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만화란 무엇이고 왜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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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종말의 시나리오가 뉴스를 가득 채우고 있다. 대지진과 쓰나미는 동남아시아, 일본, 아이티를 연달아 궤멸시켰다. 멜트다운이라는 공상과학만화의 용어가 후쿠시마의 핵발전소 주변을 떠돌았고, 광범위한 대기와 바다가 방사능에 노출되었다. 메르스, 사스, 신종플루와 같은 치명적인 전염병들은 놀라운 변신으로 현대 의학의 방역 체계를 비웃고 있다. 모기지론 대란으로 촉발된 세계적 불황은 여러 정부로 하여금 모라토리엄 선언이라는 최후의 결정 앞에 서게 했다.

다행일까, 혹은 불행일까? 우리는 이러한 대재앙들을 목도하면서 어떤 기시감을 느끼고 있다. 소설, 드라마, 영화 등 수많은 이야기들이 이미 그와 같은 파국들을 예언해왔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만화만큼 각종의 재난에 대해 방대하고도 치밀한 상상력을 펼쳐온 것은 없다. 그러니 종말이 두렵다면 만화를 봐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 혹은 깨끗이 포기하기 위해서.

 

재난 만화란 무엇인가?
“오직 말썽만이 흥미롭다. 삶에서는 그렇지 않다.” 재닛 버러웨이는 <픽션 쓰는 법(Writing Fiction: A Guide to Narrative Craft)>에서 말한다. 그렇다. 인간은 말썽을 피하기 위해 애쓰지만, 그가 키우고 있는 이야기라는 괴물은 말썽을 먹고산다. “그리고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개뿔, 동화가 끝난 뒤의 말썽 없는 세계에는 누구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단테의 <신곡>에서 연옥과 지옥 편에서 독자들의 눈과 귀를 잡아당기던 흥미진진함은 천국에까지 기어올라가지 못한다. 아이작 아시모프도 <존재하지 않는 곳!(Nowhere!)>에서 말하지 않았나? “디스토피아는 본질적으로 유토피아보다 더 재미있다.” 방만하고 파렴치한 이야기꾼인 만화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이 녀석은 누구보다 말썽-친화적이었다. 인류를 절멸시킬 수도 있는 최악의 말썽 – 각종의 재난이라면 군침이 동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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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eronymus Bosch, <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 캔버스에 유화, 220 x 389 cm, 무세오 델 프라도, 마드리드 – 지옥 부분 

재난 만화란 무엇일까? 대화재, 지진과 쓰나미, 소행성 충돌, 빙하기의 재래, 핵 전쟁, 전염병과 같은 재난을 그린 만화일 것이다. 느슨하게 정의하자면 그렇다. 하지만 ‘재난 만화의 진정한 함의는 무엇인가’, ‘영화나 소설과 달리 만화는 재난을 어떻게 다루는가’를 따지려면 그 정의는 좀 더 섬세해야 한다. 그것은 사전보다는 지도를 만드는 작업에 가까워 보인다. 재난 만화의 거대한 세계를 토해낸 분화구가 어떤 것들인지를 파악하고, 주변부의 작은 지형들을 포착해야 한다.

재난 만화의 재난은 전면적이어야 한다. 사소한 재난은 입국 수속을 통과할 수 없다. 이야기에서 벌어지는 말썽은 개인들에게는 모두 재난이다. 불치병, 빚더미, 결승전을 앞둔 부상… 그러나 개인이나 가족 단위의 재난 정도로는 재난 만화에 낄 수 없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주인공이 벌레로 바뀌는 것은 개인으로는 치명적 재난이지만, 그 상황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타인들에게는 약간의 비정상일 뿐이다. 재난 만화가 되려면 보다 큰 도시, 국가, 가능하면 지구 전체를 재앙의 영향권 아래 넣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점이 재난 영화와는 다르다. 재난 영화는 1970년대 <포세이돈 어드벤처> <타워링> 등의 영화들이 인기를 모으면서 장르화된다. 여기에서는 선박, 비행기, 기차, 고층 빌딩 등과 같은 대형 시설물의 위기가 주요한 소재가 된다. 어떤 공간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공멸할 위기를 겪고, 공포 속에서 자신의 본성을 드러낸다. 영웅적인 주인공들은 기지와 희생정신으로 최악의 상황을 막아낸다. 이 정도면 충분히 재난 영화다. 그런데 만화는 다르다. 소다 마사히토의 <출동 119 구조대>가 대형화재를 소재로 한다고 해서 이를 재난 만화라고 할 수 있을까? 재난 만화의 영토를 아주 넓게 잡는다고 해도, 변두리에 들어설까 말까다. 경찰차나 소방차가 삐뽀삐뽀 하며 달려오는 것으로 상황을 마무리시킬 수 있다면 재난 만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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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의 경제적 파국을 그린 만평. Run on the Seamen’s Savings’ Bank during the Panic of 1857. <Harper’s Weekly>

