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호의 나는 왜 그리는가 1_강풀이 그림을 못 그린다고?

by -
0 6283

 

<무림수사대>로 ‘웹툰’이란 신대륙에 막 발을 들여놓았던 2007년 초가을 무렵이었다. 1990년대 중반에 잠시 만화잡지에 함께 연재했던 모 작가가 술자리에서 빈정거리듯 말했다.

 

“강풀 만화는 볼 수가 없어. 걔는 그림을 너무 못 그리잖아.”

 

짐작컨대 모 작가는 강풀의 만화를 보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본인의 입으로 ‘볼 수가 없다’고 말했으니 보지 않은 게 틀림없었다. 그 당시 이미 강풀의 만화 몇 편을 보고 눈물, 콧물을 흘려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내 눈물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얼굴도 본적 없는 후배 만화가(하지만 웹툰 데뷔로는 자칭 암모나이트급인 대선배님)인 강풀을 변호하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하자면 강풀의 이야기꾼 기질에 대해, 그의 연출력과 그림에 대해 일종의 지지연설을 하고 있었다. 나의 격렬한 반응이 의외였는지 모 작가는 아예 입을 다물어 버렸고, 우리의 대화는 채 한잔 술을 털어 넣을 시간도 이어지지 못한 채 정치문제, 이성문제, 등 다른 흥미로운 이야기들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모 작가만은 그날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표정으로써 강풀의 만화와 그에 대한 나의 지지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 후로도 비슷한 상황은 자주 반복됐다. 1990년대에 함께 활동했던 작가들을 만나면 거의 어김없이 강풀과 강풀로 대표되는 웹툰 작가들의 그림 실력에 대해 비판적인 이야기들이 나오곤 했다. 잡지만화 시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그들에게는 웹툰이라는 낯선 스타일의 만화 서비스가 갑자기 등장해서 자신들의 시장을 빼앗아 갔다는 삐뚤어진 오해에서 비롯된 서운함이 있었다. 게다가 거기에 한국만화의 역사적 전통을 무시하고 갑작스럽게 툭 하고 튀어나와 새로운 시대의 주인이 되어버린 강풀에 대한 근거 없는 질투심까지 더해졌다. 도제시스템에서 오랜 세월 그림공부를 한 후에야 비로소 만화가로 데뷔할 수 있었던 그들은 자신들의 기준에서 보면 ‘미흡한 그림실력’을 지닌 강풀에게는 챔피언 벨트를 물려줄 수 없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001

 

그에 대한 반작용일까? 한동안 강풀은 자기 자신을 ‘스토리텔러’라고 정의하곤 했는데, 지나친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마치 자신의 그림에 대한 이런저런 평가와 시비들이 귀찮아진 강풀이 스스로 ‘만화가’를 떠나 ‘스토리텔러’라는 나라로 귀화해버리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정말 강풀의 그림은 못 그린 그림일까? 정말 강풀은 그저 스토리텔러로서만 그 가치를 평가받아야 할까? 만화에서 그림이란 얼마나 중요할까? 웹툰에서 그림은 어떤 역할을 하는 걸까?

개인적으로 그리 좋아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요즘은 수치로 모든 걸 이야기하는 세상이니 일단 알기 쉽게 만화에서 그림이 차지하는 비중을 수치로 한번 계산해보자 (계산이라기 보단 초등학교 저학년 산수에 가깝지만). 스토리작가와 그림작가가 공동으로 함께 만화를 제작할 때 원고료와 인세 등 수익 배분을 어느 정도 비율로 나누는지로 만화 작업에서의 스토리와 그림의 비중을 수치화해보는 거다. 조금 억지스럽긴 하지만.

내 경험만으로 보자면, 유명한 스토리작가가 신인 그림작가와 함께 작업을 하는 경우를 예외로 하고 나면, 한국 만화계(일본과 미국 등 다른 나라들은 그들만의 방식이 있다)에선 통상적으로 그림7 : 스토리3, 또는 그림2/3 : 스토리1/3로 수익을 나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모 스토리작가는 이러한 수익 배분에 대해서 그림작가 쪽이 어시스턴트 인건비와 재료비 등 만화를 제작하는데 들어가는 품이 더 많기 때문에 스토리작가보다 높은 비율의 수익을 가져가는 거라고 주장했다는데, 나는 그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의 말대로라면 그림 작가가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그림을 다 소화해낸다면 들어가는 품이 없으니 분배 비율이 달라져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림을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그리든, 혼자 힘으로 소화하든 그림 작가는 수익의 70% 정도를 가져간다. 그 말인즉슨 그냥 만화를 작업함에 있어서 스토리와 그림의 비중이 딱 그만큼이라는 얘기가 아닌가.

