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갇힌 고독한 천사들_ <고기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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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대의 화산 폭발 후 생존자들은 100년의 유지 기한이 있는 벙커로 피신한다. 기온저하로 인한 인류의 멸망은 다가오고, 한 과학자 부부가 태어날 아이를 위해 화산재가 가라앉은 미래로 한 쌍의 남녀 및 생명체 샘플을 보낼 ‘방주’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이 기획이 현재의 동력을 소진시켜 멸망을 앞당긴다는 사실을 모르는 대중은 ‘인류존속’이라는 명분 아래 결집하고 선택된 완벽한 유전자의 아이, ‘천사’들을 맹신한다.

그 비밀은 선택된 자의 ‘희망’과 ‘구원’의 이미지로 가려지고 사람들은 자신이 잃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그들의 존재에 열광한다. 일군의 과학자들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반란을 일으키지만 탁월한 ‘천사’들의 능력으로 인해 철저히 실패하고 일반인에겐 어떤 기록조차 남기지 못하는 내부의 혁명이 되고 만다. 이제 남은 자들의 시간은 비참한 멸망을 향해 더 빠르게 흘러가고 그 대가로 ‘방주’는 마침내 완공된다.

현재와 미래. 과정과 결과. 소수의 천재와 다수의 평범한 개인. 살다보면 종종 이런 항목 간의 개인적 선택 내지 비중이 삶에 대한 태도를 결정짓곤 한다. 현재의 생존을 위해 미래를 포기할 것인가, 결과를 위해 과정의 희생을 합리화할 것인가, 평범한 개인들의 평온한 공존을 위해 천재의 싹을 무시할 것인가, 반대로 그들의 능력에 의존해 문명의 진일보를 꿈꿔볼 것인가 등. 문제는 세상의 문제들이 결코 이런 식으로 선명히 갈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가 이어져 미래가 되는 것이고, 과정이 쌓여 결과가 된다. 그 겹겹의 시간을 어떻게 통과했느냐가 결과적인 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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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에 대한 열광 역시 내 존재와의 접점이 있을 때(혹은 있다고 믿을 때)에 한해서다. 그래서 ‘천사’들은 끊임없이 미래의 희망으로 제시되고 사고와 구호라는 이벤트를 통해 대중과의 접점을 만들어낸다. 이미지는 축적되고 계획은 (비교적) 차질 없이 진행된다. 그런데 그들이 가지지 못한 유일한 한 가지가 그 계획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바로 기획된 운명에서 거세된 삶의 비전형성, 우연성이다. 그들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사랑할 사람과 할 일이 결정되어 있다. 미래로 떠날 선택된 자로 인정받기 위해 그들이 지금 하는 모든 노력(?)은 타인과의 접점은 만들지 몰라도 관계로 확장되지 못한다. 결국 그들은 여길 떠날 것이고 어느 누구와도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결국 둘만 남아 생존해야 하는 미래는 지금 현재 모든 우연한 관계 맺음과 확장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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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들은 타인들과 사회적으로 감정적으로 심지어 역사적으로도 단절되어 있다. 타인과 단절되고 연대가 무용한 상황에서 인류의 유지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구원자’라는 기대 뒤에 가려진 진정한 자신들의 정체성, 다른 이들의 생명인 동력을, 그것도 몰래 소비하는 ‘기생충’일 뿐이라는 자조가 더욱 뿌리 깊다. 자발적인 의지 대신 외부의 힘을 통해 정해진 운명을 휘저으려 했던 한 천사, 시가우의 도발은 대안 없는 자의 출구 없는 반항으로, 종내는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운명의 상대 품 안에서 끝이 난다. 사랑의 감정마저 유전자 조작의 힘임을 알고 있다 해도 그 외의 선택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모든 도발은 그저 찻잔속의 폭풍에 불과하며,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걸 알고 있는 자의 삶은 무력하고 권태롭다. 결국 ‘천사’들의 부모가 아이들에게 주고 싶었던 완벽한 삶은 생존이라는 미래만 있을 뿐, 생의 우연과 자유가 선사하는 활력은 박탈돼버린 ‘고사되고 박제된’ 삶이다.

어떤 삶도 철저히 기획될 수 없다. 어떤 미래도 누군가의 결정에 의해 단순히 보장받을 수 없다. 현재를 지탱하는 가치가 없다면 미래를 꿈꿀 이유도 없다. 그 가치를 찾지 못한 시가우의 절망은 용인될 수 있어도 똑같은 조건에서도 주어진 상황에서 진심을 다하는 그의 짝 미노아가 있기에 변명은 되지 못한다. 통제된 삶에도 선택의 여지는 항상 생겨나며 그것이 바로 인간의 구원이기 때문이다. 삶의 불가해성과 불예측성을 끊임없이 통제하려는 천재들의 노력이 찬탄의 대상은 될지언정 희망의 해법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유목인

운 좋게 만화가가 됐으나 자리 지킬 주제가 아님을 깨닫고 어느 봄빛 수상한 날에 뛰쳐나와 지금까지 허랑방탕한 경험주의자로 살고 있음. 어쨌든 만화에 기여한 바에 비해 얻은 게 많아 항상 빚진 마음임. 정체불명의 인간이 되는 것이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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