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존 렌트] 만화연구, 지식의 틈을 채우기 위한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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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봄, 당시 존 렌트 (John A. Lent) 박사의 연구 조교였던 아내를 졸라 그의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가 기억난다. 현관문을 열자 그가 출간해온 와 세계 각지에서 보내온 원고 뭉치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식탁이 놓여 있어야 할 다이닝룸은 만화서적, 연구자료, 집필 중인 원고들로 가득했고 부엌과 거실 역시 원래의 기능을 상실한 듯 보였다. 집 안의 모든 벽들은 케냐, 중국, 쿠바, 캐나다 등 세계 각국의 만화가들이 보내온 작품들로 꾸며져 있었고, 2, 3층을 향하는 계단은 부족한 책장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의 침실과 손님방을 제외한 모든 방들은 만화갤러리 혹은 만화도서관을 표방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화장실조차 각종 만화서적과 학술지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다. 상황이 더욱 심각했던 지하실까지 둘러보자 경악으로 시작된 첫인상은 어느새 감탄과 존경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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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후, 렌트 박사의 부탁으로 그의 연구 활동을 정리할 때였다. 3~4시간이면 마칠 거라 생각했던 그의 CV (Curriculum Vitae) 정리는 며칠이 지나서야 간신히 끝낼 수 있었다. 1960년대부터 이어진 그의 연구활동은 이미 120페이지를 넘어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60년대 저널리즘에서 시작된 그의 연구와 집필은 대중문화와 매스커뮤니케이션으로 확장되었고, 80년대에 이르러 당시 학계의 관심을 전혀 받지 못했던 만화연구로 이어졌다. 120페이지의 이력서가 말해주듯, 만화에 대한 그의 생각과 활동, 연구들을 1시간 10분 가량의 짧은 인터뷰를 통해 모두 전달하기란 불가능하다. 또한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 만화연구의 지평을 일반화해서도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미국 만화연구의 개척자로 일컬어지는 그의 생각과 경험을 일부분이나마 공유함으로써 독자들이 미국 만화연구의 흐름과 주요 이슈들을 이해하고 만화 학술연구의 중요성에 대해 고민하는 기회를 가지길 바란다.

 

정재현: 만화연구에서의 경력을 간단히 소개해달라.

렌트: 1963년 시라큐즈대학(Syracuse University)에서 박사과정 중일 때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만화책의 폭력성에 대한 실험연구를 했었다. 어린 학생들에 대한 만화책의 부정적 영향이 50-60년대 사회적 이슈였기에 원인-결과 형태의 연구를 하였다. 1966년 만화 잡지를 만들고자 했던 헝가리 만화가를 만났고, 우리 둘은Witty World라는 잡지를 출간하였으며 총 21호를 여러 나라에 유통시켰으나 재정적 이유로 그만두게 되었다. 70년대에 만화연구를 조금씩 시작하게 되었고, 80년대에 보다 적극적으로 만화연구에 임하였으며 다양한 나라의 만화가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에는 교수로 재직하던 템플대학교 (Temple University)의 박사학생들이 카툰과 만화, 애니메이션에 대한 학위논문을 쓰도록 권장하였다. 당시 한 명의 학생이 중국만화에 대해, 세 명이 대만의 만화에 대해, 서너명의 학생이 한국만화에 대해 논문을 썼으며 터키와 쿠바에 대한 논문도 진행되었다. 물론, 학교에는 만화연구에 대한 프로그램이나 도움이 전혀 없었다. 나와 학생들은 아시아연구협회 (Association for Asian Studies), 대중문화 협회 (Popular Culture Association) 등의 정기 학술 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하였고, 90년대에는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논문을 수정하여 내가 초청 편집자 (guest editor)로 있던 동남아 사회과학지 (Southeast Asian Journal of Social Science)등의 학술지에 제출하도록 하였다. 학생들과 함께 싱가포르, 미국, 필리핀 등에서 심포지움을 열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들은 당시로서는 새로운 것이었는데, 이는 만화학 자체가 매우 낯설었기 때문이다.

