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의 출발
두근두근. 평소에 만나지 못했던 작품들이나 또 작품으로만 만났던 작가를 현장에서 직접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흥분. 전시나 컨퍼런스 같은 보고 들을 것들이 풍성할 거라는 기대감. 아이들을 동반하면 애들과 함께 무언가를 체험하는 것을 통해 문화적 경험도 확대해주고, 먹을 것이나 쉼터가 풍부해서 피곤하지 않을 그런 축제. 보통의 방문자들은 만화축제에 이런 기대를 하고 멀리서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주최하는 쪽에서 보자면 주최영역의 전문가들이 일차적이고 내밀한 타깃일 것이다. 이들 없이는 축제를 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최종적인 타깃은 분명 비전문가인 다수의 만화애호가들, 또는 만화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는 방문객들일 것이다. 이 불특정 다수의 애호가이거나 향유자들 앞에서 전문가들은 함께 ‘만화문화와 만화산업이 과거에 이랬고, 이러이러한 미래를 꿈꾸지만, 현재는 이렇답니다.’를 보여줘야 한다. 이 규모가 국제적이 되면 국제만화축제가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국내라는 지역성에 기반한 축제가 될 것이다.

만화축제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후 시카프)과 부천국제만화축제(이후 비코프)를 떠올린다. 하지만 시카프가 만화와 애니메이션이라는 두 영역을 함께 진행했기에, 그리고 최근엔 예산축소 및 다양한 원인으로 축제 자체의 대중적 인지도와 전문가들의 평가가 떨어졌다. 2010년대 이후 만화축제를 경험한 이들에게는 비코프가 대표적인 만화축제가 될 것이다. 게다가 역사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도 시카프가 1995년에 시작해서 올해 19회(1998, 2000년 두 번 열리지 않았음), 비코프가 1998년부터 시작해서 올해로 18회를 맞이하고 있기에,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게다가 올해 처음으로 유료화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작년 대비 관람객이 증가했다고 하니, 비코프가 대표적인 규모 있는 만화축제 브랜드라고 판단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만화축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길래, 비코프가 대표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일까? 몇 억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벌이고, 많은 수의 관람객이 찾아오는 것인가? 그를 통해 국민들의 만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부천시의 경제적 이윤과 문화적 인지도의 상승을 야기하는 것인가? 틀리지 않다. 적어도 전국 규모로 한두 개쯤은 이런 대표적이자 방향성을 이끌어나가는 브랜드가 하나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이런 대표성이 필요한 것일까? 달리 말하면, ‘만화축제란 이런 것이어야 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핵심적인 요소들은 무엇일까? 핵심적이라 함은, 외부로 드러나는 요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밖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만화와 관련된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현재는 만화산업이라고 일컫고 있는- 하나의 장(場)이 있다고 한다면, 이것과 만화축제의 관계이다. 아마도 대표적인 만화축제라면, 어떤 핵심요소들을 잘 포괄해야만 할 것이다.

두 번째의 의문점은, 만화축제의 다양성이다. 물론 현재의 비코프를 비롯 다른 축제들도 관람객인 시민들을 타깃으로 한다. 축제공간에 들어오면 이런 저런 것도 구경하고, 사진도 찍고, 포스트잇도 붙이고, 작가 사인도 받는 등의 자발적인 활동을 한다. 이러한 포맷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만약 모든 만화축제가 이처럼 단일화된 하나의 관람객을 상정한다면, 그리고 유사한 프로그램들만을 계속 돌린다면, 앞으로 만화축제가 여러 개 생겨난다고 할지라도 제 살 깎아먹기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다른 만화축제들이 생겨난다면, 그것은 좀 더 테마가 명확한 프로그램과, 그 테마를 선호하는 관객층을 노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현재의 비코프에서 조명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강한 창작자들이다. 물론, 박건웅 작가처럼 부천만화대상에 선정되어 특별전을 열게 되면서 조명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전체적으로 보자면 소소한 편이다. 그리고 모든 작가들이, 언젠가는 나도 유명해지면 저런 자리에 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갈 필요는 없으며,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른 방식의 축제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가장 오래된 만화축제가 20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으니, 이젠 한번 짚고 넘어가보자. 만화축제란 어떤 것인지, 적어도 일정의 합의된 지향점이 있다면 논의가 편해질 것이다. 물론 다루는 관점에 따라 다른 모습을 상정하겠지만, 국내의 만화축제에 대해 우리가 언제 토론을 제대로 벌여본 적이 있었던가. 이후 토론을 야기하기 위해서라도 누군가는 시작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 긴 걸음을 한번 떼어보도록 하자.

 

1. 패러다임 변화의 필요성 : 만화산업에서 만화문화산업의 장(場)으로
만화축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우리는 ‘만화산업’이라는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할 때가 왔다고 주장해야 한다. 할 필요가 있다. ‘만화진흥을 위한 법률’처럼 그냥 만화라고 하든지, 한발 물러나서 만화문화산업이라고 일상적으로 말하는 것이 좋겠다. 김춘수의 <꽃>을 보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꽃이라고 부르면 꽃이 된다는 엄연한 사실은 무릇 시에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여하간 자꾸 만화산업이라고 지칭하니, 만화의 문화적 예술적인 가치들이 부인되고 있다는,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부차적인 것으로 물러나야 한다는 이미지를 벗어나기가 힘들다. 만화라는 용어 대신 그래픽노블이라는 말을 즐겨 쓰는 필자들을 외면해왔지만,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왜 점점 만화의 문화성, 다양성, 예술성을 보존하고, 문화적 권위를 복원하기 위한 정책과 예산과 글들은 줄어드는 것일까.

