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바이러스는 있다?
인간이 멸망한다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급격한 기후변화, 소행성 충돌, 핵전쟁, 거대한 지각변동 등등. 다양한 가능성 중에서 최근 들어 화제의 중심은 바이러스 감염이다. 1994년 미국에서 출간된 <핫 존:에볼라 바이러스 전쟁의 시작>은 영화 <아웃브레이크> 등을 만들게 했고, 21세기 이후 사스와 메르스 등 신종 유행병이 전 세계를 위협에 빠트리고 있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컨테이젼>은 공기로 감염되고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가 전파되기 시작하면 현대 문명이 어떻게 순식간에 마비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줬다. 중세가 몰락한 하나의 이유로 흑사병의 창궐을 드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바이러스 감염과 좀비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언뜻 생각하면 좀비는 깨어난 시체이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현상이다. 종말의 날이 왔을 때 죽은 자들이 깨어나는 것 정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구체적인 캐릭터로 진화하기 시작한 좀비의 세계는 꾸준하게 확장되어 왔다. 조지 로메로의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이 좀비라는 캐릭터를 확립한 이후 대니 보일의 <28일 후>(2002)에서 획기적으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28일 후>에서는 좀비라는 단어 대신, 분노 바이러스라고 말한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이성을 잃고 공격적인 되어 사람을 물어뜯는 것이다. 광견병 비슷할 수도 있고 전혀 다른 무엇일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적극적으로 타인에게 감염시키기에 순식간에 문명이 몰락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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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28일 후>가 처음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좀비의 근원은 주술과 마법에서 시작하여 정부의 비밀 실험, 우주에서 날아온 전파의 영향 등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좀비가 들어 있던 밀폐된 통에서 나온 가스를 접촉한 후 좀비가 되는 영화도 있었다. 그럼에도 <28일 후>가 등장하면서 좀비가 더욱 현실적으로 대중에게 다가왔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줬다는 점은 분명하다. 21세기가 되면서 좀비는 공포물의 한 장르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를 형성할 정도로 광범위해졌다. 좀비를 소재로 호러, 재난, 사회드라마, 포스트 아포칼립스 심지어 멜로까지도 가능해졌다.

만화에서 좀비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 역시 21세기 이후였다. 미국의 <워킹 데드>와 일본의 <아이 앰 히어로>를 필두로 수많은 좀비 만화가 나오기 시작했다. 고전적으로 느리게 걷는 좀비부터 맹수처럼 돌진하는 좀비 그리고 새로운 종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좀비까지 무한하게 확장되고 있다.

 

좀비의 기원과 진화
Zombie를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1. 죽은 자를 되살아나게 하는 영력(서인도 제도 원주민의 미신), 그 힘으로 되살아난 무의지의 인간 2. (무의지적, 기계적인 느낌의) 무기력한 사람, 멍청이, 라고 되어 있다. 좀비의 시원은 할리우드 영화에도 자주 등장했던 부두교의 주술이다. 정말로 시체를 깨어나게 하는 것은 아니고 약물을 이용하여 죽은 것처럼 보이는 가사상태에 빠뜨렸다가 깨어난 후, 주체적인 의지와 생각이 상실된 ‘좀비’를 노예처럼 부린다는 것이다. 저주를 걸어 산 사람을 좀비로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렇듯 좀비는 카리브해 지역의 원시종교인 부두교의 무당들이 만들어낸 ‘시체 같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인류학자 웨이드 데이비스는 직접 아이티에 가서 좀비에 대한 조사를 했다. <나이트메어>와 <스크림>을 만든 거장 웨스 크레이븐의 영화 <악령의 관>의 원작인 웨이드 데이비스의 논픽션 <나는 좀비를 보았다>는 좀비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복어의 독이기도 한 테트로도톡신 성분을 이용하여 가사상태에 빠트린다거나 미국의 아이티 지배를 위해 사실과는 다른 야만적인 행위를 과장하여 선전했다거나 아이티 사회를 지배하는 비밀조직에서 규율을 어긴 자를 제재하는 수단으로서 좀비를 이용했다거나 등등)

웨이드 데이비스는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좀비 현상을 치열하게 관찰한다. 그중에서 반드시 짚어봐야 할 것이 있다. 하나는 “죽음이 언제부터인가?” 라는 질문이다. 인간의 죽음은 보통 호흡이나 뇌 기능이 멈추는 등 의학적인 기준으로 판정된다. 하지만 의학적인 사망 판정을 받은 후에도 살아나는 경우가 있었다. 인간은 “가사상태와 죽음의 차이를 명백하게 이해한 적이 없다.”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죽음에서 깨어난 좀비는, 대체 어떤 존재일까?

