쵹쵹한 감성툰은 모바일 시대에 어떻게 진화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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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통의 <내 멋대로 고민상담>과 쵸밥의 <아띠아띠>

 

한번쯤은 만화가뿐만 아니라 독자라도 디지털 웹툰과 아날로그 감성이 만나는 가장 최적화된 형태는 무엇일까라는 의문은 가져봤을 것이다. 그 시작은 2000년대 인터넷으로 보는 만화가 급격히 늘면서 <파페포포>와 <포엠툰>처럼 이른바 감성툰 혹은 에세이툰이라는 웹툰의 등장이었다. 단순하지만 귀여운 그림에 독자의 허를 찌르기보다는 메말라가는 정서를 촉촉하게 적셔주는 감성툰은 오프라인 출판과 캐릭터 사업으로 확장되어 온라인 시대에 살아남을 만화산업의 숨은 가능성을 점치게 했다. 이런 경향은 엽기토끼 ‘마시마로’와 ‘졸라맨’ 시리즈, 강풀의 <순정만화>, 정철연의 <마린블루스>등과 같이 작가의 개성과 주제가 뚜렷이 드러나는 만화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한국 웹툰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파페포포>, <포엠툰>, <스노우캣>의 깔끔하고 담백한 기운은 포털사이트의 웹툰에 생활툰, 일상툰이란 부류의 만화로 이어졌다. 개그만화에서 보았던 단순한 선과 소박하고 담백한 컬러톤으로 일상의 잔잔한 재미와 감상을 전하는 <어쿠스틱 라이프>, <펭귄 러브즈 메브>, <단군할배요!>등과 같은 만화가 그렇다.

 

이런 경향은 페이스북, 트위터의 도래로 인해 모바일 기기에 적합한 요소가 가미되기 시작했다. SNS에서 쉽게 즐길 수 있도록 단문과 컷 중심의 이미지에 배경음악이 흐르면서 플래시 기능을 더한 것이다. 네이버와 다음, 두 대형 웹툰 사이트에서 모바일 기기에 적합한 기능적 만화 플랫폼을 공개했고 김보통의 <내 멋대로 고민상담>과 쵸밥의 <아띠아띠>는 그런 기능에 충실한 만화로 떠오르고 있다.

 

<아만자>로 2014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수상한 김보통 작가는 현재 레진코믹스에 <내 멋대로 고민상담>를 연재하는 실력파 신인작가이다. 그러나<아만자>를 발표하기 훨씬 전부터 트위터 프로필 이미지(플픽)을 그려주는 아마추어 작가로 트위터리안에게 잘 알려져 있었으며 작가의 여행담, 경험담은 인기 트윗으로 여러 차례 리트윗되기도 했다. 게다가<아만자>에 등장하는 더펄이 같은 귀여운 캐릭터가 던지는 짧고 솔직한 대사는 수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린바 있으니 김보통 작가에게 감성툰은 그야말로 제 옷을 입은 격이리라.

 

현재 레진코믹스에 연재하고 있는 <내 멋대로 고민상담>은 쿨한 너구리, 따뜻하지만 솔직한 고양이와 강아지가 독자들의 고민과 물음에 시원한 돌직구로 대답한다. 예를 들어 정신 차릴 만큼 자극적인 한 마디를 해달라는 재수생에게는 “힘내, 삼수생.”,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들킬까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연애는 암살이 아니야. 들켜야 시작해.”라고 말한다. 의외로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대답도 있다. 밥 먹고 공부하는 순간에도 죽음을 생각한다는 사람에게는 말없이 독자를 바라보다가 “당신의 이름은 뭔가요? 당신의 이름으로 된 만화가 보고 싶지 않나요? 그 만화를 보려면 살아야합니다. 제가 그 만화를 그리겠습니다.”라고 말한다. 또 지병을 앓다가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이별에 미처 제대로 전하지 못한 인사로 괴로워하는 사람에게는 우체부 복장을 한 강아지가 “전보가 왔는데요. ‘확실히 들었어. 바빠서 대답 못했지만. 보는 사람이 많으니 자세한 얘기는 꿈에서….’라고 하시네요.”라고 위로를 전한다.

 

고민상담_1고민상담_2

 

<내 멋대로 고민상담>은 너구리 혹은 고양이나 강아지가 독자의 질문칸 다음에 대답을 하는 칸 구성으로 이어진 것이 전부다. 무채색에 가까운 컬러톤은 보는 눈을 위한 즐겁게 하기엔 뭔가 심심하다. 그러나 짧고 강한 인상을 남기는 대답은 독자의 예상을 깨고 세 마리 동물의 표정과 작은 행동에 소소한 재미를 준다. 이렇게 단 두 컷의 임팩트 있는 상담은 SNS의 짧고 간단한 모바일 기능에 잘 맞아떨어져서 페이스북, 트위터에서 ‘좋아요’와 ‘리트윗(RT)’ 수를 늘리며 사랑받고 있으며 출간 계획까지 잡혔다고 한다.

