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진코믹스의 사라진 8작품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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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위 vs 레진 ; 당신의 사이트를 받겠습니다
대표적인 전문웹툰 플랫폼으로 성장한 레진코믹스((주)레진엔터테인먼트, www.lezin.com)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의 ‘사이트 차단과 해제 조치’ 과정을 통해 다양한 이슈를 양산하고 있다. 심의 당국의 통제 주의적 조치와 이에 따른 기업의 즉각적 대응 그리고 SNS를 통해 불거진 반대 여론, 당국의 차단 해제 조치에 이르는 과정은 역설적이게도 우리 사회가 이 같은 사안에 대해 ‘절차적으로나 인식적으로 진일보’했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후에 진행된 법적인(?) 절차와 결과론적으로 얻은 ‘현재 상황’을 놓고 보면 개운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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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진코믹스 메인 페이지, 로그인 전

지난 3월 24일 방심위는 “레진코믹스에서 청소년 접근 제한 조치 없이 음란물이 유통 된다.”는 의견을 접수한다. 이에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국내 사업자’인 레진코믹스를 해외 사업자로 판단하고 법에서 정한 소명 절차 없이 곧바로 사이트를 차단했다. SNS를 중심으로 부적절한 조치라는 의견이 모아졌고 언론에서도 이 사건을 뉴스화하면서 ‘과잉조치’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방심위는 하루 만에 차단을 풀었고 레진코믹스에 대한 ‘정밀 검토를 실시한 후 재심의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방심위는 <진짜로 있었던 H한 체험담> 등 총 8건의 일본 번역 만화를 심의 대상으로 상정하고 지난 4월 28일 통신심의소위원회(이하 통신소위)를 열어 사업자에게 의견 진술 기회를 부여했다. 이날 통신소위에서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 7 제1항 제1호, <정보 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제8조 또는 <청소년보호법> 제7조, 제9조 및 <정보 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제20조 적용여부에 대한 의결이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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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심의윈회 회의록

비난을 산 바 있는 방심위가 강력한 제재 조치를 취하고 차단 해제 조치 이후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보너스 코인 추가 이벤트’를 펼쳤던 레진코믹스가 이에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었다. 하지만 양측은 조금씩 양보하는 모양새를 취하며 사태를 마무리했다. 통신소위는 사업자 쪽에서 “자율 규제를 한다.”는 평가와 함께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던 ‘심의 보류’ 카드를 꺼냈다.

방심위의 과잉조치라는 사회적 비난 여론이 거셌고 이에 대해 위원장이 국회 대정부 질문 과정에서 사과를 했다. 한 국회의원은 이른바 ‘레진코믹스법’을 발의했고 학계와 문화계에서는 이에 대한 항의성 토론회를 개최할 정도로 위중한 사안이었지만 결론은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식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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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사이트 차단 조치에 따른 레진코믹스의 대응 이벤트

‘좋은 게 좋은 것’일 수 있다. 심의 보류 판정이 남에 따라 이제 막 활성화되고 있는 “성인향 전문웹툰 플랫폼 전반으로 심의의 칼날이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업계의 걱정도 한 숨 돌리게 됐다. 하지만 이번 건으로 인해 “정부가 민간과 적당히 타협했다.”는 추가 비난 여론이 형성됐다. 소명 기회를 얻은 사업자가 대응 과정에서 보인 인식과 태도도 부적절했다는 지적이다.

레진코믹스는 통신소위가 열리기 전인 지난 4월 17일부터 성인만화 노출 방지 탭을 추가해 성인인증을 한 사용자만 성인만화 목록(썸네일)을 볼 수 있도록 했고 심의 상정된 8건의 만화 중 3건의 서비스를 자진 중단 한 후 심의에 임했다. 또한 의견 진술 과정에서 5건에 대해서도 통신소위의 의견에 따라 서비스를 중지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는 역으로 보면 규정에 따른 성인 인증 절차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콘텐츠 유통에 있어서도 정부 기준이 제시되어 있으나 이를 기준으로 유통 여부를 자율적으로 판단하지 않았거나, 판단했다 하더라도 조건부로 조정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됐다. “특정한 창작물을─그것이 일본 번역 만화에 성인만화라 할지라도─심의보류의 재물로 삼았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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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사이트 검색을 통해 접속 시 로그인 요구 화면(왼쪽), 로그인 시 판매 중지 메시지 출력 화면(기 구매자는 열람 가능)(오른쪽 위), 로그인 후 성인물이 노출 된 메인 페이지(오른쪽 아래)