 

정: 80년대 후반에도 새로운 것이었나?

렌트: 물론이다. 심지어 90년대 후반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명망 있는 연구자들로 생각되는 사람들 대부분이 90년대에는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정: 60년대 처음으로 만화연구를 시작했다 말했는데, 당시에 만화를 연구하는 것에 대한 편견이 있었나? 있었다면 그런 편견이 언제까지 이어졌다 생각하나?

렌트: 당연하다. 굉장히 많은 편견이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편견이 만화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학계의 편견이 있었다. 70년대 중반 템플대학교에 대중문화 분야를 개척하고자 하는 교수가 있었다. 그가 대중문화 수업을 개설하자 다른 교수들이 왜 우리가 대중문화를 연구해야 하는 지 물어보곤 하였다. 이러한 편견은 80~90년대에도 이어져왔고, 아직도 완전히 없어지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정: 80~90년대 만화에 대한 박사논문들을 지도했다고 하였는데 다른 교수들이나 심사위원들이 편향된 시선을 가지고 있었나?

렌트: 아마 그랬을 거라 생각한다. 다행스럽게도 당시에는 논문 심사위원을 선정하는 것이 좀 더 자유로웠다. 학생들과 함께 신중히 심사위원을 선택하였다.

정: CV(Curriculum Vitae, 이력서)가 아주 길다. 주된 출판물과 학술 활동에 대해 설명해달라.

렌트: 연구관심사가 다양해서 연구와 활동들이 분산되어 있다. 60년대 중반부터 아시아 매스커뮤니케이션 연구의 선구자로 불리곤 했다. 아시아 신문, 아시아 방송, 아시아 영화, 아시아 대중문화, 아시아 애니메이션, 아시아 만화에 대한 첫 번째 책을 쓸 정도로 아시아 매스커뮤니케이션의 다양한 측면에 관심이 많았다. 카리브해 지역 역시 마찬가지다. 1967~8년부터 카리브해의 섬 국가들과 쿠바의 매스미디어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아무도 그 지역에 학술적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리브해와 쿠바에 대한 나의 글과 책들은 그 지역과 주제에 대한 선구적 연구로 여겨진다.

언론의 자유에 대한 글을 쓰기도 하였는데, 특히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에서의 언론자유의 취약함에 대한 글을 많이 썼다. 필리핀에 대한 글은 미국의 언더그라운드 신문에 게재되어 필리핀에 유통되었고,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 대한 글들은 영국과 미국의 다양한 저널들에 실렸다. 이때가 70년대였는데,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정부는 내 글에 대해 강력한 반응을 보이곤 했다. 1964-5년 마닐라에서 열렸던 첫 번째 개발커뮤니케이션 (development communication) 회의와 학회에 참여하면서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2년 동안 말레이시아에 머물며 개발커뮤니케이션에 참여하였고 말레이시아에 매스커뮤니케이션 과정을 신설하였다.

정: 학계에서의 경력이 저널리즘에서 시작하여 매스커뮤니케이션과 대중문화로 확장되었다고 볼 수 있는가?

렌트: 그렇다. 방금 말한 모든 영역들, 그리고 만화. 이들이 나의 주된 연구 영역이다. 몇몇 기관들에서 이런 분야에 대한 첫 번째 연구자가 되기를 요청하기도 하였다. 연구에 대한 나의 신념은 연구되지 않은 영역, 틈이 있는 영역을 찾는 것이었다. 이는 내가 고고학에 관심이 많았기도 하고, 매스커뮤니케이션 자체에 매료되기도 하였으며, 아무도 연구하지 않는 분야를 탐구하는 것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정: 아시아와 카리브해 지역의 대중문화와 매스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한 것도 그런 이유인가?

