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성인 만화의 과거와 현재

 

1960~70년대 – 반공 성인 만화와 성인 극화의 등장
1960년 이승만이 부정선거를 저지르다 4·19를 맞아 쫓겨난 이듬해 박정희가 군사정변으로 나라를 빼앗았다. 깡패 소탕령, 부정선거 책임자 처형을 비롯해 초반부터 사회 질서 확립을 빙자한 공포 정치에 나섰던 박정희 정권은 1966년엔 5대 사회악을 지정해 수사 선상에 올렸고 1967년엔 6대 사회악 가운데 하나로 만화를 집어넣기도 했으며, 박정희가 제6대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한 이듬해인 1968년엔 한국 아동만화 윤리위원회를, 1970년엔 한국 도서잡지 윤리위원회를 설치하면서 만화에 본격적으로 사전 심의를 적용한다. 물론 사전 심의 이전에도 박정희 정권은 만화에 꾸준한 시비를 걸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당시 최고 인기작이었던 <라이파이>의 김산호가 중앙정보부에서 라이파이와 인민 해방군과 싸우는 장면에 그려진 붉은 별을 보고 용공 사상이 있다면서 1주일을 조사한 사건이다. 김산호는 이 사건에 환멸을 느끼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박정희는 친일과 좌익 경력을 감추기 위해 이승만에 이어 반공을 철저히 국시로 삼았으며, 북한 124부대원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한 1·21 사건(1968.01.21)과 그해 겨울 이승복 어린이 살해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1968.12.09) 이후로는 반공 기조를 한층 더 강화한다.

이 시기 몰아닥친 7대 사회악 단속과 맞물려 만화에 가해진 검열은 어린이 만화 시장의 태동 이후 확보되고 있던 다양성의 자산을 모조리 무너뜨렸다. 당시 심의 기준은 공산주의를 상징한다는 붉은색을 쓸 수 없다거나, 남녀 연애를 다룰 수 없다는 식이었다. 소재로는 반공과 모범, 친일파 처단 외의 이야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심지어 1972년엔 “만화 주인공은 되살아난다.”라며 스스로 목매 죽은 12살 정병섭 군 사건(1972.01.31)과 춘천 만화가게 주인 여아 살해사건(1972.09.28)을 이용해 만화는 저질이고 불량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려고 했다. 1972년엔 서울시경이 서울 시내 만화 대본업소 1360개소에서 만화책 2만여권을 수거해 불살랐고(1972.02.02) 그 이튿날엔 신설동 국민학교 학생들이 불량만화 안 보기 운동을 전개(1972.02.03.) 하기도 했다.

정작 이 시기에 고도성장이라는 미명 하에 어른들이 모두 일하러 나간 사이 핵가족화 현상으로 형제도 몇 없던 아이들을 키우다시피 했던 건 만화방이었는데 만화 자체를 저질에 공해로까지 몰아세우니 만화가 표현할 수 있는 범위는 크게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반공 만화였는데, 1972년 서울시가 강북개발억제책을 빙자해 강남개발촉진책을 펼치자 강남발 호스티스 문화가 대중문화계 전반에 퍼지면서 만화에서도 반공과 호스티스 문화가 결합한 <김일성의 침실> <김일성의 밀실> <세기의 여간첩 마타하리> 같은 ‘반공 성인·성애 만화’들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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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방 만화에 먹구름이 낀 건 비단 규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1967년 군소 만화 출판사들을 한 데 모아 설립된 ‘합동출판사’는 만화방용 만화의 유통을 틀어쥐고 물량 공세를 통한 이윤에만 집중한 출판사였다. 완전한 독점 아래에서 사장이 신촌 대통령이라는 별명마저 붙었던 합동출판사는 만화의 제목에서 작품의 방향, 작가의 필명까지 사장이 직접 정할 정도로 만화계 안에서 작가의 생사여탈권을 쥐다시피 한 곳이었으며, 198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합동의 독점 체제 아래에서 만화방 만화는 품질과 다양성에 많은 상처를 입고 있었다.

