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맛에도 셰익스피어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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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와 병맛 코드
<코미디빅리그>(tvN 제작)의 코너 ‘병맛대소동’은 한 무명 작가가 병맛 코드로 시나리오를 써와 편집장에게 검토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작가의 시니리오를 받아든 편집장은 “이게 병맛이야? 너 조석, 귀귀, 이말년 몰라? 다시 써 오지 못해?!”라며 면전에서 원고를 집어던진다. 이렇게 작가는 매번 진정한 병맛을 찾아 다양한 병맛 코드의 시나리오를 선보이지만 편집장에게 혼쭐이 나기 일쑤다. 여기서 조석이나 귀귀, 이말년 등은 병맛계의 셰익스피어쯤 되는 인물로 여겨진다. 그들처럼 진정한 병맛을 갈구하던 작가는 과연 병맛 코드로 가득 찬 시나리오를 찾을 수 있을까? 이 지점에서 우선 짚고 넘어갈 것은 ‘병맛 코드’가 하나의 표현 형식이 될 수 있는지 여부일 것이다.

병맛에 대한 그간의 담론은 ‘병맛’을 소위 88만원 세대의 패배 의식과 이것이 낳은 허무주의적 경향 안에서 태어난 것으로 해석하는 방향으로 꾸려져 왔다. 김미영은 ‘병맛 만화, 루저들의 코딱지를 후벼주는 맛!’[1]이라는 기사를 통해, 병맛 코드가 ‘웰메이드만 살아남는 세상’에 대한 조롱이며, 반항이라고 분석했다. 김수환은 ‘웹툰에 나타난 세대의 감성구조- 잉여에서 병맛까지’[2]라는 논문을 통해서 병맛 코드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네트워크를 ‘그곳은 낄낄대는 웃음이 어느 한순간 씁쓸한 냉소와 교차되는 곳, 이 세계의 병맛스러움이 우리 존재의 잉여성에 대한 확인과 만나게 되는 그런 장소‘라고 논평한다. 이렇게 기존의 논의는 기본적으로 병맛 코드의 범람을 적극적 자기 표현이라기보다는 증상으로서 이해하고자 한다. 즉 세상의 과로가 굴절되어 파괴적 형식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일견 타당한 분석이다.

병맛 코드의 유행이 주는 의미를 간단히 표현해보자면 ‘자학과 냉소의 공동체’ 정도가 적당할 듯하다. 한편으론 의미의 성립이 불가능한 세계와 두서없는 진행이 주는 파괴감에 희열을 느끼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만이 소통할 수 있는 스캔들과 은어의 세계, 마지막으로 도망칠 수 있는 은신처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은 너무 과도하게 청년 세대를 타자화하는 경향이 있다. 의도치 않게 세대론적 대결 구도를 감성의 형식으로 제공할 가능성도 높다. 다시 말해 “너희는 88만원 세대야. 게다가 병맛에 열광하고 있지. 어찌 보면 그건 좀 안됐어.”라고 말하는 태도에서 그다지 많이 벗어나 있지 않다는 것이다. 병맛에 내재한 냉소는 시대와의 불화를 반영한다는 방식으로 해석될 뿐, 그것이 새로운 생산력으로 전유될 가능성을 점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이러한 논평은 때때로 병맛 코드의 실제 텍스트 분석을 경유하지 않고 곧장 사회학적 해석으로 결론 맺어진다는 점에서 다소 공허한 점 역시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조석, 이말년, 귀귀처럼 병맛의 대표적 작가들이 꽤 오랫동안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고, 그들 작품이 한 때의 유행을 넘어 하나의 스타일로 정착되어 가는 과정까지 왔다. 이제는 보다 적극적인 해석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대체로 병맛 코드는 절대로 메이저가 될 수 없고, 앞으로도 주변부에 불과할 것이며, 심지어 그 수명조차 길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지만 병맛 코드는 꽤 오랫동안 버텨온 것이다.