 

재난 만화의 전형적인 구조는 작은 재난을 먼저 보여주고, 그 바깥에 있는 압도적인 초대형 재난을 보여준다. 박흥용의 <그의 나라>에서는 쌍판이라는 소년이 선박 사고로 무인도에 표류하게 되었는데, 섬을 탈출해 육지로 돌아왔더니 3차 대전으로 문명 세계가 붕괴해 있다. 모치즈키 미네타로의 <드래곤 헤드>에서는 고등학생들이 기차 사고로 터널에 갇힌다. 겨우 탈출해 보니, 일본 전역이 지진과 화산 폭발로 태양빛도 볼 수 없는 잿더미가 되어 있다. 만화에서는 이 정도의 전면적인 재난이 벌어져야만 재난 만화의 중심부에 들어설 수 있다. 영화에서는 <아마게돈> <딥 임팩트> 등 1990년대 후반 이후의 작품들이 이에 필적할 만한 재난의 규모를 보여준다.

재난은 전면적이면서, 또한 주인공이어야 한다. <슈퍼맨>을 비롯한 슈퍼 히어로 만화의 주인공들은 항상 재난의 위협을 받는다. 테러리스트가 댐을 폭발시켜 마을을 수몰시키려 한다든지, 사악한 최면술사가 미국 대통령을 조종해 소련에 핵무기를 쏘려고 한다든지. 영웅들은 거의 언제나 재난 발생 이전에, 재난이 전면적으로 진행되기 전에 문제를 제거한다. 그때의 재난은 가방 속에 있는 가짜 폭탄 같은 것이다. 독자를 협박하려는 소품일 뿐, 진짜 주인공이 아니다. 재난 만화의 주인공은 재난 그 자체여야 한다.

최근 재난 만화의 소재로 즐겨 등장하는 좀비 테마를 통해 중심과 주변의 그라디에이션을 알아보자. 이경석의 <좀비의 시간>에서 주인공의 좀비화는 개인적인 비극이다. 좀비의 전염성이 사회의 전면적인 붕괴를 가져오지 않는다. 경찰들이 도망자 좀비들을 쫓아가 사살하는 수준이다. 정치권은 자신의 비리에 쏟아지는 관심을 돌리기 위해 이들을 이용하기도 한다. 강풀의 <당신의 모든 순간>에서는 좀비화가 보다 전면적으로 벌어진 상태다. 무장한 군대가 좀비들을 사살하고, 소수의 생존자가 아파트에서 갇힌 채로 생활한다. 이 정도면 재난 만화의 영토 안에 들어서 있는 셈이지만, 그렇다고 치안 상황이 완전히 마비되는 등의 극한적인 재난 상태에 들어선 것은 아니다. <워킹데드>처럼 좀비의 번식으로 미국 전체가 무정부상태에 빠져 있는 상황이라면, 재난만화의 중심부에 들어선 것이다.