독점 출판사의 전횡과 관의 규제가 절묘하게 맞물리며 만화방 만화가 나름의 독자층을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사라져 가고 있던 가운데, 1968년 성인향 주간 오락지 <선데이 서울>과 1970년 스포츠지 <일간 스포츠>가 등장하며 잡지와 신문을 기반으로 한 성인만화의 시대가 열린다. 이 시기는 박정희가 제7대 대선(1971.04.27)에서 김대중에게 신승하며 반정부 시위가 격해지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1971.12.06) 유신헌법을 공포(1972.11.21.) 한 때와 맞물려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에로티시즘이라 할 만한 것도 반공 소재를 곁들이지 않으면 표현이 쉽지 않았던 엄혹한 시대였지만, 만화가들은 이를 고전의 묵직한 재해석과 재기발랄한 해학을 통해 돌파해냈다. 고우영의 <수호지>와 박수동의 <고인돌>, 강철수의 <사랑의 낙서> 등이 이 시기를 장식한 성인만화로, 짧게 끊어지기보다 일정 이상의 호흡과 밀도로 드라마 구성과 몰입도를 갖춘 ‘극화’ 성향의 작품들이 우리나라에 정착하는 시초가 됐다.

물론 신문이나 잡지가 만화방용 만화에 비해 검열의 잣대를 ‘덜’ 받았다는 점도 있긴 했지만, “시시비비를 제대로 가려낼 줄 모르는 어린이들에게 판단의 기준을 흐리게 하고 있으며 노골적인 성희를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성인극화나 음란서적은 이성에 눈뜨기 시작한 청소년들에게 왜곡된 성의식을 심어주어 자칫 그들을 타락의 길로 이끌 위험을 항상 안고 있다.”(<사회 정화를 위한 캠페인…… 이대로 둘 것인가 (14) 범람하는 출판물 공해 – 정서 고갈 이성 오염, 황당무계, 외설 판치는 만화>, 1975.12.03, 경향신문) 같은 만화 유해론은 계속해서 만화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1980년대 – 만화방 성인만화와 만화주간지의 붐
박정희가 죽고 잠시나마 찾아왔던 민주화의 계절이 전두환에게 짓밟혔던 1979년과 1980년 초반. 만화 유통 자체를 틀어쥐고 있던 합동출판사의 독점 체제도 1980년대에 접어들며 점차 무너져 갔던 이 시기 만화에는 직접적인 시대의 열망과 욕망이 짙게 투영된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북해의 별>이 민주화라는 시대적 명제 앞에서 ‘성공한 시민혁명’이라는 소재를 제시함으로써 당시 운동권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면, 3S 정책의 일환으로 출범했던 프로야구를 오히려 악과 깡이라는 무데뽀 방식으로 주류 질서를 뒤집어엎고 올라서려는 욕구의 소재로 활용했던 <공포의 외인구단>은 대중들의 울분 섞인 박탈감을 강한 은유로 담아낸 결과물이 됐다.

 

20150706_03_공포의외인구단

 

이 가운데 <공포의 외인구단>은 1970년대 독점의 여파로 주춤했던 만화방 만화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었다. 긴 호흡과 장대한 이야기 구조를 통해 독자들에게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던 장편 성인 극화의 시대가 된 것이다. <공포의 외인구단> 이후 만화방은 어린이가 아니라 청소년과 성인들이 찾아 들어가는 곳이 됐고, 책들도 이들의 구미에 맞춰 분량이 크게 늘어났다. 이현세를 필두로 허영만, 이재학, 박봉성, 하승남, 고행석, 오일룡, 황제 등이 프로덕션 체제를 갖추고 압도적인 물량전을 선보여 지금도 ‘공장만화,’ ‘일일만화(일판만화)’란 표현으로 회자된다.