심의 대상이 됐던 8편의 작품은 <진짜로 있었던 H한 체험담>, <신 진짜로 있었던 H한 체험담>, <페티시즘의 구멍>과 <내 아내의 은밀한 사생활> <당신의 아내를 받겠습니다>, <분홍색 밀크>, <욕정녀 페티시즘>, <엔틱 로맨틱>이다. 이중 심의 이전에 서비스를 사전 중단한 작품이 앞에서부터 3편이다. 심의 이후 이를 포함한 8편 전체의 서비스가 중단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현재(2015.6.22. 현)는 심의 대상 작품 중 가장 이슈가 됐던 2작품(<진짜로 있었던 H한 체험담> <신 진짜로 있었던 H한 체험담>)의 서비스만 중지했다. 다른 6작품의 경우는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앞선 2작품의 경우도 기존에 구매한 사용자의 경우는 ‘내 서재’에서 볼 수 있도록 했다. 심의 보류를 심의 기각으로 판단한 것 아닐까.

 

 

만화 vs 심의 당국 ; 진짜로 있었던 X 같은 체험담
지금 한국 만화계는 웹툰과 웹툰 플랫폼의 시대이다. 극화와 코믹스가 유행하고 대본소와 만화잡지가 인기를 얻었던 시대는 20세기의 추억으로 끝났다. 이제는 21세기의 만화 판이 열려있고 그 중심에 웹툰과 웹툰 플랫폼이 있다. 그런데 지금 전개되고 있는 상황을 보면 20세기의 일들이 마치 교훈처럼 떠오른다. 그러고 보면 지금 만화 판이 급격하게 변한 것 같지만 크게 달라진 것도 없어 보인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지금 이 판 역시 20세기의 그 판처럼 순식간에 뒤집어 질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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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심의 철폐를 위한 범만화인 결의대회 관련 기사 (한겨례, 1996.11.08., 만화계는 이 날 (11월 3일)을 만화의 날로 정해 매년 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왼쪽). 스포츠신문 연재만화가를 줄소환했던 당시의 기사 (동아일보, 1997.05.27. 출처: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1919년 대한민보 1면에 이도영의 ‘삽화’가 게재된 이래 ‘만화’는 대중매체의 등장과 변화에 따라 그 형과 식을 달리해왔다. 신문이라는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만화의 외적 요소가 발명됐다면 잡지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만화에 담을 수 있는 내용이 다양화됐고 이는 만화의 장르화라는 형과 식을 구축해냈다. 단행본 만화는 만화의 유통과 소비 방식을 전환 시킨 만화방(또는 대본소, 대여점) 플랫폼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단행본 만화가 인기를 얻으면서 만화를 ‘가장 빨리, 가장 저렴하게 소비’하고자 하는 요구가 생겼고 ‘대여소비’라는 시스템을 반영한 만화방과 ‘가장 빨리, 가장 저렴하게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만화공장 (스튜디오 시스템)’이라는 시스템이 구축되기도 했다.

