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시스템의 영원한 노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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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라스트> 의 연출 미학을 통해 본 개인과 사회 고찰

서울역. 제 18회 부천국제만화축제 폐막 이틀 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돌아온 프랑스 만화전문기자 로랑 멜리키안을 그곳에서 만난 건 운명이었다. 프랑스에서 인연을 맺은 그에게 친구로서 서울 구경을 시켜주고 싶었다. 그런데 서울역 맞은편 후암동에 숙소를 잡은 건 전적으로 멜리키안의 의지였다. 다음날 인천국제공항 가기 쉽다는 이유였다. 그는 서울역을 단지 ‘한국에서 가장 큰 역’으로 알고 있었고, 나는 “한국에서 노숙자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며,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라고 추가 설명했다. 멜리키안은 “파리에선 노숙자들이 무더위에 많이 죽는다.”라면서 프랑스의 어두운 현실을 털어놓았다. 저녁 식사를 할 장소를 찾아 함께 걸어가는데 한 노숙자가 길을 가로로 막고 누워있었다. 서로 속내를 털어놓았지만 외국인에게 서울역의 맨얼굴을 더 이상 보여주기 싫었다. 그를 데리고 왔던 길로 돌아갔다.

서울역. 이번에는 만화 <라스트>의 무대인 그 곳이 원고청탁을 빌미로 다가왔다. 외국인에게 다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그 곳의 생태계가 만화 칸과 칸 사이에서 실핏줄처럼 선명하게 정체를 드러냈을 때, 더 이상 피할 수 없었다. 그 또한 운명이었다.

강형규의 만화 <라스트>는 ‘작전’을 펴서 한몫 단단히 챙기려던 펀드매니저 장태호가 작전에 실패한 후 서울역 노숙자가 됐다가 노숙자 넘버1까지 꺾고 재기한다는 이야기다. 노숙자 세계에도 서열이 있어 보스급이 되면 밑에서 갖다 바치는 상납금만으로도 떵떵거리며 살 수 있고, 노숙자들 사이에 서열을 정하는 ‘파티’(맨주먹 싸움)가 열리며, 파티를 통해 신분상승하고 파티에서 패하는 쪽은 장기 적출돼 버려진다는 어둠의 정보가 독자들을 솔깃하게 한다.

이 작품의 미덕을 피도, 눈물도 없는 노숙자 세계의 이면 보여주기로 한정지으면 충분한가? 작가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 작품은 노숙자 생태계의 디테일을 넘는 철학적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이와 맞물려 연출의 미학이 논의되어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갈망하지만 사회에 귀속돼 있다. 개인이 속한 사회 단위에는 크고 작은 ‘질서’가 있고, 여러 질서들을 포괄하는 거대한 ‘시스템’이 개인은 물론 세상까지 지배한다. 국경선 안에선 국가가 가장 큰 시스템이다. 물론 전 세계를 움직이는 시스템도 있다. 달러화 같은 기축통화를 보유한 미국은 기준금리 인상, 인하만으로도 전 세계 금융시스템을 들썩거리게 한다. 미국의 달러환율, 기준금리가 우리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현대인은 ‘정규 시스템’에 대한 거부감과 편안함이라는 이율배반의 감정으로 살아간다. 개인화가 심화될수록 무엇인가를 강제하는 시스템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지만 정규 시스템 안에 있으면 편한 구석이 꽤 많다는 것도 잘 안다. 당장 의료보험이나 국민연금 같은 시스템의 수혜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해보라. 따지고 보면 평범한 개인은 최소한의 신용을 유지해 시스템으로부터 축출되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시스템의 노예’일 수도 있다.

정규 시스템에서 아예 ‘삼진아웃’된 개인이 있다. 노숙자들이다. 그 모습과 삶이 어떤 것인지는 서울역에 가보면 금세 알 수 있다. <빅이슈> 같은 잡지를 팔아 부활을 꿈꾸는 건전한 노숙자들도 있지만 노숙자 대부분은 서울역에서 무기력한 일상을 보낸다.

정규 시스템에서 아웃된 순간, 그 개인에겐 소속이나 속할 질서도 사라진다. 노숙자가 되면 사회에 대한 권리와 의무도 없어지고, 공권력의 보호를 받지도 못한다. 그들은 ‘낙오자’란 이름으로 불리지만 ‘시스템의 노예’ 신세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라스트>는 정규 시스템 너머 세계를 제시한다. 상식적으로 예상되는 시스템 너머 세계는 시스템이 가동하지 않는 비시스템의 세계다. 서울역 주변 무료급식소를 이용해야 하는 질서 정도만 뺀다면.

