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로 풀어보는 짝사랑, 강풀의 <당신의 모든 순간>

by -
0 755

 

어쩌면 이렇게 읽기 힘들 수 있을까
이 작품은 다음 ‘만화속세상’에서 2010년 9월 6일부터 2011년 1월 3일까지 연재한 작품이다. 2011년 4월 27일에 1쇄를 찍었고, 필자가 보고 있는 출판본은 2014년 10월에 초판 그대로 13쇄를 찍은 버전이다. 이 작품을 비평해야한다고 했을 때 첫 번째 고민은 웹버전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출판된 버전으로 볼 것이냐였다. 두 가지가 다르냐고 묻지 마시라. 당연히, 아주 많이 다르다. 지지대(support)의 변화는 내용물의 변화를 필히 야기한다. 물론 출판 버전으로 본다고 결정한 순간, 이미 웹 버전보다 낮은 평가를 할 수 밖에 없다. 이를 뻔히 알면서도 출판 버전을 선택한 이유는, 출판 버전으로 본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순정만화> 출판 버전보다는 분명 달라졌을 거라는 기대를 했기 때문이다. 처음 <순정만화> 출판 버전을 보았을 때의 충격은 상당히 강렬하게 남아있다. 1권 조금만 보다가 포기했는데, 우선은 그림체와 채색의 허약함이었고, 그 다음은 출판만화의 일반적 규칙을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칸들의 세로 배치라는 규칙은 양면 페이지를 펼쳐들고 보는 즐거움을 제공하기는커녕, 출판만화의 독서규칙에서 상당부분 어긋나 있었다.

여하간 이번엔 좀 다르겠지 하며 책을 구입했지만, 처음부터 몰입에 어려움을 겪었다. 독자들도 다시 본다면 여러모로 놀랄 것이다. 강풀의 최근 작품들에 익숙해져 있기에 이 정도로 못 그렸었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 것이다. 오래 노력하면 확실히 그림체가 나아진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당히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물론 이는 출판 버전으로 보기 때문에 더 차이가 잘 드러나는 것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웹툰 작품을 출판만화화 하는 것은 상당히 전체 칸의 재편집이라는 많은 성의와 배려가 필요하지만, 그래픽적 표현력이 떨어지는 이 시기 강풀 작품들의 출판만화화는 탁월한 선택은 아니다. <순정만화> 출판 버전보다 훨씬 더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출판만화적인 특성을 잘 살렸다고 말하긴 어렵다.

 

001

단어와 문장이 상황과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것처럼, 선과 형태, 채색 역시 문자언어보다 부정확하긴 하지만 때로는 더 강렬하게 그러한 기능을 한다. 정욱은 자신이 사랑하는 주선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괴로워한다. 그러다 결국 주선과 원헌이 함께 있을 수 있게끔 둘 사이의 장애물을 치워준다. 주인공이 괴로워하고 실망하는 순간, 또는 좀비가 되고 나서도 같이 있고 싶어하는 연인들의 모습들을 표현하기에 작가의 시각적 표현능력은 상당히 부족하다. 여러 중요한 장면에서도 시각적으로 잘 표현되지 않아 안타까운 부분들이 많다.

 

002-1002-2

 

이 작품을 보면서 요즘 재미있게 보고 있는 <복면가왕>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복면가왕>은 시청자들이 감안하는 여러 다른 요소들은 다 생각하지 말고, 그냥 가수의 가창력만 봐달라는 (무언의) 요구이다. 강풀의 이 작품은 다른 모든 것을 제외하고 오로지 스토리만 읽어낼 것을 요구한다. 가수에게 가창력이 중요한 요소인 만큼, 만화가에게 스토리 창작능력도 중요하다. 특히 스토리 전달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부분의 만화에서는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핵심적인 기량이다. 하지만, 만약 이 작품이 오늘날의 <무빙> 만큼의 시각적, 연출적 완성도를 보여준다면, 또는 <무빙>을 뛰어넘을 만큼의 이런 능력을 보여준다면, 독자들의 감동이 훨씬 더 강력했을 것이라는 점은 명확히 해 둘 필요가 있다.독자들은 1권의 반 정도를 지날 무렵이면 결정해야만 하다. 이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따라가기 위해 다른 모든 불편한 요소들을 눈감아버릴 것인지, 아니면 불편함에 항복하고 책을 덮을 시기인지를. 우리들 대부분은 전자를 선택한다. 우리는 스토리의 노예. 끝을 알고 싶어 어쩔 줄 모르는 우리는 결국 페이지를 계속 넘기게 된다.