사실상, 최근 만화와 관련된 법제도적인 영역 중 가장 매력적인 사건은 2012년의‘만화진흥을 위한 법률’이라는, 도대체 뭐에 쓰는 물건인지 알 수 없는, 라벨만 붙어 있고 막상 술은 한 방울도 없는 술병 같은 무용지물인 법의 제정이 아니라, 2013년의 문화예술진흥법의 개정안의 진흥대상에 ‘만화’를 포함시킨 것이다. 1972년 8월 처음으로 이 법이 제정되었을 때의 제1조(목적) 및 제2조(정의)와, 2013년 7월 개정안의 두 항목을 비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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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1. 문화예술진흥법 제정안과 개정안 조항 비교

물론 1972년에 비해 2013년 개정안에서는 훨씬 더 많은 표현형식들이 보이긴 하나, 전년도인 2012년까지 만화는 포함되지 못했다. 단 두 음절인 만화가 문화예술진흥법의 진흥대상에 언급됨으로써, 2011년에 제정되고 약 1년 후 <예술인복지재단>이 설립되었고, 2013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벌이게 되었는데, 이 예술인복지재단의 모든 활동의 수혜대상에 만화작화가, 시나리오작가 등이 포함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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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2. 2013년 개정된 예술인복지법상의 만화인력 지원근거

만약 문화예술진흥법이 2013년에 개정되지 않았더라면, 만화관련 분야의 종사자들은 예술인복지재단의 다양한 프로그램의 수혜대상에서 제외되었을 것이다.

이즈음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만화산업’이라는 용어가 어떤 결과들을 불러왔는지를. 최근 한양대학교 에리카캠퍼스에서 열렸던 <글로벌 웹툰 생태계 조성을 위한 국제학술대회>의 발표문 중, 김영재의 발표 <웹툰 콘텐츠 생산자 비즈니스모델>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콘텐츠, 플랫폼, 네트워크, 디바이스(CPND)’라는 산업생태계에서 콘텐츠를 유통, 서비스하는 기업들의 융합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 달리 말하면 거대자본의 지배가 강력해지고, 콘텐츠 생산자들이 취해야 할 이윤이 기업들로 빠져나갈 수밖에 없는 현황에서, 이를 막기 위해 창작자만이 아니라 광범위한 ‘콘텐츠 생산자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의 발굴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를 통해 웹툰 콘텐츠의 이윤이 대기업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고, 웹툰 생산자 그룹에게 재투자하게끔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런 논의들을 얼마나 실체화할 수 있을까는 미지수라 하더라도,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구체적인 실현가능성에의 연구와 타진은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콘텐츠 생산자 중심의 비즈니스 구조를 만들어나가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플랫폼, 네트워크, 디바이스 사업자들과 기본적인 논의구조를 갖추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상대적 약자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지금, 비즈니스와 문화산업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패러다임 자체가 산업인 이상, 모든 정책과 지원제도가 ‘경제적 효과’를 얼마만큼 산출할 수 있을 것인가를 우선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공개적이거나 은밀한 방식도 아니고, 당당하게, 직접적으로 만화작품을 평가할 때 얼마를 벌었는지 등의 경제적인 성과만을 언급하는 자체가 어쩌면 우리가 ‘만화산업’이라는 프레임을 당연한 듯이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제는, 만화에 대한 접근방법을 조금 더 문화적인 프레임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문화예술진흥법의 개정은 어쩌면 만화계에 가장 적절한 지점에 벌어진 사건인지도 모른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최근 온라인상에서 우리를 충격에 빠트렸던 고양이사료 고료제안, 강풀댓글사건 등이야말로 만화가와 만화작품의 문화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것에 대해 우리가 고민을 해야할 지점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는 이상 만화축제 역시, 투입한 예산 대비 관람객 숫자와 경제적 효과라는 논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2. 만화문화산업의 장과 만화축제
만화산업에서 만화문화산업으로 프레임을 바꾸는 순간, 우리는 이전보다 좀 더 다양한 주체들을 수면으로 끌어올리게 된다. 만화산업을 논하며 주로 생산, 유통, 서비스라는 흐름에 따라 업태를 정하고 지원정책을 세워왔다면, 이제는 1차적인 만화작품 생산만이 아니라, 2차적인 만화작품 창작과 생산의 근거, 배경, 전파의 영역에 해당하는 다양한 행위자들을 만화문화산업의 장(場감) 전체의 구성행위자로 보아야 한다(그림 1 참조). 창작자에서 향유자까지 거의 순차적인 진행을 통해 만화작품이 창작, 제작, 유통, 소비된다면, 행정, 언론, 교육과 연구, 비평은 창작자에서 향유자까지의 모든 행위자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생태계의 배경이자, 근거이기도 하고, 전파되는 방식을 결정하기도 한다. 창작과 제작단계에는 상대적으로 덜 관여하겠지만, 사실상 각 행위자의 개별적 장(場)의 성격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만화작품 생산을 주로 하는 1차적 그룹이건, 만화작품 생산의 배경이 되는 2차적 그룹이건, 이들 모두는 만화문화산업이라는 하나의 장을 구성하는 행위자 그룹들이다. 이 전체 만화문화산업의 장 외곽에 향유자들이 존재한다. 향유자들은 다양한 온/오프라인 플랫폼들을 통해, 출판된 만화책이나 웹툰 플랫폼들을 통해 특히 비평과 언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으며 향유자들과 만나게 된다. 이들은 미래 이 만화문화산업의 장의 행위자 주체들로 성장해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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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만화문화산업의 장