렌트: 그렇다. 그러한 지역과 주제가 연구되지 않았다. 1964년 여름 필리핀에 갔을 때, 필리핀과 아시아를 주제로 한 역사서와 사회과학서를 많이 읽었다. 하지만, 아시아나 필리핀의 매스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는 어떠한 연구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단순히 말해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참여했던 대부분의 분야들은 당시에는 새로운 것이었다. 주요 출판인들, 방송인들, 영화 관계자들을 최대한 많이 인터뷰하려 하였고, 필리핀 매스커뮤니케이션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들, 가령 학술지, 잡지, 신문들을 최대한 찾으려 노력하였다.

정: 앞서 1980년대에 만화가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하였는데, 왜 인터뷰가 중요하다 생각했나?

렌트: 1960년대부터 해왔던 내 연구들을 관통하는 것은 원천 소스의 중요성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만화나 매스커뮤니케이션 연구는 대부분이 해석이다. 연구자들은 저자가 의미한 바를 해석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는데, 연구자의 해석이 틀릴 경우가 있다. 만약 작가가 살아있다면, 작가가 의미하는 바를 직접 물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때때로 연구자의 해석은 작가가 담으려 했던 의미와 완전히 다르기도 하다. 만화의 경우, 만화가는 검열 등의 이유로 작품의 의미에 다양한 층위를 만들기도 하는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터뷰가 필요하다 생각한다.

정: <International Journal of Comic Art (IJOCA)>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만화 학술지를 출판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렌트: 창간호는 1999년 봄에 나왔다. 좀 전에 말한 것처럼, 나는 틈이 있으면 그걸 채우고자 노력한다. 1990년대 지도학생들과 함께 학회를 갔을 때, 지금은 저명한 연구자로 여겨지지만 당시에는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친구들이 학술지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재정적인 문제로 어느 누구도 새로운 저널을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자신이 시작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1998년 International Comic Art Forum (ICAF)에서 한 장짜리 유인물을 나눠주며 IJOCA의 창간을 발표하였다. (중략) 1999년 봄, 200페이지 가량의 창간호가 발간되었다. 10개가 넘는 훌륭한 글들이 실렸는데, 이 때만 하더라도 구독자가 별로 없어서 모든 비용을 개인적으로 충당하였다. 두 번째도 마찬가지였으나 서너번째에 이르자 도서관들이 IJOCA를 구독하기 시작하였다. 저널의 구독료로 현재 인쇄료나 우송료 등은 해결하고 있지만 나머지 비용은 여전히 스스로 충당하고 있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다음 호를 만들 수 있는 예산이 확보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인쇄와 제본을 제외한 IJOCA 출판의 모든 과정은 Drexel Hill에 있는 내 집에서 이루어진다. 서식 작업의 경우 이전에는 집에서 진행되었으나 현재는 이전 지도학생이었던 한림대학교의 권재웅 교수가 한국에서 도움을 주고 있다. 50개국 이상에서 저널을 구독하고 있으며, 영국 국립 도서관, 미국 의회 도서관, 아이비리그 대학 도서관 등 세계의 주요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 저널 창간 이후, 몇 년 동안은 IJOCA가 유일한 만화 학술지였다. 지금은 <Image Text, Studies in Comics, European Comic Art>등과 같은 경쟁지들이 유럽과 미국에서 출간되고 있다. (정: 1999년에도 만화 전문 학술지가 없었나?) 놀랍게도 그렇다.

정: IJOCA만의 특징에 대해 말해줄 수 있나? 다른 만화 학술지와는 어떻게 다른가?

