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합리한 세상에서 모두의 욕망을 긍정해보다_ <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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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불합리하다
2013년 5월부터 네이버 일요웹툰에 연재 중인 윤현석 작가의 <다이스>는 이 세상을 지배하는 섭리가 ‘운과 확률’에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음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며 시작한다. 주인공 동태의 못난 외모, 왜소한 체격, 불우하고 가난한 가정환경 등 그가 가진 나쁜 조건들 가운데 실제로 그가 초래하여 빚어진 요소는 없다. 그는 그저 그렇게 태어났을 뿐이다.

소위 말하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그들이 그렇게 된 데에는 특별한 인과관계가 없다. 이러한 현실의 불합리성을 ‘전생에 쌓은 업’이나 ‘신의 섭리’ 등을 빌어 나름의 이유를 찾기도 하지만, 작가는 그 이유를 ‘저승의 주사위 굴리기 결과’를 통해 비유한다. 작품 1화, 동태가 상상한 ‘주사위 굴리기’는 우리의 현실을 만든 모든 것들이 그저 ‘운과 확률’에 의해 초래된 것이 아닐까 반문한다. 불행한 ‘빵셔틀’로 태어나게 된 이유에 대해, 동태는 특별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그저 주사위를 잘못 굴렸기 때문이라고 상상하는 것이다. 웹툰의 제목 <다이스>는 주사위를 의미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사위가 갖는 면적에 따른 확률, 굴리는 상황과 행위의 우연까지 모두 의미한다. 세상은 확률과 운으로 둘러싸여 있고, 사람들은 그 이유를 찾아 조금이라도 위로받고 싶다.

 

모든 수행에 보상이 따르지는 않는다
누구나 욕망을 갖고 있다.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행동하면 된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 과정은 필요조건이 될 수 있을지라도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수행이 실질적인 보상을 항상 수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상을 갖지 못한 수행은 충분히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라며 부정당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확률과 운’에 의해 ‘가지지 못한 자’로 태어났고, 보상을 완전히 기대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달려야만 하는 이들에게 동태의 독백은 아프게 다가간다. “어쩌면 내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틀린 게 아닐까… 노력해본들 뭔가 달라지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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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는 세계관의 다양한 설정 속에서 현실의 문제를 논하는 장르다. <다이스>는 ‘확률과 운’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비이성적인 세상을 주인공 동태가 처한 상황을 통해 표현하고, ‘노력과 보상 사이의 불확실성’을 그가 참여하게 된 게임을 통해 이야기한다.
수행을 위한 노력이 바로 즉각적인 보상으로 이어지는 게임, ‘다이스’는 동태의 현실에 드리워진 한계를 넘을 수 있는 힘을 가져다준다.

‘다이스’로 불리는 주사위를 굴림과 동시에 ‘다이서’가 된 동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엑스(X)가 지시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그에 수반되는 보상을 통해 본래의 모습을 바꾸기 시작한다. 임무 완료와 동시에 매번 ‘다이스’가 주어지는데, 굴린 주사위의 눈금 값만큼 선택한 능력치를 올릴 수 있게 되면서 동태는 ‘빵셔틀’취급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모두의 욕망이 실현되는 세상은 완벽한가
게임 ‘다이스’를 통해 초반 동태의 현실은 개선되고 안정되는 듯 보였지만, 곧 다이스를 둘러싼 다양한 갈등과 딜레마가 만들어진다.

동태가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같은 반 학생 은주는 “사람은 태어난 대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다이스’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한다. 불공평한 현실에서 약자로 살아가던 동태가 자신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게 해 준 ‘다이스’를 긍정하는 것과 대치된다. 오랫동안 동태는 그녀에게 순수하게 인정받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모든 변화들이 ‘다이스’ 때문임을 알리게 되면서, 동태는 은주가 ‘다이스’ 사용을 긍정하게 만드는 길이 그에게 주어진 최선이라 생각한다.

‘다이스’의 힘을 긍정하는 동태의 행동은 다른 한편으로 더 큰 갈등을 품어낸다. 멋지게 변한 동태 대신 그의 친구 병철이가 새로운 ‘빵셔틀’로서 놀림감이 되고, 친구를 구제하기 위해 ‘다이스’를 건네준 동태의 행동은 걷잡을 수 없이 사태를 악화시킨다. 결국 불특정의 많은 사람들에게 주어지게 된 ‘다이스’는 모두의 소망을 실현시키는 수단으로서 기능하기 보다는 그들을 다시 ‘덜 가진 자’와 ‘더 가진 자’로 갈라놓는 힘과 권력의 상징으로 기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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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을 따르자면, “드래곤 볼을 소시민에게 쥐여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라는 물음에서 <다이스>의 전개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흩어진 ‘드래곤 볼’을 모아 소원을 이루기 위해 충돌했던 이야기 양상과 달리, <다이스>에서는 일종의 ‘드래곤 볼’로 상징되는 ‘다이스’에 다수의 사람들이 참여하게 된 상황에서 극적 갈등이 발생한다. 즉각적으로 욕구를 해결하는 것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음에도, ‘다이스’를 통해 채울 수 있는 욕구는 근본적이지 않고 오히려 더 큰 허기를 부르는 아귀 지옥 같다. 동태의 혼잣말에는 그런 고민이 녹아있다. “다이스가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거라 생각했어. 누구나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사랑받고 싶잖아. 잘 생기고, 키도 크고, 똑똑해지고, 인정받고… 잘못된 생각이었을까?”

모두 ‘드래곤 볼’을 갖고 있는 세상, 그래서 모두가 특별해진 <다이스> 속의 세상. 이 세상은 완벽한 세상인가? 모두의 욕망을 실현화할 수 있는 방법을 갖고 있는 세상은 적어도 실제 현실보다는 나은 것인가? 작가가 제시할 답은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에서 보다 명확하게 드러나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다이스>에 나온 인물 모두 지금까지 ‘근본적으로 원했던 것’을 갖지도,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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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스>는 화려한 이미지와 독특한 소재, 트렌디한 설정 속에 날카로운 질문들을 여럿 품고 있다. ‘자신의 본래 모습 그대로 만족하는가?’, ‘바란다는 것은 실현될 때만 의미 있는 것인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 힘을 가질 것인가? 그렇다면 그 힘을 어떻게 쓸 것인가?’와 같은……. 이러한 질문들은 불합리한 세상에서 ‘약자’로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우리 모두가 삶에 대한 나름의 의미를 찾는 한 걸음이 될 것이다.

 

윤보경

Bokyoung YUN (尹保競) 공주대 만화예술학과에서 만화 공부를 시작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앙굴렘 유럽고등이미지학교에서 심화 과정을 쌓았다. ‘읽다’와 ‘보다’라는 행위를 중심으로 한국 만화와 유럽 만화를 비교한 [프랑스 만화의 읽기와 한국 만화의 보기], 언어의 차이점이 빚은 만화 서술 방식을 연구한 [언어의 차이점이 빚어낸 만화 서술 방식의 차이] 등의 논문을 쓰고, 프랑스의 만화 비평지 [제 9의 예술]에 [프랑스의 디지털 만화와 한국의 웹툰 : 디지털화면 위의 두 가지 표현 방식]을 기고했다. 한국 귀국 후, 대학 출강과 작품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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