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_ 만화인가, 만화의 새로운 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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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의 다름, 공존, 자아 찾기, 성숙

 

포털사이트에서 웹툰이 연재된 지 어느덧 10여 년. 웹툰 원작의 <미생> 드라마의 폭발적인 인기, 비포털 플랫폼 <레진 코믹스>의 유료화 성공, 여기에 2015년에는 웹툰 시장이 3,000억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는 KT경제경영연구소의 전망이 더해지면서, 웹툰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런데 새로운 모색기에 접어든 이 시기에 웹툰이 만화인가, 아닌가를 두고 때 아닌 논쟁이 일고 있다. 웹툰을 만화의 연장선상에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웹툰을 이전 만화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만화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극단적으로는 웹툰을 기존 만화와 구분되는 새로운 시각 예술 장르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과 한국에서 유독 강세를 보이는 웹툰을 만화를 대신하는 용어로 쓰자는 의견까지 존재한다. 그렇다면 웹툰은 만화인가 아닌가. 웹툰은 만화의 장르 중 하나인가, 아니면 만화와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시각 예술인가.

 

만화란 무엇인가
만화란 무엇인가.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웹툰이 만화인가 아닌가를 논하기에 앞서, 일단 만화란 무엇인지부터 짚고 넘어가 보도록 하자. 웹툰이 만화의 정의에 부합되고 그 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웹툰은 당연히 만화일 테니까.

만화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다. 국어사전에서는 만화를 ‘풍자나 우스갯거리 등을 선화로써 경쾌하고 익살스레 그린 그림, 또는 어떤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를 연속된 그림과 대화로 엮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고, 권경민 교수의 <만화학 개론>에서는 만화를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연속적인 그림과 글의 조합’으로 정의 내리고 있다. 이 두 정의의 공통점은 ‘그림의 연속 배열을 통한 이야기 전달’에 있다. 여기에 스콧 맥클루드는 <만화의 이해>에서 ‘정보를 전달하거나 보는 이에게 미적 반응을 일으킬 목적으로 그림과 그 밖의 형상들을 의도된 순서대로 나란히 늘어놓은 것’을 더한다. 꼭 그림이 아니더라도 만화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만화란 ‘연속된 이미지를 통한 이야기 전달’에 그 본질이 있다.(카툰과 캐리커처는 잠시 넣어두도록 하자)

만화는 만화만의 고유한 특성을 지닌다. 만화는 말풍선과 효과선, 만화만의 기호와 언어를 가진다. 사진에 말풍선과 효과음, 만화 기호만 추가해도 만화처럼 보이는 것이 좋은 예일 것이다. 여기에 칸과 칸 사이(홈통)를 통한 연출과 미장센, 과장과 생략의 미학이 더해지면 만화미학은 정점에 이른다. 또한 만화의 종류는 형식에 따라, 장르에 따라, 매체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뉜다. 만화는 각 매체의 속성에 맞게 진화해 왔다.

만화는 신문, 잡지, 단행본,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를 타고 노출된다. 먼저 만화의 가장 오래된 매체는 신문이다. 신문에 실린 만화는 사회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저널리즘적 특성을 지닌다. 흔히 이런 신문만화를 만평, 시사만화라고 부른다. 신문의 성향에 따라 만화는 장르 만화적 속성을 보이기도 한다. 이때 연재되는 만화는 주로 성인만화로 남성을 주 독자층으로 한다. 잡지에 연재되는 만화는 거의 대부분 장르 만화이다. 80년대 말 일본 만화잡지 시스템을 가져온 한국 만화는 성별과 연령에 따라 잡지를 나누고, 그들의 주요 기호와 취향에 맞춰 소재와, 주제, 스토리 전개 방향을 결정하는 등 일본 만화잡지 시스템을 충실이 따랐다. 편집부는 공모전을 통해 작가를 선별하고, 자신들의 잡지 스타일에 맞춰 훈련시키며, 정식 연재 후에도 계속해서 간섭한다. 이렇게 잡지에서 인기를 얻은 작품은 묶어서 단행본으로 출간된다. 만화 잡지와 단행본 독자의 특징은 기호와 취향이 확실하여 특정 장르를 선호하고, 충성도 또한 매우 높다는 것이다. 이들은 단행본을 구매함으로써 만화를 소유하려고 한다. 물론 잡지를 거치지 않고 단행본으로 그대로 나오는 단행본도 있다. 이런 경우 소재와 주제의 폭은 넓어지고, 스토리와 만화 연출의 호흡 또한 달라진다. 장르 또한 순정, 판타지, 액션, 추리부터 자전만화, 실험만화, 언더만화, 그래픽 노블까지 다양해진다.

