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다의 #내일 #로맨틱 #성공적 은 백 과장의 목숨에 달렸다! _<죽어도 좋아>

by -
0 712

<죽어도 좋아>는 여주인공 이루다가 같은 직장의 ‘알뜰하게 못돼 처먹은’ 백 과장과 겪게 되는 기묘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느 날부터 누군가가 품은 백 과장에 대한 증오심이 마음속에서 폭발할 때 실제로 백 과장이 죽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것만으로 충분히 기묘한 사건이지만 더 놀라운 것은 백 과장이 죽으면 타임리프가 발생해서 이루다의 하루는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루다는 비일상적인 타임리프를 멈추려 하지만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001002003

백 과장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죽어도 좋을 쓰레기’같은 언행

 

<죽어도 좋아>가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을 따른다면 이 기묘한 사건은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이 사랑의 결실을 맺으며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이 만화에서 여주인공 이루다와 남주인공 백 과장이 사랑에 빠지는 것은 그렇게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는다. 만에 하나, 이루다의 노력으로 백 과장이 개과천선하는 과정에서 사랑에 빠진다 해도 독자들이 쉽사리 납득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백 과장의 언어폭력은 여성이라면 모두 주먹을 불끈 쥘 정도의 수위이기에, 이미 그에 대한 이루다의 분노가 여성 독자의 공감을 샀기 때문이다.

004005006

누군가가 백 과장에 대한 증오심를 품으면 백 과장은 죽고 같은 하루가 반복된다.

 

그러나 여성과 남성의 사랑이 주요 테마인 로맨틱 코미디물에서 둘 사이에 그 어떤 방해물이 존재한다 해도 사랑에 빠지는 것은 흔한 사례이므로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두 주인공의 사이가 틀어져있을수록 사랑을 이루게 되는 극적 효과는 강화된다. 이것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등에서도 수도 없이 반복되었던 것으로, 오해로 인한 사건과 사건 해결로 이어지는 사랑의 공식이다.

상기해보자면,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에게 다아시는 오만하고 재수 없는 귀족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편견들이 사라질 때마다 사랑스러워지는 츤데레 다아시의 모습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자의식이 강한 여주인공과 그를 무례하게 대하는 지위 높으신 남자 주인공의 성격은 <죽어도 좋아>에서도 일치한다. <죽어도 좋아>의 백 과장은 아직 장점이 부각되지 않았지만, 서서히 그에 대한 일면들이 나타난다면, 다아시만큼의 아우라를 갖고 독자들을 납득시킬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 타임리프는 쓰레기 같은 백 과장의 언행을 ‘다시보기’ 할 수 있는 중요한 모티프이다. 여러 상황들을 반복해서 볼 수 있다면 백 과장의 언행을 입체적인 각도에서 조망하는 것이 가능하다. 작품에서 다양한 환경에 처했을 때 캐릭터의 반응을 묘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많은 시간과 분량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표현은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많은 부담이 되지만, 타임리프는 같은 환경을 각도만 바꿔 계속 반복하기에 그 부담을 덜어준다. 이미 대부분의 흐름을 알고 있기에 바뀐 부분만 잡아내면 되고 그에 따른 캐릭터의 바뀐 리액션만 확인하면 되기에 단순하면서 압축적으로 캐릭터의 입체성을 표현할 수 있다. 설령 과장이 죽어도 좋을 만큼 암적인 존재라 할지라도 반복되는 상황을 통해 입체적으로 살피다보면 결국 더 나은 모습, 본심, 본질을 보여줄 수 있고 그것이 나중에 극적인 반전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타임리프 속에서 이루다가 한결같이 좋아하는 상대는 다른 사람이기에 백 과장의 개과천선과 이루다와 화해, 사랑과 같은 극적인 반전은 쉽사리 예측할 수 없다.

007008009

타임리프의 맥락을 파악한 이루다는 이 게임의 승자가 될 수 있을까?

 

예측이 어려운 것은 <죽어도 좋아>가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내재된 의미가 남녀 간의 사랑만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타임리프는 썸남과의 로맨스마저 제자리에 머물게 하므로 이루다에게 백 과장 살리기 퀘스트는 반드시 성공적이어야만 한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점은 이루다가 타임리프를 겪는 과정 안에서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내일의 안녕을 위해 참기만 했던 이루다의 행동은 타임리프가 없어도 같은 하루가 반복될 뿐이었다. 오히려 타임리프를 경험하며 내일에 대한 걱정 없이 백 과장의 언행에 적극적으로 맞서자 타임리프에서 해방되고 이루다의 미래는 발전적으로 변한다. 즉,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참는 것보다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행위가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010011

백 과장의 언어폭력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순간 백 과장의 죽음과 타임리프를 막을 수 있다.

 

또한 이루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움직임은 비단 개인의 로맨스를 발전시키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백 과장이 언어폭력을 하는 순간을 급습하여 백 과장의 죽음을 방지할 수 있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루다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백 과장의 언어폭력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노력한다. 이루다의 고군분투는 백 과장을 향한 증오심에서 출발했고 자신의 미래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나아가 대립적인 관계를 풀어가는 소통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어쩌면 골드키위새 작가가 설정한 ‘로맨틱’은 남녀 간의 사랑보다 더 큰 범주의 것일지도 모른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남녀 주인공의 관계는 대립적이지만 서로에 대해 마음을 열고 소통하면서 이해하고 사랑에 빠진다. 남과 여, 신세대와 구세대, 가진 자와 못가진 자. 세상에는 대립되는 관계들이 너무 많다. 그러나 이들이 서로에 대한 편견만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소통하게 되면 우리 사회는 좀 더 로맨틱하게 변하지 않을까? 세상을 로맨틱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이루다가 타임리프에서 빠져나오는 것과 관계된 것이라면 우리는 어찌 이루다를 응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것만으로도 <죽어도 좋아>를 정주행할 이유, 계속해서 다음 화를 기다려야 할 이유는 충분할 것이다.

홍난지

만화가 왜 재미있는지를 그럴 듯하게 설명하려고
공부하다 보니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명이 아니라 진짜 만화박사가 되기 위해
아직도 노력 중이다.

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