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_ 티에리 그로엔스틴] 비평, 평가의 잣대가 아닌 이해의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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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만화 비평은 현대 철학과 미학을 바탕으로 하는 이론적 깊이와 다양성을 특징으로 한다. 만화 이론의 선봉장으로 굵직한 이론서를 집필하며 여러 역할을 소화해냈던 이른바 거장 비평가들을 필두로, 개인 블로그나 홈페이지 상에서 작품의 다양한 분석과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최근의 젊은 비평가들까지, 그들은 모두 만화라는 미디어의 토양에 양분을 채우는 일에 일조하고 있다.

그들 가운데에서도 다수의 이론서와 폭넓은 경력을 통해 가장 먼저 주목을 끄는 비평가는 티에리 그로엔스틴(Thierry Groensteen, 이하 그로엔스틴)이 아닐까 한다. 그는 유럽의 대표적인 만화 전문가로 방드 데시네(Bande dessinee)라고 불리는 불어권의 만화가 ‘제 9의 예술’로 발돋움 하고, 그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공헌을 해 왔다.

벨기에에서 출생한 그로엔스틴은 문학과 연극에 꾸준한 관심과 열정을 가졌고, 이는 곧 저널리즘에 대한 학업과 연구로 이어졌다. 80년에 들어서면서, 그의 방향성은 완전하게 만화로 돌아섰다. 만화 이론 부흥기의 대표적인 비평지로 알려져 있는 <카이에 드 라 방드 데시네(Cahier de la bande dessinee) 1969-1990>의 편집장을 지내면서 불어권의 대표적인 만화 비평가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프랑스 앙굴렘의 국제 만화 이미지 센터(CIBDI 혹은 CITE d’Angouleme으로 표기, 구 CNBDI)의 디렉터를 역임했고, 앙굴렘 작가의 집(Maison des auteurs)의 경영 행정관, 만화 비평지 <제 9의 예술(Neuvieme Art)>와 출판사 랑두(L’An 2)의 설립자, 출판사 악트 슈드(Actes Sud)의 디렉터를 거쳤다. 앙굴렘 유럽 고등 이미지 학교(EESI) 및 다양한 전문학교에서 강의했으며, 스무 권 이상의 저서 <작가 따르디 Tardi, 1880>, <망가의 우주, 1991>, <만화의 시스템, 1999>, <정체성이 잡히지 않은 문화 오브제, 2006>, <만화 사용 설명서, 2008>, <보두앵 Baudoin과 함께 한 길, 2008>, <만화, 그 역사와 거장들, 2009>, <패러디 : 암시적 만화, 2010>, <만화와 서사, 2011>, <퇴퍼 Topffer가 발명한 만화, 2013> 등을 집필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전시에 대한 기획자로도 활동했다.

그가 만화에 쏟은 애정과 역할을 서술하고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프랑스 만화계의 80년대부터 현재까지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존재감은 크다. 그와의 서면 인터뷰가 프랑스 만화 비평의 지형에 대해 대략적인 이해를 도울 수 있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프랑스의 대표적 비평가의 한 사람인 그를 알게 되는 단초가 되기를 바란다. 비평 전반에 대한 그의 개인적 판단과 현재의 사회적 이슈에 대한 그의 생각을 알아볼 수 있는 질문들을 던졌다.

 

– 유명한 만화 이론가의 한 사람으로 꾸준하게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만화 이론 확립의 필요성을 인지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는가?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로엔스틴 : 저널리즘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기 이전부터, 나는 이미 비평가였다. 내가 84년부터 88년까지 편집장으로 활동했던 만화 비평지 <카이에 드 라 방드 데시네>를 통해 많은 글을 접하고 쓰게 되었을 때, 느낀 감정들과 인상들을 옮기는 것뿐인 만화 비평에는 만족할 수 없다고 바로 깨달았다. 만화 작품을 보다 깊고 체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지적 도구’의 필요성도 느꼈다. 당시에는 만화 이론이 존재하지 않았거나 혹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그를 제대로 정립해야만 했다.

– 프랑스의 젊은이(학생, 아마추어 비평가)들은 기존의 만화 이론가들이 거의 대부분의 주제들을 다루었고, 충분한 결과물을 내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그런 만큼 앞으로 그들이 다룰 수 있는 주제와 그들의 역할이(20, 30년 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고도 생각한다.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로엔스틴 : 모든 이론들이 이미 다시 다뤄지거나, 보다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만화에 대한 우리의 관점은 계속 변한다고 생각한다. 만화 스스로도 계속 진화한다. 예를 들어 20~30년 전에는 ‘디지털 만화’나 ‘추상 만화’의 등장을 예상하지 못했고, ‘그래픽 노블’에 대한 개념도 제대로 잡히지 않았었다. 미디어의 환경, 미적 기준, 지적 기준, 기술적 배경 또한 계속 변화한다. 시대에 맞춰서 질문을 다시 던지고, 답을 다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당신도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읽었을 것이다. 그때의 독서 경험은 전혀 전문적이지 않았을 텐데, 언제부터 비평적 관점을 갖고 만화를 대하기 시작했는가?

