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정체성_ 세로 보기는 웹툰의 정체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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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로서의 ‘웹툰’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우리가 흔히 웹툰이라 부르고 있는 만화 장르는 익히 알려져 있듯 특정 시스템에 구애받지 않는 하이퍼텍스트 기반 정보 공유 공간인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의 웹(Web)과 만화를 뜻하는 카툰(Cartoon)을 합쳐 만든 조어다.

이 웹툰이란 표현이 처음 ‘공식선상’에 등장한 건 2000년 8월 8일 대형 PC통신 서비스였던 데이콤의 천리안이 인터넷으로 서비스 대상을 확장하며 열었던 웹사이트의 이름에서였는데, 이곳의 편집장 남선경 씨가 ‘웹에 게재할 목적으로 웹의 속성에 맞게 창작된 만화’라는 뜻으로 도입했다. 비록 해당 서비스는 용어가 지니고 있던 방향성과는 달리 기존 오프라인 대본소(만화방)의 온라인판에 가까웠고, 비슷한 시기 난립하기 시작하던 만화 서비스들 또한 온라인을 통해 볼 수 있는 신상품을 만들어내기보다 기존 출판되었던 만화의 디지털라이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초고속 인터넷이 막 보급되기 시작한 시점과 IMF 이후의 벤처 붐이 맞물렸던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인터넷 정착기에서 업체들은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해 많은 양의 만화를 즐길 수 있는 온라인 만화방 서비스를 주요 콘텐트로 내걸고 모객에 나섰다. 하지만 벤처 붐은 곧 거품과 함께 일거에 사그라들었고, 인터넷은 이윽고 포털 사이트라 불리는 대형 인터넷 기업을 중심으로 재편된다.

웹툰이 비로소 용어 그 자체로 원래 뜻하던 바를 가리키게 된 건 이들 포털 사이트가 온라인 대본소로서가 아니라 웹 환경에 어울리던 만화를 본격적으로 채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2003년 3월 포털 사이트 다음(DAUM)이 뉴스 페이지인 ‘미디어 다음’을 시작하며 만화 코너인 ‘미디어 다음 만화속세상’을 개장하고 개인 홈페이지에서 <지치지 않을 물음표>를 연재하던 강풀에게 <순정만화>의 연재를 맡겼다. <순정만화>는 일일 최고 조회수 200만 건에 평균 덧글 수 25만 개를 기록하는 대흥행을 이끌어냈고, 그 이전까지 기존 출판만화의 단순 디지털라이징에 지나지 않았던 온라인 만화방 이외의 만화들을 일컫던 ‘인터넷 만화’ ‘감성툰’ ‘공감툰’ ‘카툰 에세이’ 등의 표현은 <순정만화>를 기점으로 웹툰이라는 장르명으로 정착되기에 이른다.

 

