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은 미묘하게: 지연되는 파국, 지속되는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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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은 미묘하게>는 ‘재앙’을 그린 일종의 재난 만화다. 재앙이라는 단어에서 ‘파괴되고 황량한 배경’의 작품이 예상되지만, 이 작품은 이와 달리 전형성에서 벗어나 ‘평범함 일상’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기존 재난 만화가 ‘지진‘, ’해일‘, ’바이러스‘등과 같은 ’극한 상황‘을 다뤘다면, <재앙은 미묘하게>에서는 아파트에서 발생하는 ’층간 소음‘ 즉 일상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층간 소음은 재앙과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상‘과 ’재앙‘의 조합이 낯선 것만은 아니다. 한국 사회의 트라우마가 된 지난 사건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거리를 걸을 때, 차를 타고 갈 때, 건물 안에 머무를 때, 우리는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곤 한다. 이같이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도 재앙의 그림자는 어른거린다.

재난 만화는 ’재난‘과 ’인간‘에 초점을 맞춘 만화로서, 인간이 재난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다. 이 경우 재난 만화는 일반적으로 국가와 제도가 무너진 극한 상황을 통해 인간 본성을 탐구한다. 하지만 <재앙은 미묘하게>는 기존 재난 만화와 대조되게 재앙의 ’예외성‘을 강조하지 않는다. 대신 재앙은 어디에서나 편재할 수 있다는 생각 즉 재앙의 ’내재성‘에 초점을 맞춘다. 이 경우 ’무너진 세계‘ 대신 일상의 ’특정 공간‘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래서 공간 탐구는 인간 본성 문제에서 더 나아가 특정 공간만이 가지는 독특한 특성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게다가 공간의 의미를 확장시켜보면 그 공간을 안고 있는 사회에 대한 논의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재앙은 미묘하게>는 이렇게 재앙과 일상이 뒤섞인 아파트 공간을 통해 현시대의 불안한 징후를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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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공간 정치학: 공적 윤리의 열세와 사적 욕망의 우세
<재앙은 미묘하게>를 이야기할 때, 이 만화의 핵심 단어를 ‘층간 소음’으로 꼽을 것이다. 하지만 층간 소음은 만화의 소재이지, 서사를 지배하는 근본요소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층간 소음이 왜 과잉되어 발생했는지, 또한 그것이 왜 지속되어 재앙이 되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 조건을 충족시키는 단어는 바로 층간 소음을 발생시키는 ‘아파트’이며 보다 엄밀히 말하면 그 공간에 거주하는 공동체 집단이다. 이러한 이유로 작품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아파트 공간과 이에 맞물려 있는 공동체의 특성을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아파트의 물리적 형태를 보자. <재앙은 미묘하게>의 아파트는 깊은 산속, 기괴하게 홀로 솟아있다. 또한 아파트 입구는 작은 터널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파트에 진입하려는 사람은 이곳에서 우선 차를 멈추어야 한다. 이것은 외부 세계를 차단하는 경계로서 아파트의 단절된 이미지를 강화시킨다. 이렇게 아파트 모습은 폐쇄적인 사회 또는 공동체를 연상시키며, 이것은 이후 이 공간에서 발생할 ‘타자의 배제’ 가능성을 암시한다.

다음으로 아파트의 내재적 속성이다. 아파트는 공공 공간의 열세와 사유 공간의 절대적 우세가 나타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박철수, 아파트-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 아파트 단지는 산, 하천 등 공공재를 독점적으로 사유화한다. 또한 뉴타운 정책에서 보여주듯 아파트는 때때로 재개발 지역 주민의 희생을 대가로 세워지기도 한다. 아파트 단지뿐만 아니라 아파트 내부 공간에서도 이 같은 사유 공간 확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아파트 내부 공간에서는 공공 거주 안정성을 희생시키는 대신 발코니를 온전히 가족 내부 공간으로 전용한다.