그로엔스틴 : 천천히 성장해왔던 정신적 관점이 구체적으로 형성되면서부터였다. 자연스럽게 생겨난 이 관점은 단지 만화만을 향하지는 않았다. 어떠한 부분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를 통한 즐거움을 얻었을 때, 그것이 어떻게 작용이 되는지 쪼개어 분석하여 보다 더 깊게 이해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 다양한 미디어 가운데, 만화에 대해 중점적으로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로엔스틴 : 예전에는 연극에 대한 글을 쓰기도 했다. 나 스스로도 아마추어 배우로서 연극에 참여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내가 쓴 대부분의 글들이 만화를 다루고 있는 이유는(내가 만화에 대한 글을 쓰며 얻게 되는 즐거움은 열외로 두고), 직업의 세계에서는 스스로를 더욱 전문화, 특수화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 분야에서 인정받는 비평가가 되면서 내게 만화에 대한 원고 청탁이 끊임없이 많아진 사실도 그 이유가 될 수 있다.

– 대표적인 비평가로서 어떤 책임감 같은 것을 느끼는가?

그로엔스틴 : 비평가로서 느끼는 유일한 책임은, 작품을 논하며 젊은 작가들을 상처 입히지는 않았는지, 그들의 활동에 대한 의욕을 꺾을 만한 발언을 하지 않았는지를 살피고 그를 최대한 피하는 것이다. 또한 비평지 편집장으로서는 다른 견해를 가진 대담들과 다양한 감성들을 되도록 많이 담아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젊은 세대의 비평가들과 더 잦은 교류를 하려고 애쓰는 행동과 그들이 대중에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그들을 알릴 다양한 기회들을 제안하는 것도 책임감에서 나온 내 나름의 노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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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 비평이 갖는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그러한 성격의 글들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 여기는가?

그로엔스틴 : 비평이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독서의 즐거움에 그 깊이를 더해 준다는 데에 있다. 비평은 그가 다룬 작품과 오랫동안 함께 존재하거나, 혹은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는다. 때때로, 작품 창작에 어떠한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 비평문을 쓰는 과정에서 언제나 자신의 관점에 중요성을 두는 편인가? 독자들의 관점을 의식하며 글을 쓰지는 않는가?

그로엔스틴 : 다른 독자들의 의견을 모두 다 알 수 없기에, 내 이름으로만 비평을 말한다. 나도 수많은 독자들 가운데 한 명이지만, 미디어의 역사나 각 미디어의 성격에 대한 이해도가 더 깊은 사람이다. 가지고 있는 지식을 토대로, 작품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는 행동이 하나의 습관처럼 굳어졌다.

– 같은 작품을 대하더라도 당신의 의견과 독자들의 의견이 다른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로엔스틴 : 당연히 그럴 수 있다. 내 생각과 의견들은 주관적일 뿐이다. 비평은 정확한 과학이 아니다.

– 가끔씩이라도 비평적, 전문적 관점 없이 만화를 읽기도 하는가?

그로엔스틴 : 음, 그 부분은 내게 있어 점점 어려워진 작업이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전문적인 방향의 변형을 겪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일종의 직업병처럼.

– 당신이 비평했던 많은 작품들 가운데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

그로엔스틴 : 그런 작품들이 너무 많다. 목록을 모두 쓰면 페이지가 다 채워질 것이다.

– 한국 독자들에 소개하고 싶은 프랑스 만화를 꼽는다면, 어떤 만화를 추천하고 싶은가?

그로엔스틴 : 이 질문에도 쉽사리 대답하기 어렵다. 불어권의 전통적 작품을 생각하고 있다면, 의심 없이 고전 클래식부터 읽기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에르제의 <틴틴의 모험>과 같은.

– 당신은 비평지의 편집장부터 출판사 디렉터, 만화 박물관 관장, 작가, 대학 강사, 전시 감독까지, 만화 분야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냈거나 지금까지 하고 있다. 그 가운데 어떠한 활동이 당신을 가장 즐겁게 했는가? 가장 덜 내키는 활동은 어떤 것인가?

그로엔스틴 : 나는 연구하는 과정과 글 쓰는 과정이 가장 즐겁다. 그러나 만화를 강의하는 교직자로서는 단 한 번도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다. 학교의 틀은 너무 형식적이며 경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 한국에서 만화 비평가로 활동한다는 것은(경우에 따라) 경제적인 생존에 대한 염려가 수반된다. 프랑스의 비평가들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들의 활동을 돕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는가?

그로엔스틴 : 만화 비평가는 직업이 아니다. 프랑스에서도 비평가로서의 활동만으로 생활을 꾸려나가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의 경우, 어느 기관의 직원이거나 인터넷 사이트의 운영자이거나 출판업계에 종사하는 등, 다른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다른 활동을 병행한다는 것은 언제나 본 임무를 치러내고 다른 의무를 추가적으로 가져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만화 비평가가 되는 것은 온전히 열정과 즐거움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경제적인 계산과 함께 할 수가 없다.

