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호의 나는 왜 그리는가 2_‘엄재경의 스토리 vs 이충호의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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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출신의 의사이자 철학자, 또 점성가였던 노스트라다무스(Nostradamus, 1503~1566)는 ‘1999년 7월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온다’는 제법 그럴싸한 예언시를 남김으로써, 자신은 비교적 과학적 사고를 한다고 믿고 있던 20세기 말 인간들의 마음 한 편에 ‘지구 종말’이라는 흥미롭지만 두려운 가능성을 스리슬쩍 심어버렸다.

그의 예언 때문이었을까? 1999년 즈음에는 지구 종말에 대한 대중들의 호기심과 두려움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기획영화들이 연이어 개봉했다. 소행성 충돌로 지구가 종말의 위기에 처한다는 비슷한 소재의 할리우드 영화 <아마겟돈>과 <딥임팩트>가 서로를 비난하며 같은 해(1998년)에 개봉했고, 다음해(1999년)에는 사탄에 의한 종말을 다룬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주연의 <엔드 오브 데이즈> 같은 어설픈 공포영화(?)까지 세상에 나오기에 이른다. 40대로 접어들면서 머릿속에 딜리트 키(delete key)만 남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빠르게 삭제되어가는 내 흐릿한 기억력 속에도 아직까지 남아 있는 영화들이 이 정도이니, 영화 이외의 다른 창작물들까지 포함한다면 1999년 당시 얼마나 많은 ‘종말이야기’들이 세상에 쏟아져 나왔을지는 강산이 한 번 반 정도 바뀐 지금에 와서는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사실 상상력의 힘을 빌려서 만들어진 영화를 비롯한 창작물들이 다룬 ‘종말의 공포’는 그나마 애교수준이라고 볼 수 있었다. 구식 컴퓨터 코드가 날짜를 인식할 때 두 자리로만 인식해왔기 때문에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는 순간, 99 이후에 오게 될 00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고, 그로 인해 비행기는 추락하고, 발전소는 문을 닫을 것이며, 금융시장은 대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밀레니엄 버그(Millennium Bug)에 의한 인류종말의 이야기는 과학기술적 근거까지 함께 갖추고 있어 이미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세기말의 공포심을 극단적으로 자극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아보였다. 장사꾼들과 언론은 마치 새로운 백신이 필요한 바이러스라도 되는 양 ‘종말의 공포’를 호들갑스럽게 세상에 퍼뜨리고 있었다.

하지만 꽤나 그럴싸해 보였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종말영화는 그저 장사꾼들의 돈 욕심이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바로 드러났으며, 밀레니엄 버그 역시 해프닝으로 끝나버렸다.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구는 어제(1999년 12월 31일)의 그 모습 그대로 오늘(2000년 1월 1일)을 맞이했고, 인류의 운명은 지나간 20세기에서 ‘끝나지 않고’ 새로운 21세기를 맞이했다. 그런데 21세기가 오기 직전인 1999년에 ‘끝난 게’ 하나 있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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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까꿍>이 끝났다.

 

‘우우우!’ 어디선가 야유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한데, ‘지구 종말’과 ‘<까꿍>의 연재중단’을 등치시켜 언급했으니 오만이 지나치다고 비난을 해도 딱히 할 말은 없다. 다만 갑작스러운 <까꿍>의 연재중단 결정이 전 세계적인 공포심까지는 몰라도 당시 대한민국 땅에 살던 꽤 많은 소년들, 특히 당시 <IQ점프>를 정기 구독하던 오덕 소년들에게는 지구 종말과 맞먹을 정도로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고 (연재를 중단한 후 15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원성과 함께 2부 연재를 요구하는 댓글이 달리는 걸로 미루어 추측해보건대!) 나는 나를 위해 그렇게 믿고 살고 있으니 따지지 말고 그냥 적당히 넘어가 주었으면 좋겠다. 뭐, 아니면 말고 (아니라고 말한다면 2부 재 연재는 없던 일로 하겠다! 이제 와서 새삼 이런 협박이 통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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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재경 선배님이 게임해설자 일을 하려고 <까꿍> 연재를 중단한 거라고 들었는데요.”

