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dcast003

 

 

3회 핵심 요약

 

1. 8월 2주차 베스트셀러 차트

8월2주차베스트

만골남의 선택

쿠사나기 미즈호의 「새벽의 연화」

이벤트 참여(문자)

010-3001-7506

 

팟빵 링크: http://www.podbbang.com/ch/9914

 

방송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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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골남03

“만화 골라주는 남자, 만골남 M씨!”

다시 한 주만입니다. 안녕하세요, 만화 골라주는 남자, 만골남 서찬휘입니다. 건강 조심하시라는 말씀을 계속 올린 주제에 제가 정작 장염에 걸리는 바람에 지난 한 주 내내 고생을 반복했습니다. 장염은 처음이었는데 이거 꽤나 괴롭군요. 속병 없는 걸 자랑으로 삼던 제가 요즘 슬금슬금 뭔가 걸려 나오는 게 많은 마당인데 더위 탓인지 나이 탓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날씨가 좀 더 시원해지길 바랄 따름입니다.

자. 지난 8월 12일부터 16일까지 5일 동안 부천 상동에서 BICOF2015, 제18회 부천국제만화축제가 열렸습니다. 지난 2회차에서 소개한 바 있는 오사 게렌발 작가의 7층도 개막식에서 부천만화대상 해외작품상 수상작으로서 시상대에 올랐습니다. 오사 게렌발 작가는 몸이 아파 한국에 오지는 못했습니다만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축하 말씀 전합니다.

「7층」은 데이트 폭력을 비롯한 숱한 여성 혐오, 여성 비하의 작동 원리를 작가 자신의 경험을 통해 드러낸 작품입니다. 단지 경험담을 늘어놓기보다, 폭력과 비하가 어떻게 성립하고 피해자가 여기에 왜 대응하지 못한 채 순응하게 되는가까지를 보여주고 있기에 더욱 지금 시점에 중요한 시사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요. 저는 나아가서 이 문제가 남성과 여성의 문제 이전에 인간이 타인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하지 않으려 드는, 그리고 누군가를 자기 아래로 두려 드는 데 따른 문제임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페미니즘이 단지 여성주의에서 그치는 개념이 아니고 여성 우월주의도 남성하대주의도 아님을 아는 데에도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7층」의 무대인 스웨덴이 그러하듯 이 문제가 단지 한국에 국한된 사례는 아닙니다만, 특히나 우리나라는 이 문제와 관련한 충돌이 격화하고 있습니다. 한국 남성들은 지금 어떤 면에서는 자기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러 왔던 말과 행동이 실은 어떤 것이었다-라고 하는 걸 보여주는 큰 거울 앞에 서 있습니다. 일부는 당황하기도 하고, 일부는 자중하고, 또 일부는 오히려 여자들은 어떻고!라면서 비분강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하죠.

제가 한 주가 지난 지금에 와서 이 이야기를 또 꺼내는 까닭은 지난주 겪었던 어느 경험 때문입니다. 이번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저는 「만화로 그리는 수다 : 여자」라는 제목으로 토크쇼를 진행했습니다. 지난해에도 만화가 여성분들을 세 분 모시고 <여자, 만화로 말하다>라는 토크쇼를 진행했는데요. 뭔 팔자인지 올해 비슷한 주제의 토크쇼를 한 셈입니다. 지난해 토크쇼가 만화가 여성들을 통해 만화가면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데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물었다면 올해는 여성이면서 만화가인 작가들의 작품 속 묘사와 가치관에 조금 더 집중해 보려고 했습니다. 의도는 그랬단 이야기에요. 보통 BICOF 행사들이 오후 5시 넘으면 거의 끝나는데 이 토크쇼는 오후 7시에 시작하다보니 사람이 좀 적긴 했어요. 오후 8시부터 마스다 미리 만화 원작인 영화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가 상영되는데 그에 앞선 일종의 부대행사였거든요. 올해 패널은 「숨비소리」의 휘이 작가님, 「뽈스토리」의 강현주 경위님, 그리고 지난해에도 함께 했던 「은주의 방」의 노란구미 정상미 작가님이었습니다.