1997년 청소년보호법 제정이 초등학교 앞 문방구까지 펼쳐져 있던 만화책들을 급속도로 사라지게 만들었던 것처럼, 1990년대 말에 대학이라는 공교육 시스템에 만화학과가 생기면서 서서히 도제제도의 대체점이 생겨났었다. 약해졌다고 해도 여전히 언론과 비평이 향유자들에게 미치는 영향력도 적지 않다. 때때로 재발되는 마녀사냥들이 창작을 어떻게 위축시키는지 떠올려야 하지 않을까. 어떤 색깔과 뉘앙스로 전해주느냐에 따라 만화에 대한 이미지들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만화작품이 실리는 것은 행정과 교육 행위자 차원의 현상일 텐데, 이는 교과서라는 한 국가의 중요한 교육 플랫폼에 만화를 포함한다는 아주 중차대한 의미를 지니며, 향유자들이 어릴 때부터 만화형식에 친근하게 만드는 원인 중의 하나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교육/연구/비평이나, 행정, 언론은 만화창작에서 제작, 기획 에이전시, 플랫폼, 네트워크 사업자 등 만화의 장 내 모든 행위자들에게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만화를 경험하는 향유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이 향유자들은 단순 향유자에 끝날 수도 있고, 향후 미래의 만화문화산업 장의 행위자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만화문화산업의 장의 생태계를 선순환구조로 만들어내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004그림2. 만화축제와 만화문화산업의 장 관계

그런데 <그림 1>의 구성행위자들 중‘축제’항목은 없다. 당연한 것이, 만화축제는 이 구성행위자들 중 일부와 상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만화축제는 <그림 2>처럼, <그림 1>을 포괄한다고 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더 정확히는 만화문화산업 장의 모델과도 동일하지만, 그것이 제한된 기간 동안 진행하는 메가이벤트, 만화문화산업이라는 토양의 현황을 가장 폭발적으로, 화려하게 보여주는 꽃이어야 한다. 만화축제는 1차적 만화작품생산자들과 2차적인 만화담론 및 행정 생산자들의 현재 역량이 모두 펼쳐지는 공간이다. 따라서 1차적인 대상이 향유자라고 할지라도, 내부적으로 구성행위자들의 모든 역량들이 집중되도록 유도하는 것이 축제주최자 쪽의 입장이어야 한다. 결국 만화축제는 현재의 만화문화산업의 역량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예외적이며 한시적인 시공간인 셈이다.

향유자들은 그림 1에서 보았던 만화문화산업의 장에서 만화작품을 통해 만화에 대한 애호심을 가진 이들만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중요한 그룹이 포함되어있는데, 축제라고 하니 가족 단위로, 또는 근처에서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고 하니 방문해보는, 만화의 예비 향유자들이다. 평상시에 만화와 그다지 가깝게 지내지 않던 이들에게 ‘만화문화’라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차원에서도 만화축제는 중요하다. 실제로 향유자들이 만화축제를 경험하는 방식은 프로그램을 통해서이다.

만화축제의 프로그램들은 크게 보면 두 종류이다. 하나는 정해진 시간에만 볼 수 있는 일회적 프로그램, 두 번째는 축제기간 중 언제나 가도 만날 수 있는 상시적 프로그램이다. 각 세부 프로그램의 질적 수위와 투입된 예산은 다양하다. 예컨대 토론, 학술 항목이라도 좀 더 대중적인 주제나 영역이 있고, 더 정교한 주제나 영역이 존재한다. 이들 중 이벤트와 전시 영역은 예산이 많이 투입되면 될수록 훨씬 더 좋은 효과가 나타날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이들 프로그램을 실행함에 있어서 좋은 기획이 들어가기만 하면, 나머지는 예산에 따라 실행에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실행에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도 사실이다. 반면, 아무리 기획이 좋아도 예산 투입율이 형편없다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어렵다. 토론/학술행사와 페어는 이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들은 이 프로그램들의 기획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이들을 소화할 수 있는 전문인력들, 만화문화산업의 구성행위자들이 더 많이 포진되어 있어야 한다. 이 부분은 많은 예산을 투입해도 단기간 안에 해결하기 쉽지 않다. 최근엔 웹툰이 상승세를 타면서 웹툰플랫폼이나 네트워크사업자, 또는 디바이스 사업자들이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만화출판사들이 만화축제에 참가하지 않은, 또는 못하는 시기는 꽤 오래되었다. 5일간 진행하는 행사에 부스를 설치하고 실무자를 파견하는 비용이 수익에 비해 훨씬 더 커졌기 때문이다. 또한 그 손실을 커버할 만큼 축제 참여가 보장하는 홍보나 마케팅 영역에서의 이윤이 크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리 본다면, 페어 섹션이야말로 만화‘산업’의 현재가 어떤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역이다. 다른 세 섹션들은 만화의 문화적 가치를 강조하는 성격이 더 강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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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3. 축제프로그램의 간단분류

