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괜찮은 관계와 ‘그럭저럭’ 괜찮은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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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정 작가의 <괜찮은 관계>는 29살 고등학교 동창인 고지원과 장한나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들은 고등학교 때에는 단짝 친구였지만, 대학 이후 연락이 끊겼다가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만나게 된다. 프리랜서 삽화가인 지원은 5년 이상 사귄 ‘오빠’가 있다. 그와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둘 사이에 섹스가 점점 뜸해지고 있음에 불만과 동시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 그렇지만 섹스에 있어서는 늘 소극적이었기에 ‘오빠’에게 자신의 욕구를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지원에게 있어서 욕구란 부끄러운 것이고 섹스를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혐오스러운 일이다. 이에 반해 한나는 성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를 발표하여 인기를 얻게 된 파워블로거이자 작가이다. 대학교에서 만난 선배를 사랑하나 못생기고 매력도 없어 조롱거리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는다. 그렇지만 성형을 통해 섹시한 외모를 얻고, 많은 남성들의 욕망의 대상이 된다. 그 후 한나는 육체의 문은 쉽게 허락하지만 마음의 문만은 꼭꼭 걸어 잠그고 산다. 10년 만에 재회한 이들은 사랑과 섹스에 대해 정반대의 태도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지만, 서서히 서로를 닮아가며 몸만, 혹은 마음만 추구하는 관계가 아닌 ‘괜찮은 관계’를 꿈꾼다.

 

한나와지원

한나와 지원 고등학교 시절

한나와지원_지금한나와 지원 10년 후

 

여성작가가 또래의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펼친 19금 만화는 우리 시대의 성에 대해서, 그리고 여성의 입장에서, 흥미로운 질문과 대답을 내놓을 수도 있지 않을까? 김인정 작가의 <괜찮은 관계>를 보기 전에 가졌던 기대이다. 성에 관한 담론이 홍수를 이루고 있으면서도 정작 여성의 목소리를 찾아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마녀사냥> 같은 프로그램에서 여성 출연자들이 성에 대한 솔직한 경험과 견해를 밝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전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성에 대한 자유로운 목소리가 방송을 통해 나오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만, <마녀사냥>은 여전히 남성 중심적이라는 혐의를 받는다. “마녀(마성의 여자)들에게 놀아난 무기력한 남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좀 놀아 본 네 명의 남자들이 나선다.”라는 JTBC 기획의도 문구처럼, <마녀사냥>은 여심을 남성들의 입장에서 ‘분해’하며 남성 중심적인 결론을 내리기 일쑤다. 간혹 여성들의 사연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이는 남성들이 알고 싶어 하는 여성들의 속마음 일뿐이다. 이는 여성 출연자들의 발언이 항상 남성 출연진들에 의해 ‘남성 중심적으로’ 재해석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성 담론이 홍수를 이루고 있지만 이것이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만 흘러가고 있다는 우려가 생기는 이유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에 의해 생산되고, (주로) 여성에 의해 소비되는 순정만화 성인물은 성 담론에 있어 매우 유의미한 공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레진코믹스의 유료 고객의 60%가 여성이라고 알려져 있기에, “19금” 딱지를 달고 있고, 유료 콘텐츠이기는 하지만, 여성 취향의 ‘성인물’들은 남성 중심적 성 담론이 아닌, 여성들의 성 담론이 표현되고 논의되는 장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순정만화 계열의 ‘성인물’인 <괜찮은 관계> 역시 주 독자층이 여성일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괜찮은 관계>는 여성의 입장에서 여성의 ‘Love, Sex, Relationship’ 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그리고 ‘괜찮은’ 관계란 어떤 관계일까?

 

<괜찮은 관계>의 두 주인공을 보면, 이들 캐릭터가 미국의 TV 시리즈 <섹스 앤 더 시티 (Sex and the City)> (1998-2004) 의 캐릭터들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원은 화랑 딜러이며 4명 중 가장 여성스러운 ‘샬롯’, 그리고 변호사이며 캐주얼한 옷을 즐겨 입는 ‘미란다’를 섞어 놓은 것 같다. 이에 반해 한나는 섹스 칼럼니스트인 ‘캐리’와 광고회사를 운영하는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사만다’를 섞어 놓은 것 같다. 지원은 샬롯처럼 성적인 욕구의 표현에 소극적이며, 미란다처럼 여성성을 강조하기보다는 평범한 의상을 주로 입는다. 반면 한나는 섹스를 소재로 글을 쓴다는 점에서 캐리를 닮았으며 이성과의 자유로운 만남을 즐기고,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과학의 힘을 빌리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는데 있어서 사만다를 닮았다. 그러나 <괜찮은 관계>와 <섹스 앤 더 시티>의 유사성은 아쉽게도 이러한 등장인물들의 설정에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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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앤 더 시티>의 4인방. 미란다, 캐리, 샬롯, 사만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여주인공들은 매주 여성의 (성적)자유, (여성들 사이의) 우정, (남성으로부터의) 독립을 강조하며 성과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스테레오타입을 부수는 역할을 했다. 이들이 추구하는 섹슈얼리티가 여성의 패션과 여성의 권력화 (empowerment)를 동일시하는 자본주의의 전략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여성의 개별적 선택을 강조하고 여성 개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남성의 사회적 권력과 침실에서의 권력 모두에 맞서고 있기에, <섹스 앤 더 시티>는 포스트-페미니스트 텍스트로 읽히기도 하다.

