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요새는 부인 안 때리지?_ <국민사형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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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요새는 부인 안 때리지?” 라는 질문에 예와 아니오로만 대답하라고 누군가 강요하면,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대답이 아니라 ‘항변(retort)’이다. 이 질문에는 당신이 부인이 있으며, 과거 부인을 때린 적이 있다는 사실이 은폐되어 있고, 당신이 어떠한 질문을 하든 간에 이 은폐된 전제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간주하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함정에는 항변해야 한다. 항변은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반문하는 것이다. 예와 아니오로 대답할 게 아니라, “나는 부인을 때린 적이 없는데, 저에게 그런 질문을 하시는 의도가 뭐죠?” 혹은 “저는 아예 때린 적이 없는데, 대뜸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니 부인 분을 자주 때리시나 봐요?” 하고 역으로 질문을 되돌려, 상대가 미리 전제로 숨겨놓은 함정을 폭로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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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에는 언제나 질문자의 의도가 은폐되어 있다. 엄세윤 글, 정이품 그림의 <국민사형투표>에는 ‘개탈’이라는 적대자가 등장한다. 과거에도 있었던 캐릭터 유형이다. 가까이는 <데스노트>, <쏘우> 시리즈가 있다. 그는 법의 심판을 피한 사람을 ‘무죄의 악마’라고 부르며, 스토리 속 대한민국 국민과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국민의 뜻에 따라 “박철순”의 사형을 집행합니다. 찬성/반대?’ 무죄 추정의 원칙의 문제를 어기며, 그는 의도적으로 사형수를 대상화한다. 그는 국민이 아니며, 국민이 ‘비국민이자 비인간인 악마’를 정의의 이름으로 처단한다는 은폐되고 조작된 메시지를 세뇌한다. 스토리 속 사람들을 개탈을 정의를 대행하는 히어로로 본다. 심지어는 신이라 부르는 사람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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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탈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무죄의 악마’로 탈인간화 할까? 어떻게 그가 범인인지 검증했으며, 선출한 방식은 무엇이었을까? 국민의 총의를 자신이 대행해도 된다는 권리는 어디에서 부여받았을까? 내가 이 사실이 궁금한 건 나도 모르는 이유로 네트워크 사형대에 오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소위 ‘조리돌림’을 당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그런 식이라면 개탈의 논리나 행동원리를 그대로 받아 그에게 적용한다면, 그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면서, 자신이 국민의 뜻을 대행하고 그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볼 수 도 있다. 그를 정의를 대신 실현한다는 대의 명분으로 살인을 즐기면서, 그 책임은 다른 이에게 돌리는 비겁한 자라고 비난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빤한 질문이지만 다시 한 번 유명한 문구를 반복하자면 WHO WATCHES THE WATCHMEN? 어디서 굴러들어온 개탈이기에 이런 짓을 하시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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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란을 보면 내 궁금증에 공감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하나같이 사법체계에 대한 불만과 속 시원하게 단죄하는 개탈에 대한 공감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다들 자신은 저렇게 될 리가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 아마 내가 그들에게 당신도 억울하게 저런 상황이 될수 도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분명히 “내가 범죄자란 말이냐!?” 하고 화부터 낼 것이다. 이렇게 강한 감정적 반응을 이끌어내는 작품은 분명 좋은 작품이다. 엄세윤과 정이품이 플롯을 잘 짜고 풀어냈다는 증거고, 칭찬으로 받아들여도 된다. 감정을 일으키는 플롯의 힘이 이 작품의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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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특정한 플롯이 일으킨다. 자세한 논의는 곧 출간할 졸저인 스토리 작법서로 떠넘기고, 일반적으로 감정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메커니즘을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감정이란 소위 ‘뒤통수를 맞을 때’ 발생하는 생리반응이다. 뇌는 다양한 경험과 감정을 모아 만든 행동 연쇄의 장기기억인 스크립트(script)를 만드는데, 덕분에 우리는 특정한 자극이나 상황을 보고 다음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 이를 예기(expectation)이라고 한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예기한 일과 다른 상황이 벌어진다면 뇌는 급히 생리적인 흥분상태를 만들어 에너지를 발생시키고 이를 대처하려고 한다. 잘 대처하면 이 상황을 스크립트에 업데이트하는데, 이를 예기 실패(expectation failure)라고 한다. 우리의 장기기억은 예기 실패의 퇴적이고, 꿈은 이를 정리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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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사형투표>의 플롯은 무엇보다 기존의 상황을 뒤엎는 예기 실패를 잘 구사하고 있다. 덕분에 독자들은 플롯을 따라가며 작가들이 의도한 대로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작가가 플롯을 잘 짜면 독자의 감정을 의도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 오오츠카 에이지가 <캐릭터 소설 쓰는 법 개정판>에서 9.11 테러가 스테레오 타입의 플롯을 따라 진행되며 국민들의 감정을 조작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그 뒤에 특정한 정치적 의도와 세력이 있다고 주장한 바가 있다. 최근 나는 월간 만화비평 잡지 <보고>에서 오오츠카 에이지의 주장을 근거로, 고다 요시이에의 <기계 장치의 사랑>에서 이러한 은폐된 의도가 존재한다는 지적을 한 바가 있다. 이 작품도 그러한가?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비록 이 작품의 반응이 감정적이기는 하나, 작품 내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고 균형이 잘 잡혀있다. 작품은 판단할 재료를 제공하고 스스로 결정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며 후련한 통쾌를 경험하는 사람을 비난할 마음은 없다. 다만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자신의 감정이 왜 움직이는지를 분석하는 계기를 갖기를, 이를 위해서도 일단은 아무 생각 없이 플롯에 의도한 탄탄한 예기를 따라가다 예기 실패로 감정을 경험하기를, 그리고 마녀사냥을 떠올리며 철저히 사고하기를 권한다. 뇌에서 사고와 감정을 담당하는 부분은 한 쪽이 우위가 되면 반대쪽은 활동이 저하되는 특성이 있다. 마녀사냥을 당할 때 피해자는 나는 마녀가 아니라고 말할 게 아니라, 나를 마녀로 알아보는 당신들이 마녀나 마법사가 아니라는 증거는 어디 있느냐고 항변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실제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감정에 휩쓸려 흥분한 대중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이 작품의 ‘은폐된 의도’가 “감정적으로 행동하라.”가 아니라, (아직 연재 중이라 시기상조일지도 모르나) “신의 머리로 행동하고 항변하라.” 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단 먼저 읽어보시고, 판단하시길. 당신은 찬성을 누를지, 반대를 누를지, 아니면 항변할지. 한다면 뭐라고 항변할지. 그리고 책을 하나 추천하고 싶다. 아즈마 히로키의 <일반의지 2.0>이다. <국민사형투표>의 참고서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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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상

소설가, 만화평론가, 칼럼니스트, 번역가.

주요 출간:
단편집 [당신의 苦를 삽니다], [데스매치로 속죄하라 - 국회의사당 학살사건], [스쿨 하프보일드], [일만킬로미터 너머 그대. 스토리 작법서 [스토리 트레이닝: 이론편], [스토리 트레이닝:실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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