그러나 <라스트>는 정규 시스템 밖에 또 다른 독립 시스템이 존재한다고 외친다. 메이저리그 밖에서 마이너리그가, 프로야구 정규리그 밖에서 2군 리그가 돌아가고 있는 현실처럼. 노숙자가 원하든, 원하든 않든, 그들은 시스템 밖에서 또 다른 ‘노숙자 시스템’에 편입된다.

<라스트>에서 노숙자 시스템은 은행과 금융권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사람이 속한 시스템과 달리 별개로 존속하는 비공식 독립리그 정도로 제시된다. 이 비공식 독립리그는 실체가 없는 듯 하지만 존재하며, 한 번 떨어지면 재기를 꿈꿀 수 없다는 점에서 마이너리그나 2군리그와 질적으로 다른 무저갱이다. 호랑이 피하려다 늑대를 만난 격이랄까? 시스템에서 벗어난 노숙자가 됐다고 해서 하루 종일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도 없다. 노숙자 시스템은 그들에게 끊임없이 다른 종류의 의무(돈벌이를 포함한)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노숙자는 ‘인간’이 아니라 철저하게 ‘돈’이다. 이 곳에서 ‘사람이 사람인 까닭은 사람과 사람의 결합에 있다’는 오토 프리드리히 폰 기르케의 <독일단체법론>의 사회유기체설은 발붙일 데가 없다. 장태호의 노숙자 매니저 차해진의 설명을 들어보자.

“대한민국에서 1인당 신분값이 얼마나 될 것 같아요? 대포폰, 대포통장, 대포자동차, 소줏값 벌자고 넘긴 자기신분. 몇 천 원으로 거래되는 그 신분이… 얼마에 팔릴까? 구걸해서 모은 돈, 신분 팔아 모은 돈, 장기 팔아 모은 돈… 결론!! 여기서 노숙자들은 다~ 돈이다!”

노숙자 시스템에서 기르케의 주장은 이렇게 바뀌는 게 옳다. ‘사람이 사람인 까닭은 돈으로 환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독립 시스템은 특이하게도 전체와 개인, 어느 한 쪽으로 무게중심이 가있지 않다. 견제 장치가 없는 탓에 완벽한 왕조다. 차해진의 설명은 계속된다.

“그 돈들이 깔대기에 물 담는 것처럼 모여서 한 사람에게로… 이런 서울역의 시스템을 처음으로 만들어낸….”

<라스트>는 A시스템에서 B시스템, 즉 1군리그에서 비공식 독립리그로 옮겨가는 이야기다. 이 작품이 드라마화 될 수 있던 원동력은 A시스템과 B시스템의 명확한 대비다. 정규 시스템에서 장태호 같은 펀드매니저가 작전을 펴서 당길 수 있는 최대치는 350억원이다. 작전은 A시스템에서 불법으로 취급되는 범죄행위여서 잘못될 경우 행위자는 교도소로 가야 한다. 교도소는 A시스템을 악용한 자들이 일정 기간 머물다 다시 돌아가는 ‘비(非)A시스템’이다. 비A시스템은 B시스템이 아니라 기호학적 용어를 빌면 A시스템의 ‘모순’이다.

노숙자 시스템에서 서열 1위인 곽흥삼이 일 년에 상납 받는 금액은 100억원이다. 장태호가 첫 파티에서 뱀눈을 깨고 서열 7위가 됐을 때 노숙자들에게 상납 받은 금액은 매일 십만원, 한 달이면 300만원이다. 월급 300만원(세금 공제 후)이면 정규 시스템에서도 중산층으로 편입될 수 있는 액수다. 현금 장사만 하는 이곳의 질서는 정규 시스템보다 훨씬 보수적이다. 장태호는 노숙자 시스템을 파악한 후 아예 서열 1위를 깨고 100억원을 차지하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서열 깨기라는 심플하고 강력한 스토리라인을 구축한 <라스트>의 진짜 재미는 정규 시스템, 노숙자 시스템의 실감나는 시각화라는 연출 미학에 의해 보장된다. 이를 위해 어느 시스템에서든 최정점으로 치고 올라가려는 야망에 불타는 인물인 주인공 장태호가 필요하다.03

연출 미학적 면에서 <라스트> 1권의 첫 칸은 매우 상징적이다. 장태호가 두 팔과 손을 쭉 편 채 자신의 온몸을 일자(一字)로 만들어 수영하는 장면이다. 관찰자가 수영장 바닥에서 잡은 이 시점으로 인해 장태호는 수면의 가장 위쪽에 떠 있으며, 마치 하늘을 날며 전진하는 것처럼 보인다. 시공간이 바뀐 다음 장면에서 장태호는 스쿼시 코트를 지배한다. 그는 정규 시스템의 최상층부를 향해 무섭게 상승하는 에너지 그 자체다.04

장태호가 단 한 번의 작전 실패로 추락하는 이카루스 신세가 될 땐 심리적 연출법이 두드러진다. 사채업자인 정 사장로부터 작전 실패를 추궁하는 전화가 걸려온다. 장태호와 동료 박 팀장이 공포에 사로잡히는 장면을 보라. 휴대폰 벨소리 의성어가 망치처럼 세게 그들의 머리와 귓가를 때려댄다. 휴대폰 벨소리는 두 사람에게 사형선고다. 작가 강형규는 그들이 체감하는 공포의 크기를 효과적으로 시각화해낸다. 심약한 박 팀장은 스스로 목을 매단다. 정규 시스템에서 야망과 절망의 크기는 비례한다. 필수 생활용품인 휴대폰은 정규 시스템 탈락자의 생명을 빼앗는 살상무기로 변한다.

