찰을 나갔다가 어제까지 함께 생활하던 선임이나 후임이 좀비에게 목숨을 잃기도 하고, 좀비에게 둘러쌓인 동기를 구할 수 없어서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총부리를 겨누기도 한다. 그 속에서 “몇 명의 죽음이 몇 백명의 실종보다 감히 무거울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기도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죽음에 대해 무감해지는 것도 보여준다. 그런 측면에서 헐리우드 영화에서는 이제 새삼스러울 것도 없고, 오히려 지겨운 느낌이 드는 ‘좀비’라는 소재가 어쩐지 이 작품에서는 신선해보이기까지 한다. ‘대한민국 군대와 좀비’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소재가 만나 그야말로 독특한 ‘한국적 좀비만화’를 완성시킨 셈이다.


02     정찰에 나선 부대원들. 잠시 방심한 사이에 좀비 무리에게 쫓기게 된다.

‘Damage over time’은 시간에 걸친 지속적인 피해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도트’로 연출된 독특한 이미지 속에서 어쩐지 등장인물들의 상황은 계속 악화일로에 있는 듯하다. 이들은 과연 좀비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김성훈

편집, 기획 등 만화와 관련된 것이라면 뭐든 즐겁게 일하고 있으며, 관련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만화 속 백수이야기>, <한국 만화비평의 선구자들>, <한국 만화비평의 쟁점>, <한국만화 미디어믹스의 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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