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하는 데 그친 아쉬움. <1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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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선>은 최근 많은 작품에서 다루는 ‘전염병’과 ‘좀비 아포칼립스’를 다루면서도 진부하지 않도록, 비일상적 재난 상황으로 변한 서울을 독자들이 공감하기 쉬운 ‘1호선’을 따라가며 보여주는 신선한 콘셉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주인공이 여자친구의 생존을 확인하기 위해 1호선을 따라간다는 플롯의 구조는 익숙한 공간이라는 공감에 더해 개인적인 동기도 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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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선>의 가장 큰 테마이자, 공감을 유발하는 장치는 휴머니즘이다. 스토리는 대부분 휴머니즘의 눈으로 한계에 부딪혀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보듬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에 공감하는 독자와 공감하지 못하는 독자 사이에는 큰 골짜기가 있다. <1호선>을 읽고 공감하고, 스릴과 동정을 느끼고, 따뜻한 감동을 느낀 독자라면 내 의견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나는 골짜기 저편에 있는 독자다. 이 글은 골짜기 너머에 있는 내가 왜 이 작품에 간단히 공감하지 못했는가를 분석하는 자기분석의 측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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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선>의 상상력은 일상에 고정되어 있다. 작품 세계가 “있을 법한 가상의 현실”이 아니라, “일상의 거울상”이자 “일상의 연속”이다. 작품 속 세계에 들어가 보면 SF적인 설정이나 세계, 캐릭터의 동기나 행동 묘사의 세부정보가 부족해 붕 뜬다. 골짜기 저 편의 독자는 이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핍진성(逼眞性)이 높아 스토리에서 임장감(reality)를 손쉽게 느끼고, 딱히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받아들인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점 때문에 나는 <1호선>에서 아쉬움을 많이 느꼈다. 나는 작가가 너무 착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게는 너무 ‘나이브(naive)’했다. 여기서 ‘나이브’는 사전적 정의로 ‘못마땅함, 순진해 빠진’ 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의미보다는 평소 내가 자주 사용하는 ‘추상적’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정보량이 적고 평면적’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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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선>은 작품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도, 작품 내의 캐릭터나 플롯의 조형도, 모두 나이브하다. “아포칼립스”는 본래 ‘세계의 파멸, 성서에 묘사된 세상의 종말’을 의미한다. 멸망 이후를 그리기 위해서는 일상의 리얼리티를 거울상으로 뒤집는 “전복”에 그칠 것이 아니라, 완전히 독립적인 세계가 되도록 철저히 세부정보를 늘리는 등 일상과 비일상을 포섭하는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야만 한다. 그러나 <1호선>은 일상을 뒤집어 거울상을 만드는 “전복”에 그치고 있다. 더욱 깊이 다룰 잠재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했다고 나는 느꼈고, 그래서 더욱 아쉽다. 오에 겐자부로는 <소설의 방법> (한림사)에서 전복과 새로운 일상을 변증법적인 과정이라고 분석한다. 그는 전복을 “분절화”, 포섭하는 “새로운 일상”을 “상상력의 발화”라고 설명한다. 이 변증법은 설정, 전복, 포섭의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오에는 이를 오노레 드 발자크의 <창녀 성쇠기 (Splendeurs et misères des courtisanes)>의 주인공 ‘전기가오리’ 창녀 에스텔 (Esthel)을 예로 들어 이를 설명한다.

a) 에스텔은 ‘전기가오리’ 같은 강한 매력을 뽐내는 창녀였는데,
a`) 줄리앙이라는 남자를 사랑하게 되어, 정숙하게 변신해 수도원에 들어가 신부수업을 시작한다.

a)는 설정, a`)는 전복에 해당하며 서로 모순되는 이미지를 접붙이는 이 과정을 분절화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오에는 전복의 단계까지는 여전히 죽은 이미지이며, 살아 움직이도록 상상력의 발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이 둘을 포섭하는 새로운 층위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a)와 a`)는 ‘예쁜 액자 속에 들어있는 상투적이지만 예쁜 그림일 뿐, 살아 움직이지는 않는다.’ 이 둘을 통합하고 공명하는 A)로 확대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A) 줄리앙이 위기에 빠지게 되고, 그를 구하기 위해서는 에스텔이 다시 창녀로 돌아가 돈 많은 남작의 정부가 되어한다.