 

 

재난 만화는 어떻게 태어나고 자라왔는가?
재난 만화는 현대의 발명품이지만, 재난의 서사는 인류사의 면면을 함께 해온 초장기 스테디셀러다. <길가메시 서사시>와 <창세기>의 ‘노아의 방주’등에 나오는 대홍수의 이야기는 중국에서부터 지중해 세계까지 여러 고대 문명에서 발견된다. 묵시록의 상상력은 종교적 서사의 가장 중요한 재료이기도 하다. 인류는 지진, 전쟁, 화산, 전염병과 같은 자연재해를 주기적으로 경험해왔고, 여러 종교는 이를 신의 권능 혹은 악마의 위협으로 설명하곤 했다. 데즈카 오사무의 <붓다>에서 불교의 형성에 가뭄, 홍수, 메뚜기의 습격과 같은 자연 재해들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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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방주 Noah’s Ark (1846), Edward Hicks

개인적인 창작물로서 재난의 서사는 19세기 이후 소설을 통해 본격화되었다.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 이후에 쓴 <최후의 인간(The Last Man)>(1826년)은 페스트의 전염으로 인해 유럽인이 절멸하고 로마에 단 한명의 인간이 살아남은 상황을 그렸다. ‘세기말(Fin de Siècle)’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비관주의가 횡행한 19세기 말에는 전 유럽이 극악한 전쟁의 소용돌이 휘말린다는 전쟁 소설이 유행했다. H. G. 웰즈는 이를 과학적 상상력과 결합시켜 막강한 기술력으로 무장한 외계 행성의 생명체들이 지구를 침공해온다는 <우주 전쟁>(1898년), 미래의 지구가 끝나지 않는 전쟁의 굴레에 빠져 있다는 <아마게돈의 꿈>(1901년)을 발표했다. 오손 웰즈는 <우주 전쟁>을 라디오 드라마로 각색해 1938년 할로윈 특집으로 내보냈는데, 미국의 청취자들이 화성인의 침공을 사실로 받아들여 대혼란을 빚기도 했다.

만화는 20세기 초반 새로운 이야기 예술로 급성장한다. 그러나 초기에는 간략한 유머를 담은 카툰 형태였기 때문에 재난과 같은 강력한 서사를 담기는 어려웠다. <슈퍼맨>, <배트맨> 같은 슈퍼 히어로들을 등장시킨 시리즈 만화가 등장하면서 지진, 화산 폭발, 외계인 침공 등의 소재가 채택되기는 한다. 허나 대부분의 경우 임박한 재앙의 직전에 초능력 영웅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정도로 처리된다. 대도시가 파괴되는 장면을 보여주더라도 간략한 스냅 정도이지 그것이 작품 전체를 움직일 서사를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04AtomicWar0101, 특히 2차 대전의 종결을 가져온 핵폭탄의 투하는 종말에 대한 상상력에 큰 지각 변동을 만들어냈다. 이제 미국과 소련, 혹은 미친 천재 과학자가 버튼 하나만 잘못 눌러도 지구 전체가 재앙의 불더미 속에 떨어질 수도 있게 된 것이다. 미소의 군비경쟁 속에서 핵을 통해 촉발되는 세계 전쟁과 묵시록적 재난의 상상력이 소설과 영화 등에서 번성했다. 다만 만화는 장편의 스토리 만화로 미디어의 포맷을 전환시켜야 하는 유예 과정이 필요했다.

본격적인 재난 만화는 일본의 발명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배경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일본 열도는 환태평양 지진대라는 불의 고리에 딱 걸쳐져 있다. 관동 대지진을 비롯해서 여러 차례의 대지진과 해일을 경험해왔고, 그때마다 인간들이 펼쳐내는 지옥도의 풍경을 목도해야만 했다. 태평양 전쟁에서 한 쪽 팔을 잃은 미즈키 시게루 등 참전 경험을 가진 만화가들도 많고, 히로시마와 나가시마의 핵폭격을 직접 경험한 나라이기도 하다. 기후 변화로 인한 해수면의 상승으로 섬나라 자체가 물 밑으로 사라질 것이라는 공포도 느끼고 있다. 최악의 상상력을 담은 재난 만화가 일본을 본거지로 해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할 지경이다.

