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위 ‘모에’ 문화와 거리감을 느낀다. 그런 내가 모에 문화의 맥락으로 봐야 하는 <아메리카노 엑소더스>를 리뷰 하는 자체가 무리수인지도 모른다만, 나름의 방식으로 매력과 의의를 전하고자 한다. 나는 이 작품을 한국형 모에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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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모에적이다. 모에 이전 오타쿠는 기호로 자기가 얼마나 많은 맥락의 정보를 섭렵하고 있는지를 암시하고 과시하려고 패러디했다. 오타쿠라는 말 자체가 여러 서브컬처의 기호를 패러디해 새로운 작품으로 샘플링하는 재미를 즐기는 1980년대 출연한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반면, 모에는 모든 기호를 캐릭터라는 하나의 게슈탈트, 커다란 기호로 묶어 균질화, 상대화시킨다. 이는 점과 원의 관계와 같다. 원은 중심점과 같은 거리에 있는 점의 집합으로 정의한다. 모에는 다양한 기호를 캐릭터라는 중심점을 기준으로 탈맥락해 캐릭터의 매력 같은 거리로 상대화해 배치한다. 모든 기호는 캐릭터의 매력을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며, 캐릭터는 납작해진다. 여분의 정보가 사라지고 세련화되며, 모양이 ‘귀엽고 예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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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특정한 기호를 모아 하나의 원으로 만드는 것을 추상도를 높인다고 말한다. 추상도란 내가 자주 언급하는 개념인데, 게슈탈트 간의 시점의 차이다. 비유하자면, 나무와 숲을 볼 때의 차이다. 숲 속에서는 나무 하나하나의 차이를 자세히 본다만, 숲은 못 본다. 반면 시점을 높이면 서로 다른 나무의 공통점이 하나의 숲이라는 게슈탈트로 묶여 보인다. 대신 나무 하나하나의 정보량은 배경으로 잠재되어 눈에 보이지 않거나 상대화된다. 이처럼 시점을 높여 게슈탈트를 만드는 과정을 추상도를 올린다고 표현한다. 모에 이전과 이후는 추상도에서 차이가 난다. 모에 이전의 과다한 정보량을 줄여 추상화한 것이 모에고, 그 중심점은 캐릭터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논의는 곧 나올 졸저 작법서, 혹은 아즈마 히로키의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을 참조하기 바란다. 나는 아즈마 히로키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으나 참고서로 삼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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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캐릭터다. 이 작품도 캐릭터가 큰 인기요인으로, 모든 요소가 캐릭터의 매력에 봉사한다. 그림체는 귀엽고 화려하면서도 기호적으로 정리된 모에의 ‘귀엽고 아름다운’ 양식을 따르며, 캐릭터는 소개될 때 마다 포즈를 취하고, 전투 장면에서도 어떤 기술을 어떻게 사용했는가 보다, 캐릭터들의 멋진 포즈가 중시되며 MMORPG 게임처럼 화려한 CG를 다용한다. 서사도 캐릭터를 중심으로 하는 소설 장르인 라이트 노벨처럼 캐릭터를 소개하고 이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플롯 장치에는 주인공이 오토코노코(男の娘), 혹은 TS(성별이 바뀌는 것) 등 모에 문화에서 유행한 트렌드를 사용하고 있다. 서사의 중심축 중 하나인 황혼 새벽회는 실제로 존재하는 마법(Magick) 비밀결사인 황금 새벽회(Hermetic Order of the Golden Dawn)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나, 실제와는 달리 일종의 ‘비밀 생체실험 연구소’ 같은 형태로 탈맥락되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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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작품이 단순히 모에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작품이라는 중심점을 이루는 기호에는 ‘한국의 현재’도 있다. 유머의 호흡은 전형적인 한국식 ‘병맛’ 개그며,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문화적 기호인 야자, 박카스, 핸드폰 노예계약 등이 엿보인다. 그러나 가장 큰 테마는 그 인터넷 문화를 향유하는 청소년-청년 세대가 느끼고 있는 부모와의 관계와 이 관계에서 느끼는 부담과 중압이다. 일본에서도 이런 테마는 <군계> 등에서 다루기는 하였으나, 최근 일본에서는 부모자식의 관계 보다는 친구, 동료 등의 의미를 가진 나카마(仲間)와의 관계가 더 부각되고 있다. 자아를 이루는 배경으로 부모, 그리고 부모가 요구하는 역할이 중요시되는 것은 현재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한국에서 두드러지는 사회현상이다. 이 작품이 얻는 큰 지지는 단순히 캐릭터가 예쁘고 귀여워서 만이 아니라, 시의성 있는 테마가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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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고 복잡한 무리수를 길게 늘어놓았다. 사실 이 작품의 매력은 그림과 연출에서 나오기에, 일단 읽어보라고 말하는 게 가장 좋다. 이 작품의 팬은 내가 말한 모든 무리수에 관심이 없거나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이 모든 무리수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모에 이전 오타쿠인 내가 모에라는 커다란 맥락에 있는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벌인 노력의 결과다. 이 작품은 일본의 모에와 한국의 현실을 하나의 추상도로 묶는 작품이다. 나는 ‘한국형 모에’와 같은 ‘한국형~’이라는 수식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귤화유지(橘化爲枳)라는 고사성어가 있는데, “회수의 남쪽인 회남의 귤나무를 회수의 북쪽인 회북으로 옮겨 심으면 탱자나무로 변한다.”라는 뜻이다. ‘한국형’이라는 말은 귤화유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모에는 식물도, 일본이라는 토양이라 모에로 ‘싹틀(萌)’ 수 있었던 식물이다. 하지만 나는 이 작품이, 한국이라는 다른 토양에 심었으면서도 훌륭히 ‘모에’를 성장시킨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한국형 모에’가 어울리는 작품이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노력할 만큼 이 작품은 귀엽고, 시원시원하고, 재미있다.

손지상

소설가, 만화평론가, 칼럼니스트, 번역가.

주요 출간:
단편집 [당신의 苦를 삽니다], [데스매치로 속죄하라 - 국회의사당 학살사건], [스쿨 하프보일드], [일만킬로미터 너머 그대. 스토리 작법서 [스토리 트레이닝: 이론편], [스토리 트레이닝:실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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