렌트: 대부분의 글은 연구 위주의 글이다. 학위논문을 요약한 글이 실리기도 하고, IJOCA게재만을 위한 원고가 책으로 발전되기도 한다. 다른 학술지와 차이가 있다면 첫째, 원고 분량에 제한이 없다는 것이다. 글이 좋다면 분량에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IJOCA 평균 분량이 680~700페이지 정도인데, 가장 긴 호는 816페이지에 달한다. 다른 만화 학술지의 경우 5~30 정도의 사진이나 그림을 싣는데, 우리의 경우 250~350페이지 가량의 삽화를 포함한다. 또 다른 차이점은 다양한 장르의 글을 게재한다는 점이다. IJOCA가 학술지이긴 하지만 인터뷰와 비평도 저널에 포함된다. 비평 역시 연구가 필요하긴 하지만 학술 연구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비평은 개별 만화나 한 장르, 혹은 특정 만화가의 일련의 작품들에 대한 강점과 취약점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비평뿐만 아니라 만화 관련 서적에 대한 리뷰나 전시회 리뷰 역시 저널에 실린다. 학술 연구의 경우도 그 종류가 다양한데, 텍스트 분석, 양적 연구, 역사적 연구, 인터뷰 등의 방법론을 이용한 연구가 많다. 얼마나 많은 국가가 다루어졌는지는 세어보지 않았지만 저널에 되도록 많은 나라의 원고를 실으려 한다. 가령, 키프러스 공화국, 작은 섬 국가들,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 호주, 뉴질랜드, 아시아와 유럽, 북미, 남미의 많은 나라들이 다루어졌다. IJOCA의 기본 개념은 저널 자체를 하나의 대백과사전으로 만드는 것이다. 누군가 IJOCA 33개 이슈 모두를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세계 여러 지역의 만화문화, 다양한 만화장르, 만화연구의 다양한 접근법, 만화작가의 다양한 전기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특이한 점은 최근에 생을 마감한 주요 만화가들과 떠오르는 신예 만화가들을 소개한다는 것이다. 이는 만화계의 주요 인물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들에게 존경을 표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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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JOCA가 다른 학술지와 차별되는 점은 피어리뷰 (peer review) 시스템에 종속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피어리뷰 시스템이 어떤 이들에겐 굉장히 중요한 문제임을 알고 있다. IJOCA는 이를 따르지 않는데, 이유 중 하나는 시의적절하게 원고들을 받고 출판하기 위해서이다. 보통 학술지에 글을 내면 2~3년을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다. 나의 경우, 원고를 내고 7년을 기다렸으나 출판되지 않은 적도 있다. 피어리뷰 시스템을 따르진 않지만 각 원고는 일련의 수정•편집 과정을 거친 후에 출판된다. 개별 원고는 저자의 의도를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나 자신이 2~3회 편집을 한다. 또 다른 중요 이유는 IJOCA를 통해 피어리뷰 시스템에 도전하기 위해서이다. 현재 피어리뷰 시스템은 출판사와 학술지를 소유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에 종속되어 있다. 대형 기업들이 대부분의 학술지를 소유하고 있는데, SCOPUS라는 리뷰 시스템이 그 예이다. (Elsevier 출판사에서 2004년에 출판한 과학ㆍ기술ㆍ의학ㆍ사회과학 분야를 포함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초록ㆍ인용 데이터베이스이다. 포괄적인 검색, 최신 학술문헌 정보에 접근, 인용 분석을 제공해드리며, 연구자와 기관의 연구 활동 평가 등 오늘날의 연구 환경에서 요구되는 기능을 한꺼번에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소유구조를 고려한다면, 피어리뷰 시스템의 신빙성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정: IJOCA가 피어리뷰 시스템을 따르지 않는다면, 제출된 원고를 어떠한 기준으로 판단하는가?