귀귀의 <정열맨>이 그 대표적 예이다. 2008년 6월부터 2011년 8월까지 만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재되었으니 병맛 웹툰으로는 유례없이 긴 호흡을 가진 작품이다. 이 긴 호흡 때문에 이 작품을 둘러싸고 많은 이들의 우려가 있었는데 이는 병맛 코드가 처한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애초 이렇게 긴 장편을 충분히 예상한 작품이 아니었고, 특유의 병맛 스타일로 인해 정교한 서사적 구조에 관심을 쏟지 않았던 바, 연재가 길어질수록 작품의 얼개가 느슨해지고 독자의 흥미가 떨어지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하지만 반대로 그래서 병맛 코드에 어울리는 작품이 되기도 했다. 개연성이 떨어질수록 각 화에 독자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무리한 전개나 어이없는 일화의 도입이 필수적인 것이 되어버리고 그것이 병맛의 스타일을 유지시켜준다. 재미가 없는 것도 병맛 탓이요, 재미가 있는 것도 병맛 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악함이 스타일이 된다는 것은 작품이 그저 조악하다는 것과는 다른 것이고, 귀귀는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통해 조악함을 스타일로 바꾸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 듯 보인다. 그렇다면 그러한 균형을 이루어낸 귀귀의 작품 내적논리를 살펴보자.

 

병맛계의 대작 <정열맨>
001<정열맨>은 기본적으로 무협서사의 형태를 띠고 진행되고 있다. 크게 줄거리는 주작파와 해태파의 대결 구도로 진행되고 있으며, 자신의 비범한 능력을 모르는 바보 주인공 정열맨을 기준으로 그들 부모와 스승, 계파 간 증오와 사랑이 서사적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각 캐릭터에는 내면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애초 그렇게 프로그래밍화 된 플롯 속에 갇혀 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본래 주작파의 제자였으나 스승이 숨겨 놓았던 비급 해태진경을 훔쳐 달아난 해태파의 시조는 이름부터가 최배반이다. 그의 이름은 배반하도록 주어졌다. 작가는 그러한 사실을 결코 에둘러 숨기려 하지도 않는다. 대신 갈등이 일어나는 중요한 장면들은 간단한 설명으로 대체된다.

귀귀는 이야기의 개연성이 맡아야 할 서사 흐름의 동력을 작품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빌려온다. 이것은 ‘전형적인 무협지 형식의 이야기다’라는 것을 메타적으로 폭로함으로써 캐릭터 간 싸움에 더 이상의 서술이 필요치 않게 만드는 것이다. 대신 캐릭터들은 “수염컷의 허새만”처럼 자신의 이름을 계속해서 부르며, 행동에 돌입한다. 이렇게 호명과 캐릭터의 특징들이 반복각인되면서 독자는 어느덧 긴 호흡을 따라가며 읽게 된다. 귀귀의 전략은 최소의 이야기성을 바탕으로 최대의 캐릭터성을 발휘하는 방식으로, 독자로 하여금 개연성을 요구하지 않도록 만들고 있다. 전체적인 짜임새가 없는 것이 아니라 짜임새 자체를 무화시키려는 노력이 적극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연재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많은 팬층을 만들어 냈던 것은 이러한 병맛 캐릭터의 매력에서 기인한다. 네티즌들이 <정열맨>을 병맛계의 대작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스토리의 방대함 때문이 아니라 캐릭터의 다양함 때문이다.