 

공교롭게도 이 글을 쓰기 하루 전인 어제 <까꿍>을 보고 자란 30대 초반 나이의 후배 작가와 차를 마시던 중 들은 얘기다. 내가 이런저런 루트를 통해서 파악하고 있는 바로는 <까꿍>의 갑작스런 연재중단 이유와 관련해서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는데, 독자들 사이에서는 위에 ‘까꿍 키드’였던 후배 작가가 언급한 “엄재경이 게임해설을 위해 만화계를 떠나면서 <까꿍>이 중단됐다.”가 정설처럼 인터넷상에 떠돌아다니고 있었고, 만화계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이충호가 거액에 다른 출판사로 스카우트되면서 <까꿍>을 끝냈다.”가 거의 사실인 양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아예 근거가 없지는 않지만 재경(엄재경은 스토리작가 이전에 나와는 초등학교 동창이다. 성이나 작가라는 호칭을 붙이면 왠지 모르게 글이 어색해지니 그냥 재경이라고 부르기로 한다)이 때문에 <까꿍>이 중단됐다는 이야기는 그저 떠도는 소문일 뿐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재경이는 진심을 다해 <까꿍>의 연재중단을 결정한 나를 말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재중단의 탓을 재경이가 뒤집어썼는데, 아마도 소문의 근거는 1999년 <까꿍>의 연재를 중단하던 당시에 재경이가 게임해설 쪽 일을 병행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점점 만화스토리작가 일을 줄이면서 게임해설자(본인의 주장으로는 세계 최초란다!)로 더 유명세를 떨쳤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재경이가 더 유명해지기 위해 이충호를 배신하고 <까꿍>을 버렸다는 좀 뻔하고 세속적인 스토리가 힘을 얻은 건데, 막장드라마 같아서인지 꽤나 독자들을 자극하는 내용이기는 하다. 하지만 재경이는 지금도 가끔 나와 술잔을 기울일 때면 소문과는 다른 방향에서의 세속적인 대사를 날리며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표정으로 투정을 부리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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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까꿍>을 그만두지 않았으면 훨씬 부자로 편하게 살았을 거야! 이 변덕쟁이 자식아!”

 

그렇다면 역시 <까꿍> 연재중단의 원인은 이충호에게 있었던 것인가? 그렇다. 내 탓이다. 위에서 밝혔듯이 스토리작가인 재경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까꿍>은 내 의지로 끝낸 것이 맞다. 하지만 만화계 내에서 거의 사실인양 얘기되고 있는 ‘거액에 다른 출판사로 스카우트되면서 연재를 중단했다’는 설에는 결정적인 오류가 있다. 물론 오류가 생긴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지만 말이다.

1999년 <까꿍>의 연재를 중단한 나는 얼마 후 거액의 전속(독점연재)계약금을 받고 서울문화사의 <IQ점프>를 떠나 시공사에서 새로 창간한 <쎈>으로 연재처를 옮겼다. 그러니까 다른 출판사로 이적을 한 것도, 그 과정에서 돈이 오간 것도 사실이었다. 문제는 ‘이적’이니 ‘계약금’이니 하는 단어들이 워낙 자극적이다 보니 ‘시점’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는 점인데,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이런 일이 벌어졌을 뿐, <까꿍>의 연재를 끝낸 시점은 <쎈> 측에서 연재 제안과 함께 거액의 계약금이 든 돈 가방을 내 눈앞에 내밀기 몇 달 전의 일이었다. 딱히 누구 탓을 하겠나. 오이 밭에서 양쪽 신발의 끈을 다 고쳐 맨 내 잘못인 것을.

결국 연재중단이 재경이 때문이라고 믿었던 네티즌들은 물론이고, 현실의 만화계 종사자들까지도 ‘돈 때문에 친구를 배신하고 작품까지 끝냈다’라는 천박한 막장드라마식 스토리를 좋아하긴 마찬가지였다는 건데, 하지만 안타깝게도 ‘돈 때문에’라면 당시 단행본 판매가 백만 부에 육박하고 있었고 캐릭터 상품과 게임 등이 제작되면서 한창 상품성을 확장 중이던 <까꿍>을 끝낼 이유가 전혀 없었다. 재경이와 내가 초등학교 산수도 안 되는 어린아이도 아니고.