렌트: 많은 기준이 있다. 글이 기존 문헌에 의미있는 추가물을 제공하는가, 체계적인 방법을 통해 쓰여졌는가, 인용이 제대로 이루어졌는가, 편집은 잘 되었는가 등을 본다. 또한 나는 그것이 국가이든 장르이든 우리가 모르는 부분을 조명하는 글들을 싣고자 한다. 피어리뷰에 대해 다시 말하자면, 피어리뷰 저널이 아니라는 점이 저자들 입장에선 단점이 될 수도 있다. 가령, 내가 가르쳤던 말레이시아의 한 대학은 SCOPUS 시스템을 따르고 있었는데, 이 시스템이 만화나 대중문화 관련 학술지들을 포함시키지 않았기에 심지어 <Journal of Popular Culture>조차 도서관에 등록되지 못하였다. (중략) 예외적인 경우도 있었는데, 호주에서 IJOCA에의 논문 게재는 교수 임용이나 진급에 고려대상이 되지 못했었다. 하지만 IJOCA에 정기적으로 글을 발표 해 온 한 연구자가 대학을 대상으로 이의를 제기하였고, 현재는 피어리뷰 저널과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

정: 만화 학술지가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어떠한 사회적 의미가 있나?

렌트: 어떠한 분야든 고유의 학술서와 학술지, 그리고 학술학회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들이 그 분야의 정당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15~2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이제는 다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만화 학술지와 관련 도서들이 출간되고 있다. 그리고 연구자들이 다양한 학회에서 교류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학술지는 연구자들이 자신의 생각을 알릴 수 있는 통로가 되어주며, 그러한 통로의 다변화는 연구와 연구자의 확장을 가져오고, 이러한 과정들이 만화에 정당성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정: 말한 것처럼 학술지와 학술 학회의 성장을 통해 만화를 진지한 연구의 대상으로 보고자 하는 연구자가 많아졌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만화학은 하나의 개별 학문으로 자리잡았다고 생각하나?

렌트: 독립된 분과학문으로서 만화학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만화학이 독립된 학문으로 발전될 수 있다면 좋은 일이긴 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영문학에서, 매스커뮤니케이션에서, 다른 학문에서 만화연구가 성장할 수 있다 생각한다. 나는 현재의 방식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다양한 학문에서 많은 것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IJOCA도 마찬가지인데, 문학, 철학, 매스커뮤니케이션, 역사학 등의 배경을 가진 저자들이 각각의 이론과 문화, 방법론들을 끌어와 만화에 대한 논의를 더욱 풍성하게 하고 있다.

정: 하지만 만화학 고유의 이론과 방법론을 확립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렌트: 대부분의 학문은 다른 학문에서 이론과 방법들을 차용해 왔다. 가령, 매스커뮤니케이션학은 고유의 이론이라는 것이 많지 않다. 매스커뮤니케이션 이론은 사회과학, 정치과학, 사회학, 역사학에 빚을 지고 있다. 라자스펠드 (Lazarsfeld)나 쉐넌 (Shannon) 역시 매스커뮤니케이션학이 아닌 사회과학과 인문학에서 나왔다. (중략) 누군가 학술지나 책을 출간하고자 한다면, 그리고 만화가 어떻게 작동하고 만화 뒤에 숨겨진 의미가 무엇인지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그는 다양한 학문적 관점을 필요로 할 것이다. 내 생각에 우리는 현재 이러한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생각한다. IJOCA의 경우 심지어 종교학이나 의학적 관점에서 쓰여진 글을 싣기도 하였다.

 

“비평이란 개별 만화나 한 장르,

혹은 특정 만화가의 일련의 작품들에 대한

강점과 취약점을 보여주는 것”

 

정: 다양한 관점을 통해 만화에 대한 논의를 풍성하게 하고 개선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인가?

렌트: 그렇다. IJOCA에는 캐나다 대학의 의학박사가 쓴 글이 있는데, 만화를 통해 고환암에 대한 메시지를 어떻게 알리는지에 대한 글이었다. 순수과학에서 쓰여진 글도 있었는데, 나는 이러한 다양성이 매우 중요하다 생각한다.

정: 학술학회 활동과 학회에서 다루어져왔던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 들어 보고 싶다.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Media and Communication Research (IAMCR)의 만화분과 (Comic Working Group) 의장직을 맡고 있는 걸로 안다.