신문, 잡지, 단행본, 이 세 매체의 공통점은 종이라는 인쇄 매체라는 것과 이로 인해 Z자 읽기 방식에 맞춘 양면 연출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만화는 ‘Z’자 읽기 방식에 맞춰 칸의 크기와 배열, 연출을 달리하는데, 특히 페이지가 넘어가기 직전, 즉 양면 중 오른쪽 페이지 마지막 칸(일본 만화의 경우 반대)이 가장 중요한 연출 포인트다. 만화는 만화 스토리 전체에서 기승전결 구조를 보이기도 하지만, 연재 주기에 따라 적게는 이 양면(두 페이지) 안에서도 기승전결 구조를 보인다. 뛰어난 만화가일수록 양면 연출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함으로써, 독자를 극에 몰입하도록 만든다. 이렇듯 만화는 매체에 따라 조금씩 모습을 달리하지만, 이미지 연결을 통한 이야기 전달, 만화의 다양한 기호 사용 등 만화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웹툰은 만화인가 아닌가
자, 이제 웹툰 이야기를 해보자. 일반적으로 웹툰(webtoon)은 web과 cartoon의 합성어로, ‘인터넷이라는 웹 환경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양식의 만화’를 말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정의 안에 이미 만화가 들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웹툰이 웹 환경의 특수성에 맞춰 만들어진 새로운 양식의 만화라는 점이다.

웹툰은 본질적으로 만화의 특성을 가진다. 칸의 나열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며, 만화의 각종 기호를 사용한다. 다만 연출에 차이를 보이는데, 페이지 만화(종이 만화, 웹툰과 구별하기 위해 반대되는 개념으로 쓰인 용어)가 ‘양면 연출’을 쓴다면, 웹툰은 ‘세로식 연출’을 사용한다. 이미지가 길어지면 스크롤이 생기는 웹 속성 때문에 웹툰의 칸은 수평이 아니라 수직으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종이 만화가 양면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칸과 칸끼리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칸의 연속성을 통한 이야기 전개에 집중한다면, 웹툰은 칸과 칸 간의 관계와 연속성보다는 스크롤을 내렸을 때 모니터에 포착되는 한 칸의 집중도를 중시한다. 그러다보니 한 칸에 머무는 시간이 본질적으로 양면 연출을 쓰는 기존 만화와 차이를 보이게 된다. 또한 웹툰은 각종 효과음이나 BGM을 깔거나 GIF를 활용해 움직이게 하는 기법 등을 활용하기도 한다.

 

 

도판 1. Z자 읽기와 양면연출종이 만화(페이지 만화)

도판2. 웹툰 세로식 연출웹툰의 읽기 방식과 세로식 연출

 

Z자 읽기 방식과 양면 연출
빠른 연재 주기는 장르와 연출에 영향을 미쳤다. 종이 만화가 짧아봐야 주 단위 연재를 한다면, 웹툰은 짧게는 1일 단위, 길게는 10일 단위로 연재를 한다. 그러다보니 짧은 호흡의 개그 만화나 일상툰이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한다. 이들은 작품의 밀도보다는 현재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각종 패러디와 유행어가 자주 등장한다. 독자 성향도 다르다. 기존의 종이 만화 독자층이 특정 연령층에 몰려 있고 충성도가 높은 마니아적 경향을 띤다면, 웹툰은 독자층의 폭이 넓어진 반면, 웹툰을 단순히 ‘소비’할 뿐이지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또한 웹툰은 작가와 독자 사이의 간격도 매우 좁다. 만화를 배우지 않더라도 ‘나도 만화가’에서 인기만 있으면 언제든지 작가가 될 수 있고, 작가로 데뷔하면 작품성이나 실력에 상관없이 오로지 조회 수로만 평가 받는다.

이러한 특성 탓에 웹툰은 이전 만화와 달라 보이며, 새롭게 보이기까지 한다. 물론 웹툰이 새로운 양식을 지닌 ‘만화’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웹툰은 웹이라고 하는 새로운 매체의 속성에 맞게 그들만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그러나 만화의 속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웹툰은 결국은 만화다. 만화가 종이라는 매체에 맞춰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킨 것처럼, 웹툰 또한 웹이라는 매체에 맞춰 완벽하게 적응한 것뿐이다. 웹툰이 새로운 시각 예술이라는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만화와는 차별화된 웹툰만의 고유의 것을 지녀야 한다. 만화가 만화라는 고유의 영역을 획득한 것은 회화에서의 그림과 소설에서의 글을 가져왔기 때문이 아니라, 만화만의 기호와 언어, 칸새를 통한 연출, 미장센 등 만화만의 고유한 특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웹툰을 새로운 양식의 만화에는 동의하지만, 만화가 아닌 새로운 시각 예술이라는데 동의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로운 작가, 새로운 독자
그렇다면 웹툰이 기존 만화와는 다른 새로운 양식의 시각 예술이라는 주장은 어떤 연유에서 나온 것일까? 이 주장의 이면에는 새로운 작가와 새로운 독자가 있다. 2000년대 초중반에 데뷔한 웹툰 1세대 작가가 8,90년대 한국 종이 만화의 수혜를 받고 자란 세대라면, 2000년 후반에 데뷔한 젊은 작가들은 웹툰 1세대의 웹툰을 보고 자란 세대다. 이들에게 종이 만화는 유명한 일본 만화가 전부이고, 이전 시대의 만화가들은 선배나 스승이 아닌 기성세대일 뿐이다. 독자들 또한 종이 만화보다는 웹툰이 익숙한 세대다. 이들은 책보다는 스마트 기기가 친숙하며, 만화는 사서 보는 것이 아니라 무료로 보는 오락거리에 불과하다.

