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호가 <무림수사대>를 통해 말 걸고 있는 대상과 방식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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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이충호 론’의 가능성과 몇 가지 핑계
이 글의 한계를 먼저 일러둔다. <무林수사대> 1)에 대한 비평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준비하는 중에 곤궁에 빠졌다. 자료 조사를 하고 작품을 꼼꼼히 읽어보니 애초에 생각했던 바와 달리 작품의 연출 등 형식적 측면 혹은 내러티브에 대해서는 기존 논의를 ‘넘어서는’ 2)내용을 ‘의미 있게’ 3) 논하기 어려웠다. 이 핑계는 조금 더 상세히 논할 필요가 있다.

사실 시간과 지면이 충분히 주어진다면, 이충호 작가는 적절한 작가론의 대상이다. 그는 데뷔 이래 20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유지하는 작품을 꾸준히 내놓으면서도 매 작품마다 작풍·연출 등 형식적인 면에서 변화를 시도했다. 그러한 ‘퀄리티’와 ‘변화’ 모두를 구체적으로 고찰할 때, 상당히 무게감 있는 중견 작가를 통해 90년대 소년만화와 극화에서부터 2000년대 이후 웹툰 시대에 이르기까지를 짚어보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특히 윤태호, 양영순 작가와 함께 다룬다면 더더욱 훌륭한 검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작가와 마찬가지로 이충호 작가도 출판 만화와 웹툰을 모두 경험했다. 특히 의뢰받은 작품 <무林수사대>가 웹툰 데뷔작인 만큼 그의 출판만화 전작들과, 다른 작가들의 웹툰 데뷔작과 출판만화 전작들을 함께 검토하여 매체 전환에서 드러나는 특징을 고찰해보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이처럼 폭넓은 글쓰기의 대상인 이충호 작가를 좁히고 좁혀서, 제한된 지면과 시간 안에 웹툰 데뷔작인 <무林수사대>를 중심으로 의미 있는 논의를 하기란 상당히 버거운 기획일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별 의미 없고’, ‘전혀 새롭지 않은’ 설명이나 리뷰를 평론이라고 내놓을 수는 없는 일이니. 이런 고민 끝에 나는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방향이 ‘적어도 제한적 의미나마 지닌’, ‘조금이나마 새로운’ 글을 내놓을 수 있는 선택이라 믿고 뛰어드는 모험을 감행하기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완결되지는 않았으나 2014년작 <武림수사대>가 같은 이름으로 존재하기에 포착되는 시간 속 변화에 도박을 걸어볼 엄두가 생겼다. 따라서 이 글의 일차적인 텍스트는 두 편의 <무림수사대>다. 2008년의 <무林수사대>와 2014년의 <武림수사대>는 <이스크라>(2009), <지킬박사는 하이드씨>(2011), <제 0시: 대통령을 죽여라>(2012) 등의 웹툰을 사이에 두고 있기에, 이충호라는 작가의 과거와 현재를 조망하기에도 꽤나 적절한 텍스트가 되어 줄 것이다. 특히 ‘정치적’인 지점이 그의 웹툰 창작뿐만 아니라 독자 반응을 아우르는 문제일 것으로 보이기에, 이에 주목한다. 이 판단의 근거들은 글 전체를 통해 제시될 것이다. 이제 핑계를 마치고 본격적인 분석과 비평에 들어설 차례다.

 

<무林수사대>의 시대와 상황
어떤 텍스트도 시대를 비켜갈 수는 없다. 시대를 넘어서는 상상력이 발휘될 수는 있지만, 그 상상력 역시도 그것이 출발한 그 시대의 한계를 배경으로 한다. 미래 사회를 그린 SF 작품이든 이(異)세계를 그린 판타지 작품이든, 모든 작품은 그 안에 작가의 시대를 어떤 형태로든 담고 있다. 너무나 자명한 말이지만, 이 글이 논하려는 <무림수사대>가 담고 있는 시대의 스펙트럼을 밝히기 위해서는 이런 자명함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무림수사대>에서 발견되는 무수히 많은 ‘작가의 시대’ 가운데 내가 주목하는 것은 다음 세 가지다. 가장 기본적인 첫째, 무공을 빼고는 ‘지금’의 ‘대한민국 서울’과 차이가 없는 현대 도시라는 시공간적 배경. 둘째, <무林수사대>에서 <武림수사대>까지를 이루는 시간의 역사. 어쩌면 가장 중요한 셋째,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댓글 창의 독자들. 이 절에서는 둘째 항목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무林수사대>는 2007년 7월 10일에 티저 예고편이 처음 올라오며 시작하여 2008년 8월 29일에 후기와 함께 마무리되었다. 이 1년 동안 대한민국에 일어난 몇 가지 사건들을 <무林수사대>와 함께 잠시 짚어보자.