렌트: 1994년 만화분과를 설립하고 31년이 지났다. 올해, 30개가 넘는 논문이 제출되었고 7개의 패널이 구성될 예정이다. IAMCR에 만화와 관련된 분과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주변의 도움 없이 스스로 만화분과를 만든 것이다. 1990년대, Popular Culture Association (PCA) 정기학회에서는 미국과 캐나다 이외의 지역에서 온 발표자들은 채 10명이 되지 않았다. 과장이 아니다. 아시아를, 아시아의 대중문화를 대표할 단체가 필요하다 생각했고 1995~6년에 Asia Popular Culture 분과를 만들었다. 현재 매년 다수의 패널세션이 열리고 있고, 아시아, 아프리카, 카리브해, 호주 등지에서 오는 수백명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정: PCA의 만화분과와는 관련이 있나?

렌트: 물론이다. PCA의 만화분과는 다른 동료들에 의해 설립되었지만, 90년대에 나 역시 활발히 활동하였다. PCA의 만화분과에 내 이름을 딴 상이 있고, International Comic Art Forum (ICAF)에도 존 렌트 장학금과 상이 있으며, Association for Asian Studies (AAS)의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 연구 분과 (Malaysia-Singapore-Brunei Studies Group)를 1976년 설립했는데 거기에도 존렌트 상이 있다.

 

 

정: 지난 30년 가까이 다양한 만화학회에 참여해왔기에 어떠한 주제들이 다루어졌는지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주로 논의된 주제들은 어떠한 것이 있나?

렌트: 미국 수퍼히어로물의 모든 측면이 다루어지곤 했다. 물론 미국 만화의 다른 장르들도 논의되었지만 주된 대상은 수퍼히어로물이었다. 현재는 다른 지역의 만화와 카툰에 대한 페이퍼들이 발표되고 있고, 매해 캐나다나 유럽, 아프리카 만화에 대한 연구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아시아 만화에 대한 연구들은 PCA의 만화분과에서는 자주 보이지 않는데, 이는 대부분의 아시아 만화연구들이 내가 의장직을 맡고 있는 아시아 대중문화 분과에서 발표되기 때문이다.

정: 어떠한 주제나 이슈들이 논의되지 않았나?

렌트: 좋은 질문이다. 만화책이나 그래픽노블에 대한 연구는 많았다. 하지만 정치 풍자만화는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았다 생각한다. IJOCA에 정치 풍자만화에 대한 연구를 많이 실으려 노력했고, 최근 호에 적지만 몇몇 연구들이 게재될 예정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광고만화나 신문 연재 만화에 대한 연구는 굉장히 부족하다. 미국을 비롯해서 다른 나라의 신문 연재 만화는 연구할 것이 아주 많은데도 많이 논의되지 않았다. 비록 IJOCA에서 일본, 호주, 한국, 유럽의 신문 연재 만화에 대해 다룬 적이 있지만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캐리커쳐에 대한 연구, 캐릭터나 카툰을 그리는 사람들에 대한 연구, 무명 만화연구, 만화의 여러 사용법에 대한 연구 역시 부족하다. (중략)

정: 만화를 넓은 범위로 정의하고 있다 생각된다.

렌트: 그렇다. 나는 모든 장르가 포함된다 생각하고, IJOCA는 다양한 장르에 대한 글들을 환영하고 있다.

정: 연구되어 왔거나 보다 연구가 필요한 만화의 장르와 유형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만화의 어떤 측면이 더 연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가령, 어떤 연구자는 산업에, 다른 이는 생산, 수용, 역사 등에 초점을 맞춘다.

렌트: 말한 모든 측면들이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만화 콘텐츠에 대한 연구는 굉장히 많다고 생각한다. 만화 미학에 대한 연구 역시 적지 않다. 하지만 만화의 정치경제학적 연구는 많지 않다. 우리는 만화책 혹은 만화잡지의 소유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미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거대 기업이 소유하고 있는데, 누가 소유주이며 그러한 소유권 (ownership)이 내포하고 있는 시사점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소유권이 지니는 영향력, 그로 인해 어떤 주제가 금기시 되는지 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정: 만화 연구의 활성화를 위해선 만화에 대한 엄격한 정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각 나라에서 만화와 만화장르에 대한 정의가 조금씩 다르게 사용되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공통적으로 사용될 만화에 대한 엄격한 정의가 필요하다 생각하나?

