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전병의 SM적 카타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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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맛’ 코드의 등장
2000년대 중후반 무렵 홀연히 등장해 어느덧 인터넷 유행어로 널리 자리 잡은 표현 가운데 하나로 ‘병맛’이 있다. 여기서 ‘병’은 아가리와 목이 좁아 액체를 담는 데 주로 쓰이는 그릇인 병(甁)이 아니라 ‘병신’의 앞 글자 병(病)이다. 다시 말해 병맛은 ‘병신 같은 맛’이라는 뜻으로, 무언가에 관한 감상이나 느낌을 말할 때에 조롱과 비아냥을 담고자 하는 의도가 강하게 담겨 있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한데 이 병맛이 어느 대상을 향한 감상이 아니라 대상 자체를 이루는 구성요소화, 코드화 되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형태를 띤 콘텐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병맛의 선배, 엽기와 폐인
‘병맛’의 등장 이전에 한국의 온라인과 대중들 사이에 유행한 대표적 문화 코드는 다름 아닌 ‘엽기’와 ‘폐인’이었다. 병맛이 등장한 맥락을 보려면 먼저 이 둘을 살펴봐야 한다.

먼저 엽기를 살펴보도록 하자. 이 시기 통용되던 ‘엽기’의 느낌은 영화 <엽기적인 그녀>(2001)에서 전지현이 분한 캐릭터가 잘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제목 그대로 엽기적인 그녀인 전지현은 ‘거침 없고’ ‘제멋대로’이며 ‘뜬금없고’ 나아가 적당히 상식선을 넘나든다.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 점프를, 신도림 역 안에서 스트립쇼를, 선 보기 하루 전에 홀딱 삭발을, 비오는 겨울 밤에 벗고 조깅을”이라던 밴드 자우림의 노래 <일탈>(1997)의 발칙하고 발랄한 가사는 마치 수 년 뒤에 유행할 엽기 코드의 전형을 미리 예견하고 쓴 듯하다.

디씨인사이드라는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등장한 ‘폐인’도 엽기와 마찬가지로 본래 뜻과는 느낌이 적잖게 달라진 표현이다. 폐인은 디씨인사이드라는 커뮤니티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이자 그 안에서 파생한 각종 인터넷 문화에 재미를 느낀 부류가 스스로를 지칭하던 표현이기도 하다. 최근 요리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기도 한 김풍의 <폐인가족>(2002)은 이러한 폐인 문화의 속성을 만화로 풀어내 많은 인기를 끈 작품이다. 폐인이란 명칭은 이후 디씨인사이드 바깥에서도 <다모>(2003)를 비롯해 <부활>(2005) 등 TV 드라마 팬층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표현으로도 이용됐다.

 

001엽기적인 그녀, 폐인가족

 

엽기와 폐인의 공통점은 본래 몹시 좋지 않은 뜻으로 쓰이던 용어를 차용해 인터넷 문화의 한 흐름을 설명하는 표현으로 발전시켰다는 데에 있다. 엽기는 본래 비정상적이고 괴이한 일이나 사물에 흥미를 느끼고 찾아다닌다는 뜻으로 ‘시체 훼손’ ‘토막 살인’과 같이 매우 험악하고 흉악한 범죄 앞에 붙곤 하던 표현이다. 폐인도 약이나 병으로 몸을 망친 사람이란 뜻이니 좋은 느낌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는 표현이다. 그런데 인터넷 공간에서 쓰이면서 상당히 어감이 다른 표현으로 정착했다. <엽기적인 그녀>가 그러하듯 엽기는 정형성에서 적당히 벗어나는 일탈의 이미지를, 폐인은 무언가 한 대상에 끝없이 몰입하고 놀 거리를 만들어내는 이들을 일컬으며 일본의 ‘오타쿠’에 비견되기도 했다.