웹툰 틀거리의 원형과 그 유래
강풀은 자신을 농반진반 자칭타칭 ‘웹툰계 삼엽충’라 부르곤 한다. 그만큼 웹툰이란 장르가 정립하는 데에 <순정만화>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고 사람들 또한 첫 웹툰을 <순정만화>로 이야기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는 편이다. 하지만 <순정만화>가 웹툰의 기틀을 닦은 작품으로 평가받는 데에는 이 작품이 그 이전까지 한창 유행하던 ‘감성툰’ ‘공감툰’ ‘카툰 에세이’와 달리 ① 웹에 어울리는 화면 연출과 구성을 사용하면서도 ② 장편 극화라는 틀거리를 시도했고 ③ 그 틀을 정립하였으며 ④ 결과적으로 이러한 시도가 대중들에게 먹힌다는 점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순정만화>는 첫 웹툰이라기보다는 ①에 해당하는 ‘웹 화면에 어울리는 화면 연출과 구성’을 앞서 시도했던 초기형 인터넷 만화들의 특징을 활용하여 완결성과 완성도를 갖춘 극으로 만들어낸 작품이다. 앞서의 작품들이 감성툰, 공감툰, 카툰 에세이 등으로 불렸던 이유는 극이라기보다는 일상을 일기처럼 담아내는 형태거나 짤막하고 캐주얼한 캐릭터들이 부각되는 형태를 띠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웹툰의 원형을 쫓아간다고 하면 ‘웹에 맞는 화면 연출과 구성’이라는 대전제를 갖추었던 게 무엇인가를 따져야 한다. 대체로 이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간주되는 첫 작품은 1997년 <쿨캣(coolcat)>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했던 권윤주의 <스노우캣(snowcat)>이다. 당시 서서히 유행을 타기 시작하던 인터넷에서의 개인 홈페이지 개설 붐 속에서 등장했던 이 작품은 홈페이지 개장 이후 상표권 문제로 <스노우캣>이라 개명하고 홈페이지를 재개장하면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이후 정철연의 <마린블루스>나 심승현의 <파페포포 메모리즈>, 김풍의 <폐인가족>, 고필헌의 <애욕전선 이상 없다> 등이 2000년대 초반까지의 웹 공간에서 만화로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강풀도 이 당시 자기 홈페이지를 통해 자기만의 스타일과 독자층을 확보해 나가던 신진 중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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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은 초고속 인터넷의 등장, 벤처 붐과 벤처 버블 붕괴, 인터넷 벤처의 난립과 대형 포털 중심의 재편이라는 IT 이슈의 폭풍 속에서 태어났다. 당시 만화계는 잡지를 기반으로 한 단행본 출판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고, 1996~7년을 기점으로 청소년보호법이라는 대형 악재가 덮쳐들며 만화 탄압, 잡지 폐간 등으로 대중적 지지와 동력을 많이 잃고 말았다. 여기에 1997년 12월 IMF 사태를 전후해 도서대여점이 늘어나면서 점차 판매 대신 대여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고 있었다.

절묘한 건 바로 이 시기를 기점으로 초고속 인터넷이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인터넷 자체가 국내에 소개된 건 그보다 몇 년 앞선 시기지만 폭발력을 보여주기 시작한 건 1997년 이후다. 출판만화계는 만화를 통해 독자를 만나고 싶었던 이들에게 더 이상 매력적인 공간이 될 수 없었다. 매체로서의 영향력은 갈수록 잃고 있지만 정식 데뷔의 문턱은 여전히 높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들에게 웹 공간은 홈페이지, 카페, 커뮤니티 등 자기 독자를 만들 창구가 많은 데 비해 대중들의 선택을 받기 위한 제약이 없어 보이는 신대륙이었다. 신진들은 물론 출판만화를 통해 활동하던 이들 가운데 일부가 웹 공간을 통해 자기 자리를 열고 새로운 독자층을 맞이했다. 때마침 무료 호스팅을 비롯해 벤처 거품이 낳은 자기 공간 개설 붐은 이러한 유행을 부채질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초기형 웹툰의 형성에 영향을 끼친 조건들이다. 웹툰의 특징을 여럿 들 수 있겠지만, 초기형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웹툰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초지일관 ‘높은 접근성, 낮은 장벽’이었다. 초고속 인터넷망의 보급과 함께 불어닥친 ‘무료’ ‘공짜’ 열풍은 인터넷 공간을 얻어내는 호스팅부터 각종 콘텐트 가격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에서 소비자의 필요 비용을 극단적으로 깎아놓았다.

월 1~3만원 대 정액이면 그 이전의 전화선 모뎀을 이용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무제한 이용할 수 있었고, 망만 연결돼 있으면 빠른 속도로 데이터를 전송받을 수 있는데 그 데이터가 이루는 콘텐트는 비용을 거의 발생시키지 않았다. 물론 대부분은 불법복제에 가까웠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벤처기업들 대부분도 이용자 유치를 통한 주식시장 상장을 목표로 삼으면서 일단 무료 진입 전략을 썼다. 여기서 엿볼 수 있는 전략이 ‘우선 이용자 수 확보’를 위한 ‘무료 전략’이다. 웹툰은 그 자신이 웹툰이란 표현으로 불리지 않던 초창기부터 이러한 인터넷 콘텐트의 유통 흐름을 매우 충실히 따랐다.