 

당신의, 당신들의, 당신들만의 모든 순간
이 작품은 강풀 작품 중 ‘순정만화 시즌 4’이다. <순정만화>, <바보>, <그대를 사랑합니다> 3부작이 이 작품의 전작들이다. 이들 모두는 남녀 사이의 순수하기 그지없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준다. 고아인 남성 직장인과 재혼한 부모에게 반항하는 욕쟁이 여고생, 사랑에 실패한 흡연 여인과 남고생(순정만화), 절망해서 유학에서 돌아온 피아니스트와 그녀를 계속 기다린 바보, 술집 웨이트리스와 불량배(바보), 홀로된 우유배달 할아버지와 일자무식에 종이 줍기로 연명하는 할머니, 치매에 걸린 부인과 그를 돌보는 주차장 할아버지(그대를 사랑합니다) 사이의 사랑을 보여줬다.

이번은 좀 다르다. 짝사랑이다. 주선을 ‘내 목숨’이라 부르며 사랑하는 원헌은 1권에 등장한 후 4권이 되어야 좀비가 되어 다시 나타난다.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은 정욱이며, 사실상 대부분의 서술은 정욱에 의해 이루어진다. 정욱의 주선에 대한 짝사랑이 이번 작품의 메인이며 주선과 원헌의 사랑은 오히려 배경으로 물러난다. 이 작품의 제목인 <당신의 모든 순간>은, 주선의 모든 순간이 자신에게 있었으면 하는 정욱의 바람이다. 주변이 모두 좀비가 된 후, 현재로선 멀쩡한 인간은 둘 밖에 없으니 서로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래서 좀비가 된 원헌이 철조망에 막혀 그녀에게 돌아올 수 없는 것을 보고도 그냥 지나쳤었다. 정욱의 희망은 주선이 좀비가 된 후 자신을 보지 않고, 원헌과 함께 앉아있던 벤치만 바라본다는 사실에 낱낱이 흩어진다. 이제 그는 원헌에게 달려가 철조망을 끊어둔다. 원헌이 결국 주선에게로 돌아와 둘이 항상 앉아있던 벤치에 계속 앉아있는 것을 보고, 정욱은 “당신들의, 당신들만의 모든 순간이 바로 거기에 있다.”라고 인정한다.

 

003004-1004-2

 

자신도 서서히 좀비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된 정욱이 마지막으로 한 일이라곤 대대적인 좀비 소탕작전이 일어나기 전, 이 둘을 위한 보금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 앞에서 총에 맞고 죽어가는 정욱의 마지막 시선을 노랑나비가 이끌어간다. 주선이 좀비가 되기 전 벚꽃나무 아래서 물었던 “정욱씨는…어떤 기억이 가장 행복하죠?”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정욱은 죽으면서야 남긴다. 날아오르는 노란나비에 정욱의 시선이 따라간다. 나비가 다다르는 곳은 옥상의, 그녀의, 그가 빨아 널어둔 그녀의 노란색 옷이다. 이는 정욱이 가진 “당신과 함께 했던 옥상에서의 그 하루.”라는 가장 행복한 기억의 대체물이다. 그래서 자신은 이제 영원히 행복할 것이라고 이제야 고백한다. 아마도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연출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이어지는 페이지들이다. 뭐가 좋다고 웃고 있냐는, 그의 죽음 이후 찾아온 친구의 말에 아무데도 가지 않고, 항상 그녀 곁에 있을 것이라는 그의 대답이 반복된다. 너무나 비현실적이라고 판단하지만 이미 눈물이 흐르고 있다. 이것이 이 만화의 힘이다. 짝사랑의 최고봉을 찍으며 모든 짝사랑 경험자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005-1005-2