당시 많은 만화방 만화들이 성인 남성들을 진하게 자극하는 성공 스토리나 무협 액션, 스포츠 등에 섹스 소재를 섞는 방식으로 독자들을 견인했으며, 열람료를 내고 점포 안에서 빌려 보고 반납하던 만화방 시스템의 특성상 쌓아놓고 호쾌하고 속도감 있게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었다. 찍어내는 대로 전국의 만화방 수만큼 팔아 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일단 팔린다고 판단된 소재를 똑같은 구조로 공산품 찍어내듯이 쏟아내기에 이야기의 깊이나 다양성 면에서는 갈수록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허영만은 패션지 <아레나> 2015년 5월호 인터뷰에서 “1988년도에 우리 화실에 문하생이 스물여섯 명이 있었어요. 대본소(=만화방) 만화 그릴 땐데, 당시에 허영만이란 이름, 이현세라는 이름을 유지하려면 한 달에 최소한 8권은 그려야 했어요. 8권을 그리려면 그 정도 인원이 필요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한 달에 30권도 그렸어요. (중략) 내가 월말에 직원들 월급봉투나 나줘주는 중소기업 사장인가? 이것은 아니지 않나. (중략) 그때부터 나는 대본소 만화 그만두고 잡지와 신문에만 만화를 그렸어요. 제일 잘 한 일이 그 일이 아닐까 싶어요.”라고 당시를 회고한 바 있다.

이렇듯 ‘만화방 만화’는 그 나름의 역할과 특유의 페이소스가 분명 있었음에도 어느 사이엔가 물량 채우기의 늪에 빠지기 시작했고, 일본 출판만화 시스템이 접목되어 들어온 1980년대 말을 넘기면서 만화방 만화의 한 시절이 힘을 급속하게 잃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정립된 “물량을 쏟아내 만화방 수만큼 판다.”라는 공식은 이후 1990년대 중후반 이후 단행본 판매 시장을 다시 한 번 거꾸러뜨리는 데 일정 이상 ‘일조’한 도서대여점에서 반복된다.

 

20150706_04_만화광장한편 만화방 바깥에서는 3S 정책의 여파를 타고 또 다른 <일간스포츠>외에 <스포츠 서울>과 같은 스포츠 신문이 등장하는가 하면, 박근혜 현 대통령이 육영재단 이사장이던 1982년 정도에게나 허락되던 만화 잡지 창간이 전두환 집권 후반기 들어서는 다소 완화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다. 신문에서는 앞서 1970년대 고우영으로 대표되던 스포츠 신문 연재 만화가 이 시기에 확대, 경쟁 체제에 접어들기 시작했고, 주간지로는 <만화광장>과 <주간만화>, <매주 만화> 등이 연거푸 창간된다. 특히 이 가운데 <만화광장>은 2015년 이름마저 빼닮은 <코믹스퀘어>라는 매체가 “우리는 <만화광장>이 롤 모델, 무조건적인 에로보다는 어른들이 볼 만한 만화를 만들겠다”라 표방하고 나설 만큼 당시로서는 상당한 만화적 성취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만화광장>으로 대표되던 성인지 시장은 이현세, 허영만과 같은 대형 스타 작가의 만화는 물론 이희재, 박흥용 등이 깊이를 더했지만 이윽고 성애 쪽으로 흘러가다 1980년대 말 역시 서울문화사와 대원을 중심으로 일본의 출판만화 체제가 대거 도입되면서 만화계의 중심축 자체를 넘겨주게 된다.

