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함과 기묘함의 변주 <핑크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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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만화

핑크토미는 실존하는가
최근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던 ‘이태임-예원의 반말 사건’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한 달 넘게 논란과 과장, 추문이 계속되고 거기에 언론까지 가세하며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 했으나 동영상이 등장하며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였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이 사건에서 누군가를 응원한다. 하지만 이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판단할 수 없다. 내가 아는 이태임과 예원은 몇 개의 프로그램을 통해 본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나와 그녀들 사이에는 늘 카메라라는 매체가 놓여있고 일상을 공유해 본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 사실 나는 그녀들을 전혀 모른다.

여기,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핑크토미가 있다. 데뷔한 지 1년도 되지 않았지만 아름다운 외모와 몽환적인 목소리로 마성적인 매력을 가진 최고의 아이돌이다. 무대 뒤에서는 말도 잘 하지 않는 그가 혹독한 예능 신고식에서는 기지를 발휘하며 호감도를 상승시킨다. 무대에 오르는 첫날 긴장하던 그의 모습은 어느새 사라지고 “일”하는 인간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며 주변인들을 감탄하게 만든다. 그의 과거는 베일에 싸여 있고 카메라가 없는 일상에서의 그의 모습은 알 길이 없다.

 

핑크토미_도판

 

핑크토미와 대중들 사이에는 늘 카메라가 매개된다. 대중들은 카메라에 비췬 토미의 모습을 소비함으로써 그에 대해 안다고 착각한다. 그와 함께 일을 하는 동료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는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핑크 토미와 동료들 사이에는 “일”이 매개가 된다. 매개항 너머의 핑크토미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고 보면 12화 [조난] 연재분까지 핑크 토미의 시선은 없다. 그는 누군가에게 항상 관찰당하고 회자되고 소중히 여겨지면서 존재할 뿐이다. 6화의 [시선] 에서 토미와 시체가 교차하는 컷은 토미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토미는 로코코엔터테이먼트에 돈을 벌어다 주고, 시체는 장범/유준 형제의 돈벌이 대상이다. “소중히” 다루어야 할 대상은 종이의 가치가 얼마를 향하고 있느냐에 따라 판별되며, 그에 따라 생과 사의 구분 역시 무화된다.

 

나는 존재한다. 오로지 욕망함으로써
지금까지 연재된 핑크 토미에서 중요한 점은 “시선”이다. 최정상 아이돌인 만큼 많은 대중들이 그를 바라보고 있다. 모두가 그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애와 증, 추종과 혐오, 집착과 무시의 대립각들이 그를 향해 있다. 그 가운데서도 핑크 토미의 실종을 둘러싼 사람들의 시선은 눈에 띤다. 사장은 소중히 다뤄달라면서도 토미의 의견은 가볍게 무시한다. 우등생이지만 냉소적인 성격을 가진 승호가 죽이고 싶어 하는 대상은 토미로 향해 있지만 실은 토미라는 허상에 빠져든 자신의 감정이다. 심부름센터의 유준이 알고 싶어 하는 ‘가공의 기분’은 토미를 응시하지만 사실 안경을 쓰며 감추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다. 히키코모리처럼 두문불출하는 미미의 손길이 닿아있는 것은 허상의 토미지만, 유폐된 자기 공간으로부터 나오게 되는 자신의 욕망과 맞닿아 있다. 이들의 시선에 각인된 토미는 애와 증, 집착과 혐오, 희열과 분노의 감정이 개인 안에 마구 뒤섞여 있다.

 

핑크토미_도판2

 

극단의 감정이 교차하면서 혼종적으로 각인된 그들의 시선은 남성성과 여성성이 섞인 중성적인 토미의 모습에서도 엿볼 수 있다. 만화는 아이돌, 마성의 소년, 핑크를 이야기하는데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둡다. 분명 전체 배경은 핑크색이 주를 이루지만 굵은 펜선과 거친 펜촉의 질감이 이 만화를 마냥 가볍게 즐기도록 만들지는 않는다. 핑크색 머리와 회색 눈, 두툼한 입술이 만들어내는 핑크 토미의 몽환성 역시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처럼 기묘하게 느껴진다. 기묘함과 달콤함이 묘하게 섞인 그로테스크함. 이것이 이 만화의 주된 이미지다. 그리고 이러한 그로테스크함은 14화 [대면] 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는 토미의 실체적 공간과 맞닿아 있다. 아름다운 아이돌 토미 이면에는 성매매의 추함과 비정상성이 난무하며 부조리한 현실의 민낯이 감춰져 있다.

 

심연을 탐사하는 항해사
핑크 토미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이야기는 이제 겨우 사건의 단서들을 심었을 뿐이다. 아직 단서들도 쥐지 못한 상태에서 이 만화를 평가한다는 것은 마치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아이돌 토미와 내가 대화하는 격이다. 이제 겨우 15화 밖에 연재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글은 <핑크 토미>가 순조롭게 항해하는 것을 기다리며 응원을 보낼 뿐이다. 실종을 둘러싸고 덫에 갇힌 인간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진전될지, 그리고 달콤함 이면에 감춰진 인간의 추악함이 어떤 방식으로 드러날지 앞으로의 전개가 기대된다.

서은영

부천의 산책자. 신기하게도 로 입문했고, 고등학생 땐 댕기와 르네상스로 사랑을 배웠다. 언젠가부터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병맛만화를 상비해둔다. 고려대학교 국문과에서 근대만화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부천만화대상에서 학술평론상을 수상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주관하는 만화포럼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즐겁게(!) 괴롭히고 있다. 현재는 만화로 인문학하기, 국문과에 만화강좌 개설이 목표이며, '부천핸썹'과 '역곡 다행이'가 성공적인 지역 캐릭터가 될 방안을 혼자만 열심히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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