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뼈와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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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다면 짧은 웹툰의 시대를 분류하는 개인적인 틀이 있다. 포털의 웹툰 서비스가 본격화되기 이전의 (마린 블루스와 스노우 캣으로 대표되는) 0세대, 야후 파란 등 지금은 사라진 포털들까지 경쟁적으로 서비스하던 (한편 눈에 띄는 산업적 성장은 없던) 1세대, 네이버와 다음이 양대 포털로 남아 ‘웹툰’ 자체를 대표하게 되는 2세대, 모바일 환경이 등장해 소비 패턴이 변화하는 2.5세대, 레진코믹스의 등장으로 소규모 만화 전문 매체가 등장하는 3세대다. 레진코믹스의 등장 이후를 ‘3세대 웹툰 시대’로 분류하는 까닭은 레진코믹스가 종전과 다른 만화의 소비 패턴을 제시하고, 그로 인해 ‘웹툰 작가’와 ‘웹툰’의 범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웹툰 시대의 변화에 대해서는 기회가 있다면 더 자세히 얘기하게 되겠지만, 어쨌든 레진코믹스가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초기에 <뼈와 살>이라는 작품이 있었다. [1]블로터의 인터뷰 기사에서 알 수 있듯, ‘작업실 시보’의 <뼈와 살>은 네온비 작가의 <나쁜 상사>와 함께 레진코믹스의 ‘성인 만화’ 서비스 공급자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하는 시도였다. 그때를 기점으로 ‘연재와 동시에 유료 결제’라는 방식이 웹툰 서비스를 즐기는 한 가지 선택지로 기능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매출을 고려했을 때 실시간 유료화에 가장 적합한 모델인 ‘성인 만화’ 역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제 웹툰뿐만 아니라 한국 ‘성인 만화’의 역사에서 또한 레진코믹스를 빼놓고 얘기하기는 어려울듯 하다. 그 시작점에 존재했던 <뼈와 살>이 여러모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이라는 위치를 차지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중요한’이라는 수사는 작품에 대한 칭찬이 아니며 작품 자체의 장단은 따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세속적이고 관능적인 이야기의 뼈
<뼈와 살>에 등장하는 비중 있는 인물들과 각자의 사정은 이러하다. 억압된 가정 분위기에서 자라 집안의 권력관계를 일찌감치 깨닫고 어머니에게 순종적인 태도로 살아온,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인체와 예술’이라는 대상과 그것을 스스로 발견한 기쁨을 남몰래 키워온 의사 박재하. 사업적 성공을 거두어 계급적 위치는 획득했지만 남편의 외도로 ‘여자’ 개인의 삶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비감에 빠져, 그 결실인 박재하를 소유하고 통제하려는 박재하의 모친. 박재하와 고등학생 시절 같은 반이었으며 재하의 열망을 눈치채고 유혹했던, (그 일로 재하와 멀어졌어야 했으나) 결국에 인체를 찍는 사진작가가 되어 돌아온 이나은. 예쁜 몸에 대한 집착이라는 동기로 동생을 소유하고 통제하려는 한수미. 한수미에게 일그러진 사랑을 받으며 나르시시즘을 키워왔고, 언니의 과도한 집착이 불러온 사건으로 실어증에 걸린 한다미. 돈으로 상징되는 가시적인 조건만을 꿈꾸는 김 간호사.

덧붙여 이들이 그려내는 서사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박재하의 모친은 언제나 박재하가 자신이 마련한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한다. 특히 고등학생 시절 박재하와 성행위를 하다 들킨 이나은 같은 존재가 다시는 없도록 김 간호사를 통해 감시까지 하고 있다. 이는 여전히 박재하를 사랑해서 하는 행동으로 남편의 외도를 주도한 ‘어떤 년’을 떠올리게 하는, ‘젊은 몸’만 믿고 재하 근처에 꼬이는 여자들에게서 보호하기 위함이다. 박재하는 아버지와의 일이 어머니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이나은과의 일에서 깨달았으나, 여전히 예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비밀리에 누드모델 활동을 하고 있다. 그 와중 박재하는 시외의 누드크로키 강습소에서 자신의 모습을 그리던 한다미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예술과 사랑관을 투영하며 연애를 시작한다. 이 둘의 관계에 인체를 찍는 사진작가 이나은이 엮여 들고, 김 간호사를 통해 사건이 박재하 모친의 귀에 흘러 들어가면서, 서로가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한 갈등은 심화된다.