사실 굳이 억지스럽게 수익분배율 따위로 그림의 중요성을 증명하려 하지 않더라도 그림 없이는 만화라는 예술 장르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은 이미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기초 상식일 것이다. 그림이 함께 어우러져서 만화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오지 못한다면 스토리는 그저 이름 없는 종이 쪼가리나 문서파일에 불과할 뿐이다. 제작자나 감독을 만나지 못해 서랍 속에서 곰팡이와 친구하고 있는 영화 시나리오와 다를 바 없으리라.

 

002

 

영화 시나리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분업화된 시스템 속에서 작업을 하는 영화감독들과 대부분 홀로 작업을 하는 만화가들이 이미지를 감당하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를 짧고 거칠게 언급하고 넘어가보자. 영화에서는 시나리오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들, 즉 의상, 세트, 미술, 시각효과, 조명, 촬영, 편집, 연출 등 이미지의 영역을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눠서 처리하고 있는 반면, 만화에선 ‘그림’이란 카테고리 하나에 통으로 다 묶어 넣고 만화가(그림 작가) 혼자서 다 감당해내고 있다. 심지어는 영화에선 배우의 몫인 표정 연기, 액션 연기까지 만화에선 만화가가 소화해내야만 한다. 나 같은 경우는 만화를 그릴 때 내가 그리고 있는 만화 속 인물과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민망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아마도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오늘 이 시간에도 꽤 많은 만화가들이 자신도 모르게 만화 속 인물에 몰입해 스스로 표정 연기, 동작 연기까지 하고 있으리라. 게다가 스토리까지 직접 쓰면서 주간으로 연재를 하는 만화가들이라니, 여러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고 있는 영화감독들에 비해 훨씬 위대하지 않은가! (혹시 이 글을 읽고 영화와 만화는 장르가 전혀 다른데 이런 식의 단순 비교는 무리라면서 반박을 할 생각이 들었던 사람이 있었다면 부디 그 말은 그냥 꿀꺽 삼켜주길 바란다. 마감에 찌들어 사는 불쌍한 만화가가 짧은 지면을 빌려 지 잘났다고 쓰는 글이니, 오늘 하루만이라도 영화감독보다 만화가가 조금 더 위대한 걸로 하고 그냥 넘어가자. 그런다고 영화 역사에 흠집이 생기는 일도 아닐 테니!)

 

“관객을 묶어둘 강한 이미지가 중요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지 자체가 스토리다.”

 

만화가보다 더 만화 같은 이미지들을 창조해낸 <가위손>의 영화감독 팀 버튼의 말이다. 영화나 만화를 자주 접해본 사람이라면 팀 버튼 감독의 말을 이해하리라. ‘한 컷의 이미지’가 주는 ‘압도적인 스토리’를 경험해보았을 테니 말이다. 만화가 중에는 뛰어난 스토리텔러도 있고 출중한 테크니션도 있다. 또는 분야는 다르지만 팀 버튼 감독 같은 타고난 스타일리스트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만화를 영화처럼 만들건, 소설이나 시처럼 대하건, 만화에는 만화만의 문법이 있는데 그 만화 문법의 끝에는 언제나 그림이 버티고 있다. 그러니까 만화가가 자신의 만화를 제대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결국 마지막 순간에는 그림과 정면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고, 반드시 그림이라는 벽을 넘어서야만 그 만화가는 비로소 독자와 제대로 대면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스토리작가건 그림 작가건, 또는 둘 다를 혼자 감당하는 만화가건, 또는 평론가나 만화의 열혈독자를 자처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혹시라도 지금까지 만화에서 그림이 차지하는 영역을 단지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이해하고 있었다면, 미안하지만 당신은 아직 만화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한 사람이니 공부를 조금 더 하기 바란다.