 

이쯤 되면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 ‘그렇다면 도대체 넌 왜 갑작스럽게 <까꿍>을 끝낸 건데?’라며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나올 때가 된 것 같으니, 욕먹기 전에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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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의 어수선함과 새로운 세기에 대한 기대가 뒤섞여져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던 20세기의 끝자락. 그런 분위기에 취했던 걸까? 당시의 나는 내가 성취한 모든 것들을 의심하고 있었다. 백지 상태로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는데 그 새로운 시작을 위해 독자들과의 약속까지 저버린 채 돌연 <까꿍>을 끝내버렸고, 6년간 고정적으로 연재를 해왔던 친정집 같은 잡지인 <IQ점프>를 떠났으며, 얼마 후에는 소년독자를 대상으로 한 개그작가라는 틀 안에 갇혀 있는 게 지겨워져서 유머코드라고는 0.01%도 찾아볼 수 없는 건 물론이거니와 뼈와 살이 잘리고 피가 튀는 하드고어한 성인물인 <블라인드 피쉬>를 그렸다.

두 번째 질풍노도의 시기에라도 접어든 듯 나의 방황은 작가로서의 선택에만 머물지 않았고, 개인적으로 이혼이라는 선택을 하면서 10년 가까이 살아온 익숙한 터전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혼자만의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나의 작가로서의 선택과 개인적인 결정들을 실수라고 말하며 말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밀리언셀러 작품인 <까꿍>의 연재중단이라는 결정은 재경이가 술 한 잔만 들어가면 안주 대신 곱씹는 말처럼 경제적인 측면만으로 놓고 보면 내게 제법 손해를 끼쳤던 선택이 분명하리라. 하지만 지금의 나로선 <까꿍> 한 작품만을 15년 간 계속 그려온 ‘나’라는 사람이 어떤 모습일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사실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 <까꿍>을 놓아버림으로써 나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고, 그만큼 다른 작가, 다른 사람이 된 거니까. 이건 어떤 삶이 더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는가, 또는 더 행복했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당시 선택의 기로에서 <까꿍>을 끝내는 결정을 함으로써 할리우드 시나리오작법에서 종종 언급되는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너 버렸고,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이전의 세계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지금에 와서 <무림수사대>, <이스크라>, <지킬박사는 하이드씨>, <제0시: 대통령을 죽여라> 등이 없는 나의 만화인생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면 이쯤에서 내 인생의 리와인드 버튼(rewind button)을 눌러서 <까꿍> 연재를 막 시작하던 시점으로 이야기를 되돌려 보자. 오랜 시간이 흘러 기억이 가물가물한 시기지만 글을 쓰기 위해 한번 애써 더듬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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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엄재경
연출, 그림 / 이충호

 