렌트: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다양한 나라에서 특정 용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만화 용어에 대한 연구 혹은 용어 사전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의 연재 만화(Comic Strip)는 유럽의 연재 만화와 다르다. 유럽에서 연재 만화는 미국의 만화책을 지칭하는 반면, 미국에서 연재 만화는 3~4 칸으로 이루어진 신문 연재 만화를 일컫는다. 만화를 둘러싼 용어들이 각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공통된 정의를 만들기란 매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세계 만화 용어에 대한 연구는 중국, 한국, 유럽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만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본다. (중략)

 

“만화비평은 문학비평처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비평이 단순히 어떤 장르와 작가, 작품이 좋다 안 좋다는

개인적인 가치판단이 아니라 정직하게 이루어진다면

만화발전에 아주 중요하다 생각한다.”

정: 앞서 만화비평과 만화연구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했다. 만화비평이 만화연구와는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나?

렌트: 내 생각에 만화비평은 <The Comics Journal>에 게재되는 유형의 글이라 생각한다. <The Comics Journal>의 경우 300회 이상 출간되었는데 현재는 온라인 상에서만 볼 수 있다. 게리 그로스 (Gary Groth)가 훌륭한 만화비평을 해왔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개별 만화의 좋은 점들과 부정적 특징들을 잘 설명해왔다. 그의 <The Comics journal>은 학술지라기보다는 정기 간행물이라고 생각한다. 만화비평은 신문에서도, 온라인에서도, 만화 리뷰 이상의 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만화비평이 만화의 강점과 약점을 비판적으로 보는 것이라면 만화연구는 주제를 정하고, 연구질문 혹은 가설에 대해 대답한다는 점에서 비평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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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만화비평에 있어 체계적인 방법론이 필요하다 생각하나?

렌트: 많은 사람들이 만화비평을 하고 있는데, 내가 비평을 정의하는 방식에 따르면 비평은 체계적인 방법론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어떤 만화비평은 아마도 체계적인 접근에 의해 이루어지겠지만, 어떤 비평은 저널리스트에 의해 혹은 만화를 굉장히 많이 읽은 사람에 의해서도 쓰여질 수 있다. (정: 해석일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 해석이다. 하지만 만화비평은 문학비평처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비평이 단순히 어떤 장르와 작가, 작품이 좋다 안 좋다는 개인적인 가치판단이 아니라 정직하게 이루어진다면 만화발전에 아주 중요하다 생각한다. (중략)

정: 다양한 나라의 만화가들과 교류해왔고 다양한 나라에서 개최되는 학회에 참여해왔기에, 세계 각국의 만화연구 실정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어떠한 특징들이 있었나?

렌트: 쿠바의 경우 만화연구가 활성화되지 못했다. 중국에서는 다양한 만화학회 등을 통해 만화연구가 발전해왔긴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들은 중국 만화에 대한 연구가 아니다. 이는 인도나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인도의 연구자로부터 한 원고를 받았는데, 그의 연구는 배트맨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연구자들이 자국의 만화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생각한다. 그들은 자국 만화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지 않은가? 여러 나라에서 자국 만화에 대한 연구가 조금씩 성장하고 있으나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것 같다. 유럽의 경우는 만화연구의 역사가 미국보다 길다. 최소한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스페인에서는 60~70년대부터 이미 만화를 기호학적 관점으로 연구하였고, 만화연구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왔다. 영국과 독일도 마찬가지로 강한 만화연구 전통을 가지고 있다.

정: 마지막으로 한국 만화연구 발전을 위한 제안이 있다면 이야기해달라.