196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일본 만화의 여러 장르에서 어두운 종말의 색채가 강해졌다. 극화를 대중화시킨 시라토 산페이의 <가무이전>(1964)은 전쟁이 일상화된 과거 일본을 배경으로 지옥도를 펼쳐냈다. 나가이 고의 <데빌맨>(1972) 역시 악마가 지구를 집어삼키기 위한 전면 전쟁이 뛰어든다는 설정으로, 가공할 폭력과 반도덕이 만화책 너머로 흘러넘치게 했다. 장르로는 시대극과 오컬트라고 할 수 있지만, 묵시록적 재난 만화와 거의 유사한 정서를 바탕에 두고 있었다. 가파른 고도성장 속에 낙오된 청년층의 불안감, 성인을 주제로 강렬한 상상력을 표출해야 한다는 만화가들의 경쟁이 한몫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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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재난 만화의 첫 번째 봉우리라고 할 수 있는 우메즈 가즈오의 <표류 교실>(1972)이 태어난다. 소화 소학교라는 학교 전체가 지진으로 여겨지는 강력한 진동 직후 통째로 황폐한 미래로 타임워프한다. 방사능으로 오염된 미래 세계에서 인간은 멸종된 것 같고 옛 지하철 역사에는 돌연변이 괴물들이 돌아다닌다. 학교는 완전히 황폐화된 대지 위에 섬처럼 고립되어 있다. 교사들은 패닉에 빠진 학생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이기적 욕망 속에 자멸한다. 겨우 살아남은 학생들은 서로 다른 패거리로 나뉘어 생존의 다툼을 벌인다. <십오소년 표류기>와 같은 소년 모험물을 새로운 차원의 비정한 세계로 끌고 들어간 작품으로, 이어 태어나는 일본 재난 만화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즈음 코마쓰 사쿄의 소설 <일본 침몰>(1973)이 큰 화제를 불러 모았는데, 일본 열도가 해수면 아래로 침몰한다는 경이로운 상상력으로 큰 인기를 모았다. 이 소설의 만화판을 그린 사이토 다카오는 <생존게임>(1976)을 통해 지진과 화산폭발로 완전히 붕괴된 일본에서 살아남은 소년의 모험담을 그렸다. 이 작품은 가장 현실적인 생존물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1970년대 이후 만화가 성인을 위한 콘텐츠로 자리 잡으면서 전쟁 체험을 바탕으로 한 무거운 만화들도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이들은 어느 정도 재난 만화의 성격을 띠게 된다. 나카자와 케이지의 <맨발의 겐>(1973)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체험을 기반으로 해서 핵무기가 가져온 참상을 생생하게 고발하고 있다. 핵 폭격 이후 온몸이 흘러내리고 구더기를 쏟아내는 사람들, 패닉으로 인해 실성해버린 사람들의 모습은 어떤 재난 만화보다 생생한 지옥도를 그려낸다. 미국에서는 아트 슈피겔만의 <쥐 – 한 생존자의 이야기>(1980)가 나치의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아버지의 체험을 그려냈다. 이 두 작품은 전쟁에 대한 강력한 고발로, 전통적인 만화 독자를 넘어 방대한 영역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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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가 되면서 극화의 극단 경쟁은 사그라들고, 보다 현실적이고 일상의 감각에 기초한 만화들이 유행한다. 그러나 대재난의 파국을 그리는 만화들은 분명한 장르를 형성하며 저마다의 분화구를 터뜨린다. 우메즈 가즈오는 <내 이름은 신고(わたしは真悟)>(1982)에서 자각한 인공 지능에 의해 기계들이 혼란을 일으키며 세계가 대재난에 휩싸이게 된다는 이야기를 그려냈다. 그리고 이러한 사이버 펑크적인 재난의 상상력은 오토모 가츠히로의 <아키라>(1982)에서 대폭발한다. 네오 도쿄라는 근미래 도시를 배경으로 한 만화로, 초능력 소년을 둘러싼 정부의 실험이 실패하면서 거대한 폭발이 도쿄의 고층 빌딩 숲을 궤멸시킨다. 두 만화는 모두 기술 문명의 무분별한 발전에 대한 공포를 담고 있으며, 일본이 고립된 섬나라로서 다른 국가들로부터 따돌림당하고 있다는 두려움도 표현하고 있다.