 

그러나 <괜찮은 관계>의 주인공들은,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마치 남자들의 성적 판타지를 형상화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선 지원이를 보자. 지원이는 상당수의 여성이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이다. 지원이를 보고 있으면, 비록 답답하고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가 아직 여성의 성에 대해 보수적이라는 점에 비추어보면, 많은 여성 독자들이 공감했을 캐릭터로 보인다. 지원의 답답함을 풀어주는 것은 한나 캐릭터이다. 한나는 여성들에게 강요되어온 전통적인 가치관을 훌훌 던져 버리고, 성형으로 무장한 섹시한 외모에, 하이힐, 빨간 립스틱, 가슴골이 드러나 보이는 의상을 무기로 자신을 표현한다. 둘은 서로 달라 보이지만, 이 둘은 여전히 남성 의존적이라는데 있어서 동일하다. 지원은 ‘오빠’에게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지 못하면서도, 끊임없이 그에게 의존한다. 여성이 성적 자유와 성적 만족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온 몸으로 보여주는 한나에게 있어서 더 섹시하고, 더 날씬하고, 더 매력적인 여성의 신체는 모든 가치체계에 우선한다. 그러나 한나 역시 자신의 가치를 뭇 남성들의 시선에서 확인받아야만 안심할 수 있다. 그래서 남성과의 섹스가 끝난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블로그의 답글을 확인하는 강박성을 갖고 있다. 즉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타인에게서 인정받아야 마음이 놓이는 비독립적인 인물이다. 이들은 사실상 남성의 성적 판타지의 산물이다. 이들 두 여성을 합치면 바로 ‘낮져밤이’한 여성이 되기 때문이다. 낮에는 지원처럼 고분고분하고 여성스러운 여성을, 그리고 밤에는 한나처럼 대담하고 능동적인 섹스 머신을 원하는 남성들이 판타지가 이들의 이미지에 숨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이들이 원하는 ‘꽤’ 괜찮은 관계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저 ‘그럭저럭’ 괜찮은 관계가 이들이 꿈꿀 수 있는 최상의 관계이다. <괜찮은 관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많다는 사실도 이러한 의구심을 키운다.

 

<괜찮은 관계>의 중심인물들은 직업을 가진 29살 여성들과 이들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든 30대 초반의 남성들이지만, 이들 사이의 관계는 현실적인 문제들로부터 벗어나 있다. 지속적인 관계, 결혼 등에 대해 적대적 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 한나는 차치하고라도, 5년 넘게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지원 커플에게도 결혼, 임신, 육아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원에게 가정주부로서의 역할을 거부하는 확고한 신념이 있는 것도 아니다.

 

프리랜서 삽화가란 직업이 주어져 있지만 실제로 지원의 일과 관련한 에피소드는 하나도 없으며, 지원의 작업과 관련된 이미지 한 장 존재하지 않는다. 지원이 백수가 아니라는 사실만 전제되어 있을 뿐, 지원의 직업이 지원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 점에 있어서는 한나도 마찬가지이다. 파워블로거라지만 사이트 대문에 걸어 놓은 야한 사진만 보일뿐 정작 어떤 글을 쓰는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사인회에 남성 독자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남성들의 입맛에 맞는 글을 쓰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또한 이들에게 경제적인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프리랜서 삽화가인 지원, 블로거이자 작가인 한나, 평범한 회사원으로 보이는 이들의 남자친구들에게 경제적인 문제는 당면한 문제가 아니다. 지원의 ‘오빠’가 직장 상사의 ‘지랄’에 주말에도 불려나간 에피소드가 먹고살기 위해 고단한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묘사하는 것의 전부이다.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몽땅 성형수술에 투자한 것으로 보아 이들에게 경제관념을 기대하는 것은 아마 무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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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의 ‘오빠’ 와 한나의 남자친구인 김영민은 경제적인 문제뿐 아니라 인물 성격에 있어서도 상당히 비현실적이다. 이들이 비록 재벌 2세에 아이돌 같은 비주얼을 지닌 백마 탄 왕자로 묘사되지는 않지만, 이들은 간혹 짜증을 낼지언정 상대 여성을 아껴주고 이해하려 하는 전형적인 ‘착한 남자’들이다. 지원과 ‘오빠’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 과정은 생략되어 있어 알 수 없지만, 김영민은 술집에서 한나를 처음 만나, 만취한 한나를 따라 그녀의 집에 가서 하룻밤을 지내지만 아무 일 없이 잠만 잔다. 그리고는 아침에 일어나 해장 라면까지 끓여 놓고 사라진다. ‘우렁 신랑’과도 같은 이 남성은 그 후 끊임없는 구애를 통해 한나의 마음을 얻으려 한다. (김인정 작가에게 있어서 남성들에 대한 이러한 묘사는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4학년이 된 여대생 4명의 4가지 연애 성장담을 담은 <꽃 같은 인생>에서도 남성들은 거의 모두 일편단심 상대 여성을 인내하며 사랑하는 인물들로 나온다.)