 

003(귀귀의 팬들이 만들어낸 팬 아트, 캐릭터 그리기&따라 하기)

 

<기승전병의 카타스트로프>
흔히 병맛의 특징은 기승전병이라고 한다. 기승전의 구조를 가지다가도 완전히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지적하는 말이다. <정열맨>도 마찬가지여서 이 웹툰은 매번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전개로 흘러가버리고 만다. 검은 피부에 수염이 가득한 김용이 알고 보니 털이 난 여자라는 설명으로 넘어간다든가, 최해태와 추자풍 두 중년 남자 캐릭터가 뜬금없이 동성결혼을 하기도 한다. 한 인터뷰에 의하면 귀귀는 애초 모든 캐릭터들을 게이로 만들 계획도 있었다고 한다. [3] 이러한 기습적 공격에 언제나 독자들이 열광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불쾌하다고 느끼는 독자도 많은데, 그 불쾌함이 병맛이라는 코드 속에서 용서되고 있는 것이다.

<정열맨>에는 낚시신공이라는 무공을 쓰는 허황이라는 캐릭터가 있다. 상대를 엉뚱한 제스쳐로 낚아 뒷통수를 치는 수법으로 작품 내에서는 상당한 공력이 필요한 무공으로 분류된다. 우스타 쿄스케의 <섹시 코만도 외전 – 멋지다! 마사루>(セクシーコマンドー外伝 すごいよ!!マサルさん)의 ‘섹시 코만도’ [4]가 연상되는 무공이다. 연재되는 동안 허황이라는 캐릭터가 꽤 인기를 끌었는데, 무엇보다 그의 성격이 병맛 코드의 개그를 가장 잘, 그리고 자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허황은 독자를 대하는 귀귀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전통적 의미의 카타르시스(Catharsis) 서사구조가 기승전결의 구조 속에서 독자의 이입된 감정과 고양된 분위기를 절정의 순간으로 끌어 모아 배설-정화하려 한다면, 그의 작품은 갑작스러운 돌발, 예측불허의 뒤집힘 즉 카타스트로프(catastrophe)를 꾀한다. 이는 단순히 엉망진창으로 결말부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독자를 기만할 수 있는 타이밍을 잡는 것이 매우 중요해진다. 이 점에서 귀귀는 독자와 일련의 낚시신공을 대결하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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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요소, 언어유희
또한, 병맛 코드의 만화라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말장난이다. 이러한 말장난은 주로 동음이의어를 찾는 데에서 시도된다. 처음 접하는 사람은 그저 피식 웃겠지만, 병맛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미묘한 위안마저 안겨준다. 말장난의 수용 여부는 독자가 이 말장난의 회로를 사전에 보유했는지 아닌지에 따라 달라진다. <정열맨>의 한 장면, 교실에서 선생님이 이제 “진도 나가자”라고 외친다. 그러자 학생 중 이름이 ‘진도’인 학생이 교실 밖으로 나가버린다. 어이없는 유머인데도, 이 장면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어떤 메커니즘일까?

야콥슨은 우리의 언어가 은유와 환유의 원리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했다. 은유는 하나의 언어가 그와 유사한 언어와 연결시킬 수 있는 논리, 즉 동일성을 유지하려는 성향의 계열이다. 예를 들어 홍조를 띤 어린 여학생의 ‘볼’은 ‘홍옥’의 붉은 빛깔과 비슷하다. 실제로 관련을 맺고 있지 않지만 이러한 공통점을 통해 두 이미지 언어는 은유의 계열체가 될 수가 있다. 반대로 환유는 언어가 보유한 인접성을 통해 연쇄되는 논리를 담고 있다. ‘교탁’과 ‘분필’, ‘선생’의 관계처럼 이들은 언어가 실제 사용되는 경험 속의 인접성을 통해 무한히 퍼져 나갈 수 있다. 실어증(失語症)은 은유와 환유 중 어느 축의 상실로 인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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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그림과 같이 <정열맨>에는 말장난이 가득하다. 처음 컷과 다음 컷을 연결하는 논리는 [i:gl]이라는 발음상의 공통점 말고는 없다. 이 발음상의 공통성은 동일성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인접성으로 작동한다. 불꽃이 어른거린다는 의미의 ‘이글’은 [i:gl]이라는 발음을 통해 ‘Eagle’로 접속되는 것이다. 이렇게 무한히 제어되지 못하는 말놀이는 분열증의 감각에서 나온다.

