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남> 이웃사촌 이상 브로맨스 미만의 어떤 뻘쭘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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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웹툰 <썸남>을 논하려면 무엇보다 ‘썸’과 ‘브로맨스’이 정의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썸 타다’는 영어 단어 ‘something (불확실하거나 특정되지 않은 어떤 것)’과 한국어 동사 ‘타다’가 합쳐진 신조어다. 주로 ‘우정 이상 연애 미만’의 관계, 상세하게 정의하자면 ‘연애에 이르기엔 애매모호한 모든 불확실한 관계들’을 가리키며, ‘썸남, 썸녀’는 그 썸을 타는 상대방을 의미한다.

한편 <썸남> 작중에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그 기저에 깔려 있는 핵심적인 코드는 ‘브로맨스’다. ‘브라더(형제)’와 ‘로맨스’를 합친 단어로, 이성애자 남성들 사이의 매우 긴밀하고 끈끈하되 결코 성적이지는 않은 유대관계를 의미한다. <썸남>의 두 주인공이 이성애자 남성들이니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썸’과는 달리 그 지향점은 연애가 아닌 브로맨스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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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제와 박규태는 서로 닮았으면서 미묘하게 다르다. 둘 다 같은 원룸 건물에 살고, 서로 방이 붙어있고, 흡연을 하고, 같은 대학에 재학 중이며 25세 남성이다. 기제는 만화창작과에 소속되어 있지만 정작 만화는 좋아하지 않고 게임을 즐겨 하고, 규태는 게임제작과에 있지만 게임은 별로 좋아하지 않고 대신 만화를 즐겨 읽는다. 여러 필연과 우연이 겹치는 바람에 기제와 규태는 온갖 오해와 실수 속에서 서로와 원치 않게 얽히고 또 얽히게 되고, 심지어 동거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두 사람 사이의 뭐라고 특정하기에도 애매모호한, 어색하고 거북하고 불편한 관계와 감정들이 <썸남>의 ‘썸’이다. 또한 기제와 규태의 공통적인 지인인 민아가 이 둘을 연인 사이로 오해하며 다른 종류의 거북한 상황과 파국이 벌어지기도 한다. 즉 <썸남>은 근본적으로 인물들 간의 미묘한 어긋남과 오해에 기반을 두고 발생하는 긴장감과 어색함과 뻘쭘함을 개그 코드로 그려낸 일상물이다. 작화 면에서는 드라이한 느낌의 그림체와 낮은 채도의 색상이 무미건조한 일상 속에서 은근하면서도 확실하게 차곡차곡 쌓여가는 어긋남과 오해의 개그를 매우 효과적으로 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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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남>은 특유의 은근함과 절묘함으로 자취를 시작한 대학생이나 사회인, 룸메이트나 친구 등 가족이 아닌 타인과 거주한 경험을 지닌 사람, 그리고 BL 코드를 좋아하는 독자들까지 넓은 계층에 호응을 얻는다. 이웃 간 소음 문제로 인한 갈등과 오해, 동거인에 대한 선의의 배려가 뜻하지 않게 야기한 문제, 속옷 문제 등 동거 중의 사적 영역 연관해서 생기는 다양한 상황들은 극히 흔하고 소소하고 일상적이기에 더욱 신경 쓰이고 불편하다. 이런 갈등을 해소하려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양보하려고도 하고 주어진 상황을 나름 즐기려고도 해 보고, 언뜻 훈훈하게 해결되는 것 같으면서도 그로 인해 또 새로운 오해가 발생하거나 너무나 훈훈해진 나머지 다른 의미로 불편한 상황이 발생해서 더욱 어색해지기만 한다. 그 불편한 상황이 바로 ‘브로맨스’ 및 BL 코드와 이어지는 부분이다.

주인공 중 한 명이 여성 캐릭터였거나 아예 작품 자체가 BL 장르를 표방하고 있었다면 설레는 사랑의 전초전에 해당할 상황과 그것을 해설하는 내레이션이 (가령 의식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상대방의 생사를 알아보기 위해 안아 일으키는 상황) 옆집에 산다는 것 외엔 큰 접점도 친목 관계도 없던 이성애자 남성들 사이에 발생하니 어색함과 뻘쭘함과 유머가 생겨나는 것이다. 더불어 작중의 다른 인물들도 기제와 규태의 관계를 ‘썸’을 타는 사이를 넘어 아예 연인 관계로 오해하게 되니 주인공들의 상황은 더욱 곤혹스러워지고 개그 요소는 증폭된다. 이 지점이 <썸남>의 BL 코드 운용이 ‘브로맨스’ 코드의 인기와 통하는 부분이다. 원래 BL 코드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BL 장르의 클리셰를 이용한 개그로 호응을 얻고, 그런 코드를 좋아하지 않은 독자들은 철저히 성적인 관계가 배제된 이성애 남성들 간의 관계라는 ‘이성애적 안전성’이 있기에 편하게 웃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작중에 성 소수자 캐릭터들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주인공은 아니기에 브로맨스 코드의 기반인 ‘이성애적 안정성’은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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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남>은 오해와 그 해소, 역으로 증폭되는 오해 및 새로운 문제의 발생으로 본인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더욱 깊어지는(?) 주인공들의 관계라는 기본 구도를 유지하며 진행되고 있다. 적어도 이 리뷰가 쓰인 시점에서는(~18화) 이 구도의 반복이 지루하지 않고 효과적이고, 새로운 인물들과 갈등의 추가로 흥미진진한 전개가 예상된다. 과연 기제와 규태의 끈덕지고 거북한 인연은 또 어떤 형태로 껌 딱지처럼 들러붙을 것이며, 민아는 어떤 오해로 번뇌하며 고통받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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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신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 미디어/정보/테크노컬처 학부 졸업,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석사 졸업.
관심 분야는 만화 역사, 팬덤 문화, 보이즈러브, 게임, 영화 등.
만화 연구자로써 만화인, 만화규장각, 우리만화, 시사IN, 생각쟁이, 에이코믹스 등에 기사가 게재되었으며, 부천만화센터 연구사업에 참가한 전력이 있고, 한영/영한/일한 번역가로써도 활동중.
전직 AK 코믹스 편집자로 철도여행의 즐거움과 베어 취향을 널리 알리기 위해 [에키벤 ~철도도시락여행~]을 국내에 소개했고, BL 레이블 인디고 신설. (男色=남색=藍色 get it?)
3년간 모처에서 법률 문서 번역을 하다가 최근에 프리랜서로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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