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가 망가뜨린 천재의 재활_ <실종일기 2 알코올 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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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캐릭터 소설 쓰는 법 표지

“시쇼세츠(私小說)” 1) 는 한 마디로 “자기 자신을 캐릭터 삼아 특이한 체험을 고백하는 서사”로, 오쓰카 에이지는 <캐릭터 소설 쓰는 법>에서 TRPG2), 소녀만화3), 라노베(ラノベ)4) 와 시쇼세츠는 가족유사성을 보이며, 공통적으로 작가나 독자나 캐릭터에 감정이입하고, 캐릭터가 서사 내에서 자신의 내적 사고나 감정을 독백으로 고백하는 것에서 임장감(reality)를 느끼는 구조라고 지적한다. 그는 아즈마 히데오(吾妻ひでお)도 “자신을 캐릭터로 만들면 직접 내면을 고백하는 것 보다 오히려 자기 이야기를 하기 쉬워진다”고 말했다며 근거로 삼는다.

 

 

1970년대 말, 일본에서 SF 소설 팬덤, 애니메이션 팬덤, 토쿠사츠(特撮)5) 팬덤, 그리고 만화계의 “뉴웨이브” 등이 융합하여 “오타쿠(おたく)”라는 문화종족이 탄생했다. 만화계에서는 소년만화, 소녀만화, 극화, SF소설, 영화 등에 영향 받아 강한 개성으로 장르를 뛰어넘는 마니아 성향의 작품을 발표하는 “뉴웨이브”라는 움직임이 있었다. SF소설계에서는 츠츠이 야스타카(筒井康隆)의 “1인칭 부조리 슬랩스틱 개그 SF”6) 가 전성기를 맞이했고, 뉴웨이브와 오타쿠 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아즈마 히데오는 뉴웨이브에서 츠츠이 야스타카에 “자학”과 “로리콘(ロリコン)7) 미소녀”를 결합한 작가였다.

3. 츠츠이 야스타카 근영

츠츠이 야스타카4. 츠츠이 야스타카 표지

당시 작품 표지에는 1인칭 화자 “나”를 대변하는 츠츠이 야스타카와 닮은 얼굴 없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아즈마 히데오는 당시 아웃사이더로서 지적 우월성을 과시하려는 오타쿠가 좋아하는 요소인 현학적인 부조리 블랙유머, SF, 다양한 패러디, 그리고 로리콘 미소녀8)를 모두 갖춘 작가였다.9) 그러나 미소녀나 더 그리라는 잡지사의 강요와 착취, 팬과 시대의 과도한 관심, 그리고 자의식이 강하고 자학적 성격으로 점점 망가지기 시작한 아즈마 히데오는 오타쿠 문화의 변화와 함께 점차 과거의 작가가 되었고, 결국 두 번의 알코올 중독이 되어 “이탈”하고 만다. 노숙자 생활을 하고 떠돌아다닌 것이다. 이 과정을 역시나 시쇼세츠 형식의 일기만화로 그린 것이 전작 <실종일기>다. <실종일기 2 알코올 병동>은 이 배경정보를 숙지하고 있어야 비로소 전체상이 보인다. 자세한 논의는 후일로 미루나, 가장 주목해야할 부분으로 그의 묘사 방법의 변화를 들고 싶다.

5. 아즈마 히데오

아즈마 히데오와 자신이 그린 부채 속 미소녀

7. 아즈마 히데오 나나코 SOS 표지

 SF, 부조리 블랙유머, 미소녀가 모두 들어있는 <나나코 SOS>

7. 아즈마 히데오 한 컷

여자와 달리 남자는 모두 동물이나 괴물로 묘사된다.

 

아즈마 히데오와 츠츠이 야스타카는 같은 양식이라도 매체에 의한 차이가 있다. 츠츠이 야스타카가 활자 매체인 “1인칭 시쇼세츠” 양식으로 자신을 캐릭터로 만들어 독자와 하나가 되게 만드는 반면, 아즈마 히데오는 같은 서사라도 그림으로 이루어진 만화의 매체 특성 때문에 자기 자신을 “히데오-캐릭터”로 격물화하는 전지적 시점으로 거리감을 만든다. 과거 아즈마 히데오는 부담과 중압을 “캐릭터” 방식으로 도피해왔다. 본래의 작풍이나 <실종일기>까지만 해도, 부감 등축도법(isometric view)이나, 무대 같은 평면적인 앵글로 자신의 체험을 객관화했다. 이는 <실종일기 2 알코올 병동>에서도 마찬가지로 찾아볼 수 있다. (표지부터가 그렇다.) 그러나 1인칭 시점에서 자신의 감정, 경험, 사고를 고백하는 “시쇼세츠”적인 묘사를 할 때는 일본 만화 특유의 영화적 표현으로 변해 캐릭터의 등신도 커지고 그림의 정보량이 늘며10), 앵글이 아이레벨이 된다.