2007년 12월 10일 챕터 19 업로드 및 1부 마지막 화 지연 알림
            12월 19일 제 17대 대선.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당선
            12월 28일 챕터 20(1부 완결)
2008년 1월 11일 특별편 1화~1월 25일 특별편 3화
            2월 1일 챕터 21(2부 시작)
            2월 25일 이명박 대통령 취임
           4월 29일 PD수첩 광우병 문제 첫 보도
           5월 2일 대규모 촛불 시위 첫 집회
           6월 7일 챕터 38 + Remember 1987.6.10. 배너

위에서 드러나듯 연재 중에 대선이 있었고 정권이 교체되는 등 현실정치의 변화가 있었다. 또한 역사에 기록될 만한 대규모 ‘촛불’ 시위도 그 사이에 있었다. 이러한 국면들은 기본적으로 <무林수사대>가 ‘경찰’인 주인공이 ‘정의’를 위해 싸우는 ‘의협물’이라는 점에서 그저 넘겨짚을 수만은 없는 중대한 현실상의 변화다. 먼저, 보수 세력이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르게 된 시간이 막을 내렸다. 이어서 보수 세력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한미 FTA가 적극적으로 추진되었고 그 와중에 ‘광우병 정국’이 시작되었다. 그와 함께 다양한 주체들의 상호 인식에도 큰 폭의 변화가 일어났다. 2008년 5월 말에 ‘언론소비자주권행동’이 결성되면서 조중동에 대한 불매운동으로 대표되는 시민의 언론에 대한 목소리가 일어났고, 이러한 시민들에게 검찰의 PD 수첩 수사는 ‘언론 탄압’으로 인식되었다. 또한 같은 해 5월부터 일어난 촛불 시위는 ‘민주 시민’의 목소리가 울린 사건으로도 주목되었지만, 반대로 그에 대항하는 ‘보수 시민’의 결집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특히 이후 ‘일베’로 일컬어지는 젊은 보수 세력은 광우병 시위의 ‘광기’와 ‘감성팔이’에 선을 긋고 등장한 것으로 자임하기도 했다. 또한 <무林수사대>와 관련하여 주목할 점은, 이 시기에 경찰과 ‘민주 시민’의 대립이 격화되었다는 점이다. 경찰의 시민에 대한 과도한 진압과 폭행이 첨예한 이슈가 되었고, 경찰차벽과 ‘명박산성’ 등의 경찰 전략이 많은 시민들에게 악명을 떨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이 <무림수사대>와 관련해 가장 중요하게 인식하는 변화는 시민들 내에서의 좌우 대립이다. 서로를 ‘좌빨’과 ‘수꼴’로 바라보는 ‘시민’의 형상들이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하여 등장했고 지금 그 첨예한 대립이 도처에서 펼쳐지고 있다. (일단 이들을 ‘진보 시민’과 ‘보수 시민’이라는 표현으로 지칭하기로 하자.)

다소 거칠고 간략하게 정리했지만, 이러한 여러 주체의 인식 변화가 <무林수사대>의 세계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작품의 중심인 경찰이 현실에서 시민의 ‘정의’에 대립하는 존재가 된 것은, 그 이전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던 ‘권력의 개’로서의 경찰 이미지를 되돌려주었으며 이를 작품 속에 반영하지 않는 것은 작품의 ‘현실성’을 잃는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직 노무현 정권이던 <무林수사대>의 시작점에서 크게 강조되지 않았던 경찰 조직의 부패가 36화(2008.5.23.)에서부터 전면적으로 드러나고 41화(2008.6.27.)에서 완연히 폭로되는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또한, 38화에서 어린이를 지키며 “물러서지 않는 것은 영웅이라서가 아니라 경찰이기 때문이다!!”라고 외치는 모지후의 대사는 현실 속 경찰 개개인의 자성을 바라는 목소리로도 읽힌다. 이를 감안할 때, <무林수사대>는 큰 변화 가운데서도 상당히 잘 적응해서 큰 무리 없이 스토리를 이어갔다고 평할 수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핵심은, 경찰 집단을 부패한 수뇌부와 정의로운 말단으로 선명하게 분리해 내는 방식에 있었다.