근데 토크쇼가 대충 정리가 되고 관객 질문 시간이 됐는데요, 제일 먼저 손을 들어 마이크를 잡은 첫 질문자가 이러더라고요. 요즘 여성혐오 이슈가 많이 불거지는데, 그 원인은 여자들의 피해의식 때문이라고 말하더라고요. 얼마 전 이 문제를 몹시 이상하게 부각시켜서 논란을 일으켰던 PD수첩을 예로 들면서 방송에서도 그러던데-라면서 말하고는, 심지어는 그런 피해의식을 극복하기 위해 여성으로서 어떤 노력을 했느냐고 묻더랍니다. 관객 질문이라 그냥 자를 순 없어서 연결은 했지만- 진행자로서는 해선 안 될 일인 줄 알면서도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만”이라고 대놓고 말하긴 했는데, 하필 저런 사람을 질문자로 고른 죄가 있어놔서 작가분들에겐 죄송하더라고요. 그렇다고 남자라서 기회를 주지 말았어야 하나 하면 그건 또 아니고, 이건 저 사람의 문제인 거죠. 근데 이게 정말, 이런 이야기를 얼굴 들고 다니면서 할 수 있단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그러니까, 여성 혐오 문제의 원인을 여성들의 피해의식으로 몰아세우는 건데요. 성추행을 여자들 옷차림 탓으로 돌리는 거나 매한가지 논리입니다. 왜 이런 인식을, 왜 여성들 앞에서 드러내놓고 내보이며 대답을 강요했을까요. 여자들 피해의식 때문이라는 걸 인정하라는 식이죠. 지난 주에 「7층」 이야기하면서 마지막에 제가 뭐라 했냐면, “여성 혐오를 비롯해 인권 침해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 이들에게도 이 작품을 정말 보여주고 싶다, 그들의 표정은 닐의 표정과 많이 닮아 있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정말 책을 옆에 대고 보여주고 싶어집니다.

-라고만 하고 싶은데 이 한 주 사이에도 별 일이 다 있었죠. 연예인 유세윤이 달군 돌덩이 위에서 익혀 먹는 햄버그 스테이크 전문점 광고를 맡았는데, 그 영상이 논란을 일으켰죠. 영상은 익어가는 고깃덩어리와 봉춤 추는 여자를 연결지어놓고는 여자를 오버랩시킨 고깃덩이를 남자가 낼름 먹게 하고, 그 남자는 반대편에 앉은 자기 애인에게 얼른 구우라고 손짓하는 장면까지 연출합니다. 짧은 시간에 아주 여성 비하 요소를 농후하고 촘촘히 우겨넣었는데요. 같은 문제로 논란을 일으켰으니 자중해도 모자랄 마당에 이 사람은 대체 뭔 정신머리로 이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광고 노출은 되니 상관없다고 생각했을 수는 있는데, 그렇다면 앞서 일으켰던 여성비하 문제에 관해 반성 따윈 애초에 없었단 거죠. 이 사람은 부인이 가만 놔두는 게 신기하군요.

이 와중에 언프리티 랩스타란 프로그램에서 이름을 알린 제이스와 키썸이란 여자애들은 ‘김치녀’를 욕하는 여자로 자신들을 포지셔닝한 노래를 발표했는데요. 쇼미더머니에서 문제가 된 남자애랑 다를 바도 없습니다만 역시 여성 혐오 정서의 원인을 여성에게 두는 식의 발상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이 문제가 남녀 문제 이전에 그냥 인간 대 인간 문제임을 증명해주는 사례라 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여성 혐오를 비롯해 타인을 혐오 대상으로 만들려거나 그래야 버텨낼 수 있는 마음가짐이란 건 기본적으로 해당 이슈에 관한 생각을 안 하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근데 사실 이 생각없음이란 굉장히 정치적인 포지셔닝입니다. 그냥 무식해서가 아니에요. 대부분 고등학교 이상 나온 고등교육의 수혜자들인데 어디 무식해서겠어요? 그 모든 발상은 자기가 적극적으로 선택한 정치적 결정이에요. 그래야 유리하기 때문에, 그래야 이득이기 때문에, 그래야 자기가 우위에 있을 수 있어서. 그러니 남녀 문제만도 아닙니다. 저런 여자애들도 여성을 까서 이득이 있으면 까는 거예요. 우린 전부가 아니라 문제 있는 일부를 까는 거야라면서요. 결국 이득을 위해 누군가를 깔아뭉갤 수 있는 정신머리로 완성돼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게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온갖 모진 말과 조롱과 증오를 쉽게 내뱉을 수 있는 겁니다. 상대가 자기와 동등하지 않거든요.

가장 가까이에는 여성을, 그리고 점차 장애인, 동성애자, 백인 아닌 외국인 노동자들. 때론 이것들이 섞여서, 이자스민 의원에 관한 루머를 계속해서 복제하면서 이 외국인년을 쫓아내야 한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 식으로 나오기도 하죠. 명색이 진보 계열이라 자처하는 사람들마저 말이죠.

하루 하루 한 주 한 주가 그저 부끄러워 미칠 것 같습니다. 이런 걸 두고도 뭔가 말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건 또 다른 「7층」의 주인공들, 오사와 닐을 만들 뿐입니다. 그래서 좀 더 시끄러워져야 합니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말해야 하는 겁니다.