노숙자 시스템을 노골적이면서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5000원짜리 지폐다. 허기진 장태호는 서울역 지하도에서 어린아이가 먹다버린 핫도그를 주워 먹으려다 그 옆에 떨어진 5000원 짜리 지폐를 발견한다. 5000원 짜리 지폐를 둘러싸고 그것으로 사먹을 수 있는 우동, 햄버거, 김치볶음밥, 찌개 등 수많은 음식들이 장태호에게 달려드는 클로즈업 전장 두 페이지는 인상적이다. 정규 시스템에서 350억원을 노리던 장태호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5000원 짜리 지폐를 빼앗은 뱀눈을 우발적으로 때려눕힌 계기로 장태호는 서열 7위에 오른다. 뱀눈은 한 번의 패배로 장기가 떼이는 신세가 되었다. 노숙자 시스템에선 5000원 짜리 지폐 한 장에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 한다. 개인적으로 <라스트>에서 이 에피소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 한 번의 실패도, 재기도 허용하지 않는 노숙자 시스템의 비정함과 질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실패한 인간의 목숨 가치는 5000원 이하이며, 수술대에서 자신의 장기를 적출해 이곳의 질서에 손해를 끼친 비용을 상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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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은 노숙자들의 잠자리이자 장태호-곽흥삼의 최후 대결 장소인 서울역 지하도다. 장태호가 바닥에 떨어진 핫도그를 주워 먹을까 고민하는 시험대이기도 하다. 작가가 그곳을 주목한 건 훌륭한 감각이다. 지하도가 묘사될 때마다 노숙자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풍겨 나오는 것 같아 뱃속이 울렁거린다.

JTBC 드라마 <라스트>는 화면에서 노숙자 세계의 퀴퀴한 냄새를 걷어냈다. 장태호의 매니저 차해진 캐릭터는 코믹한 성격이 강화됐고, 장태호의 전 애인 박미라는 재벌 그룹 회장의 숨겨진 딸이며 야망 덩어리로 각색돼 재벌 그룹 내부공간을 비춰주는 매개체가 됐다. 노숙자 세계의 보스들은 조폭 두목들처럼 너무 화려하게 산다. 드라마 앵글 속의 공간 이미지들은 노숙자 시스템이 아닌, 정규 시스템의 일부처럼 보인다. 김치찌개를 이탈리안 레스토랑 같은 근사한 곳에서 먹는다고 더 맛있어지지 않은 법이다. 깨끗하고 말끔한 노숙자 세계는 판타지일 뿐이다.

만화 <라스트>는 개인과 시스템의 관계를 새롭게 보게 한다. 정규 시스템은 그 구성원들에게 점점 더 많은 질서와 조건 등을 요구한다. 게다가 정규 시스템에서 탈락된 후에 개인의 선택과 관계없이 무조건 더 열악한 시스템에 편입돼야 한다면, 인간에겐 한 조각의 자유라도 남아있는 것인가?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유인일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세상은 1754년 발표된 장 자크 루스의 <인간불평등기원론>을 극복하지 못한 채 선택이 가능한 극소수의 인간과 선택이 불가능한 절대다수의 인간으로 구분될 뿐이다. 앞으로의 세상은 더 복잡한 시스템화가 불가피하다. 노숙자 시스템조차 이상적 상층부로 삼는 또 다른 독립 시스템이 태어날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라스트>가 제시하는 세계상은 장태호의 정규 시스템 컴백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어둡다. 다시 질문해본다. 인간이 선택의 여지없이 시스템 안에서 일정한 자유를 누리며 만족하는 것을 전체와 개체의 조화로 볼 수 있을 것인가?

장상용

알타미라 동굴벽화가 만화의 기원이라고 믿고, ‘세계는 넓고 만화는 많다’는 신념을 더욱 굳혀가고 있는 만화연구가. 이 직업의 장점은 만화의 확장과 스토리텔링을 고민하기에 세상을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부천국제만화축제(BICOF) 사무국장이며, 한국외대에서 ‘만화 원작의 스토리텔링 과정에서 나타나는 발화점 연구’ 논문으로 문화콘텐츠학 박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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