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회귀 세계에서 롤러코스터 타기 <전자오락수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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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오락수호대>는 ‘게임’을 소재로 한 독특한 만화다. 게임요소가 이야기 사이에 삽입된 작품들은 많지만, <전자오락수호대>처럼 게임 그 자체를 구현한 만화는 드물다. 이 작품은 단순히 게임 재현에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가 게임 설정과 세계관을 충분히 인지하고, 그것을 능숙하게 다루고 있다.

가령 <전자오락수호대>에는 다양한 장르의 게임들이 배경으로 빼곡히 들어서 있으며, 특히 RPG 게임은 이 작품의 주요 서사로 기능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작품의 매력적인 점은 게임을 사용하는 방식에 있다. 제목에서 보여주듯 <전자오락수호대>는 ‘게임 수호’, 즉 게임이 관리되고 진행되는 과정을 만화로 담아냈다. 즉 게임을 관리하는 ‘Operating system’을 ‘수호대’로 의인화하고, ‘게임’ 공간을 다양한 캐릭터가 살아 숨 쉬는 ‘세계’로 확장시킨 것이다. 게임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매력적인 요소다. 하지만 이런 설정은 반대로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는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즉 이 글을 읽기 앞서 게임에 대한 이해가 간략하게나마 선행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게임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딛기 전에, 비록 지루한 과정이지만, 이 작품의 설정을 우선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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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오락수호대> 설정의 핵심은 게임 세계를 수호하는 것이다. <전자오락수호대>의 거대한 세계 안에는 ‘수호대’가 지켜야 할 다양한 게임 세계가 존재한다. 여기서 게임 세계는 실제 세계가 아닌 만들어진 세계다. 그래서 각 게임에 진입하는 주인공은 자신이 게임 일부인지를 인식하지 못한 채 게임 설정에 따라 움직인다. 이때 ‘수호대’는 게임 주인공이 눈치 채지 못하게 게임 내 모든 아이템과 캐릭터를 공급하면서 게임을 진행시킨다. 만약 이러한 비밀이 주인공에게 발각되면, 주인공은 이탈하고 그 게임은 사라져버린다. 마치 ‘트루먼 쇼’처럼 전자오락수호대의 목표 역시 게임 세계를 비밀리에 관리하고 지속시키는 것이다.

<전자오락수호대> 주인공 ‘패치’는 이 같이 게임 세계를 관리하는 ‘전자오락수호대’의 팀장이다. 그는 짧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게임들을 완벽히 수호한 입지적 인물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커다란 결점이 있다. 그는 임무를 수행할 때 ‘매뉴얼’에서 벗어난 예외적 상황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일을 매뉴얼대로 진행시키기 위해 동료들을 지나치게 압박한다. 이 후 그는 부하 ‘치트’의 음모에 말려들고, 이 때 게임 내 돌발 상황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해 결국 게임 수호에 실패하고 만다. 그 결과 그는 핵심 요직인 ‘모바일 게임’에서 이제는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고전게임’으로 좌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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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입문-귀환, 영웅의 여정
<전자오락수호대>는 ‘영웅서사’라는 고전적 서사 방식을 따른다. 여기서 영웅서사는 영웅이 일상세계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세계로 모험을 떠나 마지막에 귀환하는 이야기다. 따라서 주인공 ‘패치 역시 영웅서사의 ‘피해자형 주인공’으로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모바일게임 세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인 ‘고전게임-용검전설’로 진입한다. 사실 영웅서사는 많은 작품에서 사용되는 이야기 구조다. 그래서 영웅서사의 전형성은 작품의 부정적 요소로 오인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서사의 반복성이 아니라, 작가가 이 고전적 서사를 어떻게 자신만의 시각으로 변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자오락수호대>는 또 하나의 매력적인 영웅서사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

이 작품은 두 개의 영웅서사를 동시에 진행시키는데, 주인공 패치의 이야기와 그가 관리 하는 고전게임 ‘용검전설’ 이야기가 영웅서사라는 동일한 소실점으로 수렴된다. 특히 용검전설과 관련된 RPG 게임 서사: “시골 소년이 모험을 떠나 마왕을 제거하고 세상을 구한다.”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영웅서사다. 다시 말해 <전자오락수호대>는 두 개의 톱니바퀴, 즉 자신의 누명을 벗고, 팀장으로 다시 복귀하는 ‘커다란 톱니바퀴’와 용검전설의 용사를 엔딩으로 무사히 이끄는 ‘작은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며 영웅서사를 전개시킨다.