렌트: 한국의 경우 만화연구에 있어 좋은 출발을 했다고 생각한다. 학술지가 있으며, 만화에 대한 책들이 출판되어 왔고, 대학에서 만화 관련 수업이 생겨난 것으로 알고 있다.

정: 실기 수업에 치중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렌트: 그럴 수 있다. 대부분의 나라도 마찬가지다. 한국에는 만화학회도 있는 것으로 안다. 학술학회와 학술지를 연구자들 간의 교류의 장으로 사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를 통해 만화에 대한 선집 (anthology)들을 출간하면 좋을 것이다. 또한, 만화 학술학회뿐만 아니라 다른 학술학회, 가령 한국 역사학회, 커뮤니케이션 학회 등에 만화분과를 만드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애니메이션연구도 중요하지만 종이 만화의 풍부한 역사에 대한 지속적 연구가 필요하다. 종이 만화의 보존 역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부천 만화박물관이나 서울 애니메이션센터가 그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학술학회, 학술지, 연구자들 간의 교류, 역사적 자료의 구축, 이 모든 것들이 중요한 요소이다.

더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미국 만화연구만이 아니라 아시아 대중문화연구의 선구자로 여겨지는 존 렌트 박사와의 인터뷰로 1시간 남짓한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하지만 인터뷰 시간이 한 시간을 넘어서자 그의 몸은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마지막 질문에 짧은 답을 주고 그는 혈당을 체크했다. 그의 예상대로 혈당 수치가 크게 떨어져 있었다. 주스 한 잔을 급하게 마시고 렌트 박사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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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듯, 존 렌트 박사와의 인터뷰가 독자들에게 미국 만화연구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하고 만화연구의 의의를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길 바란다. 동시에, 지식의 틈을 메꾸기 위해 편견과 기존 질서에 도전해온 그와의 인터뷰가 많은 연구자들에게 자극이 되길 바란다. 영어로 진행된 인터뷰였기에 필자의 의역이 많고 반복된 표현이나 논의에서 벗어난 부분들은 생략하기도 하였다. 의미를 희석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읽기 쉽게 인터뷰 내용을 재구성하려 한 필자의 노력이 렌트 박사의 생각을 왜곡시키지 않았길 바라는 바이다.
존 렌트 박사가 만화연구의 대표적 인물로 여겨지긴 하지만, 그의 생각과 견해가 미국 만화연구의 모든 층위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만화의 학제성 구축이나 만화 정의의 필요성, 만화비평의 정의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을 수 있다. 또한, 미국의 만화연구를 한국에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의미도 없을 뿐더러 불가능하다. 그러나 학술학회와 학술지의 설립, 연구자들 간의 교류 활성화, 역사적 자료 구축, 만화 연구의 다변화 등을 위한 그의 노력은 한국의 만화 연구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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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V (Curriculum Vitae): 이력서의 약자

[2] SCOPUS는 Elsevier에서 2004sus에 출판한 과학ㆍ기술ㆍ의학ㆍ사회과학 분야를 포함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초록ㆍ인용 데이터베이스이다. 포괄적인 검색, 최신 학술문헌 정보에 접근, 인용 분석을 제공해드리며, 연구자와 기관의 연구 활동 평가 등 오늘날의 연구 환경에서 요구되는 기능을 한꺼번에 제공하고 있다.

정재현

미국 템플대학교에서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 중이다. 초등학교 때 급식으로 나온 우유를 맞바꿔 만화를 본 탓에 ‘키’를 잃었으나,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시작한 만화사랑은 여전하다. 죄책감없이 만화를 읽기 위해 만화를 주제로 석사논문을 썼으며 여러 학술 학회에 참여해왔다. 세계화, 정체성, 집단기억, 구별짓기, 지식담론 등과 같은 주제들을 조명하는데 만화가 훌륭한 창구가 되어준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현재 음식과 미디어 담론, 국가 정체성 형성에 대한 박사논문을 마치기 위해 지하 연구실에서 고군분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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