 

쵸밥 작가의 <아띠아띠>는 귀여운 캐릭터의 짧은 대화로 구성됐다는 면에서 <내 멋대로 고민상담>과 비슷한 궤도를 돌지만 정반대의 지점에서 마주본다고 할 수 있다. 다음 웹툰에 연재 중인 쵸밥 작가의 <아띠아띠>는 각종 동물과 식물, 길가의 돌멩이마저도 사랑스러우면서도 애달픈 연애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사랑고백은 달콤하기 그지없기에 보는 이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펭귄과 병아리의 은근한 밀당, 새침한 잉꼬를 향한 느긋한 독수리의 대시, 나이 많은 늑대 아저씨에게 끊임없이 고백하는 고양이. 최근에는 작고 하얀 친칠라에게 냉정하게 굴지만 진심을 감추지 못하는 일명 츤데레 흑표범이 인기를 끌고 있다. 동정 따윈 없는 싸늘한 시대에 살아남아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자연의 모든 생물체가 벌이는 다정한 애정행각이 도리어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사랑이 영원할 거라고 믿지 않는다는 잉꼬에게 살포시 머리를 기대며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되묻는 독수리의 모습은 초식남, 건어물녀가 산재한 작금의 5포 세대 속 굳은 심장에 연애의 발동을 걸기에 충분할 것이다.

아띠아띠_1아띠아띠_2아띠아띠_3

<아띠아띠>에 등장하는 모든 생물들이 행복한 것은 아니다. 짝을 잃은 두루미가 무덤 대신 나뭇가지를 하나씩 모으는 장면이나 친칠라가 있던 자리에 남은 핏자국에 흥분한 흑표범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모습은 독자의 마음을 울린다. 게다가 슬라이드 방식으로 넘어가는 연출은 마치 어릴 적 책 모서리 여백에 같은 그림을 그리고 한 번에 촤라락 넘겨서 애니메이션 효과를 주고 있어 주인공의 변화에 따르는 여운을 남긴다. 몸집도, 색깔도, 종류도 모든 것이 각자 다른 주인공들의 대비를 한눈에 들어오도록 시각적으로 드러내서 낯선 이방인들이 조금씩 자신과 타인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은은하고 낭만적으로 그리고 있다.

 

작고 단순한 캐릭터 혹은 의인화된 동물을 내세워 심오하고 밀도 있는 스토리에 더욱 더 몰입하게 하는 꼬마비의 <살인자 O난감>이나 윤필의 <야옹이와 흰둥이>처럼 화려한 컬러와 아름다운 캐릭터가 점점 단순해지고 이야기의 구성 또한 더 간결하고 짧게 이어져 한눈에 들어오도록 변화하는 웹툰이 늘고 있다. 일본의 마스다 미리의 4컷 만화 시리즈가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은 것은 이러한 경향이 큰 호응을 얻는다는 반증일 것이다. 지금은 <조선왕조실톡>, <하루3컷>, <오빠 왔다> 같은 만화들이 극단적으로 형식을 파괴하거나 새로운 구성을 실험해서 새로운 웹툰을 원하는 독자의 흥미를 자극하고 있다. 또한 SNS의 영향으로 긴 스크롤로 이어지는 포털 사이트 스타일의 웹툰보다는 짧고 굵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만화 구성이 각광받고 있다. 다음 웹툰에서는 ‘공뷰’, 네이버 웹툰은 슬라이드 형식의 ‘컷툰’이라 하여 모바일 기기에서 좀 더 재미있게 웹툰을 즐길 수 있는 플랫폼을 마련했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스크롤 형식이 아닌 슬라이드로 컷을 넘기는 방식은 예전 출판만화의 페이지를 넘기는 형태와 비슷하여 이런 기술에 발맞춘 만화연출에 기대가 크다. 특히<아띠아띠>는 어릴 적 책의 여백에 조그만 그림을 반복해서 그린 후 페이지를 빨리 넘겨 애니메이션 효과를 즐겼던 것처럼 캐릭터들의 크고 작은 심적 변화가 하나씩 쌓이면서 독자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인터넷으로 보는 웹툰이 한국의 웹툰으로 자리 잡으면서 스크롤 다운으로 이어지는 긴 호흡의 스토리와 구성이 SNS의 도래로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모바일 기기를 통해서 한눈에 들어오는 컷 중심 이미지, 독자의 뇌리에 박히는 인상적인 글과 대사들, 작가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다양한 효과와 기술들이 독자의 감각을 사로잡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미래의 웹툰 작가를 꿈꾸는 지망생들에게 호재일지 악재일지는 모르겠지만 더 다양하고 틀에서 벗어나 상상력을 확장시키며 어제보다 더 재미있는 만화를 원하는 독자에게는 놓칠 수 없는 즐거움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