예컨대 이번 비코프 때 주행사장인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위치하고 있는 삼산체육관역의 실내 복도에 만화의 대표적인 캐릭터들이 배치되었다(사진 1). 많은 수의 관람객이 이용하는 지하철의 벽이라고 하면 훌륭하게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며, 본격적인 축제공간에 접근하기 이전에 우리를 흥분시켜줄 수 있다. 시트지로 바른다면, 예산 대비 그 효과가 탁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삼산체육관역의 벽을 사용하려면 우리는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할까. 지하철 7호선은 서울도시철도공사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아마도 부천시가 아니라 서울도시철도공사와의 협의가 필요할 것이다. 이 기관이 만화에 관련된 여타의 이미지들도 역사를 장식하는데 있어서 호의를 가지는가, 거부감을 가지는가는 역시 만화문화산업의 현재적 위치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만화가 산업적 효과를 크게 가진다고 해서만도 아닐 것이며, 만화에 대한 국민들이나 기관들의 이미지가 어떠한가에 따라서도 좌우되기 때문이다. 부천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OST공연(사진 2)도 마찬가지이다. 부천시의 지원단체이긴 하나, 만화축제 때 이러한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천시의 다양한 공공서비스 영역의 적극적인 결합만이 아니라 총 천 명에 달하는 코스프레 동호회의 참석 및 축제현장의 분위기를 돋아주는 것(사진 3),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틴툰공모전 창의캠프를 파주시에서 진행하는 것(사진 4)은, 부천시만이 아니라 다른 단체들, 다른 도시와도 협업관계를 잘 맺어야 할 뿐 아니라, 이러한 축제에 함께 참가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익이 있어야 훨씬 더 원활하게 진행이 될 것이므로, 그만큼 축제가 성장했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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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막전 삼산체육관 내 복도벽의 설치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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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천필하모니와 함께 하는 OST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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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000여명의 코스프레어들이 상시적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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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파주에서 개최한 틴툰공모전 창의캠프

몇 년 전에 비하면 분명, 비코프는 상당히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는 외부 웹툰의 흥행이라는 요소도 있지만, 지속적인 부천시와의 협업관계의 안정화, 만화가 아닌 다른 협회기관과의 연계라는 행정적인 측면에서의 커다란 진보가 가져오는 효과가 크다고 보인다.

만약 만화문화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해나간다면, 이들의 생태계가 제대로 꾸려진다면, 축제의 영역에서 토론/학술행사와 페어가 제대로 진행될 튼튼한 땅을 얻는다면, 아마 비코프는 점점 더 한국만화문화산업의 현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만화축제 브랜드가 되어 갈 것이다.

그러나 만화문화산업의 생태계가 제대로 구축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산업적인 측면이 성장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수익의 대부분이 만화창작자나 관련 2차 창작자들이나 기획 행위자들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이나 네트워크, 디바이스 사업자에게 대부분이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창작자들만의 힘으로 극복하기는 어려우나, 창작자들은 기획/에이전시/연구/비평/행정이라는 만화관련 2차 생산자들과의 협의구조를 가지는 것에 대해 조심스럽다. 물론 만화가협회가 부분적으로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기는 하나, 실제적인 발언권과 장악력을 가지기 위해 좀 더 포괄적인 구조가 필요할 것이며, 창작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단시일 안에 해결될 일은 아니다. 화려한 축제의 커튼을 들어 올리면, 그 뒤엔 수많은 고통들이 도사리고 있다. 물론 이 고통들은 만화계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전반적인 실업률의 증가, 경기의 침체, 불안정한 삶에 대한 두려움 등은 아마추어, 신인 작가들을 비롯, 덜 대중적인 작업영역에서 창작하는 프로만화가들의 삶에 똑같이 침투하고 있다. 이들까지 현재 비코프가 포괄하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꼭 그렇게 해야 하는가도 질문해볼 수 있다. 한국만화문화산업 전체를 포괄하고 그 현황을 점검할 수 있는 전국적인 규모의 만화축제도 의미 있지만, 이제는 그와는 다른 축제들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사방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만화축제가 모두 비코프와 동일하다면, 이는 그다지 긍정적인 현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많은 다양한 그룹의 특성을 반영하는 만화축제들이 만들어지고, 달리 말하면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지닌 축제 콘텐츠들이 쌓여나가고, 이 콘텐츠들이 비코프에서, 또는 각기 다른 축제에서 소개될 수 있다면, 그 역시 기대해볼 만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잠깐, 프랑스의 사례를 참조해보자.

 

3. 프랑스의 다양한 만화축제들
해외 사례를 언급할 때 항상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전체적인 맥락이 다르기 때문에, 그대로 적용시킨다는 것은 항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보다 시민사회의 성숙도가 훨씬 높다는 점,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오랜 전통이 존재한다는 점 등을 감안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 사례를 참조하는 것은 일종의 지향성에 대한 실험이자 가능성의 타진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역시 강력한 중앙정부의 문화정책을 내세우고 있으므로, 시민사회의 성숙도를 제외하고 나면 중앙정부가 거의 개입하지 않는 미국, 지방정부의 행정이 강력한 독일의 경우보다는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 만화축제 하면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을 떠올린다. 이미 내년엔 43회를 앞두고 있으며 가장 규모도 크고, 문화적인, 산업적인 차원에서의 파급력도 만만치 않다. 유럽권의 가장 대표적인 축제이기도 하다. 환율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겠지만, 국비/도비/시비를 합하여 약 50억 원 규모가 투입되고 있다. 인구 4만 명의 도시에 국내외로부터 20만 명의 방문자들을 맞이하므로, 작고 조용한 도시의 커다란 윤활유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축제를 성황리에 이끌어내는 기본적인 요소는 프랑스 만화시장의 현황─최근 주춤하긴 했지만 근 15년 동안 고속성장해온─이라는 점을 꼭 기억해야만 한다. 가장 중요하게 손꼽히는 거대한 출판사용 부스들에 출판사들이 가득 찰 수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현장에서 만화책을 구입해야 하지만 작가들의 사인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 덕분에, 출판사들은 부스 대여비와 출장비 등을 너끈히 뽑아낸다. 물론, 만화책을 사는 독자군들이 존재하기 때문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나라 만화축제보다 프로그램들이 조금 더 깊이 있고 다양하며, 만화문화산업의 각 행위주체들이 훨씬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조금 더 국제적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기본적인 포맷은 모두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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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페어관의 작가사인회를 위한 인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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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IBDI 전시관의 <타니구치 지로> 전시 입장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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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무민> 전시장 실내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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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CIBDI 만화박물관 샤를리 앱도 추모전 한 코너. 아이들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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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밤, 성당에서 이어지는 메인도로의 인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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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위한 공간