오에는 이를 ‘상상력의 다이내믹한 전환’이라고 부른다. 이 순간 그녀는 강렬한 매력을 자랑하게 된다. 캐릭터가 생기는 것이다. 이때 비로소 스토리에서 플롯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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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브함의 원인은 공통적으로 A)의 단계가 없어서다. 캐릭터에서도 플롯에서도 테마에서도, <1호선>은 통합과 공명으로 나아가지 않고, 전복에서 그치고 만다. 전복으로도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 감정은 “현실의 일상에서 느끼는 착한 사람의 리얼리티”를 비트는 데서 오는 감정이다. 재난 상황은 현실의 일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비일상이자, 일상의 감정을 손쉽게 드라마로 만들어준다. 보통의 스토리라면 각각의 인물이 특정한 계기로 캐릭터가 되어 플롯을 이끌어가야 한다. <1호선>에서는 애초에 스토리의 주인공이 될 리 없는 수동적인 인물이 재난이라는 커다란 변화 때문에 에피소드, 더 나아가 스토리의 중심이 된다. 이 전복이 드라마와 감정을 만든다. 이 방식 때문에 작품 전체적으로 세부정보가 부족하고 나이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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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주인공의 캐릭터가 나이브하다. 주인공은 너무 착하고, 문제를 자주 일으키며, 해결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으로서 활약하라, 같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사건에 대해 결단을 내리고 행동해야 할 때 주인공은 자주 내면으로 들어가 고민하고, ‘착해빠진’ 행동을 한다. 이렇게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이 현실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 이상으로는 캐릭터(개성, 특질)이 없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존재감이 없다. 주인공이 병을 겪고 난 뒤 오드아이가 되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캐릭터가 생기지 않는다. 오드아이의 캐릭터가 생기는 것은 스토리가 마무리 지어지는 지점에서였다. 주인공의 존재감이 부족해 중간에 스토리의 초점 인물이 자주 다른 인물로 바뀌기까지 한다.

물론 작품에 따라 주인공의 모습은 다양하게 있을 수 있으나, <1호선>의 기본 콘셉트는 주인공이 1호선을 걸어서 따라가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지연(suspense)에 있다. 주인공에게 공감하고 그가 여자친구를 만나러 갈 수 있을지 공감하려면 주인공이 중심을 잡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서 주인공의 행동원리나 사고는 “평화로운 평범한 일상의 리얼리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외부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보다 작품 내에서 자주 ‘트렁크 속으로 숨듯’ 자기 내면으로 도망쳐, 자신이 얼마나 감정적으로 힘든지 자기 연민하고 독백으로 고백하지만 그마저도 나이브해 공감을 유발하기 어렵다. 오죽하면 무수히 많은 댓글에서 “주인공이 발암”, “여자 친구 찾는다더니 이야기가 산으로 가네,” 등의 언급이 보인다. 자기 연민과 순진한 행동이 독자가 기본 콘셉트에 공감하지 못할 정도가 되면 곤란하다. 아무리 서브플롯으로 빠져도 주인공의 캐릭터가 확실하다면 독자는 길을 잃고 혼란스러워하지 않는다. 캐릭터가 부족한 주인공의 잦은 내적 독백 때문에 <1호선>은 자주 누가 주인공인지 헷갈릴 정도로 사이드 스토리나 서브플롯이 스토리의 중심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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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는 주인공뿐 만이 아니라, 다양한 인물의 캐릭터나 동기도 불명확하고 추상적이다. 아포칼립스 물에 등장할 법한 세력인 ‘미래인’이나 ‘외국인 병사’ 등이 <1호선>에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원리나 동기를 가늠하게 할 세부정보가 제공되지 않는다. 이들의 행동은 입체적이지 못하다. ‘미래인’은 스테레오 타입의 사이비 종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어떻게 벽에다 썼는지 모를 커다란 글씨로 분위기를 연출하고, 등장인물들이 ‘구원’이니 ‘재판’이니 ‘과거와의 집착’ 등의 단어를 입에 올리기는 하지만, 이들이 왜 이런 종교에 빠졌는지를 짐작하게 할 만한 교의나 행동원리나 시각적으로 충격적일 만큼 생경한 이미지를 보여주지 못한다. 그저 “재난이 닥쳐 사람들이 일상에서는 생각지도 못할 짓을 한다.” 정도의 전복으로 그친다. 비슷한 테마를 다루는 <드래곤 헤드>에도 “미래인”과 비슷한 집단이 여럿 나온다. 이들은 분명 일상에서는 생각지도 못할 충격을 준다. 그러나 이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 지를 충분한 세부정보로 납득시킨다.

작가의 전작이 군대 이야기인 만큼, ‘미래인’이 나오게 된 배경이 되는 시청의 ‘군인’들은 내부 생활에서는 일정한 캐릭터를 획득한다. 그러나 군대 조직 내에서 감염자를 쏘는 데 망설이는 초점 인물 이승영의 행동은 여전히 나이브하고 결국 자신이 있던 집단 전체를 궤멸 상태로 만든다. 어린아이를 지키겠다는 캐릭터가 부여되기는 하나, 이 과정 중에서도 여전히 일상에서라면 당연히 이렇게 행동할 것이라는 나이브한 행동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후에 등장하는 부소대장 허지훈은 그를 증오하고 시련을 준다. 그러나 그 행동원리가 고작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와 “근무지를 이탈했다, 넌 우릴 배신했다.” 정도에서 머문다. 이들의 행동은 여전히 ‘일상이 전복된 연속되는 평면’으로 되돌아간다.