엽기와 폐인의 의미 전이에는 초기 인터넷 시대의 유머 코드라는 공통 분모가 자리하고 있다. 초고속 인터넷망이 가정에 본격 보급되면서 국내 네트워크 환경은 느린 전화선을 통한 PC통신에서 빠른 인터넷망으로 급속 전환했다. 나름대로 충성도 있는 유료 이용층을 중심으로 움직였던 PC통신과 달리 인터넷은 망 이용료 이외에는 아무런 장벽도 제한도 구역도 나눠져 있지 않았다. 무주공산에 가까웠던 공간 위에서 이용자층은 폭발적으로 확장했다. 그런데 이 시기는 IMF 사태(1997)라는 국가적 대 위기와 함께 이를 일으킨 정권이 교체당한 시기기도 하다. 한편으로 전후 베이비붐 세대가 자기 정체성과 일체화하며 숭앙하던 경제 성장 기조가 실패라는 형태로 종국을 맞이한 시기였다.

외세에 조정을 청해야 했다는 현실이 전 국민을 짓눌렀던 이 시기, 망국에 가까운 심정을 겪었던 사람들 앞에 때마침 새로 등장한 인터넷 환경은 마치 나라 상황만큼이나 하얀 백지에 가까웠다. 정권을 비롯해 기성세대가 금과옥조처럼 강조하던 보수적 가치관이 경제 실패라는 결과물 앞에서 초라해진 타이밍에 대중문화의 일각에서는 일탈이 부각되었고(엽기), 한편으로는 일괄 평등주의, 반 권위주의, 익명성에 기반한 군집 효과와 집단 행동, 패러디와 풍자를 주 기조로 삼는 이들이 등장했다(폐인 문화).

엽기와 폐인 문화는 현실을 적극적으로 벗어나려 하거나 조롱을 넘어 아예 초탈하려는 이미지가 강했다. 엽기는 한끝만 빗나가면 ‘민폐 미친 ✕’으로 전락하기 쉬운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고 있었으며, 폐인들은 영화 <취화선>을 패러디해 “세상이 뭐라 하든 나는 나, 아햏햏이요”라는 의미 불명의 대사를 내뱉으며 초현실적인 사이버 풍류를 영위했다. 또한 폐인 문화가 만들어낸 개그가 상당 부분 엽기 개그의 범주에 들어간다. 폐인은 엽기 코드의 영위자이자 매우 적극적인 생산자였다.

디씨인사이드라는 공간 자체는 점차 커뮤니티 노쇠화 현상의 단계를 고스란히 밟으며 망가진 끝에 조롱과 비아냥으로 점철되며 일간베스트라는 유사 파시스트 양성소의 태동에 일정 역할을 하고 말았지만, 그 자체로만 보면 엽기와 폐인은 최소한 놀이 문화라는 범주 안에서 이해될 수 있는 선을 지키면서 좀 더 가벼운 용어이자 개그 장르, 코드로서도 대중성을 확보했다. 한데 2000년대 중반 무렵부터 등장한 병맛은 이러한 엽기와 폐인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병맛, 조롱과 멸시의 구렁텅이에서 태동한 SM적 유머 코드
병맛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병신 같은 맛”이란 뜻이다. 대체로 어이가 없거나 부조리하고 상식선에서 지나치게 벗어난 대상이나 표현을 가리킨다. “어우, 병맛이야,” 정도 식으로 쓰이곤 한다.
병맛은 엽기나 폐인과 마찬가지로 인터넷에서 태동한 용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엽기나 폐인이 갑갑하고 어이없이 돌아가는 현실을 적극적으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내보인 결과물이었던 데 비해 병맛은 이미 선을 벗어나고 만 결과물에 가깝다는 데에 있었다.

어원 면에서 보자면, 엽기와 폐인과 마찬가지로 병맛 또한 표현 자체가 상당히 부정적인 어원을 지니고 있다. 다만 병맛의 경우 행태에 관한 표현인 엽기나 자조적인 자기 규정에 가까운 폐인과는 달리 어원 자체가 상대방을 공격하는 욕설용 어휘로 매우 빈번히 쓰이는 표현이다. 아닌 게 아니라 병맛의 병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병신’에서 왔다. 다시 말해 신체 어딘가가 온전하지 못한 기형이거나 무언가 기능을 잃은 이, 즉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이며, 욕으로 쓸 때엔 희화화하기도 한다. 그러니 이를 그대로 안고 있는 표현인 ‘병맛’ 또한 그 자체가 부지불식간에 타자화에 따른 폭력을 보여준다. 차라리 어리석기 이를 데 없는 자를 비웃는 ‘등신’이었으면 그나마 괜찮았으리라 생각은 들지만 이미 대중은 이 표현을 선택하고 말았다.