애프터 서비스 치고는 좀 길어졌는데요. 전하는 말씀 들으시고 이어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만골남 M씨는 만화 비평 전문 웹진 크리틱엠에서 제작합니다. c, r, i, t, i, c, m .com, 크리틱 엠.

 

 

“지난주 베스트셀러”

8월2주차베스트

네. 지난 한 주 가장 많이 팔린 만화책들을 소개하는 지난 주 베스트셀러 시간입니다. YES24, 알라딘,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의 50위권 베스트셀러 차트를 기반으로 합산해 뽑아낸 통합 차트로 여러분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8월 셋째 주 차트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순위부터 살펴 볼까요. 나루토 72권이 10위. 흑집사 21권이 9위. 원피스 77권이 8위. 니세코이 15권이 7위. 원펀맨 2권과 1권이 나란히 6위와 5위. 나츠메 우인장 19권이 4위. 명탐정 코난 86권이 3위. 그리고 열혈강호 67권과 원피스 78권이 공동 1위입니다.

밤을 걷는 선비가 결국 10위권에서 완전히 밀려 났습니다. 매주 수요일 목요일 편성 중인 TV드라마판은 20부작 예정에 8월 20일에 14회가 방영된다고 하는데요. 이제 7부능선도 넘겨 가는 와중에 끝발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참 아쉽군요. 아오하라이드 11권과 히스토리에 9권이 밤을 걷는 선비 11권과 함께 차트에서 내려갔고 그 자리에 나루토 완결권인 72권과 나츠메 우인장 19권, 열혈강호 67권이 올라왔습니다. 열혈강호는 참, 시작한지 20년을 넘겼는데도 신간이 나올 때면 여전히 힘을 발휘하니 히트 상품임에는 분명합니다. 근데 이제 어느 정도 후반을 향해 달려간다는 인상이 완연하긴 한데요. 어찌 마무리를 지으실지 참 궁금합니다.

요괴를 볼 수 있는 소년의 이야기 나츠메 우인장도 신간이 나오고 바로 4위에 올랐습니다. 이 작품도 꽤 고정 팬층이 조용하게 많은 작품이죠.

지금까지 지난 주 베스트셀러 차트였습니다.

 

“만골남의 선택”

네. 만골남의 선택,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요. 쿠사나기 미즈호 작가의 「새벽의 연화」입니다. 일본 작품이죠. 3회 째인데 한-미-일 골고루 건드리고 있습니다. 가급적이면 섞어가며 소개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새벽의 연화」를 처음 만난 건 애니메이션판이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IPTV로 애니메이션을 종종 보는데, 언젠가 이게 목록에 올라와 있더라고요. 아내가 먼저 보기 시작했고 저는 뒤이어서 일부를 좀 봤습니다. 여자애가 예쁘네. 강단 있네. 남자애들 멋있네. 용이라고? 어 저기 귀여운 남자애도 있잖아. 취향마다 하나씩은 걸리겠네.

……정도였죠. 처음부터 안 봤으니까. 그런데 흥미는 가더라고요. 특히나 여자애 표정이, 강렬했어요. 뭔가 예쁘장한 얼굴인데 가끔가다가 딱 보여주는 표정이 굉장히 깊은 거예요. 뭔가 사연이 많아 보이는, 뭔가 겪은 게 많아 보이는 그런 표정. 보통 나이 먹은 캐릭터에게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표정인데, 이걸 소녀가 보여주는 겁니다. 뭔가 재밌어 보이는데? 나중에 원작 한 번 볼까?

그리고 원작 만화책을 샀어요. 저희는 대체로 간을 볼 때엔 두 권 정도를 사다가 놓고 다음을 살까 말까 고민을 하는데요. 으음, 두 권을 사 놓고 순식간에 다 읽고요. 그대로 덕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재밌잖아 이거! 재밌잖아?! 그리고 서점에 갈 때마다 두 권, 또 두 권, 사놓다 보니 어느덧 최근권인 17권까지 쭉 샀지 뭡니까. 국내 발행 진도를 다 따라 잡고 다음권 언제 나오냐고 허덕이고 있는 거죠. 진짜 지금 딱 그런 느낌이에요. 다음권 언제 나와! 열 권 넘어가는 만화 가운데에서 요즘 저를 이렇게 달아오르게 한 작품이 흔치 않은데, 「새벽의 연화」는 정말 즐겁더라고요. 이런 만화도 꽤 오랜만이었습니다.