반면, 은유는 언제나 약간의 불안과 폭력을 포함하고 있다. A에서 B로의 동일성을 유지하는데에는 ‘반드시 같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아지려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병맛이 아닌 작품의 한 예라면, 이글거리는 태양의 이미지 이후에는 이글거리는 주인공의 눈동자가 제시될 것이다. 이어 태양의 뜨거움과 주인공의 열정 사이 그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생기는 격차를 독자는 온 신경을 집중해 좁히고 일치시키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환유의 말놀이는 동일성의 노력을 고의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동일성의 족쇄를 벗어나려는 자유의 감각을 환유의 말놀이는 보유한다. 귀귀뿐 아니라 대개의 병맛 웹툰의 말놀이는 이렇게 환유의 논리에 입각해 있는 듯 보인다. 그들은 애초 이러한 말장난의 회로를 보유한 독자를 겨냥하고 있다.

병맛 코드가 새로운 세대의 표현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의 문법에 대해 분석하는 일이 적극 요구되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이를 포착하기 위해 ‘캐릭터’, ‘카타스트로프’, ‘환유’ 등의 개념을 빌려 실험해본 셈이다. 디시인사이드에 최초로 ‘무악공고’라는 아마추어 웹툰이 등장하면서 ‘병신 같은 맛’ 이라는 말이 생겼다. 이 말의 의미가 조악함의 악취미와 아마추어의 신선함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과로한 사회의 병적인 증상으로 규정해 버린 것은 그들 세대의 밖에서 온 말들이었다. 이제 7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고, 자신의 문법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지 않을까?

다시 돌아와 ‘병맛대소동‘의 무명 작가는 병맛계의 셰익스피어가 될 수 있을지 질문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언어를 스스로 분석하고 정리하려는 노력에서 가능할 것이다. 병맛 코드가 그로테스크와 키치처럼 하나의 미학적 범주로 입법될 수 있을지는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미학적 입법일 뿐 아니라 정치적 입법이기도 하다는 점. 기왕 세대론의 가면을 썼다면 그 가면을 당당히 쓸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 글의 주장이다. 병맛 코드는 그 자신의 문법을 가지며 또한 스스로 진화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들은 망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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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김미영. ‘병맛 만화, 루저들의 코딱지를 후벼주는 맛!‘. <한겨레 21> 2010. 4. 9: 805.

[2]김수환, ‘웹툰에 나타난 세대의 감성구조-잉여에서 병맛까지’, <탈경계 인문학>제4권 2호 2011. 6

[3]이진, <‘정열맨’ 귀귀 작가 “시즌2, 동성애 커플 탄생 배경은…”>, 노컷뉴스, 2011-09-21, http://www.nocutnews.co.kr/news/4216685 ; “정열맨 2부를 준비하면서 모든 캐릭터들이 갑자기 다 게이가 되어 버리면 웃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장 코믹한 요소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막상 그리고 나니 (독자들의) 호불호가 많이 갈리더라구요. 특히 싫어하시는 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4]일반적인 무술에 있는 ‘페인트(속이기) 동작’을 무도로 승화시킨 격투기, <멋지다 마사루>의 주인공 마사루가 연마하게 되는 격투기다. 넌센스적 말장난을 통해 기만하는 일과 기습공격이 특징이다.

오영진

초보 글쟁이, 영화, 게임, 인디음악, 웹툰 등 대중문화 이곳 저곳을 누비며 글을 써 보고 있다. 자신의 진짜 전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인증된 전공은 문학이다. 한양대 ERICA에서 실험적인 교양과목을 만들어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직업으로 삼기도 한다. 작곡도 조금 할 줄 안다. 계간지 [쿨투라] 2014년 봄호를 통해 데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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