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반전은 피보다 달콤하다_ 이나래의 <허니 블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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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든 운명이든 뱀파이어를 만난다면 어떻게 될까. 단순히 피 빨리는 것으로 끝날 수 있고 운이 좋다면 뱀파이어의 관대함에 기대어 친분을 다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나래의 <허니블러드>는 한 술 더 떠서 인간이 뱀파이어의 주인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고등학생인 신내림은 학교에서 ‘깡마른 마녀’로 불리면서 따돌림을 당한다. 무당의 딸이라는 게 주된 이유지만 반 친구들은 특별한 이유 없이 신내림을 괴롭힌다. 이를 주도하는 건 그녀의 어릴 적 친구 송진아. 뒤에서 아이들을 조종해 신내림을 왕따로 만든다.

수학여행 때 담력테스트에 끌려간 신내림은 우연히 뱀파이어 페테슈를 깨운다. 페테슈는 신내림을 ‘동양의 마녀’라고 부르면서 자신에게 피를 주면 그녀를 주인으로 삼고 지켜주겠다고 한다. 인간이 되고 싶은 페테슈는 마녀의 피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둘은 주종관계로 묶이게 되고 페테슈는 신내림과 함께 생활하게 된다.

뱀파이어를 개처럼 부리고 있지만 신내림의 왕따 인생은 험난하기만 하다. 괴로움이 한계치에 다다른 신내림은 자신이 무당이 될 운명을 타고났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소녀와 뱀파이어, 흥행불패 조합
영화 <트와일라잇>, 미국드라마 <뱀파이어 다이어리>, 만화 <뱀파이어 기사> 등 뱀파이어 소재 콘텐츠들은 공통적으로 십대 소녀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여주인공은 특별한 피, 뭔가 다른 피맛으로 무시무시한 뱀파이어를 사로잡는다. 소녀가 연상시키는 순결한 이미지는 뱀파이어의 저주스런 면모와 대비되면서 이야기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여기에 ‘첫사랑’ 코드가 장착되면 애절한 비극에 제대로 방점이 찍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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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 블러드>에서도 예쁜 뱀파이어를 길들이는 것은 십대 소녀다. 그녀 역시 맛있는 피로 뱀파이어를 홀린다. 여기에 여주인공의 모진 운명, 퇴마요소, 소녀들의 미묘한 경쟁심리가 결합되면서 작품은 하드보일드 로맨스 판타지로 확장된다.

무엇보다 뱀파이어 특유의 관능미는 러브라인의 긴장감을 제대로 높인다. 페테슈의 흡혈장면은 두 사람의 감정선이 요동치는 주요 포인트다. 피로 얽힌 두 사람의 관계는 제목처럼 점차 달콤해져간다. 하지만 또 다른 공통분모인 ‘죽음’이 두 사람 주변을 맴돌면서 순탄치 않은 앞날을 예고한다.

 

 

비밀은 반전을 품고
작품 속 신내림이 페테슈를 충실한 파트라슈로 길들이고 있다면 작가는 여러 가지 ‘떡밥‘들로 독자들을 조련한다. 인물들 가슴 속에 숨겨 둔 사연들을 하나 둘 풀었다 조이면서 독자의 호기심을 늦추지 않는다. 교실에서는 한없이 낮은 존재인 신내림의 감춰진 능력, 인간이 되고 싶은 페테슈의 과거, 무당인 신내림 엄마의 사정 등은 흥미진진함을 더한다. 이러한 비밀들이 반전의 밑거름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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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신내림을 증오하는 송진아는 작품을 끌어가는 동력이다. 대부분의 사건사고가 그녀를 통해 벌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그녀는 신내림과 페테슈의 만남을 성사시킨 숨은 공로자이기도 하다. 어쨌든 열과 성의를 다해 신내림을 짓밟는 모습은 <캔디>의 ‘이라이저’ 못지않다. 그녀의 검은 속내가 드러났을 때 짜릿함도 기다려볼 만하다.

허니블러드 마지막 단행본 이미지

 

주인공의 시련은 필연적으로 성장을 동반한다. 고난이 막을 내릴 때 주인공은 달라진 모습으로 반격에 나선다. <허니 블러드>의 신나는 그날도 기대해본다.

이나래의 <허니 블러드>는 카카오페이지에 매주 목요일에 업데이트되며 같이 보고 있는 독자들은 50만명을 훌쩍 넘었다. 최근에는 단행본 1권도 발간됐다.

김경임

​만화문화연구소 엇지 연구위원, 네이버 캐스트 만화대백과 필진으로 활동 중이다. 재밌는 만화, 뜻 깊은 만화, 특이한 만화 중 재밌는 만화가 으뜸이라고 생각. 통섭의 시각으로 만화를 다양한 분야와 연결시키는 작업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 루이 세폴베다의 소설 "연애소설 읽는 노인"의 주인공처럼, ‘순정만화 읽는 노인’이 되는 게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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