이처럼 만화에 있어서 그림의 중요성은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다만 만·화·에·서. 잘 그린 그림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한 번 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만화에서 잘 그린 그림이란 무엇일까? 데생이 정확하면 잘 그린 그림일까? 꼼꼼하기만 하면 잘 그린 그림일까? 만약 정확한 데생과 꼼꼼함만이 잘 그린 그림의 기준이 된다면, 강풀은 물론이고 나도 그 기준점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나 역시 과거에 후배 작가인 강풀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 문하생 생활을 했지만 그 기간이 겨우 5개월에 불과했던 나는 먹칠과 스크린톤 작업이 경험의 전부인 채로, 어느 날 갑자기 천둥벌거숭이 꼴로 데뷔를 해버렸다. 그리고 한동안 미숙한 그림실력에 대한 비판을 받았다. 짧게는 3, 4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 문하생 생활을 하면서 그림 묘사에 있어서 필요한 온갖 기술적 요소를 체화하고 데뷔한 동료 작가들의 높은 눈에 내 일천한 그림실력이 아마추어처럼 보였던 건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 당시 한국만화계에는 일본의 인기 만화 <아키라>처럼 실제 사물에 가깝도록 꼼꼼하게 묘사한 그림, 그러니까 만화계에서 흔히 얘기하는 ‘삽화체’ 그림이 아니면 한 수 아래로 내려다보려는 태도까지 있었다. 이러한 정서는 만화가뿐만이 아니라 평론가들과 일반 대중들에게도 있었는데, 막 데뷔한 신인인 내게 이런 시선과 평가는 꽤나 아픈 상처로 다가왔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장편 데뷔작인 <마이러브>가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면서 아직 20대에 불과한 어린 나이에 거둔 대중적 성공에 대한 질시까지 더해졌다. 내 어설픈 그림을 나의 성취가 우연이었음을 증명하는 증거물처럼 여기고 싶었던 사람들은 소 뒷걸음질로 쥐 잡는 우연은 한 번으로 족하다는 식으로 수군거렸다. 훗날 서로 친분이 생긴 후에 본인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인데, 당시 허영만 선생님 밑에서 오랜 문하생 생활을 경험하고 막 데뷔를 한 윤태호 역시도 한때 나의 빠른 데뷔와 어설픈 그림, 그리고 과분한 성공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 적이 있었다고 한다.

 

크기변환_003

 

당시의 나에겐 그런 동료들의 시선에 대한 저항감 같은 게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오히려 정확한 데생보다는 만화적인 과장을 살린 데생을, 꼼꼼하고 복잡한 펜 선보다는 단순하고 깔끔한 펜 선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자 <마이러브> 후반부에서부터 서서히 다듬어지기 시작하던 나만의 그림 스타일이 <까꿍> 연재를 시작하면서 제법 그럴듯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봐도 이제 조금은 만화가의 그림 같아지고 있었다. 그때쯤부터 그림에 대한 칭찬의 이야기들이 들려왔고, 더불어서 이런저런 캐릭터 상품과 게임이 제작됐으며, 조금 더 그림체를 다듬고 연재를 시작한 <눈의 기사 팜팜>에 이르러서는 애니메이션 계약까지 하게 됐다. 만화를 처음 시작할 때 전문가들에게 비판받았던 내 그림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점점 더 내 만화의 그림 스타일을 구축하려는 노력을 해나갔고, 만화에서 그림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서도 조금씩 깨달아갔다. 그리고 그때야 알게 됐다. 역설적이지만 내 그림이 어설퍼서 독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는 사실을.