 

1990년대 – 1980년대의 자산을 부풀리려다 단속에 무너지다

1980년대 만화방과 스포츠 신문, 성인만화지가 여러 한계점들에도 일부 거장들이 자리를 잡는 토대가 되어주었다면, 비록 불법이긴 해도 당시 만화방 등지를 통해 대거 유통됐던 일본의 해적판 만화들은 이 거장의 후배 세대들이 출연하는 데에 표현 수위나 방식 면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다이나믹 콩콩 시리즈가 비교적 어린 독자층을 만들어 냈다면 구호라는 가명으로 불법 번안돼 들어왔던 츠카사 호조, 오기노 마코토, 이케가미 류이치 류의 만화들은 청소년과 성인층에게 그야말로 압도적인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 <누들누드>의 양영순은 고등학교 시절 구호 성인만화를 보며 자극을 받았음을 고백한 바 있다. “나도 이런 자극적인 작품으로 사람들에게 쾌감을 주고 싶다!”라고 생각한 양영순은 이후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열렸던 특강을 찾아 수학하며 “폭력과 섹스가 난무하는 만화를 그리고 싶다.”라고 밝혔다고 한다. 해적판 만화가 이후 전설로 남을 신인을 태동한 기묘한 사례였다 하겠다.

 

20150706_05_누늘누드_닌자

 

이 양영순이 공식적인 데뷔 무대로 삼았던 매체가 <미스터 블루>다. 양영순은 원래 <핫 윈드>라고 하는 에로 화보지를 통해 <누들누드>의 전신이 된 단편 <곤충채집가 K와 L>을 실었으나 고료를 받지 못하자 처음엔 창간 사실을 몰랐던 <미스터 블루>에 원고를 냈는데, 이현세 이두호 등 당시 이 잡지의 주축이었던 중견들이 후배에게 힘을 밀어주자며 공모전에 낸 것으로 쳐서 상금 500만 원을 받게 했다는 후문이 있다.

 

20150706_07_빅점프·트웬티세븐·미스터블루

 

<미스터 블루>가 등장하자 <소년챔프>를 내던 대원이 <트웬티 세븐>을, <아이큐 점프>를 내던 서울문화사가 <빅 점프>를 창간하면서 경쟁구도에 올랐다. 물론 그에 앞서 1994년 <영 챔프>가 창간당시 미성년자 구독 불가 표시를 달고 창간한 바는 있고 <열혈강호>를 비롯한 작품들이 섹슈얼 코드를 적잖게 집어넣긴 했지만 일본에서 영(Young)지가 청년지를 뜻하는 것과는 달리 중고교생 이상층을 대상으로 하는 잡지로 이후 수위를 낮추었고, 사실상 <트웬티 세븐>과 <빅 점프> <미스터 블루>가 1990년 시기의 성인 만화를 대표하던 잡지라 할 수 있었다. 이들 잡지들에 연재되었던 작품들은 비단 직접적인 성애 표현으로만이 아니라 은유 넘치는 묘사, 작가적 주제 의식을 드러내며 무게와 깊이를 지닌 ‘성인 대상 만화’로서 자리하려는 시도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양영순의 <누들누드>와 박흥용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과 같은 작품들이 이 시기에 등장한 작품들이다.

 

20150706_06_구르믈버서난달처럼

 

이 세 잡지들이 남성 성인들을 대상으로 삼고 있었던 대표주자라면, 여성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던 잡지들도 1990년대 들어 계속해서 시도되었다. 1993년 이래 여성 대상 만화잡지들이 다수 등장했는데, 그 가운데 성인 대상이라 할 만한 잡지는 1993년 5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레이디스 코믹’을 표방하며 나왔던 <투 유(그대에게)>와 1994년 말 마니아를 위한 순정지를 표방하며 나왔던 도서출판 에또의 <펜팬>, <보물섬>을 냈던 육영재단이 1995년 7월 창간했던 <마인>, 도서출판 대원(현 대원씨아이)가 1995년 냈던 <화이트> 등이 있다. 하지만 성인 여성들에게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잡지는 뭐니 뭐니 해도 1997년의 <나인>이었는데, 섹슈얼리티 면에서 성인 남성들과는 전혀 다른 접근법을 보여준다거나 자기 세계관이 뚜렷한 인디적 감성을 지닌 작가들까지도 포용하여 지금까지도 색깔 있는 작품들을 보이는 작가군들을 대거 등장시켰다. 당시 <여성 신문>에서는 1998년 1월 2일 기사를 통해 “표제 <나인>은 ‘제9의 예술’, 만화를 일컫는 말. <나인〉의 특징은 기존 순정만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깰만한 신선한 내용이다. 창간호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들은 남자 상대를 짝사랑하거나 무조건적으로 따르기보다는 성적 욕구를 거침없이 표현하고, 자신의 의사를 당당히 밝힌다. 화법이나 그림도 재미있고 개성이 뚜렷해 예쁘고 날씬한 기존 순정만화 주인공들과 뚜렷한 차이가 난다. 이와함께 사회 혹은 만화계의 선정주의를 풍자하는 내용도 눈에 띄어 이채롭다.”라고 조명했다.