하지만 ‘경찰’이라는 집단과 개개인, 그리고 ‘시민들’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여기서 끝날 수는 없었다. 2014년 <武림수사대>에서 이는 한결 복잡한 형태로 나타난다.

 

<武림수사대>, 그리고 독자와의 밀당
<武림수사대>의 경찰 주인공 형상을 살펴보기에 앞서 그 직전작 <제 0시: 대통령을 죽여라>를 언급할 필요가 있다. 보수 독자들과 댓글창에서 큰 갈등을 빚었던 작품이지만, 바로 그 점에서 이 작품은 중요하다. 먼저 주인공의 각성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두 <무림수사대> 사이에 있다고 할 만하다. 처음에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경호와 충성에 모든 것을 바치는 이반(플루토)이 여러 계기를 통해 세뇌에서 벗어나 ‘봄’이라는 캐릭터를 지키려 노력한다. ‘봄’은 많은 것들의 은유적 상징으로, 민주주의와 시민, 사람 사는 세상 등의 진보적 이상이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봄’보다 주목해야 할 인물은 이반이다. 그는 각성 이전에는 ‘일베’의 형상에 가깝다. 그리고 그런 그가 각성 후에는 ‘봄’을 지키는 이로 거듭난다. 하지만 그런 방식의 인물 설정을 포함해 작품 속에 켜켜이 새겨진 정치적 메시지와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이 보수적 독자층의 반감을 크게 샀다. 이는 ‘일베’를 비롯한 보수 독자층이 결집된 행동을 하게 된 상황 가운데, 그들의 언행뿐만 아니라 그에 반대하는 진보 독자층의 언행까지도 댓글 창에서 작가가 직접 확인하고 경험하게 되었다는 면에서 이후 이충호 작가의 행보에 있어 중대한 지점이다. 설득·적대할 대상과 설득·적대의 방법 등을 고민하며 펼친 작품을 통해 그 고민을 심화하게 되는 계기였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경험 후에 시작한 <武림수사대>에서 시리즈의 주인공 모지후는 다크 히어로로 변신한다. 그는 다소 단순하고도 추상적으로 정의로웠던 <무林수사대>에서의 모습을 탈피하여, ‘정의’의 다양한 관점과 그것을 구현하고 잃는 첨예한 여러 방식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뇌하고 선택하는 형상으로 그려진다. 이와 함께 그는 국가와도 적대한다.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 1> 속 대사가, 경찰직에 사표를 내고 ‘래빗맨’이 된 모지후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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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래빗맨’ 모지후                                         어떤 ‘시민’의 형상

 

그런데 이 대사는 모지후의 동료 강산의 대사에 대한 응답이었다. 학생들을 죽이려 했던 탈옥 사형수를 처단하려는 모지후에게 강산은 이렇게 말한다. “국가가 법의 이름으로 할 일에 끼어들지 말고 그만 물러서라!” 이 대사에 대한 응답으로 모지후의 대사가 터져나왔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죽어야 할 놈’을 제대로 죽인 적이 없고, ‘지켜야 할 국민’을 제대로 지킨 적이 없는 ‘국가’는 두 현실의 두 대상을 지시하기 때문이다. ‘국가’라는 표현으로 인해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실제 현실 속에서 우리(독자)가 경험하는 대한민국이다. 세월호뿐만 아니라 많은 면에서 이 국가는, 꽤 많은 이들(‘진보 시민’)에게 모지후의 발언에서 크게 멀지 않을 만큼 무능하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보수적인 독자들은 국가에 대한 비판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일단 이 점을 짚어두자. 또 다른 현실은 작품 속의 현실이다. 이때 ‘국가’는 모지후 그 자신과 겹쳐진다. 죽어야 할 놈을 제대로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지켜야 할 친구 한길을 지키지 못했던 자신의 무능함에 대한 혐오가 ‘국가의 경찰’로서 살인을 할 수 없었던 점에 대한 혐오로 표현된 것이다. 기실 그런 무능함은 단지 경찰이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모지후 자신의 “살인자” 아버지와도 관련이 있지만, 동료 경찰들과의 대치 상황 속에서 ‘경찰’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와 그에 따른 무능함에 대한 자조가 흘러나오는 것은 납득할 만하다. 흥미로운 점은, 그러한 모지후의 전후 인식이 작중 시민 형상인 학생들의 모습에서 유사하게 표현된다는 점에 있다.