간단히 작품 소개부터 해 볼까요. 작품의 무대는 고화왕국. 불과 물, 바람, 땅, 그리고 왕족인 ‘하늘’까지 다섯 부족을 중심으로 하는 부족 국가입니다. 북으로는 계 제국, 남으로는 제와 진 나라와 경계를 맞대고 있습니다. 수도는 하늘의 도시란 뜻인 공도로 불리는 비룡성이고요. 이 고화 왕국의 유일한 공주인 연화는 다정다감하고 무기를 싫어하는 부왕과 호위무사인 학의 보호 아래 구김살 없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연화는 붉고 긴 곱슬머리를 지닌 아리땁고 조금은 철부지 같기도 한 공주님이죠.

그런 연화가 마음에 두고 있는 짝사랑 상대는 자기보다 세 살 위인 수원입니다. 지금은 죽고 없는 선대 임금의 아들이자, 현 임금의 조카입니다. 셋은 소꿉친구 사이로, 학은 연화의 상대가 될 자로는 수원만을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연화가 수원과 혼인하고, 수원이 다음 임금이 되면 자신이 그 오른팔이 되겠노라고 말했었죠. 그럴만큼 셋은 우애가 깊은 사이였습니다. 그런 말을 나눌 때까지만 해도 연화와 학은 자신들 앞에 어떤 일이 닥칠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연화의 열여섯살 생일, 어째선지 이상하리만치 궐 내가 조용하던 밤 연화는 수원을 향한 마음을 아버지인 일 임금에게 말하기 위해 부왕의 방으로 갔다가 그만, 보지 말았어야 할 광경을 보고 맙니다. 아버지가, 칼에 찔린 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칼로 찌른 건, 다름 아닌 수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입을 막기 위해서는 연화도 죽어야 하는 상황에, 낌새가 이상함을 알아챈 학이 뛰어들어 연화를 구해냅니다. 그리고- 성 밖으로 도망가게 되지요.

가장 연모하던 상대가 순식간에 살부지수, 아버지를 죽인 원수가 됐습니다. 곁에 있는 건 소꿉친구이자 자기 호위무사인 학 한 명입니다. 학의 고향인 바람 부족의 마을에서 신분을 숨긴 채 따스한 보살핌을 받지만, 수원은 불의 부족을 이용해 바람 부족으로 흐르는 물길을 막는 등 압박을 해 옵니다. 그런 이들을 끌어들일 수 없다는 마음을 먹자, 연화는 그곳을 떠날 결심을 굳힙니다. 그리하여 자신을 고향에 숨겨두고 홀로 떠나려는 학을 붙들고, 말합니다. “날 데려가줘”-가 아니라, “여기서 나갈 거야, 따라와”

…….

자. 아무 것도 모르는 철부지 공주는 이렇게 아버지를 잃고 궁궐 바깥으로 도망쳐 나와 온 나라를 숨어서 떠돌게 됐습니다. 살아 있단 사실 자체가 탑 시크릿에다 추격을 피할 수 없는 입장에 놓인 도망자. 일기당천인 학이 보호하고 있다지만 비극적인 운명에서 쉬 벗어날 길이 없어 보입니다. 소녀가 그저 아무 것도 모르는 공주로만 남아 있다면 말입니다. 이 작품이 재밌는 건 바로 이 대목입니다. 소녀가 비극적인 운명에 맞닥뜨리고 충격에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은 2권 정도까지가 거의 끝입니다. 지금 17권까지 나와 있는데요. 소녀가 운명에 맞서 싸워야지 하는 데에까지 발동이 걸리는 과정이 조금 길 법도 한데 연화 공주의 발동이 걸리는 데에는 2권 정도면 충분했습니다. 물론 어설프고, 애처로운 모습이 보이긴 합니다만, 작품은 연화를 ‘쫓겨난 공주’이자 ‘도망자’의 이미지에 가두지 않습니다.

사실 전 이게 진짜 재밌습니다. 연심 품고 있던 자가 살부지수잖아요?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임금이 됐거든요? 그래서 쫓겨났다면, 공주는 일단 힘을 모아서 복수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1차원적인 플롯이라면 아마 그럴 거에요. 복수하기 위해 파티를 짜고, 성을 공략하기 위해 계책을 짜고, 공성전을 벌여서 함락, 그리고 원수의 목을 따다가 걸어놓고 승리. 그리고 한바탕 웃으면서 울고 말이죠. 근데 연화는 도망쳐 나왔고, 어떻게 가야 할지 길을 찾기 위해 ‘신관을 찾아 묻는다’라는 퀘스트를 수행하고, 신관에게서 고화국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비룡왕 전설 속 네 용의 피를 물려받은 용의 전사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찾아 파티를 이룹니다. 쉽지만은 않지만 어쨌든 한 명 한 명 찾아나서고요. 그 과정도 장절하죠. 보디가드 격이자 극한 딜러 격인 학이야 기본 옵션이니 그렇다 치지만, 왕족을 좋아하지 않던 일종의 서포터 격인 윤의 마음을 얻기도 쉽진 않았습니다. 용은 또 어떻냐면, 기다려온 운명이라던 용도 있지만, 운명 따위 거부해주겠다는 용도 있습니다. 각자가 용의 능력을 타고 났기에 숭상받기도 하지만 거부당해 온 경우도 있어서 한 파티를 이루기란 쉽지 않은데, 연화는 진심을 다해 그들의 마음을 얻어 나갑니다.