각설하고, 병맛이 가리키는 대상은 그 어원이 말하고 있듯 주관적 관점에서 볼 때 뭔가 무언가 기형적이거나 기능이 없는 무언가다. 사람들이 병신이란 말이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대체로 등신의 뜻을 두고 병신이라고 말하곤 한다는 점으로 놓고 보자면, 역시 주관적인 기준에서 뭔가 ‘모자란 것’까지도 대상에 포함된다. 다시 말해 뭔가 제 구실 못하고 모자라 보이는 대상을 가리킬 때 “병맛이다”라고 말한다. 병맛은 태동 단계에서는 명백하게 조롱과 멸시를 담고 있었다. 웃음은 웃음인데 비웃음이며, 유머는 유머인데 시궁창 유머였다.

한데 엽기와 폐인이 그러했듯 병맛 또한 시간이 지나며 약간의 변용을 거치게 된다. 엽기가 자기 일탈에 기반한 장르성을 획득하고 폐인이 일련의 집단을 일컫는 이름이자 그 집단이 만들어내는 문화의 이름으로 의미를 부여받았다면, 병맛은 형태면에서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조악한 품질과 어딘지 모자라 보이는 면을 자기 콘셉트로 내걸고 있는 대상을 가리키는 표현으로서 장르화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조롱 받을 만큼 싸구려, 엉망진창인 꼴을 의도적으로 표방하는 면이 장르화하기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다. 의도는 아니어도 이 싸구려와 엉망진창을 극단적으로 관철시켜 스타일로 승화시킨 경우도 장르로서의 병맛 범주에 넣을 수 있겠다.

의도적인 싼티란 측면에서 키치(kitschy)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병맛은 거기서 한층 더 나아가 형식적 틀과 내용 면에서 상식선 자체를 아예 아득히 뛰어넘는다. “왜 어째서 이런 걸 이렇게?”라는 질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 지점에서 병맛은 엽기와는 전혀 다른 장르가 된다. 엽기는 일탈을 코드화함으로써 장르가 됐지만 병맛은 일탈할 대상 자체가 의미를 잃게 만든다. 그 사이에는 어떠한 맥락도 성립하지 않으며, 결론으로 가는 과정 또한 의미가 없다. 그래서 병맛을 설명하는 가장 명확한 키워드가 바로 ‘기승전병’이다.

비슷한 이유로 엉뚱한 매력을 상징하는 ‘4차원’ 코드와도 궤가 다소 다르다. 4차원은 엉뚱발랄함과 남들과는 다른 지점에서 나오는 발상을 일컫지만 병맛 코드는 생각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데에서 오는 어이없음에 가깝다. 깊게 생각하면 진다. 생각해야 할 전제와 근거가 파괴되는 셈이다. 상식과 정상적인 사고 흐름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전개나 장면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병신 같은데 웃기다”라는 조롱 섞인 반응을 끌어내는 게 코드화한 병맛이다. 심지어는 병신이란 욕을 던진다는 점에서 말하는 쪽도 가학적이고 그걸 굳이 또 들으면서 회자되려는 쪽도 피학적이란 점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결국 “이런 병신 같은 걸!”이라며 낄낄거리는 이들이 늘어야 효과가 증대되는 것이 병맛 코드다. 조롱 대상으로 여겨질 법한 걸 꿋꿋하게 자기 색깔로 관철해 자기만의 색깔로 만들어 내야, ‘병맛’이 욕이 아니라 비로소 코드화한 콘텐트로서 찬사(?)를 얻을 수 있게 된다. 병맛 코드를 체화하는 데에 성공한 콘텐트들에게 쏟아지는 찬사란 대체로 이렇다. “대체 무슨 약 하시길래 이런 생각을 다 했어요?”