인물들의 성격과 서사의 구조만 요약한다면, 등장인물들의 내외적 모순이 서로 겹치며 결국엔 나락으로 치달으리라 예상되는 이 이야기의 설득력이 크게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문제는 세속적이며 관능적인 쾌감을 선사할 듯한 이 이야기의 뼈에, 어색한 살 조각이 붙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잘생기고 똑똑한 완벽한 남자 재하는 주변 사람들 몰래 누드모델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이제까지 한 번도 본적 없이 아름다운 몸을 가진 다미를 만나게 된다. 그런 다미에게 점점 집착을 하게 되며 흠집 하나 없어 보이던 재하의 완벽함이 억압되어 있던 욕망과 파멸로 서서히 가라앉게 되는데… 헤이마의 ‘작업실 시보’의 파격적 에로틱 드라마.”

 

위는 레진코믹스의 <뼈와 살> 소개 글이다. 물론 편집자가 붙인 설명이겠지만, 나는 <뼈와 살>이 에로틱 드라마라는 설명에 동의하지 않는다. 작중의 인물들은 모두 서사를 구성할 수 없을 만큼 납작하다. 등장인물들의 단순화된 성장 배경과 그 내면, 문어체의 어색한 연극적 대사, 1차원적인 동기를 수년 동안 품고 살아가는 여러 인물의 성격 (‘비정상적’ 성격 자체는 문제 될 것이 없다. 모든 인물이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고, 그것을 직접 설명한다는 점이 ‘거슬린다.’), 맥락이 없어 보이는 행동, 뒤따른 우연적인 관계들이 중첩되어 모두가 자신이 주인공인 비극을 연기하는 ‘드라마 퀸’들의 경연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 개연성이 부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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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의 한 장면. 대외적으로 비밀리에 누드모델 활동하고 있는 의사 박재하가 모델과 크로키 수업의 학생으로의 면식이 전부인 한다미의 몸을 더듬으며 즐겁게 ‘예술’을 하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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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박재하의 행동에 눈가에 눈물이 고인 한다미에게 갑자기 ‘나은이’를 언급해가며 인체 드로잉을 하고 싶다는 고백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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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의 한 장면. 왜 박재하의 모친은 아들의 감시역인 김 간호사를 상대로 낯간지러운 1인극을 하는 것일까? 김 간호사는 더 이상 깊이 알려고 하지 말라는 경고 때문에 겁을 먹었다기보다는 갑작스러운 시적 표현에 당황한 듯 보인다.

 

 

아까도 말했듯, 모든 인물이 제각각의 이유로 ‘건강한’ 정신을 소유하지 못한 것은 작품의 결점이 아니다. (작품론을 떠나, 그런 사람이 있기나 할까?)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라는 인터넷 유행어가 비꼬는 지점과는 달리, 우연히 특정한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려내는 사건을 포착하는 것 또한 익숙하게 봐왔던 서사의 역할이다. 매끄럽지 못하게 느껴지는 지점은 이들이 우연을 가장해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동기와 인과를 보여주는 과정이 주로 대사를 통해 직접 제시되는 부분이다. 모두가 독자를 향해 독백을 일삼는데, 구체적인 사건이나 동기의 시발점은 생략되고 각자의 개념어들을 (예술, 욕망, 소유 등) 추상적으로 반복한다. 결과적으로 이들이 왜, 어떠한 생각으로 행동을 하는지 언급은 되었으나 공감할 여지가 적다. 특히 결말 부분에서의 급선회는 극의 성격만으로 유추될 수 있을 뿐이다. ‘한다미’라는 인물의 나르시시즘이 그토록, 극단적인 선택 중에서도 굳이 그런 행동을 자행할 만큼 설명되었던가?