그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면 연화의 포지션인데요. 도망쳐 나온 떠돌이 공주라는 비극적인 설정만 보자면 비련의 여주인공이고, 용들에게 보호받는 입장이고- 물론 보호는 받는데, 그저 보호 받기만 할 것 같잖아요. 근데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나가는 과정을 보면 자신의 지위나 계급에 얽매여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이 작품에서 대부분의 주변 인물이 연화를 이름으로 부릅니다. 스스로가 공주라는 사실에 얽매이지 않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단 한 사람만 빼고요. 학 말이죠. 보디가드였고, 연화를 이제는 원수가 된 수원에게 맡기고 자신이 그 등 뒤를 책임지려 들었던 입장인 만큼 지금의 학은 연화를 수원과 그의 나라 모두에게서 지켜야 할 사람이자, 그 모두가 연화와 그 아버지를 잊는다 하더라도 연화가 공주였음을 기억할 유일한 사람입니다. 주인과 종복의 관계이자, 그 어떤 마음도 보답받지 못하고 보답을 바랄 수도 없는 위치에 서 있음에도 그 등 뒤에 늘 있을 사람이죠. 그래서 이들의 파티는 신화 속 존재들이 함께 하는 운명적인 결합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굉장히 느슨하고 동등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연화는 학을 포함해서 모두를 동등하게 대하고 스스로도 동등한 입장에서 절대 보호받으려고만 하지 않고, 몸을 사리지도 않습니다. 아버지가 금지했던 무기를 잡으면서까지 자기가 남의 발목을 잡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유일하게 자신이 공주였음을 기억해 줄 학에게만은 마음 깊이 의지를 하면서, 남 앞에서는 자기 발로 서 있으려 애씁니다.

그런 소녀가 강력하기 이를 데 없는 파티 구성원을 모아서 무엇을 하느냐. 대충 다 모아놓으니 이제 복수극 시작이냐면 그게 또 아닙니다. 이 소녀는 그저 구김살 없이 아버지 아래에서 자라던 16살 이전의 자신이 몰랐던 지점에 맞닥뜨립니다. 수원에게 살해당한 아버지는, 자신에게는 그저 자상하고 인자하며 온화한 아버지입니다. 학은 연화의 아버지가 싸움을 말리기 위해 칼날을 손으로 잡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남몰래 손을 감추는 모습을 보며 이 사람은 그저 유약한 임금이 아니라고 보지만, 세간에서 연화의 아버지에 관한 평가는 ‘무능’이었습니다. 게다가 일 임금의 치세 동안 치안이 불안하고 역병이 돌아 황폐화한 곳이 있고, 탐관오리와 도적이 들끓기도 한 부분이 있습니다. 연화는 이 모든, 자신이 모르고 있던 또다른 일면에 맞닥뜨립니다. 그러면 기왕 구축한 강력한 용의 전사들 파티를 몰고 가서 원수를 쓰러뜨리고 자신이 임금이 되어 부조리를 고칠까요? 놀랍게도 연화는 이 대목에서 사회 밑바닥의 오류들에 관여하며 민생을 돌보기 시작합니다. 이들이 싸워나가는 방식은 공선전이 아니에요. 그렇게 뚜렷하고 명확한 목표로 나아가지 않아요. 연화는 먼 길을 돌며, 자기 아버지 대에서 불거진 오류에 눈돌리지 않고,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해 나가야 할까를 모색합니다. 이를테면, 도적 흉내를 내며 탐관오리들이 수탈하던 땅을 점거하고 위생과 기아 문제의 개선을 꾀한다든지 말입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는 이들에게 위협이 되는 역할을 하고, 마약을 들이려는 상인의 정체를 파헤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남기기도 합니다. “사치라면 어릴 때 실컷 해 봤으니 괜찮아요. 그 때 낭비한 물건과 버린 물건을 이곳에 가져왔더라면 좀 더 평등한 나라를 만들 수 있었을까.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있지만”