스포츠 신문에서는 <스포츠 조선>이 1990년대 초반 창간해 1980년대에 형성된 성인만화의 자산을 이어가며 스타급과 중견급들의 묵직한 작품들을 실어냈다. 대체로는 역시 성인 남성층들에게 소구되는 입지전적 인물상을 그려낸 작품들이 각광을 받은 가운데, 매체들 사이의 경쟁이 높아지며 성애 표현에 치중하게 되는 면을 드러내기도 했다.

1990년대의 성인만화는 이렇듯 앞서 만화방과 신문을 통해 형성되었던 흑·적자적 자산들을 끌어모아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잡지 창간 붐을 타고 대상 연령이 대거 분화한 탓도 있겠지만, 성애에만 국한하기보다 깊이와 주제의식를 추구하고, 자의식을 찾으려 했으며, 또 한편으로 군사독재의 끝물에서 그간의 어려움을 다 참고 경제발전이라는 성과를 일궈냈다는 자의식을 지탱해 줄 영웅서사를 찾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공과 과를 넘어 나름대로 생존을 하여 밀레니엄을 맞았다면 ‘만화를 보는 성인’에겐 큰 축복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1996년 발의돼 1997년 발효를 시작한 청소년 보호법과 이윽고 찾아온 IMF, 전국적으로 창궐한 도서대여점에 이어 초고속 인터넷의 가정보급에 이르기까지 1990년대 후반을 장식한 이슈들은 성인 만화가 뿌리내릴 토양 자체를 완벽하게 박살냈다.

책장을 별도로 두지 않으면 성인 만화를 들일 수 없게 되자 소매 서점들은 아예 만화를 치웠고, <천국의 신화>로 고초를 겪은 이현세를 비롯해 만화가들이 죄인 취급을 당했으며, 간행물 윤리위원회는 1997년 7월 1700여 종 510만 권이라는 유해만화 목록을 발표하고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1997년 7월 31일 <미스터 블루> <트웬티 세븐> <빅 점프>가 발행을 중지했다.

 

 

2000년에서 2010년 무렵까지
1997년 창간사를 올렸던 <나인>이 2001년 폐간하고 <영 점프>도 마지막 6개월 재창간이라는 형태로 성인 독자들의 구미에 맞을 법한 다양한 실험을 구가했지만 끝내 2003년 폐간한다. 시공사가 2003년 준성인 순정지 <오후>를 격월간 체제로 내놓았지만 이미 그 시점에 이르러서는 만화가 출판물로서 독립된 시장을 이루기엔 어려운 시점이 되어가고 있었다. 정권이 바뀌고 간행물 윤리위원회도 진흥기구로 성격을 바꾸었다지만 이미 만화 잡지가 버틸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결국 이듬해인 2004년 <오후> 폐간 이후로 출판 잡지에서 성인만화가 뿌리내리는 일은 없이, 왕년의 일판 만화들이 인터넷 만화방이라는 형태로 디지털라이징 서비스되는 사례와 더불어 스포츠 신문, 주간 가십 시사 신문 등에서 연재되는 작품들이 성인 극화의 흐름을 유지했다.