글 작가와 그림 작가가 공동으로 작업을 하는 경우에 ‘그림 / 홍길동’이라고 그림 작가의 이름을 표기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까꿍>은 연재할 때 속표지에도, 단행본 표지에도 ‘그림 / 이충호’가 아니라 굳이 ‘연출, 그림 / 이충호’라고 표기를 했다. 물론 나의 요구였다. 아마도 이런 식으로 그림 작가의 이름을 표기한 경우는 국내에서는 거의 유일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왜 그런 식의 표기를 고집했을까? 당시 만화의 스토리를 직접 쓰지 않고 스토리작가에게 의존하던 나의 콤플렉스가 내 시선을 삐딱하게 만든 부분도 분명히 있었겠지만, 그림 작가와 스토리작가가 분업을 해서 만화를 제작하는 경우에 그림 작가는 스토리작가가 시키는 대로 기계적으로 그림만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고, 그런 생각 때문인지 그림 작가를 조금은 무시하는 듯한 태도가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지금에 와서 다시 하라고 하면 그 치기어림을 감당할 수 없어 절대 못하겠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런 왜곡된 시선이 가진 무지함에 대해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만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글’과 ‘그림’ 이상으로 감각과 창의성이 필요한 ‘연출’이라는 영역이 있고, 그 일을 그림 작가가 감당하고 있음을 굳이 ‘연출자 표기’라는 강제적 수단으로라도 독자들과 일부 전문가들(그림 작가라고 하면 조금은 내려다보려는)에게 학습을 시켜주려 했던 것이다. 사실 ‘그림’이라는 표기 안에 ‘연출’이 포함되어 있음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그렇게 조금은 삐딱한 태도로 고집을 부렸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가 만화를 만들 때 굳이 ‘연출’이란 영역에 그렇게도 집착했던 데에는 조금은 다른 이유가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데, 사실 <까꿍>을 끝내게 된 데에는 그 깨달음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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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약한 모습, 내가 실패하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걸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편이다. 이러한 성향은 불혹을 훌쩍 넘기며 나름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고 이제는 지천명 (하늘의 뜻은커녕 나 자신의 뜻도 잘 모르면서 나이만 먹어간다)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가 장기 두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보아왔던 나는 이미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부터 장기를 제법 두는 편이였고, 학년을 올라갈수록 강해져서 학교에서도 동네에서도 장기로 나를 당해내는 동년배는 드물었다. 그런데 내가 장기를 잘 두게 된 데에는 앞에서 언급한 나의 성격이 일조를 했는데, 그 사연은 이러하다.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재경이를 비롯해서 친하게 지내던 몇몇 친구들은 장기밖에 못 두던 우리 아버지와는 달리, 아버지들이 바둑을 두는 집안에서 자라 바둑 역시 제법 둘 줄 알았었다. 꽤나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으니 그들에게 바둑을 배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겠지만, 배우는 과정에서 그들에게 지는 게 싫었던 나는 아예 바둑판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이후부터 장기를 두는 일에 더 집착했고 그래서인지 장기는 점점 강해져갔다.

뭐, 물론 철없던 초등학생 시절의 이야기로 흘려버릴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고백하건데 어린 시절 이러한 나의 태도는 어른이 되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만화가가 된 후에도 자신이 잘 못하는 부분을 숨기려고 스토리로부터 은근슬쩍 달아나버렸으니 말이다. 그 일을 대신해줄 엄재경이라는 반짝이는 재능을 지닌 스토리작가까지 곁에 있었으니 핑계거리도 완벽했다. 그러니까 나는 잘 못 두는 바둑을 배우는 게 두려워서 장기에 더욱 집착했던 어린 시절 모습 그대로, 스토리가 무서워서, 스토리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스토리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 조금은 지나칠 정도로 ‘연출’이라는 영역에 집착했던 것이다. 이 얼마나 비겁한 모습인가!

공개적으로는 처음 고백하는 사실인데, 나는 1993년 <마이러브> 연재 초기에 군에서 전역한 재경이를 유혹해 스토리작가의 삶을 살게 만들어버린(그때까지의 행보로 보면 그는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그날 이후 1999년 <까꿍>을 끝내기로 결심하던 그 순간까지, 스토리를 쓰는 일은 평생 죽마고우인 재경이에게 의존하며 살자고 생각했더랬다. <까꿍>을 끝내고나서 홀로 만화의 모든 영역(글, 연출, 그림)을 감당하자는 각오가 서고 나서야 이야기를 만드는 법을 전문적으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데뷔 7년차를 넘긴 그때서야 ‘시나리오작법서’를 처음으로 손에 들었으니, 지금 돌이켜 생각해봐도 ‘스토리’로부터의 나의 도피 행각이 제법 집요했구나 싶다.

어쨌거나 <까꿍>을 때려치운 그날 이후부터 지금까지 완성도를 떠나서 나는 나 홀로 모든 작품의 스토리를 감당하고 있다. 그리고 더는 ‘연출, 그림 / 이충호’라는 표기를 고집하지도 않는다. 이유가 없어져 버렸으니 그럴 이유가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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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그렇다면 나는 왜 데뷔 7년이 흐른 어느 날, 어찌 보면 조금은 늦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시점이 되어서야 갑작스럽게 스스로 스토리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일까? 딱히 벼락을 맞을 만큼 충격적인 일이 있지도 않았는데, 당시 나는 어떤 깨달음 같은 걸 얻었기에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된 <까꿍>을 끝내면서까지 스스로 스토리를 쓰려 했던 것일까?