© 9eArt+, photo Jorge Fidel Alvarez

 

차이가 있다면, 앙굴렘의 경우 프랑스에서 파리를 제외하고 가장 큰 이미지 클러스터인 <마즐리스(Magelis)>가 실제적으로 존재한다는 점(그림 3 참조)이다. 이 클러스터 내에 앙굴렘축제조직위원회, 국립 만화문화 진흥기관인 <국제만화이미지시티 (CIBDI:la Cité internationale de la bande dessinée et de limage)>, 고등학교에서부터 박사 과정까지 보유하고 있는 만화학과 이론 및 실기과정, 이미지 관련 다양한 업체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CIBDI의 경우 내부에 국립 작가 레지던지, 국립 만화박물관, 국립 만화도서관을 모두 보유하고 있음으로써 앙굴렘과 주변권역, 또는 그 권역을 넘어서 아주 일상적인 만화 프로그램을 상시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앙굴렘 안에서 작은 규모의 서클이나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그 결과물들을 축제 때 선보인다. 대지와 건물세의 할인제도 덕분에 관련 업체들은 앙굴렘에 자리 잡고, 졸업생들이 바로 이곳으로 진출하기도 한다. 앙굴렘이 실질적으로 만화의 메카인 이유는, 축제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 클러스터 덕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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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앙굴렘 이미지관련 클러스터 안에서의 앙굴렘국제만화축제

앙굴렘국제만화축제가 유럽권, 프랑스를 대표하는 만화축제임은 부인하기 힘들다. 비록 이런 저런 문제들이 최근 발생하고 있다고는 하나, 40년 넘게 유지해왔다는 차원에서 그 아성은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 축제를 보면, 적어도 프랑스 만화문화산업의 현황이 어떤지 한눈에 들어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프랑스에는 현재 크고 작은 축제가 몇 개나 있는지 헤아릴 수 없다. 예컨대, 그림 4를 한번 보자. 오팔베데라는 사이트(http://opalebd.com/festivals)에서 한 지역의 만화축제 현황을 캡처한 이미지이다. 프랑스 전역은 표기되지 않아서, 한 광역도(레지옹 : 우리나라의 도보다 더 큰 단위)만 캡처했다. 보라색 표시는 생긴 지 3개월 이상된 축제이고, 초록색은 3개월 이하, 빨간 색은 1개월 이하, 검은색은 없어진 축제를 지시한다. 클릭하면, 그 축제에 대한 정보가 제시된다. 어떤 축제들은 정보가 명확하지 않은 곳도 물론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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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프랑스의 브르타뉴 광역도의 만화축제 현황

페로-귀렉(Perros-Guirec)시의 문화부서에서 4월에 주말 이틀간 진행하는 이 만화축제는 벌써 23회를 맞이하고 있다. 한 광역도에도 20여 개의 만화축제가 있으니 프랑스가 22개의 광역도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400여 개의 크고 작은 만화축제가 열리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각 시나 구청의 문화부나 도서관에서 여는 만화관련 축제까지 포함한 것이니, 너무 놀라지는 말자. 여하간 우리가 참조할 부분은 주제, 주최, 방식 측면에서 얼마나 다양한 축제들이 존재하는가라는 부분(그림 4 참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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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프랑스의 다양한 만화축제

인구 5만여 명의 소도시 생 말로(Saint-Malo)시의 만화축제도 이제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매년 10월에 열리며, 앙굴렘페스티벌과 마찬가지로 유료관람이다. 1981년에 브르통 출신인 디에터(Dieter), 장 클로드 푸르니에(Jean Claude Fournier), 그리고 알랑 구탈(Alain Goutal)이라는 세 명의 만화가가 함께 무엇보다도 이 시의 활성화를 목적으로 작은 규모의 축제를 만들었다. 원래 생-말로, 몽셀미쉘이라는 유명한 관광지를 끼고 있는 역사적인 해적들의 도시라는 이미지에 맞게끔 모험과 여행이라는 테마를 가졌었다. 아직도 축제포스터만은 여전히 이런 이미지들을 보유하고 있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매력적인 테마 덕분에 자연스럽게 작가들과 만화가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1992년 생-말로시가 축제의 운영을 <퀘 데 뷜(Quai des bulles)>이라는 동명의 조합에 운영을 맡기기로 결정하면서부터 만화전체로 대상이 확대되었다. 2008년부터는 1회적인 행사의 성격을 벗어나서 1년 내내 시 안에서 만화교실의 조직, 직접 기획한 전시들의 대여, 전문가들을 위한 교육과정의 창설, 전문만화가들의 파견 등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오늘날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역사적으로 오래된 축제가 되었고, 2015년으로 35회를 맞았으며, 정확한 명칭은 “만화와 투사된 이미지의 축제(festival de la bande dessinée et de l’image projetée)”이다. 이런 이유로 부분적으로 5분짜리 애니메이션 콩쿨도 포함되어 있다.

사진 1111. 최초의 축제포스터

사진 1212. 2008년의 축제포스터

사진 13

13. 2013년의 축제포스터

 

생-말로의 경우는 축제가 다른 기관들이 하는 역할들을 모두 맡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 이는 축제의 주최가 ‘조합’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해볼 것은 이 축제는 독서클럽을 별도로 운영하는데, 이름은 <캡틴 카멍베르(치즈의 종류)>이다. 생-말로의 시민들로 구성된 이들은 매달 1회씩 모여서 함께 만화책을 읽고 서로 의견을 제시하며, 그 결과로써 일종의 ‘이달의 권장만화책’을 블로그에 발표하고 있다. 축제가 어떻게 지역사회에서 안착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좋은 샘플이라고 본다.