이 시기 눈에 띄는 작가로는 단연 어딘지 핀트 어긋난 명대사 명장면으로 유명한 김성모를 들 수 있다. 소위 코믹스라 불리던 잡지 출판 출신이었지만 이 시장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대안으로 대량 생산이 필요한 만화방 만화를 해 보려다가 방향을 전환한다. 이후 제작한 <용주골>, 스포츠 신문에 연재한 <대털> 등이 나름대로 성적을 냈다. 김성모의 성인 극화는 나름대로 직접 취재를 통해 만들어냈다는 ‘리얼 극화’를 표방했는데, 방향과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지만 허영만이 <스포츠 조선>에 1999년부터 연재한 도박꾼 이야기인 <타짜>를 보며 “그럼 나는 우리나라 최고의 도둑 이야기를 하겠다”면서 밑바닥 범죄자들을 취재했다고 한다. (<네이버 캐스트 – 김성모 인터뷰 : 작가는 내가 최고라고 믿어야 한다>, 위근우, 2013.01.24.)

인터넷에서는 만화가 웹툰으로 완전히 무게중심을 옮겨 가기 전인 2000~2002년 무렵 초기형 인터넷 만화 서비스들이 등장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타진하였고, 그 과정에서 성인 대상 색채를 띤 작품들이 다수 등장하였으나 IMF 이후 경기 부양책 가운데 하나로 선택된 벤처 거품을 타고 명확한 수익 모델 없이 사업을 전개한 경우가 많아 오래가지 못하고 무너졌다. 박무직의 올 컬러 만화 등이 이 시기를 장식한 성인 만화로 기록될 만하나 벗었다 해서 에로함이 묻어나는 게 아니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20150706_08_발광하는현대사

2003년 다음, 2005년 네이버가 웹툰을 본격적으로 도입하면서 만화는 완전하게 웹툰 중심으로 돌아가게 됐는데, 포털은 그 성격상 만화를 무료 시식코너용 미끼 상품으로 채용하였기에 ‘만화 독자’라기보다 불특정 대중의 평균치를 준수하는 성향을 보인다. 포털에서 19금 표시라 함은 반드시 성인물이어서가 아니라 민원 방지책에 가까웠으며, 표현 수위와 밀도 면에서 성인만화로서 품질을 이야기할 수 있을 만한 웹툰은 2012년 다음 만화속세상에 실린 강도하의 <발광하는 현대사>다. “섹스를 합니다.”라는 강렬한 여섯 글자로 시작하는 <발광하는 현대사> 이후 웹툰에서도 본격적인 성인 대상 성애물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으나, 포털에서 그 이상의 표현과 깊이의 성취를 일궈낸 작품은 드물었다.

 

 

그리고 현재
로그인을 해야만 볼 수 있는 웹툰이라면 그만큼의 수위와 밀도를 보여줘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성인층에게 회자될 만한 만화를 그릴 수 있는 계층이 젊은 작가층에서는 드물었거니와 우리나라의 심의 기준점이 기본적으로 “로그인을 걸어도 아이들이 볼 수 있는데, 어떻게 이런 걸 포털에서 그릴 수 있지?”에서 머물러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의 표현을 만들어 내기는 버거웠던 듯하다. 이러한 한계점이 깨진 것은 포털 바깥에서 만화 전문 유료 사이트들이 붐을 이루기 시작한 2013년부터다.