그러나 특정 조건이 붙는다면, ‘개연성’은 개인적 선호의 층위에 머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가 ‘막장 드라마’의 비현실성을 언급할 때와 마찬가지 이유로, 작위적인 인물과 대사가 주는 쾌감은 애초에 현실의 모사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약속이 있다면 크게 거슬릴 문제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2화에서 “네 몸, 정말 예뻐. 너를 그릴 수 있어서 행복해.” / “…나도. 나도 네가 좋아. 좋아해, 재하야.”하고 말하는 고등학생 시절의 박재하와 이나은의 대사를 상기해보자. 두 사람이 서로에게 원하는 것이 이미 어긋나버렸다는 것을 인물들끼리의 대사를 통해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 직접적 설명에 따른 개연성 부재의 반복은 <뼈와 살>이 실제로 있을법한 인물과 현실 상황의 모사가 아니라는 표시로, 곧 작가가 의도로 읽히기도 한다. 의도된 개연성의 부재를 작품의 치명적인 단점으로 여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누구도 <아기공룡 둘리>나 <크레용 신짱> 등 만화적 과장이 상대적으로 강한 작품을 보면서 표현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을 하지 않는다. 각 만화가 갖는 개별적 물리법칙이 마치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지듯, 각 작품 내부의 세계가 구성하는 개연성 역시 현실과 1:1로 비교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물론 ‘명랑 만화’ 안에서도 내부의 개연성이 무너질 가능성은 존재하나, 내가 <뼈와 살>에 들이댄 잣대는 현실과의 유격을 재기 위한 것이었다. 드라마라는 소개 탓에, 상대적으로 실사에 가까운 인체 묘사 탓에, 서사 속에서 현실적인 인물들을 보여주리라 굳게 믿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잣대의 눈금을 새로이 조정한 뒤 살펴보면 알 수 있는 것은, ‘비정상적’인 성격을 가진 인물들과(이제 그러한 의도가 작품 내부에서 매끄럽게 성립되는지는 논외로 하자.) 최소화된 배경이라는 설정이 그들의 일그러진 욕망을 통해 ‘인체’와 ‘성적 행위’들을 보여주기 위한 준비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작업실 시보가 ‘일련의 준비과정 끝에 보여주고자 했던 것’으로 <뼈와 살>의 감상 지점을 옮기고 나면, 즉 장르적 알리바이를 부여하고 나면, 단점으로 여겨지던 ‘납작해진 인물들’은 그림에서 느껴지는 인체의 중량감과 액체의 시각적 질감을 더욱 입체적으로 도드라져 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로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이렇게 좁혀진 프레임 위에서 또다시 결점이 드러난다. 이번에는 그림이 애초에 제기된 것과 비슷한 문제로 몰입도를 떨어뜨리고 마는 것이다. ‘비슷한 문제’라고 했으므로, 인물들의 대사와 행동이 그렇듯이 인체의 동세와 연출 또한 움직임의 자연스러운 포착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독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작위적으로 그려진다는 사실은 여전히 장르적 알리바이 덕에 안전하다. 한데 그 안전한 잠금장치는 기대치에 부응할 때 비로소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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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의 한 장면. 등 뒤에 손등을 대면 엄지가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 단순 실수일 수도 있지만 자세를 한 번 취해볼 수는 없었을까.

 

실수 외에도, 섹스 신이 절정으로 치달아 모든 장면이 신음과 환희로 가득 차 있는 14화에서는 인체가 너무나 많이 나오는 탓인지, 의심의 여지를 주고 만다. 주로 등장하던 구도를 벗어난 인체에선 특유의 그림체가 가진 데포르메가 거의 사라져 관능적인 느낌이 줄어들고, 뒤엉킨 두 사람의 전신이 보일 때마다 매번 비례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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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의 한 장면. 구도나 손의 크기와 모양새, 화면이 잘리는 지점 등이 갑자기 애매하고 불안하게 느껴진다.

 

또한, 동일한 이유에서인지 컷 대부분은 국지적인 클로즈업이 이어진다. 화면을 메운 장면이 어느 부위들인지 거의 기호적으로 파악하게 되니 이어지는 글씨들을 읽음으로써 내가 보고 있는 상황을 추론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작품이 인간 군상의 왜곡된 갈망의 서사가 펼쳐지는 동안 뼈와 살로 이뤄진 육체를 탐미하듯 늘어놓은 작품이라는 이해를 가정하면, 이러한 아쉬움이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며 몰입한 채 기댈 수 있는 서사가 이미 알리바이 속으로 모습을 감춘 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뼈와 살>이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이유는 무엇일까? ‘유료 결제와 유통망을 확보한 레진코믹스가 태동하던 시기’라는 조건이 미친 영향을 무시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합법적이고 공식적인 경로로 젊은 층이 즐길 수 있는 ‘성인 웹툰’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상업적 성공의 여부를 제외하고, 이 글 안에서 제기된 <뼈와 살>에 대한 의문들을 충족하는 예로 어떤 작품을 꼽을 수 있을까? 얄궂게도 같은 시기에 함께 레진코믹스가 알려지는데 큰 역할을 했던, 네온비 작가의 <나쁜 상사>가 떠오른다. 2015년 7월 현재 연재 중인 이원식, 박형준 작가의 <몸에 좋은 남자>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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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보라, “레진코믹스 “왜 팔렸나 봐야, 더 팔리죠”“, <BLOTER>, 2014.01.09.

선우 훈

웹툰을 읽어왔고 웹툰을 그리게 되었다. 조회 수가 곧 작품의 가치인 환경에서 거의 의미가 없는 작품 [데미지 오버 타임]을 연재했다. 실은 나도 내 조회 수를 모른다. 이쪽이 그렇다. 연재하게 해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딴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괘씸하다고 느끼실지도 모르니까. 언젠가 노블레스처럼 가치 있는 만화를 생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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