8. 알코올 병동 표지

등축도법이 돋보이는 표지

9. 1인칭 시점의 변화

표지와 달리 자신의 체험을 고백할 때는 앵글과 캐릭터 묘사 방법이 변한다.

 

나는 이 변화가 아즈마 히데오가 점점 현실로 되돌아오고 있다는 긍정적인 증거라고 생각한다. 원치도 않던 시대의 아이콘이 되어, 다른 사람의 욕망을 위해 만화를 그리다 소모되어 버림받은 그가 <검은 책>을 만들던 시절처럼 자신의 욕망에 근거해 만화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가 과거의 영광으로만 기억되거나, 자신의 체험을 적나라하게 고백한 작가로만 기억되는 게 아니라, 현역으로 제1선에서 활약하는 츠츠이 야스타카처럼 새로운 작품을 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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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내가 자주 입에 올리는 개념이라 “또 그 소리냐” 라는 말이 나올 것 같다. 자세한 논의는 오쓰카 에이지의 <캐릭터 소설 쓰는 법>과 도올 김용옥이 쓴 라오서의 <루어투어 시앙쯔> 서문을 참조하기 바란다. 어떻게 자연주의가 일본에 들어와 시쇼세츠를 낳았는지에 대해 자세한 논의가 담겨 있다.

2)Table-talk Role Playing Game. 일본식 조어로, 본래는 RPG가 맞다. 자세한 정보는 초여명 출판사(http://cympub.kr/)를 참조.

3)일본의 소녀만화는 내적 독백을 중심으로 내면세계를 그리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4) 라이트노벨(ライトノーベル). 일본에서 발생한 대중소설 장르 중 하나로 국내에서도 자체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오쓰카 에이지는 <캐릭터 소설 쓰는 법>에서 라노베를 “캐릭터 소설”로 정의하며, 시쇼세츠와 같은 맥락에 있다고 보고 있다.

5)특수촬영(特殊撮影)의 준말. 보통 발포고무로 만든 옷을 입고 촬영하는 일본의 사이파이(Sci-Fi) 영상작품군을 가리킨다. <고지라> 등의 특수촬영을 담당한 쓰부라야 에이지(円谷英二)가 유명하며 그가 세운 프로덕션인 쓰부라야 프로에서 제작한 TV 드라마가 <울트라맨> 이다.

6) 주로 시쇼세츠의 형식으로 남성우월주의적이자 1인칭 화자가 체험을 고백하는 내용이나, 스토리 자체는 당대의 사회문제를 비틀어 만든 부조리한 상황에 처한 화자가 슬랩스틱 코미디 영화처럼 소란을 피운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7)롤리타 콤플렉스의 준말.

8)일본의 동인지 판매행사인 코믹마켓(コミック・マーケット)에서 자신의 로리콘 미소녀 캐릭터를 등장시킨 관능사진집 <검은 책(黑本)> 실제로 표지가 검은 색으로 칠해져있기만 해서 붙은 이름.
을 팔아, 현재 성행하는 성인 남성 대상 패러디 만화를 탄생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9)그의 작품은 대부분 본인이 캐릭터로 등장하는 블랙유머나 SF로, 부조리한 상황을 고전적이면서도 간결한 터치로 담담히 그려낸다. 여성은 모두 (가슴이 작고) 아름다운 미소녀고, 남성은 자기혐오나 자학을 담아 질척거리는 괴물처럼 묘사된다. 작품 내의 개그는 대부분 유명한 작품의 패러디로 이루어져, 독자가 배경지식을 아는 만큼 재미있는 구조다. 이 때문에 현학적으로 자신의 정보량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당대 오타쿠의 지지를 받았다.

10)작가는 재활 과정 중에 미술 데생을 배웠으며, 이를 의식적으로 적용했다고 토리 미키(とりみき)와의 권말대담에서 밝히고 있다.

손지상

소설가, 만화평론가, 칼럼니스트, 번역가.

주요 출간:
단편집 [당신의 苦를 삽니다], [데스매치로 속죄하라 - 국회의사당 학살사건], [스쿨 하프보일드], [일만킬로미터 너머 그대. 스토리 작법서 [스토리 트레이닝: 이론편], [스토리 트레이닝:실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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