만화방 플랫폼은 총판이라는 유통망을 중심으로 생산자인 작가와 출판사, 1차 소비자인 만화방 주인과 최종소비자인 독자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여기에 무협지, 비디오, 게임, 먹거리 등 다양한 유형의 부가 생산자를 수용했고 소비욕구가 다른 이들까지 고객으로 유입시키는 확장력을 보여줬다. 요즘 용어로 정리해보자면 서드파티(Third party) 생산자와 소비자의 네트워크효과(Network effect)가 반영된 플랫폼(Platform)이 곧 당시의 만화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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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5백만권을 청소년 유해물로 판정했다는 기사(한겨레, 1997.07.16. 출처: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이 만화방 플랫폼은 만화 산업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업화 구조와 수익화 모델을 보여줬다. 하지만 만화방 플랫폼이 추진한 ‘생산과 소비 중심적 사고와 상업주의적 전략’들은 쉽게 비판의 대상이 됐고 이 플랫폼에 참여하지 않는 그룹 또는 이 판 자체를 경시하는 그룹에 의해 비하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생산비용 최소화’에 따른 ‘작품의 질적 저하’, ‘대여소비 확산’에 따른 ‘작품의 판매 효과 제한’, ‘저비용 다량 창작’을 위한 ‘창작 시스템의 집단화’가 진행됐다. 이는 작가 화실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부당 노동의 문제’, 인기 작가와 비인기 작가 ‘작품 끼워 팔기’ 같은 ‘유통 문제’, 대여소비 회전율 확대를 위한 ‘작품 페이지 축소’ 등 ‘영업 방식의 문제’, 소비 수요를 맞추기 위한 ‘무단 번역 복제 만화의 무분별한 출판’, 만화방 심야 영업에 따른 각종 ‘사회 문제’ 등을 만들어냈다.

가능한 모든 방식의 도덕적 해이가 만화방 플랫폼을 중심으로 도출된 것이다. 60년대 만화 붐을 이끌었을 때도, 80년대 극화의 붐을 만들었을 때도, 90년대 코믹스의 붐을 확대했을 때도 만화방 플랫폼이 한 역할을 했지만 이 플랫폼이 지닌 긍정적 요소는 평가되지 못했고 수많은 부정적 요소에 휩쓸려 결국 사양사업화됐다. 코믹스 붐을 이끌었던 만화잡지 플랫폼 역시 다르지 않은 문제를 만들었다. 2000년을 전후로 진행됐던 인터넷 만화방 플랫폼 역시 동일한 문제로 좌초했다. 그리고 지금. 21세기 만화의 주역으로 떠오른 웹툰 플랫폼도 다르지 않은 양상을 보인다. 만화계 내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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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번역만화 130만권을 압수했다는 기사(경향신문, 1997.08.02. 출처: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가장 빨리, 저렴하게 소비’하고자 하는 요구와 ‘가장 빨리, 저렴하게 대량 생산’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 과도한 속도에 대한 요구가 일본 만화의 무분별한 수입 출판으로 이어졌고, 이 요구가 비정상적인 콘텐츠의 유통이나 영업 방식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요구가 결국 사회적 문제를 만들고 이 요구가 결국 법적인 문제를 만들었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새 판이 깔렸다. 20세기의 X 같은 체험담이다. 그래서 만화는 늘 새로 시작해야 했다.

 

 

대안의 가치 vs 대안의 위기 ; 고도성장기의 구멍
제품 수명주기 이론에 의하면 한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은 ‘도입기→성장기→성숙기→쇠퇴기’를 거친다고 한다. 웹툰과 웹툰 플랫폼은 어디쯤 위치해 있을까. 만화 산업사에 대한 인식은 논자 별로 다를 수 있지만 대체적으로 만화 시장은 10년을 주기로 새로운 장르 또는 상품군을 도입했고 성장과 성숙기를 거쳐 쇠퇴기로 접어들었다. 2003년을 웹툰의 도입기라고 한다면 이미 10년을 넘어선 상황이다. 이와 관련 한 포털사이트 담당자는 ‘웹툰은 내부 혁신을 통해 PC 웹의 시대에서 모바일 웹의 시대로 진입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의미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엄격하게 보자면 PC 웹 시대의 웹툰에 대한 유통 창구를 모바일 웹으로 확대한 것에 다름 아닐 수 있다. 웹툰과 같은 혁신적 아이콘으로 모바일 웹툰이나 스마툰 유의 아이템을 논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지금 웹툰은 어디에 있을까. 성숙기와 쇠퇴기의 중간 지점에 있지 않을까. 시장은 성장기를 지나 성숙기에 접어들 때 다른 분야로의 확산과 신규 사업자의 대규모 참여를 통한 확장이 이뤄진다. 포털 웹툰에 대한 대안적 성격의 웹툰 플랫폼을 내세웠던 레진코믹스 역시 그 같은 배경 하에 도출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즉, 성숙기의 대안이 지녔던 가치는 곧 쇠퇴기의 위기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분화된 영역 자체는 나름의 도입기와 성장기를 거치겠지만 쇠퇴기의 뿌리가 위기에 처한 성장기의 줄기를 지켜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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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런칭 1년 만에 대표적인 웹툰 플랫폼으로 성장한 레진코믹스의 인포그래픽(일부)