저는 이쯤되면 머리를 세게 얻어맞는 기분이었어요. 이 작품에서 왕을 시해하고 자신이 왕이 된 수원은 역설적으로 연화에게 당장 무찔러야 할 악이 아닙니다. 작품 내내 수원은 수완을 발휘하며 그 자신의 진용을 짜 내고 있습니다. 고집불통 장군의 마음을 사는가 하면, 역모를 일으키는 부족을 부수기도 합니다. 자기 손으로 죽였던, 세간에 무능이라는 딱지가 붙은 채 시체가 된 왕보다는 유능한 면모를 과시하고 있죠. 그리고 연화는, 그를 대상으로 왕위를 되찾아오기 위한 싸움을 하기보다 자기 아버지 대에 불거졌거나 해결하지 못한 면들을 찾아가며 이를 직시하고 눈돌리지 않으며 조금씩 해결해나갑니다. 국가란 무엇이고 통치자의 역할은 무엇이고 정치가 해야 할 일은 또 무엇일까. 영화롭고 명예로운 궁궐 안에서의 위치 또는 부족 권력의 위치에서 채 보이지 않는 민초들의 삶은 무엇일까. 진짜 민생은 무엇인가. 정치가 닿지 않는 곳은 어떤 모습이 나타나는가. 놀랍게도 「새벽의 연화」는 그런 지점들을 연화가 선택한 길목에 영리하게 배치하고, 거기에서 연화의 역할을 보호받아야 할 대상에 놓지 않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 작품이 굉장히 재미나고 흥미진진한 왕국 정치 드라마로 읽히는 한편으로, 소녀를 주인공으로 놓은 일본 소녀 만화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성 역할을 설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꽃미남이 창궐하는 여성 중심 하렘물로 굴러떨어질 수도 있을 법한 만화였다면 캐릭터의 매력만으로 가까스로 굴러가다가 적당한 시점에 하나 골라다 맺어지고 끝났어야 할 겁니다. 「새벽의 연화」는 17권에 이르는 시점에도 연화가 벌이는 자기 나름의 싸움을 올곧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물론 학의 연심을 적당한 양념으로 첨부하면서요. 뭐 그 정도는 있어줘야겠죠.

정치 드라마로서의 재미를 말해보자면, 여하간 연화는 그 지점에서 자기 나름대로 ‘국가’가 지니고 있어야 할 상을 몸으로 부딪쳐 배워나갑니다. 이제 원수가 된 수원은 자기 아버지가 누구에게 죽었는지를 알게 된 시점부터 복수할 의지를 다지면서 자기 나름대로 고화국을 어떤 나라로 만들어야 할 것인가를 그려왔습니다. 그리고 그 그림을 펼쳐보이고 있죠. 허허실실 작전 같지만 해야 할 때엔 확실하게. 그 모습 어디에도 ‘악역’으로 설정된 모습은 없습니다. 반면 연화는 그 수업을 밑바닥을 구르며 자습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죠. 연화는 어느덧 평등을 이야기하고, 모두를 동등하게 존중해 가면서, 몸을 아끼지 않고 부정과 오류를 고쳐나가려 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선선대 왕의 자식과 선대 왕의 자식이 서로의 국가관을 정립하고, 이를 실현시키려 해 나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수원과 연화는 피로 원수를 갚는 과정이 아니라, 이렇듯 자기의 정치를 해 나가는 과정으로 맞부딪쳐가고 있습니다. 갈수록 연화는 무시할 수 없는 흐름과 여파를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원 또한 이를 느끼고 있습니다. 아직 한창 극이 진행 중이고 마무리되려면 멀어 보이지만, 여기까지만 해도 이 작품이 얼마나 큰 규모의 이야기 덩어리 안에서 인물들을 굴리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야기의 힘이 참 오랜만에 만화를 보는 게 아니라 읽어내는 맛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성 역할 이야기를 보자면, 전 사실 이 작품을 보면서 내내 「환상게임」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순정만화, 소녀만화의 절정기라고 하면 역시 1990년대를 들지 않을 수 없을 텐데요. 1990년대 일본 소녀만화 가운데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작가를 꼽으라면 「내 남자친구 이야기」의 야자와 아이와 더불어 「환상게임」의 와타세 유우를 꼽을 수 있을 듯합니다. 이 가운데 「환상게임」은 국내에서 「판타스틱 게임」이란 제목으로 나온 해적판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애니메이션판도 투니버스 개국 초기부터 초호화 우리말 더빙과 더불어 화제를 모은 바 있죠. 이거 한국어판 주제가는 엉뚱하게 유명하죠? ‘조작’이란 표현을 ‘주작’이라 표현하면서 이 작품 주제가 첫머리 가사인 ‘날아오르라 주작이여 환상의 날개 날아오르라’가 자주 회자되던데. 여하간 그게 이 작품 겁니다. 뭐 중학생이 고등학생이 되고 고등학교 입학이 대학 입학으로 바뀌는 등 설정 변화가 좀 있긴 하지만요.