무주공산에 가까운 새로운 공간에 진입해 들어온 신진과 기존 바닥을 버리고 들어온 기성 만화가들이 기존의 출판 매체와 경쟁할 방법은 오로지 독자 확보뿐이었다. 이들은 누가 가르쳐준 것이 아니었음에도 자신의 만화를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소재와 캐릭터를 이용해 포장했으며,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이용했다. 이들 만화의 캐릭터는 귀여웠으며 자기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공감 소재를 채택했다. 이들의 만화를 보기 위해서 필요한 건 집안에 한 대씩은 있었던 컴퓨터와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네트워크, 그리고 웹에 접속하기 위한 웹브라우저 프로그램뿐이었다. 인터넷망 이용비는 ‘그냥 당연히 들어가는 비용’으로 치지만 그 이외의 비용을 내기는 매우 아까워하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초창기 웹툰은 공짜로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였다.

누군가에게 딱히 배운 것도 아니지만 이 시기를 장식한 자생형 또는 기존 바닥을 떠나온 작가들에게 웹 공간에서의 만화는 자연스레 이러한 인터넷 콘텐트의 소비 패턴을 그대로 따라야만 하는 대상이었다. 잡지와 책이라는 매체가 아닌 곳에서 만화가로서 입지를 굳히려면 압도적인 반응을 만들어내야 했고, 이 반응을 기틀 삼아 어딘가에 소속되거나 만화 자체로 시장성을 확보해야 했다. 이 시기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채택했던 무료 전략은 역설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을 한정짓게 했다. 분량은 짧았고 소재는 일상성에 한정됐으며 노출을 위한 게재 방식 또한 간단할 수밖에 없었다.

웹툰을 이루는 틀거리, 즉 전형은 바로 이러한 한계성에서 태어났다.

 

세로 스크롤, 웹툰에 남은 마지막 장르적 특성
웹툰의 특성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보자. ‘무료’, ‘접근성’, ‘풀컬러(총천연색)’, ‘덧글’, ‘세로 스크롤’ 등이 답으로 나올 터다. 하지만 세로 스크롤을 제외하면 대부분 웹툰의 발전과 함께 특징에서 탈락(?)해 가고 있다. 무료의 경우 유료 웹툰이 정착돼 가고 있고, 접근성도 스마트 디바이스의 등장과 함께 각종 단독 앱(어플리케이션)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웹툰은 운영체제와 기기에 따라 못 보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색의 경우 초창기엔 작화의 낮은 밀도를 감추기 위해 적극 채용하다 포털을 통한 주간 연재가 보편화하면서는 오히려 살인적인 노동 강도로 말미암아 작화 밀도를 제한하는 추세 속에 제작 비용을 높이는 요인으로 전락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독자들의 연령대 다양화 속에 이야기와 표현의 깊이를 요구받자 독자들을 몰입시키기 위해 흑백을 채용하고 작화와 이야기의 밀도를 높이는 사례가 늘고 있다. 덧글 또한 독자들의 반응도를 즉각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던 요소였지만 일정 시점 이후엔 ‘작품은 독자가 만들고 작가는 그에 따라 그리기만 한다’라는 빗나간 주인의식이 팽배하며 작가들을 무너뜨리는 요소로 전락 중이다. 최근 등장한 매체들은 그런 연유로 덧글을 아예 두지 않음으로써 호평을 얻는다.