또 하나, 웨이드 데이비스는 진짜로 좀비를 만나지는 못하지만 좀비의 존재는 가능하다고도 생각한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또 하나의 좀비를 발견한다. 공동체의 벌을 받은 인간을 살아있는 시체 취급하는 것. 일종의 ‘사회적 좀비 만들기’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의 인터넷 ‘조리돌림’이나 허위 사실을 SNS로 퍼트리면서 벌어지는 사이버 불링(cyber-bullying)도 비슷한 맥락이다. 웨이드 데이비스가 아이티에서 만난 좀비는 단순히 깨어난 사자를 넘어 사회적, 정치적으로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영화에서 하나의 캐릭터로 정착된 좀비는 그동안 그런 의미를 충실하게 발전시켜왔다. 좀비는 20세기 들어 정착된 캐릭터다.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의 기원은 고대나 그 이전까지 올라가고,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근대 과학의 발명품이다. 골렘을 비롯하여 영혼이 없는 인형과 요괴, 요정, 괴물도 오래된 이야기다. 미국 남부에서 괴담처럼 떠돌던 좀비는 할리우드의 <화이트 좀비>(1932),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1943) 등의 공포영화에서 무당의 저주 때문에 살아있는 시체가 된 좀비로 구현된다. 인간성과 의식이 박탈된 시체 같은 존재를 좀비라 칭했고, 시체에 부적을 붙여 움직이게 만드는 중국의 강시와는 다른 형태였다. <좀비의 왕>(1941) <좀비의 역병>(1966) 등에서 초자연적인 괴물로 발전해가던 좀비는 조지 A 로메로의 ‘데드 3부작’인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1968), <시체들의 새벽>(1978), <죽음의 날>(1985)에 이르러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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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이유로 깨어난 시체들, 어기적거리며 탐욕스럽게 인육을 찾아 헤매는 좀비, 좀비에게 물리면 다시 좀비가 되는 사람들, 사랑하는 이가 좀비가 되었을 때의 슬픔과 두려움 그리고 바이러스처럼 증식하며 다가오는 종말의 공포, 매스미디어에 세뇌되어 주체적인 사고력을 잃은 현대인에 대한 은유, 좀비보다도 야비하고 잔인한 인간에 대한 절망 등등 좀비의 모든 것이 ‘데드 3부작’에 담겨 있다. 좀비가 무적인 이유는, 막강한 파워 때문이 아니라 끊임없이 숫자를 늘려가기 때문이다. 인간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좀비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또한 좀비의 공포는 어떤 대화도 불가능한 비이성적인 집단이라는 점이다. 살점을 뜯어먹는 잔인한 살육자들. 그것은 십자가로 퇴치할 수도 없고, 제물로 대신할 수도 없다. 최후의 인간까지 잡아먹히지 않는 한 좀비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은 50년대 유행했던 ‘외계에서의 침공’에 대한 공포가 내부의 공포로 바뀐 것이기도 했다. 50년대의 공포는 핵전쟁이었고, 평온한 사회를 외부에서 공격하거나 잠입하는 외계인과 괴물 혹은 ‘공산주의자’를 두려워했다. 좀비는 세계 어디에나 있는 공동묘지에서부터 시작된다. 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내 곁의 누구나 좀비가 될 수 있다.

잔인한 고어 장면으로 인기를 끈 좀비 영화가 서구에서 유독 인기를 얻은 이유에는 종교적인 이유도 있다. 종말의 날에 시체들이 깨어난다는 계시록의 구절이다. 좀비의 출현은 바로 종말의 예고다. 인간의 패배는 이미 결정된 것이고, 천년왕국이 도래하기 전까지 지상에 남은 모든 인간은 죽음을 맞이해야만 한다. 또한 조지 로메로는 일찍이 좀비 영화에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좀비 3부작의 2편인 <시체들의 새벽>(Dawn of the dead)에서 좀비는 쇼핑센터로 몰려든다. 다운로드살아있을 때의 습관을 반복하는 것인데, 대량 소비의 물결에서 허우적거리는 현대인의 은유다. 폭주족들이 무참하게 좀비를 박살내고 괴롭히는 모습을 보면 한편으론 현대인이 얼마나 가련한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자신의 주관도 없이 선전선동과 광고에 휘둘리고 끝내는 국가정책과 폭력 범죄의 희생자가 되는 것이다. 좀비는 종말의 날에 깨어나는 시체들만이 아니라 지금 각종 이데올로기와 매스미디어에 현혹되어 허청거리며 살아가는 현대인을 은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조지 로메로는 좀비의 거의 모든 것을 정립했다. 물질문명의 포로가 되어 기계처럼 반복 행동만을 일삼는 좀비만이 아니라, 마지막 남은 지상의 자원을 독점하는 세력에 맞서 스스로 학습이 가능한 좀비까지 <죽음의 날>에서 보여주었다. 소설이 원작인 <웜 바디스>에서는 뇌를 먹은 R이 죽은 자의 기억을 전수받는다. 그건 마치 죽은 가족이나 적의 시신을 먹었던 식인 부족이 죽은 자의 지혜와 힘, 용기를 물려받았다고 생각한 것과 흡사하다. <나는 좀비를 보았다>에는 좀비를 만드는 약에 반드시 인간의 유골이 들어가야 한다고 나온다. 조지 로메로가 이미 예견했듯이, 좀비는 단지 죽음의 상태에 머무르는 존재를 넘어 진화의 가능성 또한 내포하고 있다.

