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미마>_ 마법 세계의 쇠퇴, 그 변화의 경계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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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락해가는 세계. SF 장르에 익숙한 세계관이다. 미래의 세계에서 자원은 고갈되며, 문명은 간신히 지탱된다. 한편 이러한 몰락의 세계는 비록 SF 장르만큼은 아니더라도 판타지 즉 신화 세계에서도 그 모습을 드러낸다. 신화의 세계는 인간이 중심이 된 역사시대 이후 사라진 세계이기 때문이다. 북유럽 신화 ‘라그나로크’에서도 이러한 음울한 세계를 보여주는데, 여기서 신들은 거인과의 최후의 전쟁에서 몰락하고, 마침내 신들의 황금시대는 끝을 맺는다.

일반적으로 판타지 장르는 단단한 세계관으로 고정되어 있다. 활동 무대는 대륙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기술과 제도는 과거의 축적에 불과하다. 물론 장르는 관습의 반복이다. 하지만 이러한 고정된 세계관은 역사적 시간성을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모든 존재는 변화한다. 판타지 세계 역시 예외일 수 없다. 그 세계에도 생성, 소멸의 과정들이 끊임없이 반복되며, 어느 시점에서는 쇠퇴하여 다음 시대로 이행할 것이다. ‘시간의 변화’ 개념은 이와 같이 판타지 장르에 보다 풍성한 상상력을 제공할 수 있다. 특히 누군가는 남겨지고, 또 다른 누군가는 서서히 사라지는 경계선에 위치한 판타지 작품은 SF 장르와 유사한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다. 지금 소개할 <숲 속의 미마>는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황혼기에 접어든 마법 세계를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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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의 미마> 주인공 ‘프리슈티나’는 왕국의 유일한 왕위 계승자다. 여기서 왕위 계승자는 ‘마력석’을 만드는 특별한 마법을 전수받는다. 마력석은 마법사의 마력을 증폭하거나 보충하는 도구이며, 일상생활 동력으로 기능한다. 즉 왕이 마력석을 꾸준히 생산하지 못하면, 마법으로 운영되는 왕국은 더 이상 유지될 수가 없다. 마치 현대 사회의 화석 연료처럼. 문제는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프리슈티나 공주는 왕위 계승자이면서도 마법을 사용할 수 없어 마력석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에 공주의 삼촌 ‘아작시오’는 그녀를 마법사로 만들기 위해 방법을 찾기 시작하다. 그는 곧 공주를 마법사로 만들어줄 수 있는 완벽한 마법사 ‘미마’를 왕궁으로 데려온다. 이 때 미마는 제안한다. 자신의 수수께끼를 풀면, 공주를 마법사로 만들어주겠다고. 그 수수께끼는 건국왕 ‘아이우드’ 왕좌에 새겨진 구절 “죽은 자가 태어날 때, 나 스스로 누울 것을 맹세한다.“의 의미를 알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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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가 태어날 때, 나 스스로 누울 것을 맹세한다.”

이 구절의 비밀은 먼 건국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판타지 세계에서 마법은 마법사의 것이지만, 마력은 대자연의 것이다. 비록 마법은 주술적 에너지이지만 마법이 운영되는 방식은 현대 인간 세계의 기술과 유사하다. 기술 역시 인간의 것이지만, 그 기술을 작동시키는 동력은 자연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건국왕은 자연으로부터 많은 양의 마력을 빌리기 위해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그 대가로 죽은 자가 태어날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법을 주기로 약속한다. 결국 프리슈티나 공주가 마법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계약 조건에 따라 죽은 자가 태어나고, 이로 인해 공주에게 물려받을 마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력이 자연으로부터 빌려온 것이며, 그래서 마법사용은 제한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마법이 사라지는 것은 비단 공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후 공주를 습격하는 마법사들에게 이 사실은 더욱 분명해진다. 마력을 쟁탈하려는 마법사들은 “이 세계의 마법은 거덜 나기 시작했어. 그나마 남아 있는 거라곤 이 왕국의 숨겨진 상자랑 요정의 심장밖에 없다.”고 말한다. 주인공의 마법의 세계는 마치 SF의 한 장면처럼 마력 즉 자원이 고갈되면서 세계의 균형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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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는 결국 마법사가 되어 마법석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이것은 다음 세계로 이행하는 흐름을 되돌릴 만큼 근본적이지 못하다. 특히 공주를 돕는 미마의 존재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는 ‘초월한 느낌도 있지만, 반대로 무언가에 얽매여’ 있어 언젠가는 다시 대자연인 숲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존재다. 또한 그는 결점이 없고, 마력이 무한대이며 심지어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존재이다. 그의 존재와 힘은 무한대인데, 무한대라는 것은 달리 말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래서 미마에 의존하는 공주의 행동은 흡사 ‘무한동력’에 의지하려는 사람의 행동만큼 헛되고 무의미하다. 결국 공주가 마법 세계를 설사 안정시키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결여의 회복’일 수밖에 없다.

저물어가는 한 시대를 바라본다는 것은 애잔한 일이다. 하지만 많은 신화에서 보여주듯 몰락된 세계 이후에는 생동하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숲 속의 미마>에서 공주는 가장 높은 지위지만, 그녀는 철저하게 혈통에 복속되어 개인의 감정을 억누르고 산다. 게다가 바다로 고립된 성이 상징하듯, 그녀는 단 한 번도 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폐쇄적 삶을 산다. 이 작품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아, 앞으로 마법 세계가 당분간 유지될지, 아니면 즉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마법 세계가 변화하면서, 이 구속에도 균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공주는 신분으로 야기되는 자신의 모순된 감정을 고민하고, “왕국 밖의 세계는 아름다울 것 같다.”고 외부 세계를 동경한다. 마법사 미마의 죽음과 부활, ‘마법 세계’의 쇠퇴와 신세계의 도래, 이 변화의 경계선에서 공주 프리슈티나 역시 옛 자아를 떠나보내고 새 자아를 찾아 나서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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