결국 웹툰을 웹툰으로 보게 하는 핵심으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살아남아 있는 요소는 세로 스크롤 정도다. 세로 스크롤은 웹툰의 장르성을 설명하는 데에 핵심을 이루는 키워드이자, 사실상 웹툰의 문법을 만들어내는 가장 뼈대가 되는 장치다. 세로 스크롤은 종이와는 다른 모니터 화면 안에서 데이터 전송량과 메모리와 저장 용량이 허락하는 한 한없이 무한에 가까운 영역을 표현하게 하는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방식이다.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방식이라는 말은 곧 영역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 가운데 가장 단순하고 간단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플래쉬 등 웹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멀티미디어 표현 기법이 등장하면서 이들을 활용한 움직임과 반응, 분기, 화면과 층위를 넘나드는 표현의 확장 등이 다양하게 시도되었지만 대체로 실험 단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기술적 성취에 도취된 각종 실험들은 대중들의 선택을 받는 데에 실패하기 일쑤였고, 장르적 특성으로서 정착하지 못한 채 도태됐다.

게다가 이러한 실험이 표현의 확장으로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까닭 가운데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 만화로 읽히느냐 아니냐’에서 ‘만화가 아닌 것’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움직임이 많으면 애니메이션이 되고 분기가 많으면 게임이 된다. 그 중간에 놓인 장르인 무빙 카툰 또는 모션 코믹스도 여전히 그 자체가 만화의 한 장르로서 정착이 됐다고 보기엔 이론의 여지가 많은 시점이다. 트렌드에 예민한 듯하면서도 전체의 평균치는 언제나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대중 앞에서 글과 이미지의 복합과 나열이 ‘만화’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최대치가 세로 스크롤까지였던 셈이다.

 

세로 스크롤은 어쩔 수 없이 채용된 방식, 하지만 만화의 헤게모니를 쥔 방식
재밌는 사실은 이 세로 스크롤이 표현을 위해 고안된 방식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이 선택된 방식이라는 점이다. 앞서 언급하였듯, 웹툰이 웹툰이라는 표현으로 정립되기 전 단계에서부터 이미지를 보이기 위한 화폭 즉 캔버스로 선택된 건 웹으로 접속해 들어오기 위한 도구인 웹브라우저 화면이었다. 웹브라우저에서 웹 문서인 HTML을 이용해 이미지를 노출하는 데에 별다른 지식과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방식은 이미지를 그냥 세로로 이어 붙이는 것이었다.

웹툰은 정립 단계에서부터 들이는 노동량은 최소화하고 반응 확보라는 효과는 극대화해야 하는 숙명을 타고 났다. 초창기엔 돈도 못 받는 포트폴리오에 세로로 이어 붙이기 이상의 수고스러움은 그리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게다가 독자들은 무료로 간단히 보기를 원했다. 일례로 김준범 작가가 야심차게 1인 유료 만화 웹진으로 시도했던 <엑스타투>는 독자들에게 그야말로 매몰차게 외면당했다. 유료 웹툰은 2010년대 초반을 넘겨서야 가까스로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졌고 그나마도 아직도 극심한 저항에 부딪히고 있는 실정이다.

이 모든 상황이 복합된 결과, 만화 이미지가 이어 붙은 웹 문서는 웹브라우저에서 자연스럽게 세로 스크롤바를 만들어냈다. 세로 스크롤바는 최소한 만화에서는 ‘발명된 것’이 아니라 ‘발견된 것’이었다. 세로 스크롤은 웹툰이 장르로서 정립되기 전에는 그럴 수밖에 없거나 그렇게 해야만 하기에 웹 공간에서의 만화 표현 방식으로 채용되었다. 사실 그 이전까지 ‘만화 독자’라는 정체성을 지니고 있던 이들에게는 깊이나 밀도 면에서 거센 반발을 샀지만, 그 수를 압도하는 만큼의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재미난 무료 콘텐트로서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면서 그야말로 양적인 지지를 통해 장르화에 성공했다.