공간은 인간의 특정 행위를 유발한다. <재앙은 미묘하게> 역시 아파트 공간의 부정적 속성이 극대화되어 공적 윤리가 부재하고, 사적 욕망만이 가득한 아파트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층간 소음은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다. 위층과 아래층의 사적 공간 사이에는 거주자들이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공적 공간이 있다. 이 공간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만화 속 주민들은 소음을 발생시킬 수 있는 사적 영역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 공적 공간을 자신의 것으로 사유화하려 한다. 즉 층간 소음 문제는 사적 이익이 자신의 경계를 넘어 공공성을 ‘영토화’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야기 초반 괴물 같은 존재로 묘사되는 302호 가족은 사실 평범한 사람들이다. 다만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아파트 공간에 너무나도 충실히 적응한 사람들일 뿐이다. 결국 층간 소음 문제는 개인 몇몇의 ‘일탈’이 아니라 공동체 구조의 ‘모순’인데, 이것이 두 가구에서 시작된 층간 소음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비정상적으로 아파트 전체 문제로 확대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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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심해지는 층간 소음. 급기야 아파트 자체가 소음이 되는 풍경. 끔찍한 재앙이다. 하지만 욕망의 극대화 관점에서 보면, 아파트 주민들에게 공동체 갈등과 혼란은 재앙이 아닌 차라리 욕망의 해방구로서 ‘유토피아’에 가깝다. 유토피아와 통제되지 않는 욕망. 모순된 표현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잉된 욕망은 우리에게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다. ‘욕망’의 부정적인 뉘앙스를 누그러뜨리고 이 개념을 확장시켜보면, 아파트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반영한다. 가령 극단적으로 작동하는 아파트의 모습은 욕망 즉 이기적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 체제인 ‘자본주의’의 은유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아파트 공동체의 모습은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주민들에게는 이상적인 유토피아의 모습일 수 있으며, 그 결과 층간 소음은 멈추지 않고 지속된다.

이야기 중반 아파트 주민들은 공동체 생존을 위해 일시적으로 욕망을 억압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 내면에는 사적 욕망의 에너지로 가득 차있다. 소음을 규제할 때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차라리 모두가 시끄러울 때가 좋았어, 아니 그때처럼 행복할 때가 없었어.”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명령하지 마. 룰인지 뭔지 해보니까 귀찮기만 하고. 내가 왜 남들 눈치 보면서 쥐새끼처럼 지내야 하냔 말이야!”라고 하며 규제를 거부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은 사고로 데시벨 측정 데이터가 삭제돼 금기의 빈 공간이 생겼을 때, 억압된 무의식을 드러내는 꿈처럼, 아파트를 해방의 공간인 ‘카니발’로 변모시킨다. 그곳의 혼란스러운 풍경은 꿈과 환상의 세계 같다. 어른들은 그리스 제전의 레슬링 선수처럼 서로 뒤엉켜 있다. 또한 현장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한 청년은 옥상에서 희열에 찬 표정으로 키보드 연주를 하며, 아이들은 “신난다, 다 같이 족되는 거야!”라 외치고 폭죽을 터트린다. 그리고 이 전복된 풍경 속에서, 선글라스를 낀 302호 주민은 감자칩을 먹으며 이 향연을 만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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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제의, 지속되는 재앙
그들의 싸움은 계속된다. 층간 소음의 최초 당사자, 주인공이 싸움에서 이탈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멈출 줄 모르던 아파트 층간 소음이 갑자기 정지된다. 아파트 옆 축사에서, 소음으로 인한 소들의 폐사로 오억 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아파트 주민의 광기 어린 행동들이 ‘소의 죽음’ 즉 공동체 주변부를 황폐화시키고, 심지어 이로 인한 ‘손해 배상’으로 그들의 공동체까지 위협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파트 주민들은 욕망을 멈추기를 원치 않지만, 그렇다고 자신들을 파멸시킬 수는 없다. 그래서 그들은 욕망을 계속 분출시키면서도, 하지만 재앙의 파국에 이르지 않을 집단적 해결책을 모색하게 된다. 그것은, 공동체를 그들 자신의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고, 대신 폭력의 방향을 외부로 향하게 할 기획, 즉 ‘희생제의’다.