<아키라>를 비롯해서 1980년대의 일본 만화는 영화로부터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다. 영화 <매드맥스>(1979) 시리즈는 대재난 이후 새롭게 재편된 세계를 그린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성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하라 데츠오 / 부론손의 <북두의 권>(1983)은 핵전쟁으로 문명이 거의 파괴된 미래 세계에서 생존을 위해 약육강식의 전투를 벌이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무엇보다 육체적 무력이 중요하다는 가치관으로 남성 위주의 세계관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미우라 겐타로 / 부론손의 <재팬>(1992)은 이러한 성격을 더욱 강화하고 국수주의적인 경향까지 강하게 드러낸다. 스페인 여행 중이던 일군의 일본인들이 지진을 통해 미래 세계로 떨어지는데, 식량 주권을 갖추지 못한 일본인들은 난민의 신세로 전락해 있다. 예수를 닮은 외모의 지도자가 이끄는 평화 노선의 실패를 분명히 하고, 전직 야쿠자가 이끄는 조직이 강력한 무장을 갖춘 새로운 일본국을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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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들어 서구의 이야기 문화 전반에서 좀비와 전염병을 중심으로 한 ‘바이오 아포칼립스’가 강력한 테마로 등장한다. 신종 플루, 사스, 구제역의 공포와 함께 불황이 만들어낸 무기력증 등 다양한 사회적 무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고 인기 드라마로 등극한 <워킹데드>의 원작 만화(2003)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인류의 대부분이 워커(Walker)로 불리는 좀비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생존자 인간들이 벌이는 모험을 그리고 있다. 이들은 가족을 찾거나 안전 지역을 확보하기 위해 미 대륙 이곳저곳을 다니는데, 좀비만이 아니라 위악적인 조직으로 변모한 인간 부족들과 생사를 다투어야 한다.

브라이언 본 등이 그린 <와이(Y: The Last Man)>(2002)는 어떤 전염병으로 인해 지구 상에 있는 Y 염색체를 가진 포유류가 전멸해 주인공 요릭과 그의 원숭이만이 유일한 남자가 된 상황을 그리고 있다. 대재난으로 인한 극단적인 기후 변화가 성적 정체성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테마는 하기오 모토의 <마지널>(1985)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가스 에니스 / 재니스 버로우즈의 <크로스드(Crossed)>(2010)는 인류 대부분이 악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전염병에 감염된 상황을 그리고 있다. 영화 <28일 후> 시리즈의 분노 바이러스와 비슷한 면모도 있지만, 이들 감염자들이 좀비와는 달리 이성적인 능력을 어느 정도 유지하며 조직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 다른 위험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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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극단적 상상력보다는 동시대적이면서 현실적인 소재를 바탕에 둔 재난 만화들이 하나의 줄기를 형성해 왔다. 1990년대 중반 삼풍 백화점, 성수대교가 연이어 붕괴되면서 사회적 불안이 커졌는데, 윤태호는 이런 실제 사건에 근미래 풍의 SF 상상력을 더해 <야후!>(1998)를 그렸다. 콘크리트에 깔려 죽어가는 인간의 모습 등 실제 재난 사건의 현장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렸다. 박흥용은 붕괴된 건물 지하에 갇힌 사람들이 제각각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경복궁 학교>(1997)을 그렸는데, 등장인물 들의 회상이 더 큰 역할을 하고 있어 본격적인 재난 만화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의 나라>(2002)는 세계 대전을 통해 한반도의 주요 도시들이 궤멸된 상황을 그리며 본격적인 재난 만화의 세계를 펼쳐나간다.