레진코믹스를 필두로 우후죽순 등장한 웹툰 플랫폼들은 포털과 차별점을 두기 위해 베스트 도전 등 아마추어 게시판에서 인기를 얻었으나 이미 나온 소재라는 이유 등으로 정식 데뷔를 하지 못 했던 이들을 대거 기용했으며, 이미 인기를 얻은 화제 작가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19금 만화로 화제성을 끌어모았다. 비포털 웹툰의 선두주자 격인 레진코믹스의 <나쁜 상사>가 첫 해의 이슈를 가장 크게 끌어갔다고 하면 현재는 <몸에 좋은 남자>가 히트작으로 화제 선상에 올라 있다. 하지만 이와는 다른 측면에서 화제를 끌어모으고 있는 건 <나인틴>이다.

 

20150706_09_나인틴

 

<나인틴>은 남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그리는 섹스 소재 만화라는 측면에서 화제를 모았는데, 만화로서는 그리 높지 않은 품질이지만 소재 자체가 지니고 있는 흥분도로 밀어붙인 경우다. <나인틴>이 중요한 까닭은 이후 등장한 탑툰 등에서 이와 비슷한 설정의 섹스 경험담을 ‘썰 만화’라는 제목으로 제작하면서 비포털 사이트의 대표 콘텐츠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품질 면에서는 여전히 조악하지만 어떤 면에선 모바일에서 보는 야동 수준의 질감을 재현한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각광을 받는 부분이 있다. 타사에서 ‘썰 만화’를 중점으로 내세우자 레진코믹스는 광고에서 <나인틴>을 ‘원조 썰 만화’라 소개하는가 하면, 스마트 핑거 무비라는 이름으로 영상화해 손익분기를 넘기기도 했다.

하지만 성인 웹툰 시장이 탄탄대로기만 한 것은 아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2012년 포털 웹툰 24편을 유해 매체물로 지정했다 만화계의 대응에 밀려 취소한 바 있는데, 2015년 5월 레진코믹스를 차단했다가 3시간 만에 취소하는 촌극을 벌이면서 제 버릇을 남 못 주었음을 증명했다. 레진코믹스 차단 사태의 경우 2012년 한국 만화가협회와 맺은 업무협약의 문제로 한국 웹툰을 건드리진 못하고 일본 만화 일부를 억지로 끌어다 붙여 문제를 삼았는데, 이후 열린 재심의에서 ‘우리가 규제하면 소송이 된다, 내리면 문제 해결’이란 반응을 내비치는가 하면 논란에 휩싸인 게 부끄럽지 않느냐든지 재심의에 앞서 문제가 된 걸 내린 조치를 두고 너희도 음란한 걸 알았으니까 내린 게 아니냐는 힐난에 성기 부분을 수정했어도 한국과 일본이 다르다는 식의 훈계를 쏟아낸 바 있다.

이어서 6월엔 헌법재판소가 모호한 범위 설정으로 위헌 심판 제청에 들어갔던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을 ‘합헌’으로 선고하면서 범위에 관한 해석을 한층 더 모호하게 늘어놓음으로써 만화의 캐릭터 표현을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아동 포르노)로 규정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기왕 열린 성인 웹툰 시장이 깊이가 부족한 성애 일변도로만 가는 건 내부적인 비판의 대상이 될 수는 있겠으나, 최근의 검열 획책은 비판의 여지도 없이 한순간에 시장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의 주의가 요구된다. 대응논리와 더불어 앞서 명멸해갔던 매체들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겠다.

서찬휘

만화 칼럼니스트이자 만화정보저널 사이트 '만화인' (http://manhwain.com) 운영자. 글쓰기와 만화를 좋아하던 프로그래머 지망생이었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만화와 얽힌 글을 쓰면서 만화 정보를 묶어내는 컴퓨터 프로그램들을 짜고 있다. 자생한 1.5~2세대 한국형 오덕으로 덕업일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내츄럴 본 프리랜서. 칼럼, 연구, 비평, 강의, 방송, 캘리그라피 등 만화와 관련해서는 오는 의뢰 안 막는 자판기형 용병의 삶을 구가 중이다. 최근엔 열심히 애 아빠로 클래스 체인지 시도 중. 봄이야,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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