작년 여름 모출판사로부터 ‘에세이집’에 ‘만화작법서’를 플러스한 묘한 책을 만들어보자는 흥미로운 제안을 받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화가 아닌 글로 나를 표현한 책을 만들다니, 재미있을 것 같다’는 정말 쌍둥이자리다운 단순한 호기심으로 덜컥 계약서에 도장부터 찍었더랬다. 하지만 호기심만으로 ‘글’이란 게 써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한때는 ‘글쓰기’가 두려워서 만화스토리로부터도 달아나던 내가 언감생심 ‘에세이’라니, 아무리 <까꿍> 연재중단 이후로 ‘글쓰기’에 대한 태도가 적극적으로 변했다 해도 호기심이 과했던 게 아닌가? 지금 이 순간에도 에세이 마감을 위해 노트북을 붙들고 있는 손등 위로 눈물을 떨구며 처절하게 반성하고 있다. 어쨌든 저질러놓은 일이니 감당은 해야겠고, 계약 이후 지금까지 공부 차원에서 이런저런 글쟁이들이 쓴 에세이들을 닥치는 대로 읽고 있다(물론 그렇다고 글쓰기 스킬이 갑자기 일취월장 할리야 없겠지만 정신적 위안 차원에서). 최근 들어서는 소설가 김연수가 쓴 에세이를 빙자하고 있지만, 사실은 ‘창작의 비밀’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 기묘한 작법서(?)인 <소설가의 일>을 홀로 식사할 때마다 한두 챕터씩 읽고 있는데, 그 책의 내용 중에서 비평가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을 보았기에 여기에 옮겨본다.

 

“비평가들은 하렘의 환관과 같다.”

김연수가 아니라 아일랜드의 작가 브랜던 비언이 했다는 말이다. 그가 비평가들을 하렘의 환관이라고 한 이유는 명쾌하다. 매일 밤 그곳에서 그 짓을 지켜보고 그래서 그 짓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 짓을 할 수는 없는 하렘의 환관과, 소설을 쓰지도, 영화를 만들지도, 만화를 그리지도 못하면서 그 누구보다 쓰고, 만들고, 그리는 법에 대해서 이론적으로는 잘 알고 있는 비평가가 같은 운명에 놓인 존재라는 거다. 아마도 짐작컨대 독설의 진한 농도로 봐서 브랜던 비언은 비평가들에게 꽤나 씹히고 상처를 받았던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독설임을 떠나서 비평가라는 존재들의 태생적 한계를 제대로 지적하고 있으니, 끊임없이 쓰고 그리고 또 그래서 늘 씹힐 수밖에 없는 입장의 창작자 중 한 사람으로서, 그의 적절한 비유에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내 만화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평가질을 해대는 비평가란 존재가 그다지 마뜩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필요성에 대해서 딱히 부정할 생각은 없다(게다가 굳이 비평가들의 본거지나 다름없는 ‘critic M’ 지면을 빌려서). 기왕 이야기를 시작한 김에 ‘하렘의 환관’을 조금만 빨아주자면, 나는 개인적으로 그들이 환관이기 때문에 하렘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너무 왕성한 욕구로 인해 그 짓을 하는 데만 집중하느라고 자신의 그 짓이 얼마나 허접하고 서툰지 잘 모를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태생적 한계로 인해 다양한 사람들의 그 짓을 관찰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놓인 ‘하렘의 환관’들은 어떤 이들의 그 짓이 더 훌륭하고 또 후진지가 객관적으로 잘 보일 테니까, 우리들의 그 짓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평가를 듣고 자신의 그 짓이 어떠했는지 돌아보고 ‘아, 너무 토끼처럼 달려들었었구나’라고 반성하기도 하고 조금 더 부드럽고 섬세한 그 짓에 대해서 머릿속으로 스토리와 콘티를 짜보고, 그러면서 조금 더 다양한 그 짓으로 발전시켜 나가다보면 비로소 자신만의 그 짓을 제대로 그릴 수 있게 되는 날이 오는 게 아닐까 싶다. 그게 환관의 힘이며 그들이 하렘에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쨌든 지금 이 시점에서 굳이 비평가의 존재가치에 대해서 장황하게 떠드는 건 상당히 생뚱맞아 보일 테니, 이쯤에서 옆길로 걷기는 그만두고 원래 가려던 큰길로 돌아가서 ‘스토리작가’에 대해서 계속 논해보자. 비평가가 하렘의 환관이라는 비유가 마음에 들어서 슬쩍 빌려다가 쓰려 했는데 덕분에 구라가 조금 늘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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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가 ‘하렘의 환관’이라면 내 경험에 비추어보았을 때 ‘만화 스토리작가’는 ‘영원한 수컷’이다. 이 ‘수컷’들은 태생적으로 그 짓을 할 수 없는 슬픈 조건의 환관들과 달리 욕구가 왕성해서 그 짓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열심히 하고 다닌다. 자신이 잘하느냐 못하느냐를 환관들이 몰래 보고 씹어대든지 말든지 관심을 가질 여유도 없이 이 수컷들은 그 짓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절대로 멈추지를 못한다. 게다가 대부분이 매력적인 달변가여서 여성의 머리를 설득하고 유혹해서 비교적 쉽게 침대에 눕히고는 한다.