2000년대 웹툰 중심의 환경은 장편 스토리 만화의 창작을 위축시켰고, 재난과 같은 거대 서사를 다루는 작품이 쉽게 등장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좀비물의 세계적 유행은 국내에도 흘러들어와 이경석의 <좀비의 시간>(2008), 강풀의 <당신의 모든 순간>(2010) 같은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이들은 전면적인 재난의 서바이벌 상황보다는 좀비가 된 사람들을 1인칭으로 삼아 그들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최근에는 보다 본격적인 재난 만화들의 등장이 눈에 뜨인다. 조석의 <조의 영역>(2012), 김규삼의 <하이브>(2014)는 물고기나 곤충 같은 생명체가 진화하면서 인간 중심의 문명을 위협하게 된다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좀비물과 차별성을 가지는 바이오 아포칼립스 만화들로, 몸의 크기는 물론 두뇌에 있어서도 점점 강력해지는 생명체들과 인간들이 대결이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왜 재난 만화인가?
재난 만화는 재앙의 종류와 파괴력의 정도에 따라 다양한 붕괴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낸다. 또한 재난이 현재진행형(아포칼립스)이냐, 혹은 대규모의 재난이 벌어진 뒤 어느 정도 상황이 안정된 상황이냐(포스트 아포칼립스)에 따라서도 큰 차이점을 보인다. 재난의 종류와 이야기 구조에 대해서는 이 특집의 다른 글들이 다루고 있어, 여기에서는 다음의 물음에 집중해 보고자 한다. 우리는 왜 재난 만화를 보고, 심지어 즐기는 것일까?

1) 위기에 대한 경고
재난 만화는 당연하게도 인류가 처한 각종의 위기를 경고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산업화로 인한 온난화와 해수면 상승, 증오에 기반한 전쟁과 핵 군사력 대결, 생물학전을 위한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개발은 인간 자신이 재난의 주범이다. <그의 나라>는 석유를 둘러싼 탐욕이 무차별의 전쟁을 가져올 것이라 경고한다. <아키라>의 초능력 소년들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을 상징한다. 그것은 핵 에너지, 혹은 현대과학 전체를 아우르는 것일 수도 있다. <조의 영역>이나 <하이브>는 인간 위주로 급격히 기울어진 생태계에 문제를 찾기도 한다. 만약 인간에게 원인이 있다면, 그 재앙을 가져오기 전에 파괴의 속도를 늦추거나 진로를 돌리도록 해야 한다.

허나 <세븐시즈>의 소행성 충돌, <생존 일기>의 지진과 화산 폭발처럼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자연 재해의 경우는 어떤까? 이때는 그 발생을 막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재난 만화를 통해 그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다. 움막집을 만들고, 지하수를 찾아내고, 들짐승을 사냥하는 등의 서바이벌 가이드만이 아니다. 거대한 파괴의 현장에서 패닉을 이겨내는 법, 인간들끼리의 다툼으로 공멸할 위기를 극복할 노하우도 제공받을 수 있다. <표류교실>에서 교직원이 식료품을 독점하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보고 아이들은 깨닫는다. 식량은 공유해야 한다. 각자의 가방에 있는 먹을거리들을 꺼내 교탁 위에 모아두자. 2011년 동일본 대진재 당시, 일본은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이 위기를 안정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수 많은 재난 만화를 통해 이와 같은 상황의 위험성을 학습해왔다는 점도 한 원인이 아닐까?

2) 파괴의 카타르시스
허나 이러한 공개적인 교훈의 표피를 벗겨내면, 뜻밖에도 우리는 정반대의 욕망을 발견하게 된다. <세븐 시즈>에서 조만간 닥쳐올 소행성의 충돌로 인류 문명의 종말이 거의 예견된 상황에서 한 주인공은 말한다. “빨리 미래에 가고싶어. 바보는 전부 멸종된 세계로.”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의 부조리, 지루하고 피폐한 나날에 지친 사람들은 세상 전체가 붕괴되어버렸으면 하는 욕망을 품게 된다. 세계라는 게임을 초기화시키는 버튼을 누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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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라>에서 거대한 폭발로 네오 도쿄가 붕괴되는 장면, 마치 핵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고층빌딩들이 부서져가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종말의 공포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또한 적지 않은 독자들이 그로부터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꼈음에 분명하다. 이후에 <남자 이야기> <터미네이터 2> 등 여러 만화와 영화들이 이 장면을 재현하며 오마주를 보이곤 했다. 대재난이라는 거대한 말썽은, 세상의 사소한 말썽들을 일거에 날려버릴 수 있다. 끝없는 빚 독촉, 풀리지 않는 과제, 막막한 구직 생활과 같은 문제들은 대재난의 발생과 함께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도덕과 소유권과 위생 관념 따위는 내던져도 좋다. 발가벗은 채 길거리로 뛰쳐나가 누군가가 세워둔 BMW를 강탈한 뒤 타워팰리스를 점거해 생존 본부를 차려도 된다.