 

고정된 세계, 묶여 있는 삶
영웅서사란 영웅이 성장하는 이야기다. <전자오락수호대>의 주인공 패치 역시 통과 의례를 거쳐 성장하며, 이 성장의 모습이 곧 만화의 주제다. 그렇다면 패치는 어떤 시련을 겪으면서 성장하게 될까? 그에 대한 답은 바로 게임 세계 그 자체에 내재해 있다. 게임은 단순히 작품의 소재와 배경만이 아닌, 주제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게임은 미리 규정된 알고리즘 내에서만 작동하는 변하지 않는 세계다. 즉, 게임은 견고히 고정된 세계다. 그래서 <전자오락수호대>의 세계는 끊임없이 반복 될 뿐 변화하지 않는다. 좌천되기 전 주인공 패치는 불변하는 게임 세계를 완벽히 수호했던 인물이다. 별명 ‘매뉴얼’이 암시하듯 그는 규정에 갇혀 어떠한 예외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한 변화 없이 정체된 삶의 문제는 패치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고전게임 세계의 많은 캐릭터들 역시 매뉴얼만 반복하며 타성에 젖은 생활을 할 뿐이다. 결국 주인공 패치가 극복해야 할 시련은 반복된 삶이 야기하는 경직된 생활과 이에 따른 무력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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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적대자들을 살펴보면 시련의 주제는 보다 명확해진다. 주인공을 위기에 빠뜨린 ‘치트’ 팀장. 그는 주인공의 대척점에 위치하지만, 그렇다고 주인공과 완전히 상반된 인물은 아니다. 그는 ‘기존 관습만을 고수하고 변화를 허용하지 않는’ 주인공 패치를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로, 주인공 내면의 ‘그림자’를 상징한다. 실제로 적대자 ‘치트’의 외양은 주인공 ‘패치’와 상당히 유사하다. 다만 ‘빛’을 상징하는 주인공의 붉은 머리칼과 달리, 그는 ‘어둠’을 상징하는 검은 머리칼을 가졌다. 치트는 패치의 대화에서 밝혔듯 ‘완벽을 사랑하는 인물’로, 패치의 무의식이 억눌러온 그의 또 다른 모습이다. ​한편 주인공의 또 다른 적대자인 용검전설의 최종 보스 ’흑룡‘도 주인공의 어두운 면과 관련되어 있다. 심리학에서 ’용‘은 자아에 속박된 ’자기‘를 상징하는데, 이것은 ’흑룡‘ 역시 변화를 거부하는 패치의 또 다른 그림자임을 의미한다. 그래서 <전자오락수호대>에서 흑룡은 ’너무나도 완벽한 나머지, 그 무엇으로도 상처 입힐 수 없는 존재‘ 즉 변화가 불가능한 존재로 설정되어 있다.

RPG 세계의 한 캐릭터는 주인공 패치에게 이렇게 묻는다. “아무 희망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평생 처음 같은 열정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이렇게 무한히 반복되는 게임 세계에는 허무주의가 짙게 배여 있다. 하지만 게임 세계는 단순히 무한히 회귀하는 세계가 아니다. 주인공과 동료들은 용사가 흑룡을 쓰러트리는 반복된 설정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매 게임마다 용사는 바뀌며, 이에 따른 그들의 선택도 바뀔 수 있다. 반복되는 순환운동 속에서, 그들은 능동적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는 주체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패치가 직면한 상황은 이 같은 차이와 다름을 생성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다. 용검전설의 세계는 전자오락수호대가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음으로써, ‘난잡함이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변한다. 또한 지금의 용사는 정상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기에는 너무나도 예외적인 존재다. 그는 적 캐릭터와 싸우기보다 그들과 친구가 되기를 원하며, 용을 증오하기보다 용이 왜 세상을 위협하는지 궁금해 한다. 이같이 변화가 존재하지 않던 게임 세계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주인공 패치 또한 이전과 다른 시각을 통해 자신과 세계를 변화시켜 나간다. 무한회귀 의 세계. 게임 세계는 이렇게 ‘패치’되어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세계로 변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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