 

레진코믹스는 포털이 ‘포털이라 하지 못 했던 부분’들을 말끔하게 정리해 운영정책화 했다. 이로 인해 ‘차세대 웹툰 플랫폼,’ ‘대안적 웹툰 플랫폼’의 등장이라는 이슈를 선점할 수 있었다. 작가들이 주장했던 콘텐츠의 유료화, 콘텐츠의 다양성을 강화하기 위한 표현 수위의 증가, 콘텐츠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한 연재 주기의 개별화 등은 포털이어서 안 되던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 물론, 이 같은 평가에 네이버와 다음은 불만족스러울 수 있다. 이런 두 매체 역시 이런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매체 자체가 너무 큰 나머지 부각되지 못 했을 뿐이다.

출발부터 포털에 대한 대안성을 내세웠던 레진코믹스의 전략은 주효했다. 포털에 의존했던 작가들을 움직였고 사용자들의 지갑을 열게 했으며 투자자들의 결심을 이끌었다. 그리고 유사 서비스의 등장을 촉발시켰다. ‘탑툰’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차세대 웹툰 플랫폼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자칫 혐오스럽게 보일 수 있었던 노이즈 마케팅이나 공중파 CF방송 같은 공격적 전략이 등장하게 된 것도, 수면 위로 오르지 못 했던 작가들이 대거 활동 매체를 찾을 수 있었던 것도. 양대 포털을 향해 당당하게 섰던 레진코믹스의 전략과 실질적 성과에 힘입은 바 크다. 문제는 딱 이맘때이다. 분화된 영역에서의 성장주의적 입장이 과도해졌을 때 구멍이 생겼다. 그리고 이 구멍은 결코 작아지지 않았다.

레진코믹스의 성장은 레진코믹스의 정책이 옳았다는 것을 입증한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성인물 위주의 콘텐츠 구성은 전략적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 성인 만화의 과도한 도입은 일찍부터 불안 요소였다. 레진코믹스 관계자는 심의 과정에서 전체 콘텐츠 중 성인물의 구성비가 ‘25%’ 선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는 타이틀을 중심으로 한 양적 비중일 것이다. 인기도와 주목도 등에 의해 콘텐츠가 노출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레진코믹스의 성인물 체감 비중은 이보다 훨씬 높다. 또 성인물 중 국산 창작물과 일본만화 번역물의 비중 차이도 확연하다. 작품 타이틀이 아니라 작품별 분량을 비중 평가의 척도로 본다면 그 차이는 더욱 커질 것이다.

 

 

성장의 속도 vs 방향 ; 내 지인의 은밀한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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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진코믹스가 포털 웹툰의 대안을 모색했다면 탑툰은 레진코믹스의 대안을 찾은 듯 하다. 탑툰의 인기순위 페이지.

 

일본 만화 번역물의 비중이 높다고 해서 문제라 할 수 없다. 일본 성인 만화의 수입 역시 반대하지 않는다. 그만큼 큰 시장에서 단련된 콘텐츠가 이 작은 시장에서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낸 콘텐츠보다 재미없을 리 없다. 그러니 팔리는 거다. 하지만 이 대목은 숙고할 필요가 있다. 올 초 오랜 기간 만화 출판업에 종사해 온 지인과 사석에서 나눈 이야기이다. 지인은 조금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최근 일본 거래처로부터 레진코믹스에 대해 문의해 오는 곳이 많다. 우리가 냈던 일본 작가의 다른 작품을 달라는데 괜찮겠냐는 것이다. 우리가 봤을 때 한국적 실정에는 과하다는 판단으로 제외했던 작품이다.”