3) 생존의 레크리에이션
“<로빈슨 크루소>가 성공한 요인 중 하나는 기본적인 경제적인 과정들이 치유적인 여가 활동으로 전환되는 모델을 제공한 데 있었다. 정원 가꾸기, 옷감 짜기, 목공 – 애완동물 기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 등을 통해서 어린이와 어른, 보이스카우트와 성인 모두 크루소 식 경제적, 생태론적 만족감을 함께 느껴볼 수 있었다.”(이언 와트, <근대 개인주의 신화> 222~223쪽)

재난 만화의 다수는 생존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전기, 수도, 식료품점 등 문명 세계의 안락한 일상이 붕괴된 뒤, 각자가 자급자족의 생존 조건을 확보해가는 과정은 이들 만화의 중심 줄기를 형성한다. <그의 나라>에서 소년이 무인도에서 비닐 차양에 맺힌 아침 이슬로 식수를 해결하고, 태양광과 렌즈를 이용해 불을 피우는 모습은 보이스카우트 캠핑 같기도 하다. <생존 게임>에서는 좀 더 험난한 상황이 펼쳐지는데, 특히 끊임없이 식량을 앗아가고 인간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쥐를 퇴치하는 것이 난제가 된다. <세븐시즈>에서는 완전히 원시화된 상황에서 삶을 도모하게 되는데, 대신 생존자 각자에게 식수통, 회중전등, 로프, 나이프, 야생 식물 핸드북 등이 든 배낭이 제공된다. 그들이 이를 바탕으로 일본 각지에 갖춰진 셀터를 찾아내면, 여러 식물의 종자들과 함께 백과사전 류의 책들을 얻을 수 있다. 마치 하나의 미션을 수행하면 새로운 아이템을 얻어 가는, 게임과도 같은 구조로도 보인다.

4)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창조주
디폴트의 버튼을 누르는 만화가의 희열은 단순한 파괴의 쾌락만이 아니다. 그는 이제 무너진 문명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 세계라는 장난감을 마음껏 개조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완전히 별세계를 창조하는 판타지와는 다르다. 이미 쓸모를 잃어버린 쓰레기들을 재조합하는 정크 아트에 가깝다. 우리가 <하이브>나 <조의 영역>에서 외국 만화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생생함을 얻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지형 속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여의도가 강의 범람으로 인해 고립된 섬이 되어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서울 외곽에 대피소를 건설한다면 어떤 지역이 좋을까? 서울역에서 남쪽으로 내려간다면 신용산역 지하역사 정도에서 곤충들과 대치하는 지하 기지를 구축할 수 있겠지?

보다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는 더욱 자유롭게 변형된 세계들이 등장한다. <남자 이야기>에서는 붕괴된 대도시가 새로운 무협지의 장이 된다. <재팬> <바사라>에서는 자동차 대신 말이 중요한 운송 수단이 되고 기마 부족이 새롭게 득세한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에서는 석유를 이용한 기술 문명이 거의 붕괴된 상태에서 풍력이 주요한 동력이 된다. 자동차나 무기만이 아니다. 만화가라는 재활용 조물주는 정치, 도덕, 성적 정체성까지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다.