탈옥 사형수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는 래빗맨 모지후에게 “죽어 마땅한 벌레 같은 새끼”를 “당장 죽여” 버리라고 “시민들”의 이름으로 “명령”하는 이 학생들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만 놓고 보면 지금 모지후의 인식에서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충호 작가는 이들 시민 형상을 ‘광기’에 휩싸인 이들로 표현하고 있다. 반면 한 학생만은 친구들의 광기를 인식하며 울고 있는 모습이 또한 그려져 있다. 그는 자기를 괴롭히던 친구를 죽이면 다른 친구들을 살려주겠다던 탈옥 사형수의 제안을 거절한 학생이다. 그런데 이 학생의 선택은, 래빗맨이 되기 전 모지후의 선택과 동일하다. 그렇다면 ‘한 학생=모지후’이고 ‘학생들=래빗맨 모지후’라는 구도를 잠정적으로 그려볼 수 있다. 이런 구도에서 작가는 어느 쪽을 긍정하고 있는가? 혹은 어느 쪽을 비판하고 있는가? 이를 모호하게 하는 것이, 래빗맨 모지후의 ‘국가=자신’에 대한 적대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해 두자. 이를 현실 세계 속에서 서로 적대하는 ‘진보 시민’과 ‘보수 시민’의 성향6)과 대별해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무림수사대_표

 

표가 보여주듯, 이 광기에 휩싸인 학생들과 래빗맨 모지후는 ‘보수 시민’에 적대하는 ‘진보 시민’의 형상에 상당히 가깝다. 사회의 개선과 변혁을 위해, 소수의 ‘악’과 ‘벌레’와 ‘괴물’을 소탕하고자 하는 시선은 ‘보수 시민’을 바라보는 ‘진보 시민’의 시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다시 묻자. 지금 이충호 작가는 누구를 비판하고 누구를 옹호하고 있는가? 지금으로선 잘 알 수 없다. 하지만 명백한 것은, 현재로서는 그가 모두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모지후의 두 모습/학생(들)로 형상화된 시민의 모습에서 포착할 수 있는 지점이다.

이충호 작가는 이렇게 모두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견지하면서 독자들을 성찰의 장으로 이끌려 노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독자와의 밀당’이라 할 아직은 모호한 비판적 재현에 대한 적실한 판단은 <武림수사대>가 더 진행된 후에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이충호 작가가 펼치는 밀당에 대한 독자의 반응을 댓글 속에서 살펴보는 것 정도가 가능하다.

 

이충호가 말을 걸고 있는 대상과 방식
<무림수사대>에 달린 댓글이 명확히 진보와 보수로 나뉘지만은 않는다. 사회학적, 혹은 정치학적 의미에서의 ‘진보’와 ‘보수’라기보다는 현재 한국에서 통용되는 의미에서의 ‘진보’와 ‘보수’가 서로 맞부딪히는 가운데 그에 수렴되지 않는 몇 가지 의견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자.”라거나, “만화는 만화로만 보자.”와 같은 ‘비정치적’ 의견이 그에 해당한다. 그 외에도 대사나 인물에 대한 감상, 그리고 무엇보다 유머가 존재하지만 많은 회차 마다 이는 소수에 해당한다.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대사나 표현이 등장하는 챕터마다 ‘진보’, ‘보수’, ‘비정치’ 의견이 등장한다.