 

 

그런데, 왜 좀비이어야 했을까
짝사랑을 표현하는데, 세상에 단둘이 남기 위해 꼭 좀비의 세상을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 있어서 좀비라는 장치는 필요불가결한 것처럼 보인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어느 날 사람들이 좀비가 되고, 이 좀비들이 주변 사람들을 물어나가면서 좀비들이 훨씬 더 많아진다. 좀비. 살아있는 시체. 하지만 강풀의 좀비는 좀 다르다. 사람들을 문다는 것은 동일하지만 먹지는 않는다. 버티다가 쓰러지면, 그때는 섭취한다. 몸이 더 썩을까봐 비를 두려워하며, 빛을 좋아한다. 그래선지 주거지 근처로 모여들며, 빛이 사라지고 깜깜해지면 울어댄다.

 

007-1007-2

 

정욱은 주선을 도와주기 위해 몇 번이나 비가 오는 날이나 달빛 하나 없이 깜깜한 밤을 택해 그녀의 집까지 넘나든다. 주선의 부모가 좀비가 되면서 그녀에게 백신을 남겨두고 떠난 후,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자신이 관찰했던 좀비에 대해 ‘그것들은’ 이라며 설명한다. 자신의 부모가 좀비가 되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그녀는, 정욱이 그것들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반발한다. 그녀의 말 때문이었을까, 평상시처럼 좀비들이 울어대는데, 그 속에서 무언가 다른 기척을 느끼고, 손전등을 들고 현관 밖으로 나간다. 잘못 들었다고 돌아서려는 순간, 무언가 반짝이는 그것. 우리에게 익숙한 청소원들의 야광 복장이다. 정욱의 형. 이를 위해 정욱의 형의 직업은 청소원이어야만 했다. 여하간 야광복을 입고 있는 직종 중의 하나이어야만 했던 것이다.

 

006-1
006-2

 

좀비가 된 형을 발견하는 순간, 그가 좀비에 대해 내뱉었던 모든 언어들이 자신에게 다시 돌아왔다. 자신의 형이 느려져서 아무리 노력해도 계단도 오르지 못하고, 자신을 찾기 위해 빛이 있는 쪽으로, 아파트로, 건물 안으로 오려고 했다는 것.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왔던 형에 대해 좀비가 되었으므로, 어차피 인간도 아니고 아무 생각도 감정도 없다고 떠들어댔던 것이다. 좀비가 된 형이 빛이 아니라 자신만을 바라본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자신의 품에서야 안식을 취하듯이 숨을 거둔 형을 보며, 이제 좀비들이 몰려드는 이유를 알아차린다. 좀비들은 마지막 기억으로 사는 존재이며, ‘마지막 기억이 모든 순간’, ‘마지막 기억만을 간직한 채 사는…사람’이며, 마침내 ‘저들도 우리들도 이 어려운 세상에서 참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3권 151-152)이라고 정리한다.

이제 좀비는 ‘인간이 아닌 것’이 아니라 인간들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로 다가온다. 이미 죽었지만 소중한 마지막 기억, 더 정확히는 ‘자신에게 목숨처럼 소중하다고 선택한 마지막 기억’을 향해, 비를 피해, 어두우면 보이지도 않으면서, 사랑하는 이들 곁으로 비틀거리며 다가가려고 한다. 이제 다른 그 어떤 것들도 중요하지 않다. 이미 살아있는 시체이기에. 오로지 하나만을 생각하고 실천에 옮기는 존재들이다. 이제 좀비를 제거하려는 인간들이, 좀비화가 되어가는 남편을 사살해 결국 부인마저 시체를 껴안고 죽게 만드는 군인들이, 조준사격하여 정확하게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시스템이, 더 비인간적으로 보인다.