 

002병맛의 도를 짧은 영상 속에 진액으로 뽑아 낸 걸출한 만화 광고, 배달의 민족과 편강한의원

003의도적 B급을 넘어 병맛 코드를 드러내놓고 녹여낸 코미디 SNL

 

 

병맛 코드의 최종 진화 형태, 병맛 만화
이러한 병맛 코드가 가장 명확하게 장르화를 이룬 대표 사례가 바로 ‘병맛 만화’다. 만화가 본래 이야기를 2차원적 그림에 조합해 전달하는 시각 매체다 보니 필요한 장면을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을 통해 의도대로 전개할 수 있고, 표현 면에서 영상에 비해 제작비용과 제작 시간이 훨씬 적게 드는 데 비해 장면이 만들어내는 병맛 카타르시스의 파괴력에 따라 파급력은 더할 나위 없이 크다. 게다가 실존 인물을 동원해야 할 일도 없으니 꽤 안전하게 ‘병신 같은’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기도 하다. 만화가 병맛 코드를 가장 최적화한 형태로 보여줄 수 있는 매체로 채택된 것은 어찌 보면 운명이다.

병맛 만화가 어떻게 하여 장르로 정립했는지를 보기 위해서는 폐인들이 만들어낸 인터넷 콘텐트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 폐인의 경우 커뮤니티 문화의 한 종류로서 김풍의 <폐인 가족>이 일종의 생태 보고서 역할을 했으며, 태동한 장소인 디씨인사이드의 사진 커뮤니티적 성격을 이어받아 사진을 패러디한 UGC인터넷 기반 이용자 생산 콘텐트(UGC : User-Generated Content. 국내에선 User-Created Contents의 준말이라 와전되어 UCC란 표현으로 주로 소개됨)들 다수가 만화의 형태를 띠고 제작되었다. 디씨인사이드의 폐인 문화는 패러디 대상에 다분히 엽기적인 설정을 붙였고, 가벼운(물론 때론 지독한) 조롱으로 시작된 희화화는 이윽고 원래 인물이나 캐릭터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또 다른 인물상, 캐릭터를 창조해내기 시작했다.

폐인 문화가 만들어낸 엽기 UGC의 특징은 대상에 관한 극단적인 해체와 재조립이다. 원래 해당 인물이 작품이나 현실 속에서 지니고 있던 맥락 또는 인과성은 철저히 부서지고 오로지 패러디된 캐릭터로서의 엽기 개그와 설정만 남는다. 이는 일부 실제 인물을 향한 공격성이 문제가 되긴 하였으되 기본적으로는 온라인에 기반한 놀이 문화의 한 범주였으며, 조금 더 긍정적으로 보자면 설정과 형태를 덧붙이고 끊임없이 신작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덧글 참여를 통한 집단 창작 놀이라고도 할 수 있다.

 


004집단 창작을 통해 판올림을 거듭한 거물 UGC ‘빠삐놈’. 놈놈놈 주제곡인 ‘Don’t Let me be misunderstood‘에 빠삐코 광고 음악을 대 놓으니 재밌더라- 에서 시작한 합성 음악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며 급기야 숱한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뒤섞은 괴물 영상으로 완성되었다. 작업자는 도입 부분에 모 통신사 광고의 “병원, 통신, 병원, 약국” 어절을 의도적으로 해체해 “병원 병신 병신 병신”으로 만들어놓고는 빠삐놈 병神리믹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태동한 해체와 재조립 문화는 또 한 가지 만화적 인터넷 콘텐트를 만들어내는데 이름 하여 ‘짤방’이다. 짤방은 ‘잘림 방지’의 준말로 디씨인사이드를 비롯해 웃긴대학(웃대) 등 일부 게시판 커뮤니티 등지에서 내걸었던 게시판 규칙에서 비롯했다. 이들 게시판은 게시판에 글을 등록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이미지를 하나 이상 첨부해야만 했는데, 사람들은 이 게시판에 올린 글이 잘리지(삭제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잘림 방지용 이미지를 넣었다. 이윽고 짤방은 잘림 방지용 이미지뿐 아니라 첨부하는 이미지 자체를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으며, 잘리지 않으려 아무 이미지나 붙이다가 점차 글 내용에 어울리는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드라마 속 장면을 떼어다 붙였다. 저작권 침해 문제를 애써 잠시 차치하고 보자면, 이들 짤방은 원래 작품들 속 맥락과 이야기를 모조리 파괴하고 글쓴이의 의도에 맞춰 자기 이야기로 재조립한 결과물이다. 특정 장면을 의사 표현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이미지에는 원래와는 전혀 상관 없는 새로운 이야기가 별도로 창조되어 붙게 되었고, 하나의 원전을 놓고 다양한 사람들이 달라붙어 각기 다른 패러디를 만들어내는 ‘스타 짤방’도 다수 등장했다. 이 시기를 장식한 최고의 인기작은 단연 <조삼모사>와 <짤방보이>라 할 수 있다.