세로 스크롤은 전통적인 만화 독자에겐 매우 새로운 만화 독서 경험이었지만, 인터넷 콘텐트로 접하기 시작한 압도적인 수의 신규 독자층에게는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 콘텐트 감상 방식 중 하나였던 것이다. 이들에겐 어쨌든 웹툰이 그림과 이야기가 어우러진 ‘만화’로 받아들여졌다. 컴퓨터 환경과 네트워크 환경이 좋아지면서 이만큼 고용량인 이미지 뭉치를 한꺼번에 읽어올 수 있게 된 게 차이일 뿐, 세로 방향으로 읽는 콘텐트 감상 방식 자체는 사설 BBS와 PC통신을 비롯해 80년대 말엽부터 많은 이들이 경험치를 쌓아 온 바 있다. 세로 스크롤로 이미지를 내려 보는 방식까지는 만화로서 ‘통과’되었고, 다양한 요인으로 말미암은 출판만화 시장의 급속한 축소와 함께 만화 감상 방식의 헤게모니를 쥐게 되었다. 같은 스크롤이라 해도 가로 스크롤이 제대로 시도되지 못했던 까닭은 경험성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것과 더불어 단방향 진행에서 오는 단순함과 편리함을 해치기 때문이다. 염두에 둬야 할 것이 하나가 더 생기는 순간 마치 전개를 위해 분기점을 선택해야 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난다. 그건 만화가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웹툰에서 세로 스크롤이 지니는 진짜 한계란
이렇게 스크롤을 표현 방식으로 발견한 웹툰은 가장 단순무식하고 2차원적이면서도 스콧 맥클라우드가 줄기자체 주창한 ‘무한 캔버스’를 현재로서는 가장 대중적인 방식으로 구현한다. 게다가 지면을 구분 짓지 않고 스크롤을 일정 간격으로 연속해서 내림으로써 생기는 반복성은 웹툰 연출을 출판만화와는 달리 다분히 영상에 가까운 노출 효과를 만들어냈다. 일상성을 담은 팬시한 만화만 나오는 한계는 점차 벗어났지만 칸의 정적인 배치만으로는 인물의 움직임을 표현해내기에 부족하다는 점이 드러나자 아예 칸을 세로로 눕혀서 속도감을 강조해냈다. 플래쉬 플레이어를 이용한 강제 스크롤링 기능이 나오기도 하고, 스크롤바의 위치에 따라 효과음을 주는 방식도 동원하는 등 만화 감상의 범주를 해치지 않는 제한된 효과의 적용을 실험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한 시도들에도 웹툰이 독창적인 만화 장르로서의 발전과 성취를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는가에 관해서는 의문부호를 달 수밖에 없다. 현재 웹툰에서는 세로 스크롤이라는 기본 방식을 뼈대로 다양한 효과들이 적용되고 있으나, ‘만화로서’ 화면을 만들어내는 방식에서는 어느 사이엔가 정체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사례가 ‘미디어 다음 만화속세상’이 2007년 12월에 단행했던 웹툰 가로 너비 확장이었다. 이는 연재 지면 차원에서 800여 픽셀로 기본 가로 너비를 확장함으로써 점차 넓어지는 모니터 화면에 대응하면서 지면의 크기를 넓힘으로써 전반적인 표현에 밀도와 깊이를 더하게끔 장려한 것이었는데, 정작 대부분 일률적으로 그림 자체의 비율을 키우기에 급급했다. 오히려 이 시기 웹툰으로 진입해 들어온 윤태호, 이충호, 황미나 등 기성 작가들이 웹 공간을 통해 신작을 발표하면서 만화 표현의 기본기에 관한 재조명이 이뤄진 바 있다.
이도 모자라 근래 들어 출판 만화 형식의 침공(?)이 두드러지고 있다. 일부 작가들 사이에서는 심지어 퇴출 대상이라거나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폄훼를 당했던 출판만화가 종이라는 매개체만 버린 채 웹 공간으로 도로 진입해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이는 <브레이커>처럼 출판만화 형식의 만화가 ‘신규로 제작되어’ 뷰어를 통해 공개되는 것은 물론, 이후 출판을 염두에 두고 출판만화 형태로 연출한 칸들을 떼어내어 세로 스크롤로 재배열하는 것까지도 포괄한다.

