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죠시 매니페스토 무단 전시 사건을 보면서

별일 없는 날이었다. 늘 그랬듯이 인터넷 서핑과 SNS의 바다 위를 동동 떠다니다가 발견한 것이다. ‘후죠시 매니페스토: BL과 후죠시 예술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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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 작가 진챙총의 전시회와 함께 열릴 토론회였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BL 전문가도 참석한다니 그 내용과 쟁점들이 무척 궁금해졌다.

이 땅에 살아 숨 쉬는 BL 만화의 역사를 생각할 때마다, 한때 대한민국 순정만화계의 대표작가로 손꼽히던 작가들이 양지의 온, 오프라인 매체에서 자취를 감추고 그림자 속 동인지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목격담이 암암리에 들려올 때 마다, 학계 논문 소재로 쓰였던 우리의 BL 만화를 학문적, 예술적 기준으로 진지하게 논의하는 장면을 볼 수 있겠다싶어, 기대했었다. 공적인 자리에서 관련 업계 전문가와 연구가, 무엇보다 ‘일코’ (일반인 코스프레)를 해제한 뜨거운 피를 가진 재야의 고수들의 생생한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여겼다. 그들의 가공할 만한 ‘덕력’으로 새로운 지적 기쁨을 아는 몸이 되고 싶었다. 결론만 말하면 택시를 타고 소나기에 쫄딱 젖은 뒤 욕구불만으로 가득 차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실패.

사건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전시회가 시작된 날, 진챙총 작가가 올린 전시회장의 내부 사진들이 여기저기 퍼지기 시작했다. 전시 작품의 정체가 국내외 작가들의 BL 일러스트였던 것. 그것도 성인등급 표시나 주의 없이 무삭제로 출력해서 무단으로 전시됐다. 이 중에는 일본의 온라인 일러스트 커뮤니티인 픽시브에 공개된 일부 작품과 현재 유료 매체에 연재중인 국내 작가의 작품도 포함됐다. 다행이라면 작가와 출처가 친절하게 표시됐고 실제 전시물은 스크린에 띄운 그림을 특수 카메라로 촬영하여 출력한 재편집(?)본이지만 논란이 가라앉기엔 역부족이었다. 전시회장인 영등포의 커먼센터 공식 홈페이지에는 전시 기획의도를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한 ‘소수자 정서’의 욕망을 어떻게 시각화-언어화했는가를 샘플북처럼 보여준다.” 라고 밝혔다. 그러나 소수자의 욕망을 소수자의 동의와 어떠한 필터링도 없이 공공장소에서 까발렸다는 점에서 비난은 멈출 줄 몰랐다. SNS와 인터넷은 전시회와 작가를 비난하는 글과 적나라한 그림이 공개된 전시회장의 사진이 속속 올라왔다.

충격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평소 좋아하던 ‘존잘러님’ (그림을 매우 잘 그리는 사람)의 작품이 무단으로 전시됐단 소식에 어느 BL 애호가이자 트위터리안이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하루빨리 전시를 멈춰야겠단 마음에 음란물 전시로 신고했다는 고백도 더해졌다. 상황은 일파만파로 퍼졌다. 전시회장에 출동한 경찰들의 사진들이 나타났고 온라인은 또다시 시끄러워졌다. 누구는 작가나 전시회측만 광고해주는 일만 하는 것이라 했고 누구는 어차피 해프닝으로 끝날 일에 기름을 부은 것이라고 했고 누구는 그래 봤자 관심 가져 줄 이가 없을 거라고 냉소했다. 이쯤 되니까 더럭 걱정이 됐다. 이러다 토론회에 불똥이 튀는 건 아닐까? 전시회장에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국내 작가가 연재하는 연재처는 공식 트위터로 이 사건에 대해 항의하려고 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 후로 몇 번 더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답을 얻지 못했다. 그렇게 토론회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욕구불만의 육신이 된 것은 8할이 내 탓이었다. 토론회 시간을 처음부터 제대로 알았더라면 한강의 끝에서 끝까지 비싼 택시비를 물고 소나기를 맞아가며 갈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 참가신청이 시작되자마자 몇 시간 만에 마감된 사전 신청에 좀 더 부지런을 떨었다면 변경된 토론회의 시간과 장소를 개인적으로 받을 수 있는 사전 신청자가 되어 늦게라도 참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가지만 않았더라면 어느 인자한 블로거가 올린 변경 토론회 시간과 장소를 재빨리 알아내서 악착같이 찾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모든 게 내 탓이었다. 그래도 조금은 억울했다. 어쩌면 그 손톱만한 억울함 때문에 이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저녁 SNS로 올라오는 토론회의 후기들은 만족스럽다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토론회에 참석한 (구)싹이라는 트위터리안은 다음과 같이 참가 소감을 밝혔다:

(사회자)김효진 님은 ‘진챙총과 함께 한국 동인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후죠시(부녀자, 특히 일본에서 BL콘텐츠의 주 향유여성층을 일컫는 말)로서 연구자로서 전시를 계속 분석해나갈 것이라며 윤리적 결함을 가진 작품이니 논의에서 배제하고 치부를 제거하자는 자세는 순수한 역사만을 남기려 하는 배제의 내셔널리즘에 가깝다’고 말했다. (패널)임근준 님은 “후죠시가 자기성찰을 통해 자족적 시스템 밖으로 나오는 순간 (오타쿠와 달리 작동하는) 후죠시의 전지적 시선이 오작동하며 후죠시이기를 멈추게 된다며 결과물을 아쉬워했고 이후 생산적인 후죠시 2차 담론에 대한 논의의 장을 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조구치 아키코 님은 “도용은 문제지만 작가가 자신의 위치와 입장을 충분히 의식하면서 어떤 위치와 입장에 선 작가-작품을 가져왔느냐에 따라 전시가 의미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며 주체가 되어 움직이는 후죠시 아티스트의 등장은 그 자체로 반갑다고 얘기했다.”라고 말했다.