「새벽의 연화」는 사실 「환상게임」과 상당히 비슷한 구도를 띠고 있습니다. 현실 속 여자애가 사신천지서라는 책 속에 빨려들어간다는 설정만 아니면, 주작의 나라에 떨어져 그 안에서 소원을 빌기 위해 주작 7성으로 불리는 사람들을 찾아 규합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그 안에서 상대국인 청룡국 쪽과의 싸움이 일어난다는 점, 주인공 여자애를 중심으로 파티가 구성된다는 점…… 여러 면에서 「새벽의 연화」는 「환상게임」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다른 게 있다면, 주인공 여성을 어떻게 대하느냐입니다. 이 와타세 유우 작가는 여성 작가면서도 여자애들을 괴롭히지 못해서 안달입니다. 애초에 책 속 나라로 빨려 들어간 소녀들이 맡게 되는 역할이 무녀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 세계에서 무녀란 신수를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로서 처녀성을 지니고 있어야 하고요. 이 시점에서 여자애가 겪을 일들이 몹시도 명확하게 정리되죠. 여자애가 처녀성을 잃으면 그냥 게임셋입니다. 주인공인 미주, 일본어판에선 미아카죠. 이 여자애 친구인 유이도 책 속으로 빨려 들어오는데 책 속 세계에서 자기가 불량배들에게 겁탈 당했다고 믿고 이 착각을 이용당해 친구인 미아카를 증오하게 됩니다. 작품 속에서 여자애들을 어찌나 험하게 다루는지, 자주도 벗고 찢기고 겁탈 위기에 몰리고 아주 생 난리도 아니죠.

더 짜증나는 건 미아카 자체인데, 이 작품 한창일 때 사람들이 속 터져했던 게 이겁니다. 세상에 이런 대 민폐 캐릭터가 또 있었냐는 겁니다. 우유부단하고 능력도 없는데 보호받기만 하고 자기가 자기 스스로 뭔가 해낼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서 결국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가 막심합니다. 이런 애 보호한다고 다 판판이 죽어나가죠. 미아카는 정말 이런 점에서 자기 주체성이라고는 거의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여성으로 그려집니다. 그래서 판타지 로맨스라는 틀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은 채 끝나죠. 「새벽의 연화」에서 연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 모르던 공주님 같던 아이가 도망쳐도 될 법한 곳에서조차 도망치지 않고, 눈을 똑바로 뜨며, 인신매매범이던 관리를 쏴죽이기까지 합니다. 보호받아야 하기에 보호할 수 있는 이들이 모이는 게 아니라, 그 스스로 자기 사람들을 만들어 나갑니다. 자기가 약하다는 점을 투정하기보다 이를 극복하려고 합니다. 심지어 적이 자기 머리채를 잡자 이 소녀가 어떤 선택을 하냐면, 남자 품에서 칼을 뽑아다 냅다 자기 머리를 자릅니다. 와오. 2권만에 주인공 여자애가 자기 머리를 자기 손으로 잘라내요. 조금도 아니고 완전히 단발로, 그것도 칼로요. 이렇게 강한 잔잔하면서도 강렬하게 강한 16세 소녀 캐릭터가 전에 또 있었나 싶습니다. 전투미소녀도, 변신미소녀도 아니지만 연화는 그 자체로 굉장히 강합니다. 여성으로서, 강합니다. 「환상게임」을 재밌게 보셨지만 주인공 여자애에게 학을 뗀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새벽의 연화」는 매우 좋은 회복약이 될 겁니다.