 

결혼에 대한 부담도 없고,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없고, 딱히 경제적 궁핍도 겪지 않는 이 두 여성에게 유일한 문제는 바로 남녀관계이다. 고지원은 어릴 적부터 섹스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관념을 갖고 있었다. 왜 그런 관념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짤막한 일화가 등장하기는 하나 충분한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하긴 꼭 이유가 필요한가. 그런 성격의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이와 반대로 한나는 고교시절과 대학시절 못생긴 외모로 인해 관심을 끌지 못 했다. 대학 때 좋아하던 선배와 잠자리를 같이 하나, 선배가 자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군대에 가기 전 가급적 많은 여자들과 잠자리를 같이 하려던 것뿐이라는 것을 알고는 사랑에 회의를 느낀다. 학교를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은 돈으로 성형을 하고는 자신이 많은 남성의 욕망의 대상이 되었음을 알고 이를 즐긴다.

 

박한나의 경우, 김영민을 만나기 전까지는 개인적 욕망의 극대화만이 관심사였다. 자신의 성적 매력, 특히 큰 가슴을 무기로 남성들의 시선을 모으고 이를 즐긴다. 한나는 섹스에 있어서 항상 주도권을 쥐지만, 이때 섹스는 ‘관계’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레크리에이션 혹은 자신의 성적 매력을 확인하려는 수단일 뿐이다. 성적인 만남을 주도적으로 이어가지만 상대 남성이 자신의 삶에 개입하여 ‘관계’ 를 만들려고 하는 순간 이를 거부해 버린다. 남성의 성적 욕망은 나르시스적 만족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박한나가 고지원의 ‘오빠’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박한나는 가슴이 깊게 파인 옷으로 커다란 가슴을 강조한다. 친구의 남자를 유혹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섹스 어필은 타자와의 관계에서 자신을 인정받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섹스 어필은 종종 대중문화에서 남성과 여성의 권력관계를 여성들 사이의 경쟁과 투쟁으로 변화시키기도 한다. 물론 <괜찮은 관계>는 그와 같은 막장 드라마는 피하고 있다. 고지원의 갑작스러운 일탈에 안절부절못하며 고지원의 남자친구에게 구조를 요청하는 장면이나, 박한나가 남자와의 관계에 혼란스러워할 때 고지원이 박한나를 응원하는 장면은 여성들끼리 남성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막장드라마를 피하고 여성들 사이의 우정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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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관계> 가 막장을 피한 것은 미덕이라 할 수 있으나, 막장 관계가 아닌 ‘괜찮은’ 관계의 의미가 선명히 드러나지는 못한다. 사실 <괜찮은 관계>의 캐릭터들은 <꽃 같은 인생>의 캐릭터들이 나이만 훌쩍 더 먹고 가슴만 키운 것처럼 보인다. 30년을 산 경험도 30대를 바라보는 책임감에서도 이들은 한 발짝 벗어나있다.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적 판단과 자부심이 결여되어 있기에 이들은 부지불식간에 남성들이 만들어온 판타지에 자신을 맞추어간다.

 

특히 작가의 연재 중간에 나오는 <에필로그>와 연재 후 이어진 <작가 후기>에 등장하는 ‘아부지’는 작가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검열’의 목소리이다. ‘아부지’가 모른 척 하면서도 딸의 작품을 꾸준히 읽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은, 작가가 스스로의 상상력을 아빠의 눈으로 검열해왔음을 고백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성 독자들을 위한 19금 만화가, 남성의 판타지를 여성의 시선으로 둔갑한 채, ‘착한 딸’을 확인하며 끝맺음하게 된다. 결국 ‘꽤’ 괜찮은 관계를 찾아 떠났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관계에 만족하며 안주하는 지원과 한나처럼, ‘꽤’ 괜찮았을 수도 있는 이야기가 ‘그럭저럭’ 괜찮은 이야기로 남아버린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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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현준

스크롤을 하며 만화를 보는 것이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 영화이론을 공부했지만 아직도 언젠가는 내 영화를 만들겠다는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만화를 볼 때마다 미장센과 편집을 고민하는 쓸데없는 버릇이 있다. 작품의 가치는 지금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사람들이 여전히 그 작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할 때 비로소 확인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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