5) 도덕의 붕괴, 새로운 정치의 실험
문명의 얇은 덮개가 벗겨지자마자 인간들은 곧바로 도덕과 수치심을 내버린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 온갖 이기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고, 인간됨을 포기한 채 야수로 변신하기도 한다. <워킹데드>에서는 가버너에 의해 통치되는 강력한 무장 조직이 다른 인간들을 노예화한다. <세븐 시즈>에서는 어린 아이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척하며, 낯선 식물의 독성을 테스트하는 모르모트로 만든다. <드래곤 헤드>에는 인위적인 뇌수술로 공포라는 감각 자체를 없애버린 무리들이 등장한다. “공포따윈 어차피 뇌 속의 화학물질의 균형이 일시적으로 흐트러진 상태에 불과하니까.”

그러니 재난 만화의 주인공들이 살아남기 위해 확보해야 하는 것은 의식주만이 아니다. 그들은 새로운 상황에 걸맞게 새로운 조직을 만들고, 도덕과 정치 질서를 확보해야 한다. 그것이 이 장르가 가장 철학적인 만화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당신의 모든 순간>은 어제까지 사랑했던 가족이 좀비가 되어버린다면 그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묻는다. <생존 일기>는 소수의 안정된 삶을 위해 노인들을 추방하고 범죄자를 극악한 노동에 처하는 독재를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묻는다.

6) 일상의 소중함
<드래곤 헤드>에서 터널 속의 기차에 고립된 노부오는 말한다. “지금쯤 집에 돌아가 엄마와 같이 저녁을 먹을 시간인데.”재난 만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다 간절히 바란다. 제발 이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매일 잔소리만 하던 부모님, 다투기만 하던 형제 자매라도 좋다. 그 일이 벌어지기 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래서 <생존일기>는 말한다. “지금의 소년에게는 문명 생활의 냄새를 띤 것이라면 공해조차도 그리워질 정도였다.”

 

재난 만화는 결국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평범한 일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가족과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지 못한다면, 구차하게 삶을 연장하는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걸 이야기한다. <생존 게임>과 <드래곤헤드>의 소년들은 어떻게 해서든 집으로 돌아가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려고 한다. <하이브>와 <워킹데드>의 가장들은 부인과 아이를 찾아 온갖 위험을 무릅쓴다. 그들을 찾아 최소한의 생존의 터전을 마련하는 일. 그것이 바로 자신들이 이 엄혹한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할 이유인 것이다. 사실 그것은 각박한 현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커다란 말썽을 만나, 더 절실하게 깨닫게 된 것일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다. 이 모든 일들은 재난 ‘만화’이기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만약 당신이 재난의 파괴적인 스펙터클을 체험하기를 바란다면 영화관을 찾는 게 좋다. 폼페이의 화산폭발과 캘리포니아의 대지진이 어떤 모습일지 알고 싶다면 3D 아이맥스 상영관을 찾아가기를 바란다. 만약 당신이 눈앞에 달려드는 좀비들을 무참히 살육하는 재미를 느끼고 싶다면, 좀비 드라마를 보거나 게임을 즐기는 것도 좋다.

허나 재난이 인간들에게 얼마나 다양한 생각의 거리를 던지는지를 알고 싶다면 만화책을 펼치기를 권한다. 주인공들이 어떻게 거대한 파괴에 맞서고, 패닉을 극복하고, 동료를 규합해 인간다운 삶을 새롭게 재구축하는지… 그 지난하지만 벅찬 과정을 함께 하고 싶다면 장편의 연재 만화를 보는 것이 가장 좋다. <워킹데드>의 드라마판이 결국 TV라는 한계 속에 자기 검열할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면, 역시 만화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 만화는 이 모든 것을 가장 오랫동안 열심히 다루어 왔다.

 

이명석

만화를 비롯해 대중문화 여러 영역을 비평하고 있다. 저서로 [유쾌한 일본만화 편력기] [만화 쾌락의 급소찾기] [논다는 것] [어느날 갑자기 살아남아 버렸다] [여행자의 로망백서] [지도는 지구보다 크다] [도시수집가] [모든 요일의 카페] 등이 있다. 에 ‘요상한 전파사’ 칼럼을 연재 중이고, KBS 라디오 ‘신성원의 문화공감’ SBS 라디오 ‘책하고 놀자’에 고정 출연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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