지인은 조금 억울한 표정도 지어 보였지만 납득하기 어렵다는 투였다.

“우리도 정말 내고 싶었던 작품이었는데 아직은 우리 실정에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중을 기약했는데… 이렇게 막 내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리고 “사실 걱정 된다.”고 했다. 만화 출판계의 백전노장인 지인은 90년대 중후반을 기억해 냈다. 대여점이 호황을 이루던 시절, 만화잡지가 수 십 종 나오던 시절, 만화책만 있으면 나갔다는 시절, 내다내다 비주류 일본 만화와 에로 만화까지 수입해냈다는 시절, 검찰이 연재만화가를 고발하고 법이 만화를 청소년 유해물로 규정하던 시절, 만화가와 출판사, 신문사까지 음란물 배포 죄로 벌금을 내야 했던 시절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2005년의 경험도 이야기했다. 성인 콘텐츠 서비스가 활성화 되던 시절 검찰의 단속으로 서비스사였던 네이버, 다음을 비롯해 이동통신 3사, 제공사였던 만화, 영화, 출판 분야의 콘텐츠 기업들이 줄줄이 끌려갔던 시절이다. 마침 필자도 산업계에 있던 시절 성인 만화 서비스 문제로 사이버수사대와 검찰청에 불려가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법원에 출두 명령을 받고 재판장에서 증언을 하기도 했다. 그 시절 우리 모두는 그 같은 치욕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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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사이트와 이동통신사를 대상으로 했던 검찰의 성인 콘텐츠 단속이 콘텐츠업계 전반으로 퍼졌던 시기의 기사(한겨레, 2005.03.27.(왼쪽), 연합뉴스, 2005.06.13.(오른쪽))

 

레진코믹스의 성공과 함께 주목받았던 작품이 네온비 작가의 <나쁜 상사>였다. 연재 기간 내내 매출 1위를 기록하며 리딩 콘텐츠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파격적 설정과 상황 연출, 심도 있는 묘사 등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성작가의 감수성 안에서 도출되기 힘든 내용이었다. 이전 세대와는 다른 세대의 것임이 분명했다. 지금은 그 위치에 이원식, 박형준 작가의 <몸에 좋은 남자>가 올라 있다. 독특한 설정의 매력과 작화의 완성도가 탐스러운 작품이다. 이 작품 외에도 젊은 작가부터 중견까지 수많은 국내 작가들이 창작 웹툰을 내고 있고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일본 번역물이 깔려 있다.

창작 웹툰이 전방에서 결재를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면 일본 번역물들은 결재된 코인을 빠르게 소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과거에도 그랬다. 그중 대표 선수가 하즈키 카오루이다. <마이퓨어레이디>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이 작가는 웹툰 유료 플랫폼이 열리기 전부터 유료 인터넷 만화방의 매출을 책임졌던 대표작가였다. 유부녀의 일탈적 하루를 에피소드 형식으로 그린 <마이퓨어레이디>는 웹툰 유료 플랫폼에서도 놀라운 성과를 올렸다. 그러자 이 작가의 작품 대부분이 수입되어 번역 서비스됐다. 일설에 의하면 다수의 업자들이 이 작가의 작품을 수입하기 위해 로열티 경쟁을 벌였다고 한다. 또한 이 작가와 유사한 스타일을 취한 작품도 대거 수입됐다. 그리고 그 작가가 일군 ‘에피소드 형식의 일탈적 하루’는 이른바 ‘썰툰’이라는 개념으로 장르화 되어 국산 창작 웹툰의 형식과 내용을 지배하고 있다. 이 역시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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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출판만화 서비스 시장의 마지막 히로인 역할을 했던 <마이퓨어레이디>와 하즈키 카오루 작가는 성인웹툰 플랫폼 시장에서도 인기 순위 차트를 점령하는 저력을 보였다.