리처드 매드슨의 소설 <나는 전설이다>는 흡혈귀라고 하지만 좀비에 더 가까운 존재들이 나온다. 영화 <나는 전설이다>와는 전혀 다른 결말을 가진 원작은, 인간이 모두 멸종하고 단 하나 주인공만 남은 상황을 그린다. 흡혈귀 혹은 좀비들이 끊임없이 그를 죽이기 위해 공격한다. 마침내 그는 잡히고, 이제 인류의 역사는 끝나려 한다. 하지만 그건 슬픔이나 세상의 종말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의 종언일 뿐. 과거의 공룡이 그랬듯이 인간이 사라지고 새로운 종이 지구를 접수한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인간인 그는, 새로운 종족의 전설이 된다. 흡혈귀이건 좀비이건 새로운 지배자가 된 그들은 아득한 과거를 떠올리며 이야기할 것이다. 거인들을 물리치고 하늘의 주인이 된 제우스의 신화를 그리스인들이 이야기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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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만화의 미래
영화 <28일 후>, 게임 <바이오 해저드> 이후 좀비가 주류 문화에 진입하면서 좀비 만화들도 연이어 등장했다. 서양의 걸작 좀비 만화로는 로버트 커크만이 쓰고, 토니 무어가 그린 <워킹 데드>가 있다. AMC의 드라마로 만들어진 <워킹 데드>는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16주 동안 오르며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로버트 커크먼은 그동안 봤던 좀비 영화들의 뒷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좀비가 우글거리는 사지에서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간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워킹 데드>는 전형적인 좀비물의 영역에서 출발하여 점점 묵시록의 아비규환을 목도하게 만든다. 이건 결코 끝나지 않을, 끝이 존재할 수가 없는 지옥도다. 드라마의 지나친 가족주의와 인간성 탐구가 지겨웠다면 만화로 보기를 반드시 권한다. 인간성이란 무작정 추구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살육의 끝에서 건져 올리는 유일한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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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보이즈 온 더 런>의 카나자와 켄고가 그린 <아이 앰 히어로>가 있다. 소심하고 찌질한 청년 만화가가 좀비들로 가득한 종말의 시대에 영웅으로 서는 과정을 그린다. 슈퍼히어로? 천만에. <아이 앰 히어로>는 좀비처럼 살아가던 인간이 어떻게 영웅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성장하는지 보여주는 만화다. 조금씩 타자를 받아들이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또한 <아이 앰 히어로>는 영화보다도 영화적인 컷과 연출로 좀비들의 세상을 만끽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좀비 그 이후를 보여주는 지점도 흥미롭다. 단지 괴물로서의 좀비가 아니라 새로운 종으로서, 인간의 진화형으로서 좀비가 가능한지를 탐구한다. 그밖에 일본의 좀비 만화로는 <학원묵시록:하이스쿨 오브 더 데드>, <아포칼립스의 요새>, <망량의 요람>, <마법소녀 오브 디 엔드> 등이 있다.

국내의 좀비 만화도 다양해지고 있다. 강풀의 <당신의 모든 순간>은 특유의 서정적인 톤을 유지하면서 좀비를 그려내고, 이경석의 <좀비의 시간>은 좀비를 사회적 시선으로 바라본다. 모래인간의 <좀비를 위한 나라는 없다>는 영국 드라마 <인 더 플래시>처럼 좀비 치료제가 만들어진 이후의 상황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라운드 제로>, <좀비의 눈물>, <지금 우리 학교는>, <데드 데이즈>, <강남>, <조선 좀비 실록>, <탈출 카니발>, <강시 대소동>, <해골과의 100일> 등 쏟아져 나오는 좀비 웹툰은 전통적인 좀비와의 사투부터 종말 이후까지 다양하게 좀비의 세계를 그려낸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광기와 비합리성의 상징이었던 뱀파이어가 포악한 살인마, 로맨틱한 연인, 고독한 소수자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게 된 것처럼 이제 좀비는 자신의 역사와 배경을 매 작품마다 써가면서 새로운 가면을 보여주고 있다. 인류의 종말을 불러오는 끔찍한 존재에서 미래의 변종 인류 심지어 사랑스러운 연인으로까지 확장된‘좀비’는 현대인의 우울한 자화상과 지독한 악몽 모두를 상징하고 또한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좀비는 가해자이며 피해자이고, 그것은 곧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