왠지 어디선가 불공평하다며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하렘의 환관’이라는 비유는 ‘비평가’에 대한 신랄한 독설을 담고 있는데, 그에 비해 ‘만화 스토리작가’는 ‘바람둥이 수컷’이라는 비유는 독설이라기보다는 칭찬에 가깝지 않느냐고. 글쎄…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창작의 영역에서, 또 어찌 보면 그냥 우리 인생사에서도 영원히 수컷으로만 산다면 하렘의 환관과는 또 다른 종류의 공허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수컷은 암컷의 몸을 빌려야만 아기를 볼 수 있다. 절대 아기를 몸에 잉태하는 기쁨을 알 수 없으며, 출산의 고통 또한 모른다. 그들은 그저 수억 개에 달하는 정자들을 마구 뿌려댈 뿐, 절대로 자신의 힘만으로는 제대로 된 완성의 경험을 누리지 못한다. 그리고는 모든 ‘수컷’이 그러하듯이 결과는 암컷에게 맡겨두고 또 다른 암컷을 찾아서 떠난다. 언뜻 보기에 무책임한 삶이 화려하고 멋져 보일 수도 있겠지만, 평생 잉태와 출산을 경험해보지 못하고 여기저기 방황하며 사는 ‘영원한 수컷’의 삶에는 ‘하렘의 환관’ 못지않은 슬픔이 배어 있으리라.