젊은 웹툰 작가들이 이전 한국 만화를 낯설어 하는 이유는 90년대 후반 한국 만화의 붕괴로 인한 단절에 있다. 1997년 청소년보호법과 만화대여점, 일본 대중문화 개방으로 인해 90년대 한국 만화는 거의 전멸하다시피하면서,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가는 한국 만화의 맥이 끊어져 버렸다. 이때 등장한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는 비교적 검열이 적고 진입이 쉬운 공간이었고, 만화는 웹툰이라는 옷으로 바꿔 입고 홀로 외로이 성장했던 것이다. 결국 한국 만화의 자양분을 먹지 못한 젊은 만화가들은 이전 한국 만화에 공감하지 못한 체,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기에 나섰다. 자기들만의 소통 공간을 만들고, 자기들만의 웹툰 문화를 만들어가며 ‘다름’을 통해 정체성 찾기를 한다. 결국 90년대 한국 만화의 붕괴는 웹툰을 ‘만화가 아닌 그 무엇’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1988년과 2015년, 다른 듯 닮은 꼴
1988년 12월 서울문화사에서 <아이큐 점프>가 창간될 당시, 젊은 만화가들은 열광했다고 한다. 일본 만화잡지 시스템을 도입해 만든 <아이큐 점프>와 <소년 챔프>는 이전 한국 만화와는 확연히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주간 연재, 공모전을 통한 작가 데뷔, 편집부의 전문적인 작가 관리 시스템, 연령별 잡지의 분화 등 <아이큐 점프>는 이전 만화와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고, 그것은 새로운 만화의 시작을 알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 분위기, 뭔가 익숙하지 않은가? 지금 다루고 있는 논쟁과 유사하다. 작가와 독자가 다르다고?

그렇지 않다. 이 당시 만화가들은 속칭 일본만화 <드래곤볼>을 보고 자란 세대로, 이들은 일본 만화 문법을 충실히 따르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20대 초반 비교적 어린 나이에 공모전으로 데뷔한 젊은 만화가들은 비슷한 또래인 10대 독자들의 문화를 만화에 담아내어 공감대를 형성했다. 독자들 또한 어른들과 아이들이 아닌 청소년층으로 확대되었으며, 단행본을 사서 보는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었다. 새로운 작가와 새로운 독자. 새로운 매체와 새로운 만화 문법의 등장, 2015년과 비슷하지 않은가. 결국 만화는 각 시대의 상황에 맞게 90년대에는 주간만화잡지 시스템에, 2000년대에는 웹에 맞게 적응한 것뿐이다. <미생>의 윤태호의 성공은 90년대 시스템에서 자란 기성 작가가 웹이라는 새로운 매체에 완벽하게 적응한 예이다.

‘웹툰이 만화이다 아니다’라는 논쟁의 이면에는 ‘웹툰의 자아 찾기’가 있다. 한국 만화의 유산을 물려받지 못한 웹툰은 ‘다름’을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려고 한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90년대 한국 만화에 젊은 작가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김준범, 윤태호 같이 문하생 시스템으로 키워진 기성 작가들과 이명진과 같은 젊은 작가들이 함께 공존했다. 2000년대 웹툰은 겉으로는 젊은 작가들에 의해 홀로 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시작에는 강풀, 양영순, 강도하 같은 90년대 만화가들이 존재한다. 단절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결국 만화라는 본류 안에 하나로 연결된다.

‘자아 찾기’는 보통, 자신의 뿌리(근원)를 찾고, 그것과의 분리를 통해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단계로 나아간다. 우리는 이것을 일컬어 ‘성숙’이라고 한다. 웹툰 또한 ‘자아 찾기’의 긴 여정에서 양적 성장만이 아닌 질적 성숙에 나아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