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아이, 미완의 메타모포시스_ <팬 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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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팬에게 선택된 착한 아이, 기정은 “이젠 이기고 싶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피터 팬을 쫓아간다. 기정은 아직 어른이 되기엔 이른 열여섯 살이지만 너무 일찍 세상을 알아버렸다. 기정은 학교폭력에 시달려왔었다.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준 친구인 태주가 자기 대신 희생되자, 그 죄책감에 괴로워하며 살고 있다. 태주는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할 줄 아는 정의로운 친구였지만 기정과 태주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그들은 패배자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반드시 이긴다.”는 피터 팬의 호언은 기정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른들은 항상 미래를 중요시해서 지금의 네 고통엔 관심이 없어. 네버랜드는 항상 지금이야. 네버랜드에 가면 항상 ‘지금’ 행복할 거야.”

 

동화 <피터 팬>이 모티프인 <팬 피터>는 착한 아이들을 대신하여 복수하고, 악을 삼켜버리는 가상의 인물로 피터 팬을 설정했다. 어른이 되기 싫어하는 장난스러운 피터 팬에서 착한 아이들을 대신해 복수하는 악의 심판자로 탈바꿈한 것이다. 피터 팬이 구원하러 다니는 착한 아이들은 학교폭력의 피해자들이다. 피터 팬은 네버랜드로 데려갈 두 번째 아이로 기정을 선택한다. 기정은 친구의 죽음을 속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가해자인 박은표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피터 팬은 기정이 죄책감으로 만들어낸 악몽을 아름다운 환영으로 뒤바꾸면서 기정의 세계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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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정의 악몽을 아름다운 환영으로 바꾸는 피터 팬

 

꿈에서든 현실에서든 피터 팬과 같은 가상의 인물이 나타나는 것은 마법과 같은 일이다.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들의 심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이나, 못된 아이들을 징벌하는 심판의 능력도 현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다. <팬 피터>는 이러한 현실과의 마법적 괴리를 환영적 스펙터클로 표현하기 위해 선, 색, 연출 등에서 고통, 슬픔, 무서움, 두려움 등의 감정을 마치 내뿜는 듯, 때로는 충돌하는 듯, 때로는 물 흐르듯 보여준다. 이러한 시각적 이미지는 정지된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애니메이션에서 자유롭게 형태가 변화하는 기법을 메타모포시스(metamorfosis)라고 부르는데, <팬 피터>는 화면 구성과 프레임 간의 연결을 매끄럽게 연출한 덕분에 애니메이션에서의 메타모포시스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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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주의 죽음으로 괴로워하는 기정

 

그러나 애니메이션이 아닌 이상, 메타모포시스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줄 뿐, 독자의 상상이라는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미완의 메타모포시스일 뿐이다. 재미있는 점은 의미적으로도 원작 <피터 팬>의 메타모포시스적 환영을 미완성된 채로 쫓고 있다는 점이다. 어린이들의 동화에서 일러주는 교훈은 정의가 악에 대항하여 반드시 승리한다는 ‘권선징악’이다. 그러나 동화 속에서 우리를 사로잡았던 이야기가 현실에서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아이는 어른이 된다. 피터 팬은 아이들에게 이러한 동심을 잃지 않도록 착한 아이들의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려는 것이다. 하지만 피터 팬이 네버랜드로 데려가려는 착한 아이의 세계는 현실에 있다. 착한 아이는 복수하고 네버랜드로 가면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까? 복수심은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 그리고 가해자는 영원한 악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을까? 오히려 아이들은 자신이 살던 세계에서 어려움을 이겨내고 올바른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나아가 자신의 아이가 악의 씨앗을 꽃피우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은 아닐까? 그러므로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피터 팬의 착한 아이 구원하기는 미완성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피터 팬을 탓할 수 있을까?

 

“넌 네버랜드에 가서 행복해져야해. 그게 「규칙」이야”

<팬 피터>는 착한 아이들의 고통을 비추고 그것을 심판하는 피터 팬의 모습, 스스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피해자와 그로 인해 수정된 피터 팬의 구원 행위를 그린 1부가 마무리되었고, 피터 팬을 심판하려는 가해자들의 움직임을 그린 2부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모든 것이 일어난 후의 재판은 그 어떤 일도 해결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 일들’에 대해 방관하고 은폐하는 무책임한 어른들과 사회를 대신해서 귀를 기울이는 것은 완벽하지 않더라도 해결을 위한 출발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피터 팬은 어른이 되기 싫어 네버랜드에 살고 있지만 만약 그가 어쩔 수 없이 현실에 살아야 한다면, 아이들의 마음과 고통을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는 어른이 되지 않을까? 그 모습은 그 모습대로 현실과 괴리가 있는 어른의 모습일지라도. 그렇기에 피터 팬의 미완의 메타모포시스는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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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난지

만화가 왜 재미있는지를 그럴 듯하게 설명하려고
공부하다 보니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명이 아니라 진짜 만화박사가 되기 위해
아직도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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