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파트너> “낯선 초대에 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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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파트너>는 그간 발군의 개그 감각과 안정적인 데생 실력으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보유한 김민희 작가의 웹툰 데뷔작이다. 어딘지 결함이 있는 캐릭터들을 이용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보여주지만, 독자들에게 웃음을 유발하는 것은 그 같은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캐릭터들 자체다. 폭소라기엔 지나치게 무덤덤한 웃음. 김민희 작가의 세계에 객관적인 관찰자는 없다. 마치 낯선 세계에 던져진 것처럼, 이입할 편리할 대상을 찾지 못한 채 무작정 캐릭터들을 쫓아가다 보면 어느새 ‘이상함’에 대한 기준은 흐려진다. 얘들이 이상한 건지, 내가 이상한 건지 알 수가 없어진다. 설명도 없고 해명도 없이 혼란스러운 낯섦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김민희 작가 특유의 전개법은 <미드나잇 파트너>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된다. 여태껏 김민희 작가가 그려온 세계들이 대부분 현실과 고립된 장소나 초역사적 시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던 반면, 이번 작품은 현실과 꽤 밀착되어 있다. 전작 <강특고 아이들>이 초능력을 가진 아이들만을 수용하는 산골 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진 작품임을 상기해본다면, <미드나잇 파트너>의 주인공인 ‘나은’이 ‘다리를 저는’ 설정은 얼마나 직설적인가.

 

사회적 약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들이 으레 그러하듯, 독자들은 “이들을 이해하라”는 암시적인 요구에 직면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소수자를 다루는 방식은 몇 가지로 한정된다. 구구절절한 피해자의 ‘이해될만한’ 자기서사를 제시함으로써 방어적인 고립을 선택하거나, 소재를 다룸에서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정언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고 ‘올바른’ 약자를 재현하는데 급급하고 만다. 흥미롭게도 <미드나잇 파트너>는 이 모든 함정을 아무렇지 않게 피해간다. 나은이 자기 자신의 ‘장애’를 인식하게 되는 것은 오래된 피해의식 탓이 아니라 ‘병신’이라고 자신을 부르는 얄미운 친구 때문이다. 혹은 좋아하던 상대의 관심이 애정이 아닌 동정에서 기인한 것임을 깨달았을 때다. 자신을 향한 눈빛들의 의미가 ‘경멸’임을 깨달았을 때, 나은은 “약한 사람이 싫어요. 그래서 내가 싫어요.”라고 고백한다. <미드나잇 파트너>에서 나은의 장애는, 결코 성급하게 평등이나 공존 따위의 가치를 설명하기 위한 소도구로 전락하지 않는다. 장애는 분명히 불편하다. 나은의 단순무식한 천진함이 현실의 불편함을 상쇄시켜 줄 수는 없다. 김민희 작가는 나은을 온정적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대신, 독자들을 나은의 위치에 서도록 만든다. 이 같은 끌어들임은, 나은이 ‘능력’을 사용하게 되는 장면들에서 더욱 확실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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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이는 전의식적 상태인 인간의 기억에 달라붙어 그와 관련된 감정을 극단적인 수준으로 몰아붙이는 괴생명체다. 이 노랑이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대장 격을 찾아 칼로 베어내야만 한다. 그러나 노랑이를 잘라낸다 한들, 일시적인 감정의 중단이 보장될 뿐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다. 인물들이 겪는 혼란스러움은 노랑이로 인해 누출된 것이지, 노랑이로 인한 것이 아니다. 때문에 나은과 담임 선생님의 밤중 활약은 후련한 쾌감보다는 찝찝한 허무함을 남긴다. 나은이 자신의 장애를 어찌할 수 없는 것처럼, 노랑이가 펼쳐놓는 타인의 기억과 감정 역시 해소되지 못한 채 남겨질 뿐이다. 그렇다면 이 능력이 과연 나은에게 어떤 의미인가? 단지 나은의 육체를 자유롭게 해줄 뿐인 일회적 장치에 불과한가? 이 같은 의심은 <미드나잇 파트너>가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나은이 노랑이에 휘말리는 장면들로 인해 구제된다. 노랑이를 보는 능력은 나은을 계속해서 위험에 빠뜨린다. 그것은 자발적이고, 따라서 자기 파괴적인 충동으로 보인다. 타인의 감정이 물리적으로 형상화된 낯선 공간에 유혹 당하듯 이끌리는 나은은 거부할 수 없는 동일시를 경험하게 된다. 가슴에서 칼을 꺼내 노랑이를 잘라낼 때의 고통은 이 동일시에 대한 반증이다. 잘라낸 후에도 한번 동일시했던 타인의 감정은 여운처럼 나은에게 남아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통제를 상실하고 타인의 세계로 무방비하게 초대되는 경험은 그토록 강렬한 후유증을 남긴다. 나은은 이제 관계에 대한 책임을 느낀다. “널 도와준 사람들을 기억해!”라는 외침은, 막연하게 동원된 위로가 아니다. 순간이지만 그가 되어본 적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나은에게 감정이입하게 될 때와 마찬가지로, 나은 역시 주변 인물들이 ‘되어봄’으로써 그들에게 공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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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이’를 볼 수 있는 능력은 나은의 장애를 보상해주기 위한 장치로 제시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서사에 고립되는 대신 타인의 장소에 방문하기 위한 능력에 가깝다. 그렇기에 <미드나잇 파트너>는 특별한 작품이 된다. 흉터를 자극적으로 전시하기 위해 소모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차라리 태연하게 흉터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에 가깝다. 이해를 구걸하는 대신, 독자들을 인물들과 같은 장소로 내려 앉힌다. “겪어보지 않고서 누군가를 이해할 수는 없다.”는 말의 무력함은, <미드나잇 파트너>가 부추기는 매혹적인 동일시 때문에 다시 생명력을 얻는다. 나은은 무심한 태도로 ‘그러니까 겪어봐’라고 권한다. 김민희 작가가 아니라면 누가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미드나잇 파트너>로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어 기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