이들은 각자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만, 내 눈에는 어떤 공통점이 보인다. 그들 사이에 같은 점은, 작품을 충분히 면밀히 읽지 않고 자기의 목소리만을 내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상술하는 것은 <武림수사대> 완결 이후로 미루려 한다. 지면의 제약도 있지만, 사실 힌트는 거의 다 던졌다. 무엇보다 ‘진보’, ‘보수’, ‘비정치’ 의견에 대해 낸 나의 의견에 대해 그들 스스로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말 걸기를 그치지 않았던 이충호 작가가 <武림수사대>에서 다시 새롭게 시도하는 방식이다. 그의 고군분투를 응원한다. 독자의 그것 또한, 더욱 절실하게 응원한다. 지금으로서는 말을 더 보태는 것보다 희망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이 더 적실하다. 이충호 작가에게도, 독자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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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충호 작가가 시즌 1의 후기에서 밝힌 바처럼 <무림수사대>는 기본적으로 시즌제로 기획되었으며, 제목에서 한자로 표기한 부분은 그 개별 시즌의 강조점을 가리킨다. <무林수사대>는 “‘숲’ 즉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강조한” 작품이며, 현재 1부를 마친 시즌 2 <武림수사대>는 “무공과 대결이 강조된” 작품이다. 이러한 구상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이 글은 개별 시즌을 표기할 때 한자 강조를 그대로 살려서 쓸 것이다. 반면, 현재까지 나온 모든 시즌을 통괄하여 지칭할 때는 한자 표기 없이 <무림수사대>로 쓴다.

2)심지어 웹툰의 댓글에서 지적된 바 혹은 라그베다 위키의 내용조차도 상당히 폭넓게 형식적 특징들을 짚어내고 있다. 

3)<무림수사대>의 형식적인 특징들을 의미 있게 다루려면, 웹툰의 역사 속에서 하일권, 강풀 등 연출 방면의 대표적인 스타일리스트와 대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더 많은 지면이 필요한 일이며, 게다가 <무림수사대>가 이충호 작가의 형식적인 종착역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 많은 작품의 독해를 요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4)이에 대해서는 조금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11화(2007.10.9.)에서 서울지방경찰청 무림과장이 무림 5대 신군과 결탁했다고 마포경찰서장이 비웃는 대목 정도가 전반부에서 경찰 부패를 드러내는 장면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마포경찰서장이 흑룡방주에게서 “아닌 척하면서 은근히 챙긴 돈이 2억 5천”이라는 사실이 41화에서 밝혀진다. 하지만 이는 작가가 사후적으로 가한 변화이지 11화를 그리는 시점에 이미 있었던 설정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11화 시점에서부터 부패한 경찰이라 보기에는 마포경찰서장이 너무 떳떳하며, 이 장면 역시 차후 드러날 부패의 복선 혹은 셋업으로 이해될 여지가 없어 보인다. 따라서 “아닌 척하면서”는 뒤늦은 수정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화감을 처리하기 위한 작가의 고육지책이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를 작품의 약점이라기보다는 상황 변화에 따른 작가의 적절한 대응으로 읽으려 한다.

5)이 어린이는 챕터 말미에 촛불을 들고 “Remember 1987.6.10.” 문구와 함께 서 있다. 이 대목과 챕터 속에서 경찰과 힘을 합해 악인에 맞서 싸우는 이 어린이를 통해 작가가 꿈꾸는 시민 형상이 표현된 셈이다. 그리고 경찰은 마땅히 그런 시민을 지키는 힘으로 호명된다.

6)이 성향은, 주로 다음과 네이버 댓글 및 오유, 아고라, 일베 등의 사이트 게시물에서 드러나는 언어 표현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서로 적대하는 두 ‘시민’ 형상의 습속이다. 과학적인 연구 결과가 아니며, 현상과 현실에 대한 정확한 판단도 아니라는 점을 명시해 둔다. 또한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물음표로 표시했다. 

7)하지만 ‘보수 독자’들은 이충호 작가가 국가에 적대한다고 생각한다. “가끔 이 작가는 무정부를 꿈꾸시는 거 같애.나라 맘에 안 든다고 엎을 기세”와 같은 댓글(16화) 참조.

조익상

국문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만화 평론을 쓰고 있다. 만화를 통해 삶을 되짚어 보고 이야기 나누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작가보다는 독자가, 작품보다는 현실이 더 어렵다는 것을 매번 절감한다. 현재는 "주간경향", ‘만화로 보는 세상’ 코너에 만화 칼럼을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으며, 협동조합 가장자리에서 만화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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