009축제조합이 별도로 운영하는 독서클럽 블로그의 이미지. 각종 의성어 의태어들이 뒤에 보인다

또 다른 형태가 있는데, 우리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랭스(Reims)의 <아틀리에 510 TTC>라는 만화작가조합의 활동이다. <아틀리에 510 TTC>는 1994년에 랭스에서 몇 명의 전문작가들이 함께 만든 만화작가협동조합이다. 이들의 공동작업실은 랭스 지역의 문을 닫은 공장을 사용했었는데 맨 처음 이 공간을 시로부터 빌렸을 때 임대료가 1인당 510프랑이었기에 그 이름을 협동조합의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들의 목적은 물론, 전문적인 만화작업을 지속하는 것이다. 혼자서 개별적인 작업을 하기보다는 지역사회와 상관적인 몇 가지 활동들을 진행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작업속도를 조율하고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경제적, 정치적 이득을 획득하는 것이다. 이 외에도 이들은 신진작가들과 아마추어 작가들이 자신의 작업이나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일종의 멘토 역할을 하며, 프랑스 각지로부터 오는 연수생이라든가, 순수미술학교 학생들, 고블랭 애니메이션 재학생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또 역량이 입증된 만화작가들의 방문도 환영한다. 만약 환경을 바꾼 상태에서 작업을 하고 싶다는 요구가 있다면 한 주에서 몇 년 간까지의 기간 동안 공간만 있다면 받아들인다.

이러한 영역뿐 아니라 자신의 지역인 랭스에서의 만화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높이기 위하여 이들은 시, 시 도서관들, 시의 영상미디어센터, 학교, 때로는 감옥에 이르기까지 만화와 연관된 프로그램들은 진행한다. 특히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들은 미래의 창작자이자 향유자로서의 자질을 키운다는 점에서 특히나 관심을 기울인다고 한다. 현재는 1명의 시나리오 작가, 2명의 채색작가, 3명의 그림작가 등 6명으로 운영하고 있다. 시기에 따라 조합원들이 늘거나 줄거나 한다. 물론 창작자 그룹 중에서 누군가는 한 명 기획 및 행정적 절차를 담당해야 한다.

사진 14

14. 아틀리내 실내모습. 오타쿠가 부럽지 않다

사진 15

15. 13~18살들을 위한 만화창작수업 진행 포스터

사진 1616. 올해 7월 1일에 열린 소규모 만화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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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가족끼리 누워 있다. 무대에는 예술을 위한 공간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출처 : https://www.facebook.com/pages/Atelier-510-ttc

 

이들이 자신들끼리, 또는 자신들이 초대하는 작가들과 함께 7월 화창한 여름날에 책 사인회도 하고, 아이들을 위한 만화 콩쿠르 수상식 같은 자그마한 행사들(사진 16)도 진행한다. 행사를 하는 공간은 랭스시의 아주 오래된 회랑이며, 시에서는 아예 이 작은 규모의 공간을 6월 11일부터 8월 내내 다양한 야외행사를 위해 비워둔다. 시민들은 편하게 가족끼리 연인끼리 산책하듯이 나와서 길지 않은 시간을 즐기고 들어간다(사진 17).

중요한 점은, 비록 그 규모가 작아도 이 행사는 엄연히 전문적인 만화가집단이 진행하는 것이고, 이것이 작가들의 지속적인 작업 활동의 경제적, 정신적 뒷받침이 된다는 점이다. 또한 잠시 들렀다 가는 전문가 집단이 아니라, 바로 그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는 작가들이 자신의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지원한다는 점이다. 전에 이 조합을 만났을 때, 일년에 많지 않은 시간을 지역의 공공적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대신, 나머지 시간을 온전히 작업에 몰두할 수 있다고 말했었다. 물론 차고 넘치는 활동비는 아니겠지만, 작업실을 유지하고, 작업을 진행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일 것이다.

한때 수많은 지역에 많은 예술가들이 들어가서 많은 작업물을 남기면서 마을 만들기 등의 고민을 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 작가들이 떠나고 나면 남아 있는 것들은 모두 퇴색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역주민들이 갑자기 전문가가 될 수도 없는 일이다. 주민들의 일종의 문화적 요구와, 그 주민들 중 문화예술적 기량을 갖춘 사람들이 함께 그 지역에서 거주하면서 무엇인가 만들어낼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인 형태가 아닐까. 아주 전업적이고 전문적인 만화작가가 되기 전, 지역에서의 이러한 활동들은 어떠할까. 창작가들과 기획자들, 행정력이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힘의 상속자들(Les Héritiers de la Force)>이라는 조합이 운영하고 있는 <스타워즈와 공상과학 세대(Générations Star Wars et Science-Fiction)>라는 축제 역시 흥미롭다..‘힘의 상속자’들이라는 명칭부터가 특이한데, 이들이 어떻게 조합을 만들고 축제를 열었는지 그 과정을 한번 살펴보자. 1999년 10월, <스타워즈>의 4명의 광팬이 스타워즈의 에피소드 1을 보고 돌아온 후, 자신들이 지금까지 모아왔던 스타워즈 관련 피규어들을 전시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겨우 몇 개의 스탠드와 한 명의 코스튬플레이어와 더불어 약 1만 3천 명이 살고 있는 쿠세(Cusset)면(面)의 이자도라(Isadora) 강당 한 가운데 자리를 잡았고, 약 550명의 신기해하는 방문객들을 맞이했었다. 이 행사가 끝난 후 의외로 많은 팬들의 격려를 받았고, 이들은 이 경험을 살려 축제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를 위해 조합을 결성했다. 지금도 여전히 조합원들을 모으고 있는데, 연회비는 1년에 15유로, 약 2만원이다. 행사는 매월 5월 주말에 이틀간 진행한다. 스타워즈만이 아니라 공상과학에 관련된 다양한 행사들도 함께 진행하며, 판타지 같은 이웃 장르의 조합들이 행사를 원한다면 함께 공간을 열어주는 방식이다. 꼭 만화에만 제한된 것은 아니며, 스타워즈에 출연했던 배우들을 초대하거나, 공상과학에 관련된 만화책이나 책의 저자들을 초대한다. 축제장에 입장은 1999년부터 지금까지 무료이며, 약 만여 명이 참가하는 작은 규모의 축제이다. 하지만, 만 3천 명이 살고 있는 작은 면에, 만 명의 관람객이 들른다는 사실은 상당히 흥미롭게 보이지 않는가.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현재 조합의 멤버들의 사진을 보면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냥 동네 거주민 같다는 인상이 든다. 실제로 조합구성원들을 모집할 때, 오프라인 모임들이 종종 있으므로 가능하면 가까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귀여운 설명도 포함되어 있다.

