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를 언급하며 설명하지 않아도 눈에 그리듯 이야기를 복기 해 낼 수 있을 정도로 우리는 히어로물의 공식에 익숙해져 있다. 흔히 히어로가 등장하는 장르물에서 주인공은 주체의 행위로도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문제들 앞에서 좌절을 경험한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능력과 스펙을 활용해 위험 요소들을 해결해 내는 ‘남다른 능력’을 가진 주인공으로 거듭나며 모두의 심장을 저격하는 ‘영웅’으로 남게 된다. <캐셔로>는 그 이야기의 공식을 버리고 우리의 현실을 바로 볼 수 있게 하며, 그 이야기를 통해 심장을 저격하고 심장이 쿵 내려앉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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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능력을 확인하다 119 구조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된 주인공. 자신의 능력보다 도움 받은 비용을 걱정하는 생활밀착형 히어로 등장.

남들이 가질 수 없는 능력에 대해 호들갑을 떨지도 않고, 오히려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도 부담스러운 주인공 강상웅(23세/남)은 우리 시대의 소외된 청년이다. 그는 부양해야 할 여동생이 있고, 대학을 나오지 않았으며, 젊고 건장한 청년이지만 실업자다. 소외된 삶을 살고 있지만 세상에 대한 원망도 없고, 그 어떤 불평도 없다. 바라는 것은 자신이 일한 만큼 벌고, 번만큼 생활을 유지해 나가는 것뿐이다.

그런 그가 마주하게 된 하나의 능력은 ‘현찰(cash)’이 있으면 괴력의 힘을 발휘 한다는 것. 상웅은 그런 자신의 초능력이 신기하면서도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지금 자신을 가장 힘겹게 하고 있는 ‘돈’이 있어야만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들과 다른 스펙을 발휘하는데 필요한 그 ‘돈’ 때문에 스펙이 백팩보다 못한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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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금 캐쉬를 몸에 품고 초능력을 발휘해 취직에 성공하는 주인공. 생계를 위해 초능력을 사용했다. 능력을 발휘하는 장면은 절제된 컷으로 표현됐다.

때문에 그는 자신이 가진 초능력으로 가장 먼저 취업을 이뤄낸다. 동생 상안에게 월2만원의 히어로 비를 받아 생계를 이어나간다. 주어진 능력으로 자신과 동생의 생계를 얻고 난 이후,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자신이 능력이 필요한 때 사용하게 된다. 고층 건물 화재로 인해 갇혀 있던 사람들을 옆 건물로 옮겨 구출해낸 상웅은 그 능력을 사용하면서도 ‘돈’을 지불해야 해서 속상하다. 사람들을 들고 날아서 착지 하는데 신발 밑창이 모두 달아졌기 때문이다. 초능력을 가지긴 했지만, 악의 무리를 향해 위협적으로 사용할 일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는 능력자다. 누구보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꿈인 것 같은 상웅은 그 능력으로 평범한 직장을 얻는다. ‘노동’을 통해 생활의 가치를 이어나가고자 한다. 그리고 함께 노동하는 자들을 배려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다. 취직 둘째날 능력을 사용해 전혀 힘들지 않았지만 파스를 붙이고 등장한 상웅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배려 했다기 보다 진짜 노동의 가치와 그 현장의 고달픔을 아는 자다. 고위 스펙으로 불특정 다수를 다스리고 있는 높은 자리의 그 어떤 능력자들은 모르는 것을 상웅은 아는 것이다.

또 다른 능력자 수오는 고등학생이지만 술을 마셔야 능력이 발휘된다. 술 취한 아버지가 수오를 향해 던지는 폭력이 누구보다 견디기 힘들었기에 그 술이 수오의 능력을 발휘하는 매개가 됐다. 학교도 다니지 않고, 미성년자가 술을 마신다고 손가락질 하는 어른들의 세계가 싫지만, 그렇지 않은 어른들의 세계가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순수한 아이다. 사람들의 편견과 오해를 받으면서도 수오는 지켜주고 싶은 사람들이 생각나는 만큼.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만큼만 능력을 발휘해 이를 지켜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그 아이가 반항적일 것이라고 예측했던 편견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를 알게 해 주는 인물이다.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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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이 가진 능력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꺼려지지만, 필요 할 때 그 능력을 사용해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지키고 싶어 하는 주인공.