물론 「환상게임」을 모르시는 분이라도, 지금 시대에 어울리는 여주인공의 모습을 만나보고 싶으신 분에게 적극 추천합니다. 게다가 왕국을 무대로 한 정치 드라마로서도 생각보다 짜임새가 좋습니다. 귀엽고 미형인 캐릭터들이 많이 나온다 하여 오해하실 수도 있는데, 그쪽으로도 상당히 볼 만한 점들을 보여줍니다. 물론 아주 깊숙히 침잠해들어가진 않습니다. 「왕좌의 게임」 같은 걸 기대하시면 곤란한데, 꼭 정치의 일면을 보여주는 방식이 그렇게 다크해야만 하진 않겠지요. 어디까지나 소녀 만화의 방식에 충실하면서 할 이야기를 잘 해내고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참 그리고 또 생각나는 작품이 하나 있는데, 아마노 코즈에의 「아리아」입니다. 화성에 건립된 네오 베네치아를 무대로 한 곤돌라 몰이 소녀들의 이야기인데, 아마노 코즈에 씨의 연출이 매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들어가는 전장샷입니다. 두 페이지를 연속으로 쓰는 와이드 연출이죠. 페이지 만화에서 칸의 크기는 곧 작가가 독자가 느끼길 바라는 감정의 크기라 할 수 있는데, 그게 좀 지나쳐서 감정 과잉을 요구합니다. 감정을 극대화시켜 감동을 주기 위한 장치인데 그게 마치 패턴화하다시피 한 거죠. 「새벽의 연화」는 그런 장면은 없는데, 유난히 독자들에게 자주 노출시키는 장면이 있다면 바로 연화의 눈입니다. 순진무구하고 뭘 모를 것 같던 공주님의 눈에서, 점차 전사와도 같은 매서움과 자기 자신을 다잡는 단호한 눈빛이 깃들기 시작합니다. 작가는 이 눈매를 자주 노출시킴으로써 감정 이입을 유도하는데, 「아리아」보다 훨씬 영리하게 쓰고 있어 보입니다. 과잉스럽지 않으면서, 연화라는 여자애를 굉장히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인물로 만드는 데에 일조하고 있으니까요. 솜씨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이 작품은 갈 길이 멉니다. 그리고 아직 명확히 드러나 있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일례로 일 임금님은 학이 “이 사람은 겁쟁이가 아니야”라고 할 만큼, 나약해 보이지만 사실은 나약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연화에게 백부이자 수원의 아버지인 유헌은 사고로 죽었다 알려져 있지만, 수원은 일 임금이 죽였다고 말합니다. 일 임금이 실제로는 어떤 인물이었고 왜 딸에게 무기를 들지 못하게 했는지, 수원 아버지를 죽인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지, 수원은 어떻게 알고 있는지 등은 이후 수원과 연화가 각자의 정치로서 맞부딪치는 시점에는 풀려나와야 할 중요한 복선입니다. 권수가 대책없이 늘어날 듯도 싶지만, 아직까지는 전혀 돈이 아깝지 않을 만큼 몰입도를 보여주고 있네요. 여러분도 한 번 읽어보시는 게 어떨까 싶어요.

 

네, 오늘은 이렇게 「새벽의 연화」를 소개해 보았습니다. 작품에 관한 감상과 이번 방송에 관한 감상은 팟빵 덧글이나 010-3001-7506으로 문자를 남겨주세요. 추첨을 통해 문화상품권을 증정하겠습니다.

저는 이 작품에서 단지 예쁜 여자애가 펼치는 ‘대하 판타지 로망’이라는 장르적 특성만을 즐기기보다 여성의 성 역할이 주체적으로 드러난 작품으로서, 그리고 왕국을 무대로 펼쳐지는 정치 드라마로서의 일면들을 찾았습니다. 굉장히 주목할 만한 덕목이고, 캐릭터 군상극이나 러브코메디로 일관하기 십상인 만화들 속에서 보물 같은 작품을 건지지 않았나도 생각하고 있어요. 뭐 캐릭터 이름이 한국식으로 읽힌다든지 하는 이슈도 있긴 한데, 그게 아주 큰 이슈는 아니겠고요. 그런 점 아니라도 참 매력적이에요. 이제 17권까지 나왔습니다. 저와 함께 한 번, 정주행 해 보실 걸 권합니다. 저로서는 오랜만에 정말 너무나 만족스럽게 읽은 소녀만화였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 기분이 전달되길 바랄 따름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을 정치 드라마라 한 김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가운데 한 대목을 읊으며 마무리를 지어볼까 합니다. 의외로 작품 속에서 연화가 보여주는 지향점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어 보여요.

“모든 군주는 인민의 지지가 필요하며 인민들의 호의로 군주가 된 사람은 그들의 환심을 계속해서 사도록 해야 한다 / 강력하고 현명한 군주는 인민에게 의지할 수 있다 / 현명한 군주라면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지 시민들이 정부와 자기를 믿고 따르도록 조치를 취해야 하며, 그렇게 해야만 시민들은 그에게 항상 충성할 것이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모두 만골만골한 한 주 보내십시오. 서찬휘였습니다.12

서찬휘

만화 칼럼니스트이자 만화정보저널 사이트 '만화인' (http://manhwain.com) 운영자. 글쓰기와 만화를 좋아하던 프로그래머 지망생이었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만화와 얽힌 글을 쓰면서 만화 정보를 묶어내는 컴퓨터 프로그램들을 짜고 있다. 자생한 1.5~2세대 한국형 오덕으로 덕업일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내츄럴 본 프리랜서. 칼럼, 연구, 비평, 강의, 방송, 캘리그라피 등 만화와 관련해서는 오는 의뢰 안 막는 자판기형 용병의 삶을 구가 중이다. 최근엔 열심히 애 아빠로 클래스 체인지 시도 중. 봄이야,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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