결국 좀비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단 하나‘만을, 그 외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선택하게끔 만들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장치인 것이다. 한 사람만을 향해 끊임없이 다가가는 이 장치는 사실상 현실적으로 동감하기 힘들다. 보통의 인간들 모두가 그러하듯이, 우리는 다양한 사회적 시스템에, 책임감에, 여러 가지 관계에 엮여 살아간다. 그중에서 단 하나만을 선택해야만 한다는 극적인 상황은, 그런 상황이 충분히 설명 가능한, 그럴만하다는 인지를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좀비는 스토리의 배경으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의 가장 핵심적인 동력과 상관적이다. 세상이 좀비화되지 않았다면, 정욱의 짝사랑은 변태나 자기 집착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원헌이 주선에게 고백하기 위해 제야의 종소리 현장에 나갔다가 좀비가 되지 않았다면, 주선의 부모님이 좀비가 되지 않았다면, 정욱은 주선에게 다가갈 기회를 갖지 못 했을 것이다. 정욱이 자신도 좀비가 되어간다는 것을 알지 못했더라면 주선 옆에 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좀비가 되어 좀비 소탕작전에서 사살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원헌과 주선이 앉아있는 벤치에 높고 두꺼운 콘크리트 벽을 계속 쌓아나갔던 것이다. 사살당한 후에도 자신은 결코 들어갈 수 없는 콘크리트 벽 밖에서라도, 주선의 곁에 머물기 위해서 말이다. 좀비들의 시체는 치우지 않으니 말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분명 좀비 만화이다. 약간 다른 스타일의 좀비이긴 하지만, 좀비의 존재가 이 만화의 스토리 전개에 핵심적이기 때문이다.

 

너의 모든 기억이 행복한 꿈이 되기를. 꿈이 현실로 행복하기를
정욱의 짝사랑, 그의 사랑의 메시지는 노란색이다. 정욱은 배추도 먹지 못하면서 김치만 있으면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주선을 위해 배추를 심었다. 배추꽃을 잘라야 배추가 제대로 큰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주선이 좀비가 되어버린 후 배추꽃이 활짝 피도록 그냥 내버려두었다. 더 이상 김치를 먹을 수 없는 주선이 노란색 배추꽃이 예쁠 것 같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이 노란색 배추꽃으로부터 날아오른 노란색 나비는 정욱의 시선을 옥상에 널어둔 주선의 노란색 옷으로 이끌어준다. 이 옷은 정욱이 가장 행복했던 기억, 옥상에서의 주선과의 하루를 떠올리는 것이자 그가 주선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는 증표이기도 하다. 이 옷에서 떨어져 나온 노란색 단추는 정욱의 옷에 계속 달려있었으니까 말이다.

노란색은 2009년에서 2014년을 거치며 우리에게 특별한 색이 되었다.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이자 기다림의 색. 살아있는 시체, 좀비만도 못한 삶을 영위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란, 결국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너의 모든 기억이 행복한 꿈이 되기를. 꿈이 현실로 행복하기를.” 비록 이런 사랑과 기억과 기다림이 이 척박한 현실에선 존재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 작품은 우리에게 잠깐이나마 이런 유토피아-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를 맛보게 한다. 비록 눈을 뜨면 지금, 여기가 더 힘들게 느껴지더라도 말이다.

한상정

현재 상지대학교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크리틱 M의 편집위원들 중 유일하게 여성형태를 띄고 있다는 이유로 편집위원장이라는 무한 권력을 쟁취해냈다(그래서 매번 회의록 작성해야 한다나?). 일요일 일찍부터 일어나서 마당을 쓸고 닦고 나면 그제야 어머니의 허락 하에 아버지, 두 남동생과 함께 탐독하던 만화책들의 기억으로 만화사랑을 실천중이다. 이런저런 만화들을 골고루 보는 편이지만, 성별과 상관적으로 (이 대목에서 어떤 이들은 말도 안 된다며 구박한다) 꽤 오래 순정만화를 탐독하고 연구했다. 요즘은 장르 불문. 그러나 너무나 섬세해서 (거기, 얼굴 돌리지 마시고!!), 과다한 유사코드 반복 작품들은 3분도 견디지 못한다. 뭐라도 ‘새로운’것이면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오니, 모더니즘으로 회귀 중 일지도...

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