진챙총 작가의 무단 전시와 토론회와는 별개로 BL만화에 대한 열린 토론의 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BL 만화 커뮤니티나 이른바 동인녀들은 무단 도용과 전시는 도둑질과 다름이 없으며 아무리 현대 미술의 외피로 비윤리적인 행위를 두른다 해도 비난을 피할 수 없다는 게 지배적이다. 또한 이와 비슷한 비율로 진챙총이란 듣보잡은 누구냐라는 의견도 많았다. 어차피 예술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위해 벌인 노이즈마케팅에 기인한 해프닝에 불과하니 어떠한 관심이나 비판도 BL 만화 커뮤니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무단 전시된 그림의 원작자인 국내 BL 만화 작가에 소감과 의견을 구했지만 이번 사건으로 관심을 받거나 해명을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인상의 대답을 받았다. 잘못은 분명하고 오물은 던져졌으니 치우지 못할 것이라면 눈 감고 돌아가는 게 상책이라는 것일까?

그러나 진챙총과 전시회를 두둔하는 의견도 있었다. 토론회에 패널로 참가한 임근준 미술 평론가는 트위터를 통해서 “진챙총의 전시는 일종의 관계 미술로, 기호적으로 전시공간을 후죠-온리-타임라인(부녀자 취향만을 위한 타임라인), 존잘짤-(컴퓨터)저장 폴더를 표현한 것과 같다. 진챙총은 제 모순적 실존에 대한 선언을 시도한 것일 뿐이며 (전시행위가) 벽에 걸린 천쪼가리가 아닌 전시를 재창안한 맥락 그 자체로 파악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터키찬이란 트위터리안은 “(오타쿠-후죠시 세계와는 달리) 미술계는 외부로 향하기보다는 작가 개인의 내면을 파고들어 그 세계를 보여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혀 공감이라곤 할 수 없는 것이며 오히려 개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의 전시 자체를 ‘양지화’라고 부를 수 없다고 느꼈다. 그는 후죠시를 바깥으로 빼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전시라는 행위는 온전히 작가 본인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이 가장 거대한 동력이 되어야 하는 작업들의 결과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전시는 ‘작가’ 진챙총의 자전적 행위로 봐야만 한다.”라고 말했다.

난 이러한 의견들이 모여서 좀 더 다양한 논의를 확장시키길 기대했다. 현대 미술이 아닌 BL 만화의 시각으로 본, 도둑질을 손가락질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기다리고 찾아보았다. 그러나 아직도 내 눈과 손은 찾지 못한 것 같다.

아무리 출처를 밝히고 재출력과 바느질로 재편집을 한다 해도 허락 없이 무단으로 그림을 가져다 전시한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그러나 전시의 기획의도처럼 “윤리와 쾌락 사이의 아이러니는 해결하지 않은 채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간단한 방법으로 묵인되었고 제 언어가 발각되기를 두려워하는 어떤 뒤틀린 ‘소수자’의 정서”를 미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무단 전시밖에 없었으며 그것을 비판하는 근거는 오로지 저작권법 외에는 없는지 의문이 든다. 과연 우리나라 BL 만화 중엔 그런 ‘뒤틀린 소수자의 정서’를 만화적, 예술적으로 응답할 작품이 한 편도 없었던 걸까?

BL 만화의 창작자와 수용자와의 내재적이고 폐쇄적인 관계 속에서 형성된 문화가 현대미술이란 이름 아래 무단으로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방식에는 도덕적 비판만 가능한 것인가? 이런 예술적 태도가 대중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어떻게 정서적으로 설득할 수 있을까?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는 토론회마저도 전시회와는 별개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토론의 변경된 일정에는 공개를 꺼리는 주최측이나 일련의 사태가 일어나는 내내 어떤 반응이나 문의 전화조차 받지 않았던 전시회장인 커먼센터의 태도 또한 이해할 수 없긴 마찬가지였다.

이른바 관심종자 (온라인 상에서 관심 유도를 위해 자극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들)의 어그로 (도발 행동)에는 어떤 먹잇감도 주지 않겠다는 BL 커뮤니티의 단호하고 철저한 무관심뿐만 아니라 원작자와 팬들의 분노를 긍정하면서도 고차원적이고 난해한 일종의 현대미술의 행위예술로 이해야한다는 전문가들의 이중적 태도도 공감하기 어려웠다. 마치 무언가 모호한 분위기로 둘러싸인 기묘한 세계를 문틈으로 살짝 엿본 기분이었다.

시간은 지나고 흑역사는 남는 법이다. 우리나라 BL 만화계에서 인구에 회자될 사건이 될지 모르겠지만 아주 좁은 틈 사이로 본 기묘하고도 폐쇄적인 세계가 움직이는 독특한 방식을 목격한 알 수 없는 느낌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주변에서 어떤 개드립(쓸데없는 소리)과 병크(멍청한 짓)를 터뜨려도 묵묵히 가고 싶은 길만 가겠다는 고집스러운 무소 같은 운동 원리로 생성된 그들만의 우주가 내 머리 위에서 스쳐지나간 별똥별처럼 반짝이다가 사라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