‘외국인 병사’들의 행동도 두루뭉술하기만 하다. 이들이 왜 등장했는지, 왜 그들을 가지고 실험하는 지에 대해서는 “외국이 관심 가지고 있다.”, “데이터 수집을 위해 실험한다.” 정도로 그친다. ‘외국인 병사’는 그저 기호 이상으로는 작동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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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는 복선이 나이브하다. 캐릭터도 플롯도, 세부정보가 늘어나면서 변증법적으로, a), a`), A)로 발전해나간다. 플롯에서도 마찬가지다. 플롯의 a)는 복선, a`)는 전복, A)는 납득이 된다. <1호선>의 플롯은 a`)의 거울상에서 정지하고, A)의 자리에 시쇼세츠(私小說)적인 내적 고백이나 회상이 대신 자리한다.
시쇼세츠는 일본의 자연주의(naturalism)에 입각한 소설 양식으로, 내면이 과잉한 것이 특징이다. 본래 유럽에서 발생한 소설의 자연주의는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자연 ‘과학’ 주의였다. 자연과학의 가장 큰 특징은 엄밀한 관찰이다. 일본의 자연주의는 ‘자연과학’이 아니라 동양철학의 전통적인 ‘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함”이라고 오해해, ‘있는 그대로 엄밀히 관찰하는 것’이 자연주의의 목표라고 생각했다. 그 경향에서 나타난 것이 시쇼세츠로, 등장인물의 내면을 지나칠 정도로 언어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 일본과 한국의 다양한 만화, 웹툰, 소설, 라이트노벨에서 시쇼세츠 적인 경향이 두드러진다. <1호선>도 예외가 아니다.

<1호선>에서는 플롯 상 설명이나 납득이 필요한 자리에 과잉된 내면이 드러나고, 플롯에서 소화시켰어야 할 배경 정보나 플롯의 복선을 시쇼세츠적 내적 독백이나 내적 고백을 위한 대화로 처리하려 들기에, 지나치게 설명적인 과잉된 독백이나 대사가 두드러져버린다. 가장 크게 이러한 점을 느낀 것은 미리 이야기한 의사와 주인공이 미래인들과 조우하는 에피소드, 그리고 학교폭력을 당하던 학생의 에피소드다.

‘과거인’과 ‘미래인’의 대립을 만들어냈다면 이를 더욱 첨예하게 대립하도록 세부정보를 주고, ‘구원’이라는 잘못된 통합의 방향과 주인공이 택한 ‘휴머니즘’이라는 결정이 서로 또 다른 정반합을 이루도록 했어야 했다. 학교폭력 에피소드에서도 마찬가지다. 피해자였던 학생이 재난상황을 맞이하자 역으로 자기를 괴롭히던 학교폭력의 주모자들에게 폭력적으로 복수한다는 내용으로, 공감을 얻기에는 쉬웠을지 모르나 단순한 전복에서 그치고 말아 아쉬움을 준다. 진정으로 스토리가 시작하려는 때에 스토리가 멈추고 다음 인물로 초점이 넘어가버린다. 주인공이 중간에 목표를 잃고 1호선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생존하기 위해 짐승처럼 변하는 시기에도, 통합의 기회를 잃고 회상이나 내적 독백에만 그친다. 복선이 분절화 된 플롯을 제대로 연결되지 못하고 기계적이고 단순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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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선>에서 등장하는 복선으로는 ‘풍선’이나 ‘노숙자’가 있다. 이들은 파편화된 다양한 사건을 하나로 엮어주기는 하지만, 개연성을 높이기보다는 단순히 감동을 위한 장치, 혹은 분절화 된 사건을 하나로 연결하는 기호 이상으로 소화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 자기 자신의 감정적 짐을 크게 느끼고 있는 독자라면 전복만으로도 큰 감정적 공감을 느낄 것이다. ‘일반적인 독자’라면 누구나 감동할 수 있는 작품이다. 아쉽게도 뒤틀린 독자이자, 매니악한 나 같은 사람은 현실을 비틀어 드라마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만족하기 어렵다. 감정에 공감하기 전에 필요한 a)의 단계, 다시 말해 상황을 설정하는 데에서 실패한다. 거울상을 만들고 감정을 고백하게 하는 것만으로는 추상적이어서 납득하기 어렵다. 정보량이 부족하다.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손지상

소설가, 만화평론가, 칼럼니스트, 번역가.

주요 출간:
단편집 [당신의 苦를 삽니다], [데스매치로 속죄하라 - 국회의사당 학살사건], [스쿨 하프보일드], [일만킬로미터 너머 그대. 스토리 작법서 [스토리 트레이닝: 이론편], [스토리 트레이닝:실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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