 

005<조삼모사> – 두 칸 안에서 기막힌 반전을 주는 원작을 대사만 바꿔서 현실 속 숱한 애환을 담아내는 틀로 재생산되었다. 만화가이자 현재 게임계에 있는 고병규 씨가 자기싸이월드에 올린 그림 한 장이 발단이 되었다.

 

000<짤방보이> – 주먹을 불끈 쥐고 “가드 올려라!”라는 말을 외치는 남자의 모습을 틀거리로 삼아 수많은 만화, 애니 캐릭터들을 변조해 넣으며 즐긴 결과물

 

짤방은 오래 가지 않아 한계에 부딪쳤다. 패러디를 넘는 창조적 콘텐트로서 발전할 여지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짤방의 특징은 병맛 만화라는 형태로 이어지게 된다.

 

 

병맛 만화의 특징
병맛 만화에서 어떤 내용이 주를 이루는가 하면, 폐인 문화의 엽기 개그라는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는 무언가다. 말 그대로 ‘병맛’ 나는 만화란, 다시 말해 싸구려스러운 전개와 심히 엉망진창인 작화요소를 의도적으로 또는 스타일로 만화라는 틀 안에 조합한 결과물이다. 그나마 만화라는 틀도 이미지를 엮어 전개를 만들어내는 도구로서만 남아 있을 뿐, 이야기와 그림의 조합이라기보다는 병맛스러운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내기 위한 장치로서 칸과 말풍선을 활용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사실은 여기에 병맛 만화의 장르적 특징이자 만화로서 훌륭하기까지 한 면모가 숨어 있다. 맥락도 없고 장면들만 남아 있는 듯하지만 그 모든 것이 ‘기승전병’이라는 흐름을 만들어내기 위한 장치다. 과정이 어떻든 병맛 만화는 실로 ‘병신 같다’라는 욕을 듣기 위해 온 요소를 총동원하며, 전개의 끝에 다다라서는 정말 최악의 병맛스러움을 자아내는 SM적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데에 최종 목적을 둔다. 그래서 맥락이 없거나 모조리 끊겨 있음에도 결과적으로 전개가 완성된다. 결과에 해당하는 카타르시스 부분이 병맛 만화의 거의 전부다 시피 하기 때문에, 그것이 부각될 수 있으면 성공이다.

이와 같은 면으로 볼 때 병맛 만화는 짤방의 가장 큰 특징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전하고 싶은 부분을 시각적으로 강하게 전달하기 위해 시각 이미지를 동원하며, 그 이미지에는 원래의 맥락 따위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는 점이 그러하다. 병맛 만화에는 ‘짤방’으로 회자될 만한 카타르시스 신이 반드시 존재한다. 그 장면이 얼마나 생뚱맞으면서 곧잘 따로 떼어다 써먹을 만한지, 장면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병맛스러운 부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등이 관건이 된다. 그림의 품질은 그런 의미에서 별 의미가 없다. 극단적으로 조악해도 상관없으며, 역으로 극단적으로 높아도 상관없다. 관건은 기승전병을 이루는 만화 전개와 병에 해당하는 카타르시스 신의 병맛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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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시발 꿈”

 

병맛도 진화를 한다?
재밌는 사실은 이러한 병맛도 시간이 흐르며 장르로서의 품질과 품격(?)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김탁봉, 잉위 등이 만들어낸 초기형 병맛 만화는 윈도우 기본 그림판에서 마우스로 마구 그린 듯한 만화였는데, 초기 웹툰이 들었던 “조악하다”란 비난이 무색하리만치 조악함이 오히려 강렬함을 준 경우다.