아파트 주민의 희생제의는 203호 거주자 ‘민주홍’에 의해 처음 제안된다. 그녀는 각 집마다 데시벨 측정기를 설치하고, 그 측정기로 일주일마다 소음을 측정하여, 매주 가장 소음을 많이 낸 사람에게 벌금 오천만 원을 내도록 하자고 말한다. 여기서 민주홍의 의도는 102호 아이와의 대화에서 드러나는데, 그녀는 “격투기를 좋아해. 근데 그와는 별개로 사람들이 그냥 싸우면 길거리 개싸움밖에 안되거든. 지속될 수가 없단 말이지. 그래서 경기엔 룰도 필요하고 대진표도 필요해.”라고 말한다. 그녀의 제안 즉 ‘희생제의’는 현재의 혼란을 정지시키는 것이 아닌,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서 공동체 폭력을 지속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그녀의 바람대로, 아파트 주민들은 매주 희생자를 찾아내, 그들의 폭력을 소수의 희생자에게 집중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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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주민들은 벌금을 강제하는 과정에서 희생제의 절차를 충실히 따른다. 희생제의 어원은 희생제물을 신에게 바치는 의식 즉 종교 의례에서 유래한다. 그래서 <재앙은 미묘하게>의 지하 회의실 벌금 발표 모습은 종교 의례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어두운 지하, 계단이 길게 뻗어 있다.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단단하게 닫힌 지하회의실 문 앞에 도달하게 된다. 그 문을 조심스럽게 연다. 벌어진 문틈 사이로 눈부신 빛이 새어 나온다. 그리고 벌금이 면죄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아파트 주민들의 모습이 차례로 눈앞에 들어온다. 지하실 앞 강단에는 아파트 주민 대표가 종교지도자처럼 제복 입은 관리 직원과 함께 엄숙히 서 있다. 종교 공간을 방불케 하는 이 장소의 광기는 벌금 당선자가 발표될 때 절정에 달한다. 프로젝트 화면에는 서커스 원숭이가 북을 치며 긴박감을 고조시키고, 막대그래프 형태의 각 가정의 데시벨 수치는 경쟁하듯 솟구쳐 오른다. 마침내 마지막 발표의 순간. 아파트 주민 대표는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며 마치 우승자가 발표된 것처럼 벌금 당첨자 이름을 크게 외친다.

여기서 아파트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작동하는 희생제의의 성격을 보다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희생자’의 성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만화 내에서 희생자는 표면적으로 소음을 가장 많이 발생시킨 사람이다. 하지만 희생자의 특성을 심층적으로 살펴보면, 그들은 집단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즉 아파트 공동체가 작동하는 과정에서 버려줘도 무관한 사람들인 것이다. 그래서 <재앙은 미묘하게>에서 희생자는 사회에서 배제된 ‘타자’들로 선택되는데, 실제로 만화 속 벌금 당선자들은 우리 사회의 소수자를 표상한다. 그들은 정상 가구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며, 여성,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처럼 하나같이 소수자다. 이들의 희생되는 방식은 이런 상징성을 더욱 또렷하게 드러내는데, 처음에는 발언권을 금지당하며(203호), 다음으로 행복추구권이 박탈당하고(403), 마지막으로 공동체에서 추방된다(102호). 특히 계급의 가장 아래 위치한 ‘경비원’의 경우 그 비극은 절정에 달한다. 그는 자신의 거주지인 경비실이 파괴당하고, 또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빚 때문에 가족이 위협받으며, 결국 인간적 모멸을 받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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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과 얽힌 층간 소음 문제는 ‘경비원’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허공에 매달려 있는 경비원의 모습. 그 아래 경악하는 표정의 아파트 주민. 재앙은 파국을 맞은 듯하다. 하지만 그것은 재앙의 끝이 아니다. 주인공이 다른 곳으로 이사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에 폭탄 테러가 발생한 것이다. 뉴스에서는 폭탄 폭발이 할퀴고 간 아파트 외관과 체포되어 발버둥 치는 범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범인은 예전 주인공이 살던 202호에 새로 이사 온 주민이다. 뉴스 안 그의 행동이 이상하다. 그는 분명 폭탄 테러 범인이지만 마치 피해자인 것처럼 아파트 주민들에게 분노를 쏟아낸다. 그렇다. 재앙은 끝나지 않다. 층간 소음은 여전히 아파트를 떠돌고 있으며, 아파트 공동체는 계속해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 있다. 이미 무너져버린 그들의 내적 규범으로는 폭주하는 욕망을 제어할 수 없다. 재앙은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파국에 이르기 직전 그들은 언제나 그랬듯 희생시킬 누군가를 찾아 나설 것이다. 뉴스를 바라보는 주인공 역시 이러한 불안한 미래를 예감한다. 그의 심장은 두근거린다. 귀마개를 꺼내든다. 그리고 그것을 천천히, 다시 귓속으로 집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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