마지막으로 등장인물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상웅의 여동생 상안이다. 상안은 10원 짜리 하나 허투루 쓸 것 같지 않은 꼼꼼함을 가진 현실적인 인물이다. 상안에게는 초능력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 능력을 갖게 된 언니와 오빠를 바라보면서 그들의 삶이 다른 사람들의 삶 속에서 튀지 않도록 주의를 주는 편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들을 제일 크게 응원하는 조력자이기도 하다.

세상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수오의 능력에 “이런다고 세상이 언니 좋아해 주는 것도 아니잖아.”라고 시니컬하게 말하지만 “그래도 지킬 수 있는 만큼 지키겠다.”고 답하는 수오에게 “그럼 짝사랑이네.”라는 말로 위로한다. 상안이 그 마음을 ‘짝사랑’이라고 표현하는 순간, 세상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독자들에게 이해시키기에 충분한 한 컷이었다.

상웅과 상안, 수오는 각기 다른 방법과 예상 밖의 모습들로 독자들의 심장을 저격하고 쿵 내려앉게 만들고 있다. 우리가 수없이 봐 왔던 히어로가 등장하는 장르물에서 느꼈던 심쿵과는 전혀 다른 느낌과 깊이의 저격이다. 이것이 생활밀착형 히어로물 <캐셔로>의 매력이다. 어쩌면 ‘우리를 현재의 난관에서 구해낼 수 있는 것은 문화’라고 바라본 아놀드의 얘기처럼 이 히어로들이 우리를 구해줄 수 있지 않을까?

 

돋보이는 절제의 미가 독이 되지 않기를…

<캐셔로>는 4컷의 만화들이 회당 평균 10개씩 모여 이야기를 이루고 있다. 저장된 파일명 같기도 하고, 주인공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한 4컷의 단어들도 군더더기가 없다.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장르물이니 흔히 생각하기에 스팩타클하고 다이나믹한 장면연출이 돋보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작품은 정반대다. 칸의 확장과 변주를 통해 효과적인 시각을 구축하고 서사의 몰입을 극대화 하는 영상기법을 절제시킨다. 단일 이미지의 종형 파노라마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극적 분위기가 정적이다. 등장인물 상웅과 수오가 가지고 있는 초능력을 설명하는 장면 역시도 절제된 4컷들로 설명하고 있어 독자를 작품의 뷰와 색채로 서정적이고 흡입력 있게 끌어당기고 있는 작품은 아니다.

수많은 대중들이 알고 있는 히어로에 대한 또 다른 해석과 그들이 내 뱉는 대사에서 느껴지는 장면의 분위기가 그 매력을 대신한다.

컷 만화를 통해 이야기를 진행한다는 것은 컷 안의 장면들이 이어져 극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묘미에 있다. 극 초반에는 모든 4컷들이 여러 가지 요소들을 칸 안에 넣어 표현하고 있었다. 4컷으로 모여진 10편의 그림들로만 이어진 이야기들은 심플하고 절제된 이야기들을 연결시키고 결합시켰다. 절제의 미가 놀라운 것은 4컷의 기승전결이 모두 들어있었다는 것이다. 놀랍도록 절제된 그림의 문법이 역으로 보다 더 입체적으로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그런 매력이 그림이 아닌 대사(혹은 활자)를 통해 대신 설명 되어져 아쉬움을 남긴다. 돌아오는 2부에서는 장면 연출에 대한 절제가 너무 과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보다 돋보이는 절제의 미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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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와 소설, 드라마와 영화, 뮤지컬과 연극, 콘서트와 음악, 그림과 사진 등 대중문화와 대중 매체에 흥미를 가지고 이를 지켜보고 향유하는 낙으로 삶을 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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