하지만 실제로 병맛 만화의 대표 작가를 꼽으라 하면 이말년과 귀귀가 맨 앞으로 나오게 된다. 이들은 ‘짤방’으로 쓰일 만큼 강력한 기승전병의 카타르시스 신을 만들어내는 데에도 능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차 그와 함께 상업 연재 지면 속에서 꾸준히 독자들에게 자기 스타일을 관철시키며 다양한 소재와 표현 방식을 건드렸다.

이말년의 경우 뜬금없는 패러디와 막가는 대사로 인기를 얻었지만 시리즈를 더해가며 사회 문제에 관한 요소들을 담아내며 병맛 만화의 맛을 유지하면서도 세태 풍자극의 범주로까지 영역을 확장해갔고, <열혈 초등학교>로 조선일보 지정 전국구 폭력 웹툰 등극이라는 병맛 나는 위업(?)을 달성한 귀귀의 경우 이해가 거의 불가능할 법한 부조리 전개와 기묘한 그림을 장기로 삼으면서 만화의 마지막의 카타르시스 신을 유화로 그려내 화랑처럼 전시하는 등 그래픽 실험에도 나선 바 있다. 장면 하나하나가 짤방감일 만큼 매우 유려한 작화로 화제를 모은 가스파드는 캐릭터를 내세운 일상 만화에 병맛의 뉘앙스를 진하게 발라 ‘쓸고퀄(쓸데없이 고퀄리티) 병맛 일상만화’의 한 전범을 세우기도 했다.

009

이말년 4컷 풍자, 귀귀갤러리, 가스파드 선천적 얼간이들

 

병맛 만화는 형태로는 짤방의 직계이자 진화형이며 속성으로는 맥락을 해체한 채 병맛이라는 SM적 카타르시스를 구현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만화 장르다. 하지만 대중 장르로서는 그저 자극만으로는 더 선택을 받을 수 없는 지점에 선 모양새다. 2000년대 중후반 무렵 등장했으니 병맛 만화도 시간이 벌써 꽤 지난 상황. 병맛 만화의 주자들은 점차 병맛 코드의 향유자가 아닌 만화 독자들을 대상으로 만화가로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다시 말해 병맛의 약기운(?)을 어디 빼지 않지만 장면이나 대사의 충격만이 아니라 자기 형태 안에서 잘 전달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에 관한 고민을 시작한 인상이다.

명백한 조롱으로 시작한 병맛이 문화 코드화를 거쳐 만화 매체와 결합해 장르화한 것이 병맛 만화다. 맥락도 해체하고 장면의 파괴력만 남기던 이 장르를 가리켜 언론들은 “이 시대 루저문화의 반영이다”라는 평을 내리기도 한다. 어디 한 군데 마음 둘 곳 없는 젊은이들의 현재 심리 상태를 반영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런데 그러던 병맛 만화도 시간과 함께 변한다. 작가들 또한 진화한다. 마치 무너진 폐허 위에 생뚱맞게 홀로 남은 철골 그 자체 같던 병맛 만화가 폐허가 왜 폐허인지를 말하고 무엇이 폐허인지를 묘사하기 시작했다. 박살낸 맥락은 멋이 되고 대중 구미도 적당히 눈치를 볼 줄도 알게 됐다. 이들이 장르로서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서찬휘

만화 칼럼니스트이자 만화정보저널 사이트 '만화인' (http://manhwain.com) 운영자. 글쓰기와 만화를 좋아하던 프로그래머 지망생이었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만화와 얽힌 글을 쓰면서 만화 정보를 묶어내는 컴퓨터 프로그램들을 짜고 있다. 자생한 1.5~2세대 한국형 오덕으로 덕업일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내츄럴 본 프리랜서. 칼럼, 연구, 비평, 강의, 방송, 캘리그라피 등 만화와 관련해서는 오는 의뢰 안 막는 자판기형 용병의 삶을 구가 중이다. 최근엔 열심히 애 아빠로 클래스 체인지 시도 중. 봄이야,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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