내가 데뷔했던 1990년대 초에는 도제시스템 하에서 오랜 수련을 거치고 데뷔한 작가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그림의 고수였지만 그 그림체가 대체로 비슷비슷해 보였다. 1980년대 대본소 만화가 호황을 누리던 시절에 활동하던 수많은 스승들과 또 그 밑에서 그림 공부를 한 더 많은 수의 제자들이 함께 공유하고 있던, 능숙하고 현란하지만 익숙하고 기계적인 데생과 펜 선이 있었다. 분명히 정확하고 잘 그린 그림이지만 내 눈에도 신선하지는 않았다. 반면 그들과 달리 문하생 생활을 짧게 한 덕에 나는 특정한 누군가의 압도적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다양한 작가들의 다양한 그림과 연출법을 빠른 속도로 흡수해서 내 것으로 만들어 나갔다. 그러한 점이 전문가들에게는 어설픔으로, 독자들에게는 신선함으로 작용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때 당시 잡지에 연재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가들 중 상당수는 비교적 도제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신선한 젊은 피들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한 지금은 한때 젊은 피였던 그들이 자신들의 눈에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웹툰을 폄하하고, 강풀의 신선함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명심해야 한다. 언제나 새로운 물결은 익숙함이 아닌 낯섦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낯섦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는 사람들은 새로운 물결이 몰고 온 파도에 휩쓸려 과거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만다.

잡지가 전성기를 누리던 2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 역시도 그림 자체에 너무 매몰돼버리는 만화가들이 제법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들을 ‘만화가’가 아니라 ‘일러스트레이터’라고 부른다 (절대 일러스트레이터를 비하하는 말이 아니다. 차이에 대한 이야기니 부디 오해가 없기를). 연필을 들고 종이 앞에 앉은, 또는 태블렛 펜을 들고 모니터 앞에 앉은 사람은 본인이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은지 만화가가 되고 싶은지, 자신의 욕구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자신의 직업을 만화가로 선택했다면 절대 한 컷의 그림을 꼼꼼하고 정확하게 묘사하는 일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꼼꼼함과 정확함을 추구하기보다는 자신이 가진 이야기와 어울리는 그림 스타일을 찾아 헤매는데 시간을 써라. 그래야만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닌 만화가로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으로 보면 강풀은 만화 작업의 전체적인 틀 안에서 그림이 어떤 역할과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그 핵심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만화가 중 한 명이다. 누군가 나에게 “만화에서 잘 그린 그림이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한 마디로 “강풀처럼 그리면 된다.”라고 말해주겠다. 스토리와 연출이라는 섬세한 액체가 흘러내리거나 새어나가지 않도록 안정감 있게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만화에서의 훌륭한 그림이라고 한다면, 강풀은 이미 자신만의 단단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만화가임이 너무 분명해 보인다. 그러니 제대로 보지 않고 함부로 강풀의 그림이 서툴다고 비판하지 마라. 그는 풍부한 감정이 담긴 복잡 미묘한 표정을 그려낼 줄 알고, 그 누구보다 정확하게 상황을 전달할 줄 아는 표현력을 지니고 있으며, 스크롤이라는 캔버스를 그 누구보다 잘 활용하고 있는 탁월한 스타일의 그림쟁이다. 그는 자타공인 이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자신만의 그림을 나무랄 데 없이 표현해내고 있는 ‘만화가’이기도 하다. 이젠 강풀 스스로도 ‘스토리텔러’라는 타이틀 뒤로 자꾸 숨으려 하지 말고 (사실 강풀은 워낙 거대한 덩치를 지니고 있어서 어디에 숨든 다 보이는 타입이다) 앞으로는 더 당당하게 ‘나도 그림쟁이’라고 말했으면 좋겠다.

 

“남들이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고도 하고 파괴했다고도 하는데 어찌 보면 만화를 몰랐기 때문인 것 같다.”

 

한 인터뷰에서 강풀은 만화를 몰랐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하지만 그는 그 낯섦을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젖혔다. 낯설다고 무조건 부정하려 하지 말고 정면으로 응시해보자. 그 순간 새로운 무언가가 몸 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게 느껴질 테니.

이충호

만화가. 철들지 않는 소년의 마음으로 하루하루 늙어가는 육체를 갈군 결과 23년째 주간 마감을 쉬지 않고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만화가 중에서는 ‘만화가 이충호’가 가장 내 취향의 만화를 그리고 있어서, 게다가 아직도 서툰 만화가인 내가 다음 작품에서는 얼마나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줄지가 궁금해서, 오늘도 이 짓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완성형 만화가는 꿈꾸지 않는다. 다만 다음에는 지금보다 조금 더 잘 쓰고 잘 그리고 싶다.

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