사진 1818. 현재 조합맴버들의 사진이다.

사진 19

19. 사인을 하는 작가들

사진 20

20. 2015년 17회 포스터이다.

사진 21

21. 코스튬 플레이어들

사진 22

22. 행사장 내 모습

사진 23

23. 행사장 외 거리모습

모든 사진은 축제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임 http://www.genstarwars.com

 

또 다른 스타일도 있다. 독일국경과 접경지역에 있는 스트라스부르크에서 열리는 축제인 <스트라스부르그 만화축제(Strassbulle)>는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끼리 진행하는 만화축제이다. 알자스 만화(ABD : Alsace Bande Dessinée)라는 조합을 만들어 2008년부터 시작했다. 그 어떤 만화 전문가들도 없고, 단지 그 지역의 만화애호가들이 조합을 만들고, 축제를 진행한다. 초대할 작가들을 정하고, 그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조합은 여러 곳에 공문을 보내고 후원액을 모은다. 행사는 짧게 진행하고, 시내에서 갖가지 프로모션 행사와 작가 사인회 등을 하고, 조합원들은 초대한 만화가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관람객은 약 7,000명 정도에 불과한, 만화애호가들이 자신들과 시민들을 위해 만든 행사이다. 2015년엔 불행히도 행사가 취소되었다.

 

4. 풍부하고 다양한, 사방에서 열리는 만화축제를 꿈꾸자
프랑스의 경우에서 보았던 것처럼, 팬들이, 작가들이 직접 조합을 결성하고 자신들의 목적에 적절한 방식으로 축제들이 이곳 저곳에서 조직된다면, 상당히 다양한 작가군들과 기획자들이 할 수 있는 일들도 더 늘어갈 것이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에도 비코프와 시카프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14년에 15회를 맞이했다고 하는 부산양정청소년수련관이 준비하는 청소년만화축제, 2004년부터 시작한 고양국제호수만화축제, 2014년에 김해시에서 처음 열렸던 경남 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처럼 다양한 지자체에서 만화축제를 운영하고 있다. 전문만화작품과 만화가 등을 주된 대상으로 하는 축제와는 달리, 아마추어들과 동인들의 축제라고 할 수 있는 코믹월드, 동네파스타, 케이크스퀘어 등도 성격은 다르지만 만화축제의 하나로 포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추어 만화축제─만화의 일부만을 부각시키는 것이든 아니든─들을 제외하고 나면, 현재 우리나라 만화축제의 대부분의 주최주체는 행정사이드이다. 비코프와 시카프 모두 부천시의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서울특별시와 중구가 주최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 만화계의 각 영역이 집행위원회, 운영위원회의 이름이건 사무국의 이름이건 함께 협치의 형태를 기본적인 구조로 가지고 있다. 규모가 큰 만화축제는 이러하고, 규모가 작은 만화축제라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는 예산을 행정사이드에서 받아서 진행한다. 우리나라에선 자연스러워 보이는지 모르겠으나, 프랑스의 경우를 살펴보았듯이 주최자도, 예산도, 성격도, 방문자들도 좀 더 다양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우리정부나 지방자치정부의 강력한 지원정책 덕분에 만화 역시 많은 지원을 받고 있다. 또 전체적으로 보아서 한 두 개 정도는 대표적이고 인상적인 총체적인 만화문화산업의 지표로써 필요하기도 하다. 이런 부분에서 비코프의 경우는 시카프보다 더 모범적으로 보인다. 다름 아니라 이 축제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클러스터의 구성물, 만화관련 기업체에서 작가군들까지 모두 포괄하고 있는 부천시라는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원을 받아서 축제를 여는 것’이 당연한 걸까? 지원을 받아서 축제를 여는 이상, 당연히 요구받는 사항들도 생길 수밖에 없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지원받는 이상, 최소한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며, 대다수가 원하는 것이라는 포맷에서 벗어나기 힘들지도 모른다. 더 중요한 것은 언젠가는 자체적인 체력과 지구력을 키워서 더 부족한 부분에 꼭 필요한 부분만 지원을 받겠다는 의지 아닐까. 이제 우리는 슬슬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다. 만화축제를 모두 그림 2에서 보듯이 만화문화산업의 한 지표로써만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너무 거대한 축제에만 익숙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 최근 제정된 <문화기본법>과 <지역문화진흥법>은 만화축제 역시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 할 것인지 살짝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곳에서 분명, 만화에 관련된 다양한 활동들이 벌어지고 있을 수 있다. 작게는 중고등학교 만화동아리에서 대학의 만화동아리들까지, 또한 지역사회와 만화관련 활동들의, 그리고 만화협동조합의 지역밀착형 만화관련 활동들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24