 

 

나오며
최근 다수의 웹툰 플랫폼을 통해 소개되고 있는 일본 성인만화는 한국적 정서를 논외로 하더라도 표현의 정도가 과하다. 일본 내에서도 표현 수위와 재미요소를 놓고 상호 경쟁을 할 터이니 당연한 일이다. 물론 ‘썰툰’이라 명명된 국내 창작 웹툰 역시 그 설정과 수위가 낮다고 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성인물이니까, 과한 표현물이니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행법이 정한 원칙에 따라 유통 시 조치를 취했다면 사후에 그 내용물에 담긴 표현의 정도나 수위가 문제 시 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오히려 그 같은 조치를 취했다면 사업자가 시민사회의 문제 제기(관련 기관 민원이나 여론 등)로부터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번 건은 서비스사나 심의 당국이나 상호 취해야 할 조치를 충분히(?) 취하지 않은 건이다. 어찌 보면 시대의 변화상을 반영하지 못한 심의 기준 등을 이유로 해프닝 선에서 수습한 것일 수 있고 다른 측면에서 보면 사전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주의하라는 신호를 보낸 선에서 일단락 지은 것일 수 있다. 어느 쪽이든 경계하고 주의할 필요가 있다. 과거사를 통해서 보았듯이 이런 건의 데미지는 특정한 기업으로 끝나지 않는다.

가장 큰 고민은 역시 플랫폼이 만들어 내는 판의 풍토와 정서이다. 기업이니까 성과를 내야하고 소비자의 요구가 있으니 이를 충족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양적 성장을 거듭하기 위해 속도를 내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이제는 전략적 방향을 정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해야 할 때가 아닐까. 레진코믹스의 성과는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한다. 이후 등장한 탑툰의 다소 괴이한 마케팅과 ‘썰툰’으로 획일화된 콘텐츠 운영 정책은 고민해야 할 지점이 많다. 하지만 레진코믹스가 괜찮다면 탑툰 역시 괜찮아야 한다. 그리고 탑툰을 모델로 한 그 다음 플랫폼, 또 그 다음 플랫폼 역시 존중되어야 한다. 오히려 기록 경신이라도 하듯 누군가는 우리 사회의 표현 수위를 더 높이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특정한 시기에 한꺼번에 올라설 수 있는 것이라 믿을 수 없다. 그 만한 도전이 있어야겠지만 그 만한 제재가 따를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논쟁과 다툼이 있어야 한다. 그 과정과 절차상에서 쌓이고 일반화 되는 것이 곧 그 사회의 성숙도가 될 것이다. 적당한 수준의 조정이나 협의가 아니라 문화적이든 법적이든 논의의 확대를 통해 기준의 명시화가 이루어지는 선까지 가야한다. 그만한 논란이 있었다면 그에 따른 결과의 명시화가 필요하다. 모호한 기준으로 통제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모호한 기준이라도 있다면 준수해야 한다. 그리고 기준이 서지 않은 곳에서 창의성을 발휘해야 할 것이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기준의 정립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논쟁이 벌어지고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 기준을 상향하는 방향으로 수정될 수 있다. “우리만 아니면 된다.”는 식으로 끝나서는 곤란하다. “이번에만 넘기면 된다.”는 식도 안 될 일이다. 그러다 또 언제나 처럼 판이 ‘리셋’ 될 수 있다.

박석환

1997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만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2000년 인터넷만화포털사이트 코믹플러스닷컴을 론칭하며 산업계에서 일했고 2009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개원 멤버로 지원사업과 정책 업무를 담당했다. 2013년부터는 한국영상대학교 만화콘텐츠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일찍부터 한국만화의 디지털화, 글로벌화, 융복합화를 외치고 있다. 저서로는 [잘가라 종이만화] [코믹스 만화의 세계]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홈페이지는 www.parkseokhwan.com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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