특히 후자의 경우 단행본 출판을 염두에 둔 안배라 할 수 있는데,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방편이지만 일각에서는 세로 스크롤에 어울리는 화면 구성을 만들기보다 종이에 역으로 종속당하고 있다는 우려가 일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출판만화 형태로 연출한 후 칸을 떼어내 붙이는 방식을 채택한 <미생>이 상업적으로 매우 큰 결과를 내면서 비슷한 사례가 앞으로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현상과 관련해서는 심지어는 ‘퇴보’라는 비판도 나오는 마당이다. 하지만 바꿔 이야기하면 세로 스크롤에 기반한 웹툰이 종이 지면에서와는 다른 고유의 만화적 특성을 발명해 나가기보다 앞서 구축한 표현양식을 변주하는 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조금 더 합리적인 결과를 낼 수 있는 쪽을 선택한 것일 뿐이기도 하다. 의미 있는 실험이란 계승할 이들이 있어야 생명력을 얻는다. 웹툰은 그 지점에서 일정 부분 답보 상태에 놓였고, 웹툰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독자들의 질적 향상 요구와 갈증을 이미 완성에 가까운 형태로 정립돼 있던 출판만화의 유산에서 꺼내 쓰며 수습하는 형국을 보여주고 있다. 포털 웹툰 초기에 웹툰 트로이카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강도하, 양영순도 출판만화에서 잔뼈가 굵었던 인물들임을 보자면 웹툰의 자산은 처음부터 상당 부분이 상속된 유산이긴 했다. 문제는 재테크를 썩 잘하진 못했다는 데에 있다.

웹툰은 어쩌면 ‘세로 스크롤이라는 신기술을 발명’했다는 착각 속에 엉겁결에 손에 쥐었던 헤게모니를 여태껏 갉아먹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IT와 만화가 처했던 각종 한계 상황 속에서 세로 스크롤을 채택하며 만화 장르로 정립되었던 웹툰이, 정작 무한 캔버스의 집약체라는 장점에 갇혀 일정 이상 만화의 한 독립 장르로서 성장하고 있지 못한 모습이다.

세로 스크롤의 진짜 한계는 이것이다. 세로 스크롤 자체는 분명 화면에서 만화를 표현하기 위해 최적화한 방식이지만 결국 이에 기반한 표현 양식을 계속해서 만들어내지 못하고 정체될 때 이미 끝났다고들 생각했던 매체에게 역습 아닌 역습을 당하고 있다. 다만, 이 상황을 퇴보라고만 보기보다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출판만화는 분명 세로 스크롤이 보여주는 무한성에 비해 표현할 수 있는 물리적 영역이 매우 제한돼 있다. 그렇기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표현 양식들이 개발되고, 그 하나하나가 결국 문법과 연출이 되어 극의 재미와 밀도를 만드는 데에 일조해 왔다. 문법과 연출은 제한을 넘기 위해 고안된다. 세로 스크롤이 놓치고 있었던 건 어쩌면 이 점이 아닐까.

서찬휘

만화 칼럼니스트이자 만화정보저널 사이트 '만화인' (http://manhwain.com) 운영자. 글쓰기와 만화를 좋아하던 프로그래머 지망생이었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만화와 얽힌 글을 쓰면서 만화 정보를 묶어내는 컴퓨터 프로그램들을 짜고 있다. 자생한 1.5~2세대 한국형 오덕으로 덕업일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내츄럴 본 프리랜서. 칼럼, 연구, 비평, 강의, 방송, 캘리그라피 등 만화와 관련해서는 오는 의뢰 안 막는 자판기형 용병의 삶을 구가 중이다. 최근엔 열심히 애 아빠로 클래스 체인지 시도 중. 봄이야,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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