– 프랑스와 한국의 작가들이 추구하는 서사나 그래픽 스타일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두 나라의 만화 비평을 위한 잣대와 기준은 서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프랑스 만화 비평의 특징을 설명한다면?

그로엔스틴 : 프랑스 만화 비평은 자주, 미학적 혹은 기호학적 이론의 영향을 받는다. 또한 비평의 주된 관점을 작품의 ‘언어’와 ‘스타일’ 면에 두고 있다. 영어권의 나라에서는 작품의 ‘내용’과 ‘스토리’를 분석하는 비평이 일반적이다. 한국의 만화 비평은 그 성격을 추론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양을 읽어보지 못해 잘 모르겠다.

– 한국 만화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가? 만약 프랑스적 관점으로 한국 만화를 비평한다면 어떻게 말하겠는가?

그로엔스틴 : 나는 한국 만화를 잘 알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비평적 의견을 내기에 충분하지 않다.

– 2015년 1월 7일, 샤를리 엡도 Charlie Hebdo를 향한 공격은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았다는 사실과 몇몇의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들로 하여금 한 종교가 분열과 갈등의 한 가운데에서 평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한 프랑스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이 사건이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가?

그로엔스틴 : 우선, 프랑스 사람들이 이 사건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의 답변은 좀 하기 어렵겠다. 사건이 벌어지고 난 이후, 나름의 관점에서 사건을 해석하고 분석한 사람들은 각각의 생각들을 수천 혹은 수만 장의 페이퍼에 기록했다. 모두의 의견을 수렴하는 결론을 내지는 못했으나,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고, 그를 비판하는 점은 모두 같았다. 현재,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은 아예 종교가 없는 무교이거나, 혹은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있더라도 더 이상 생활 속에서 종교적 교리를 실천하지는 않는 사람들이다(가톨릭교, 개신교, 이슬람교 등 종교의 성격을 막론하고 종교를 가진 다수의 프랑스인들이 그러하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일부의 극단적인 무슬림에게는 종교가 그들의 정체성을 규정짓고 삶의 모든 측면을 장악하는 핵심적 요소가 되어 버렸다. 그들 일부와 대다수의 프랑스인들 사이의 종교적, 문화적 균열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는 것이 현 상황이다. 또한 그것이 앞으로 어떠한 상황을 야기할 것인가에 대해 다들 염려하고 있다.

– 최근 들어 일본 망가의 영향 속에서 창작된 프랑스 만화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문화적 국경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는 경향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

그로엔스틴 :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다양한 혼합을 통한 결과물을 실험하는 것을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만약 온 세상에서 서로 너무나 닮은 만화(혹은 영화, 소설, 음악 등의 미디어도 마찬가지로)를 생산하게 된다면, 엄청난 문화적 퇴화와 빈곤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양성 만세!”

 

그로엔스틴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어떻게 만화 비평의 영역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활동을 시작했는지, 프랑스 만화 비평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과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만화 비평과 한국 만화에 대한 그의 견해를 들을 수는 없었던 부분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는 한국의 만화 비평이 프랑스에 번역되어 소개된 바가 거의 전무하고, 2000년대 초 프랑스에 소개되기 시작했던 한국 만화가 그 흐름을 유지하지 못한 것에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된다. 디지털 만화 전반을 대하는 프랑스 독자들의 태도가 한국에 비해 비교적 소극적이라는 점과 프랑스 만화 생태계가 한국의 그것과 다름을 이유로 웹툰 또한 아직 활발하게 대중화되지 못하고 있다.

무작정 서로 닮거나 모방하기 위함이 아닌, 각자의 차이점이 갖는 가치를 주목하고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에 상호교류의 목적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확보된 문화적 다양성과 독창성을 배경으로 함으로써,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고 그를 작품 속에 반영하는 만화가들과, 작품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 깊이를 더하는 비평가들이 함께 문화적 영역을 확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윤보경

Bokyoung YUN (尹保競) 공주대 만화예술학과에서 만화 공부를 시작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앙굴렘 유럽고등이미지학교에서 심화 과정을 쌓았다. ‘읽다’와 ‘보다’라는 행위를 중심으로 한국 만화와 유럽 만화를 비교한 [프랑스 만화의 읽기와 한국 만화의 보기], 언어의 차이점이 빚은 만화 서술 방식을 연구한 [언어의 차이점이 빚어낸 만화 서술 방식의 차이] 등의 논문을 쓰고, 프랑스의 만화 비평지 [제 9의 예술]에 [프랑스의 디지털 만화와 한국의 웹툰 : 디지털화면 위의 두 가지 표현 방식]을 기고했다. 한국 귀국 후, 대학 출강과 작품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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