스토리작가들은 그림 작가들의 아름다운 손을 빌리지 않고는 절대로 최종 결과물인 만화원고를 만날 수 없다. 그래서 스토리작가들은 수컷 공작새가 꽁지깃을 화려하게 펼쳐 암컷 공작새를 유혹하듯이, 끊임없이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들어서 그림 작가들에게 들이밀어야만 한다. 그 것이 수컷의 운명이자 또한 한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까꿍>을 끝낸 이유는 수컷(스토리작가)인 재경이의 꽁지깃이 암컷(그림 작가)인 나의 눈에 더 이상 화려하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인가? 그건 아니다. 당시 재경이의 스토리는 여전히 자극적이었고 내 머리를 설득할 만큼 충분히 화려했다. 오히려 문제는 내 몸의 변화였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속의 ‘자궁’이 ‘머리’에서 ‘심장’으로 옮겨가버린 거다. 나는 언제부턴가 머리를 설득하는 게 아니라 심장을 두근거리게 해야만 아기를 가질 수 있는 몸이 돼버렸다. 하지만 재경이는 내 심장까지 뛰게 만들지는 못했다. 사실 이건 재경이의 한계가 아니라 스토리작가라는 정체성의 한계이고, 더 근원적으로 들어가면 내 심장의 한계이기도 하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나의 경우에 한정해서 이야기를 하자면(절대 보편적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날 이후 어떤 스토리작가가 쓴 글에도 나의 심장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 심장을 움직일 스토리는 누가 가지고 있는가? 이쯤에서는 이미 다 눈치 챘겠지만 그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렇게 <까꿍>은 끝나버린 거다. 그렇게 재경이와 헤어진 거다. 그리고 내 심장을 뛰게 할 이야기를 직접 쓰기 시작했고, 어느 날부턴가 홀로 아기를 가질 수 있는 ‘자웅동체’ (이 표현을 보고 곁에 있던 누군가가 비웃음을 터뜨렸지만 딱히 대안이 없어서 그냥 쓰기로 한다)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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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재경이의 거듭되는 강요에 못 이겨서 재경이가 스토리를 쓰고 있는 <마법스크롤 상인 지오>라는 네이버 웹툰을 봤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이미 사석에서 재경이에게 충분히 한 바 있으니, 굳이 이 짧은 지면을 할애해서 다시 떠들 필요는 없으리라. 다만 나를 발끈하게 한 댓글에 대해서 한 마디만, 아니 두세 마디만 해보자. 그 댓글은 엄재경이 발표한 새 작품의 스토리를 칭찬하기 위해서 상대적으로 이충호의 스토리는 별로라는 식으로 비교하고 폄훼하는 방식의 뻔한 패턴의 댓글(재경이 입장에선 선플, 내 입장에선 악플)이었다. 패턴이 뻔하건 신선하건 상관없이 100% 장담하건대, 모든 악플에 대해서 모든 웹툰작가는 내상을 입는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심지어는 그게 내 이름을 걸고 연재하는 내 작품의 댓글창이라면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 텐데, 다른 작가의 작품이었고 댓글창이어서인지 그 충격이 더 심했다. 웹툰작가들은 경험을 통해 충분히 이해하리라 믿지만, 일반 독자들에게는 낯선 상황이니, 그들의 감정이입을 돕기 위해 만화적인 상상력을 조금 발휘해서 설명해보기로 하자. 가령 당신이 영화관에서 즐겁게 영화감상을 끝내고 평온한 마음으로 자막 올라가는 걸 보고 있는데, 갑자기 자막 속에 당신에 대한 욕설이 뒤섞여서 나온다면 얼마나 황당한 기분이겠는가? 그 순간 당신이 느낄 충격과 98%쯤 유사하다고 생각해주면 될 듯싶다.

나는 여전히 그 댓글이 그저 한 개인의 주관적인 생각이라고 애써 무시하고는 있지만, 내가 받은 상처와는 별개로 어쩌면 그 댓글의 내용이 객관적으로 옳은 평가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엄재경의 스토리가 이충호의 스토리보다 뛰어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재경이는 이런저런 자리를 통해서 “이충호에게 만화를 배웠다.”라고 말하곤 한다는데, 그런 측면에서 보면 나야말로 “엄재경에게 만화스토리를 배웠다.”고도 말할 수 있다. <마이러브>와 <까꿍>을 연재하는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재경이의 스토리를 받아서 검토하고 훈수 두고 수정도 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내게는 스토리를 보는 안목이 생겼고, 직접 쓰고 싶다는 욕구도 생겼으니 말이다. 그러니 어찌 보면 만화스토리로만 놓고 보자면 엄재경이란 작가가 나의 스승인 셈인데, 감히 예의 없이 스승의 머리꼭대기 위에 올라앉을 생각은 없다. 그러니 ‘엄재경의 스토리 vs 이충호의 스토리’의 승자는 제자인 나의 양보로 스승님인 재경이가 승리한 것으로 해두자.

끝! 정말? 그렇다면, 그 악플러가 남긴 댓글처럼 단순하게 ‘스토리가 빈약한 이충호를 엄재경이 구원하는 방식’으로 정리하면 되는 건가? 앞으로 나는 다시 예전처럼 재경이의 스토리를 받아서 만화를 그리면 되는 건가?