24. 시니어 만화자서전 수업

사진 25

25. 만화뉴스 제작수업

사진출처 : https://www.facebook.com/cartooncampus

2011년부터 활동하고 있는 <카툰캠퍼스>를 떠올려보자. 카툰작업을 하고 있던 작가들의 모임에서 출발한 이 주식회사는 조합은 아니다. 카툰이라는 성격상, 창작자들이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작업의 영역이 크지 않다. 물론, 웹툰이 오늘날처럼 커지기 이전까지 스토리만화 창작자들도 유사한 환경이었지만, 기본적으로 카툰창작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경제적 활동역역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카툰 창작자들은 어떻게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야 하는 것일까. <카툰캠퍼스>가 내놓은 대안은 만화를 통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의 개발과 실행이다. 교육부, 지역문화재단 등 기관, 단체, 기업들과 함께 만화를 통해 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시니어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으로서의 <만화자서전> 같은 사업(그림 24)은 만화가 할 수 있는 일을 잘 살려내면서도 시니어들의 실천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흥미로운 사업으로 보인다. <어슬렁 만화장터>도 마찬가지, 지역서비스와 작가활동을 결합시키려고 노력한 결과물이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안에서 만화가 할 수 있는 다양한 양태들을 개발하고 그를 실행하는 것이 점점 더 많은 수요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본다. 중점을 찍어야 하는 점은, 이것이 카툰 작가들의 1차적 창작활동과 부차적인 교육활동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이룰까 하는 점일 것이다. 이런 활동들이 특정 지역, 특정 공간에서 주기적으로 벌어지고, 그 결과물을 모아낸다면 아마도 훌륭한 작은 만화축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최근엔 만화창작자그룹의 활동도 활발하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2013년부터 시작한 한국만화인협동조합 <만화로>와 2014년에 활동을 시작한 대구경북만화인협동조합이다. 아직은 별다른 결과물을 밖으로 충분히 내보이고 있지 않지만, 전문적인 창작자로서의 활동만이 아니라 지역과 결합하여 조금씩 성과물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만화로>의 경우, 조합원의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라 의견들을 함께 조율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우려가 있다. 작게 활동하고, 그 결과물들을 점차 조금씩 확대하는 방식이 더 편했을 텐데 말이다. 게다가 현재 자리 잡고 있는 강동구와의 협력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는 조합만의 역량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구청의 만화문화와 조합활동에 대한 높은 이해와 노력이 필요할 텐데, 아마 갈 길이 쉽지는 않아 보이지만, 주목할 수 밖에 없는 활동이다.

최근 출판도시 파주에 거주하는 만화가들 몇 명이 모여 파주의 ‘대안공간 휴’에서 <칸퍼레이드>라는 전시를 열었다. 김한조, 신명환, 앙꼬, 유창창, 하민석, 홍연식.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주로 비상업만화 계열의 작가들이다. 자주, 때때로 서로 왕래하면서, 그냥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행사이다. 물론 신명환이라는 작가겸 전시기획자가 함께 있으니 만들어진 행사겠지만, 글쎄, 이 행사가 언제까지 전시로만 머물러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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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칸 퍼레이드 포스터

사진 27

27. 전시장 내부 모습

물론, 우리가 갈 길은 멀다. 하지만 지향해야 할 모습 속에 비코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코프 같은 전체의 맥락을 읽을 수 있는 만화축제도 물론 필요하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지역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지속 가능한 창작생활을 위해서, 함께 하는 축제, 주최측과 향유자측의 구분이 그다지 확실하지 않고, 말 그대로 한마당이 될 수 있는 그런 만화축제들 역시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관점이, 오늘날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참고자료>

부천국제만화축제(http://www.bicof.com)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http://www.sicaf.org)
고양국제호수만화축제(http://www.lcf.kr/)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http://www.bdangouleme.com/)
퀘 데 뷜(http://www.quaidesbulles.com/)
스타워즈와 공상과학 세대(http://www.genstarwars.com/)
스트라스부르크만화축제(http://strasbulle.com/)
마즐리스 (http://www.magelis.org/)
전세계 만화축제 지도 (http://opalebd.com/festivals/naviguation/regions/7/66)
아틀리에 510-ttc (https://www.facebook.com/pages/Atelier-510-ttc)
카툰캠퍼스 (https://www.facebook.com/cartooncampus)

ending

한상정

현재 상지대학교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크리틱 M의 편집위원들 중 유일하게 여성형태를 띄고 있다는 이유로 편집위원장이라는 무한 권력을 쟁취해냈다(그래서 매번 회의록 작성해야 한다나?). 일요일 일찍부터 일어나서 마당을 쓸고 닦고 나면 그제야 어머니의 허락 하에 아버지, 두 남동생과 함께 탐독하던 만화책들의 기억으로 만화사랑을 실천중이다. 이런저런 만화들을 골고루 보는 편이지만, 성별과 상관적으로 (이 대목에서 어떤 이들은 말도 안 된다며 구박한다) 꽤 오래 순정만화를 탐독하고 연구했다. 요즘은 장르 불문. 그러나 너무나 섬세해서 (거기, 얼굴 돌리지 마시고!!), 과다한 유사코드 반복 작품들은 3분도 견디지 못한다. 뭐라도 ‘새로운’것이면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오니, 모더니즘으로 회귀 중 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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