아니, 그럴 수는 없다. 이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만화를 만드는 일이 스포츠 경기도 아니고, 누가 더 빨리 달리고, 누가 더 멀리 던지느냐로 승패가 결정 나고 상황이 정리될 수는 없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더 뛰어나다고 말하는 스토리가 아니라, 나의 심장을 자극할 스토리를 원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나 홀로 만들어낸 나만의 아이들인 <무림수사대>나 <이스크라>가 재경이와 함께 작업했던 <까꿍>이란 아이만 못하다고 해도(대중적 성취만 놓고 비교하자면 사실이 그러하다) 어쩔 수가 없는 거다. 이건 엄재경이라는 스토리텔러가 이충호라는 스토리텔러보다 재능이 있고, 없고의 문제거나 그의 스토리가 객관적으로 내가 쓴 스토리보다 뛰어나다거나, 혹은 부족하다거나 하는 문제와는 다른 별개의 이야기이다. 머리가 아닌 심장에 대한 이야기이니 머리로 생각하지 말고 심장으로 이해해주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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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자신에게 과연 내가 말하고 싶은 게 있나 물어 보아야 한다.”

 

영화 <택시 드라이버>의 감독 ‘마틴 스코시즈’가 언젠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나 아닌 다른 그 누구에게 물어볼 수 있겠는가. 나의 이야기, 나의 만화인 것을. 나의 의도가 정확하게 드러나는 신을 구상하고, 나의 자아가 뿜어져 나오는 대사를 쓰는 기쁨을 어떻게 포기한단 말인가? 나 자신을 하나하나 발견해나가는 과정이 바로 거기 있음을 내 심장이 느끼고 있는 것을.

물론, 다른 작가들은 다를 수도 있다. 어떤 그림 작가는 스토리작가의 글에 심장이 마구 뛸 수도 있고, 또 어떤 스토리작가는 여러 만화가들의 심장을 자극하는 멋진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스토리작가도(수컷), 그림 작가도(암컷), 만화가(자웅동체)도 제각각 자신의 선택과 길이 있고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나의 개인적 경험이 절대적이라고 우길 만큼 인생 공부가 짧지는 않다. 정답은 없음을 나 역시 잘 알고 있으니, 각자 자신의 선택을 믿고 묵묵히 그 길을 가보면 되리라.

하지만 다른 이들이 어떤 길을 가는 가와는 상관없이 내 심장은 언제부턴가 나의 스토리로만 자극을 받도록 변해버렸다. 피곤하게도 내 심장이 그리 생겨먹은 관계로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재경이와 눈물의 이별을 하고, 안타깝지만 너무나도 아끼던 <까꿍>이란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었던 거다. 나의 선택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만큼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딴에는 꽤나 애쓰며 살고 있다. 지구가 종말을 맞이할 뻔했지만 <까꿍>만 끝나고 말았던 1999년 그날 이후, 또 본격적으로 나의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한 2007년 웹툰 데뷔 이후, 지금까지 스토리작가로서도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 느리지만 하나씩 공부해나가는 중이다. 만화가로는 중견 소리를 듣고 있지만 스토리작가로는 아직 서툴다는 사실을 매순간 자각하며 경계하고 있다. 새로이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신인 스토리작가라는 마음으로 인물 한 명 한 명을 보듬고, 상황과 대사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다듬고 살피고 있다.

조금 피곤하지만 어쩌겠는가. 혹시 내일 지구 종말이 온다 해도 생겨먹은 대로 이리 살아야지. 나는 사과나무 한 그루가 아니라, 스토리나무, 연출나무, 그림나무, 세 그루의 나무를 다 심다가 종말을 맞이하고 싶으니.

 

ps. 그럼에도 불구하고 <까꿍> 2부는 반드시 재경이와 함께 할 것이다. <까꿍>은 엄재경과 이충호, 두 사람이 함께 만든 우리들의 아이이므로 끝까지 함께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면서 혹시나 하는 기대는 하고 있다. <까꿍> 2부의 스토리로 재경이가 내 심장을 뛰게 해줄지도 모른다는.

이충호

만화가. 철들지 않는 소년의 마음으로 하루하루 늙어가는 육체를 갈군 결과 23년째 주간 마감을 쉬지 않고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만화가 중에서는 ‘만화가 이충호’가 가장 내 취향의 만화를 그리고 있어서, 게다가 아직도 서툰 만화가인 내가 다음 작품에서는 얼마나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줄지가 궁금해서, 오늘도 이 짓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완성형 만화가는 꿈꾸지 않는다. 다만 다음에는 지금보다 조금 더 잘 쓰고 잘 그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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