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날로그 시절 편집자가 디지털 시대 기획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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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에요. 같은 만화잡지에서 한두 해를 같이 지낸 인연으로 선후배 사이라고 생각하는 내 섣부름을 용서해요. SNS를 통해서 몇 번 인사 나눴었지요. 지금은 온라인만화 비즈니스를 주도하는 중견 플랫폼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것도 SNS를 통해서 알았어요. 뜬금없이 이런 글로 마음 불편하게 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되네요. <크리틱엠>으로부터 온라인만화 시대의 우리 만화계에서 작가는 어떻게 탄생하고 육성되어야 하는지를 주제로 한 원고를 의뢰받고 나서 한참을 고민했어요. 주체들마다 입장이 다를 민감한 주제이기도 하고, 지난 출판만화 시절과 단순 비교하기에는 시장 환경 자체가 많이 달라졌잖아요. 생각해보니 우리는 출판만화 시절을 함께 지나왔고 한 사람은 독자 입장으로, 한 사람은 현역 기획자로 온라인만화 시대를 지나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내 부족한 생각들을 후배님께 거친 글로나마 편지로 전하면 같은 기획자로서 내 글의 진심을 이해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변명의 여지없이 나는 한물 간 아날로그 시절의 편집자예요. 만화잡지 현업에서 물러난 지는 10년이 넘었고, 바로 몇 해 전에는 온라인 만화 비즈니스의 가장 몹쓸 행태를 겪은 트라우마가 남아 있기도 해서 이즈음의 만화계를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데 적합하지 않은 자이기도 하지요. 다분히 주관적일 수 있고 편향적일 글을 쓰기로 맘을 먹은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만화의 시대에 한 사람의 만화작가를 태어나게 하고 그 삶이 ‘작가로울 수’ 있게 하는 길을 함께 모색해보고 싶어서예요.

거듭 양해 없이 이런 글을 전하게 된 점 사과하면서, 두서없는 글 너그럽게 읽어보아 주길 바라요. 날씨 좀 선선해지면 생맥 한 잔하면서 오랜만에 만화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좋겠네요.

 

만화작가의 삶을 공감한다는 것에 관하여
후배님도 소식 들었겠지만, 며칠 전 내가 담당했던 모 만화작가의 부고를 SNS로 전해 들었어요. 안타깝게도 40대 중반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는 만화잡지가 한창 인기를 모으던 시절, 우리 잡지사의 주축 작가로 활동했잖아요. 모두들 기억하다시피 그는 매우 세련된 그림체와 유려한 연출력을 가지고 있었고, 같은 동호회 출신 이야기 작가와 호흡을 맞춘 첫 연재작으로 적지 않은 인기를 모았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우 여린 사람이어서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는 것들을 마음 밖으로 꺼내놓지를 못하는 사람이었잖아요. 먼저 헤아리고 챙겨주지 않으면 쌓이고 쌓인 것들 때문에 쉬이 슬럼프에 빠지곤 했었지요. 외로움도 많이 타는 편이어서 특히나 마감 때 혼자라고 느끼지 않도록 이것저것 챙기기도 했었던 것 같아요. 덕분에 마감이면 화실로 찾아가는 날들이 늘어갔고, 지우개질이며, 스크린톤 찌꺼기 정리 같은 허드렛일에 아예 화실에서 식자작업을 마쳐 바로 인쇄소로 넘어가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렸지요.

아주 오래 전의 일들이네요. 그때에는 그저 그의 작업이 혼자 책임져야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과, 아무리 힘들어도 연재분량을 줄일지언정 펑크는 막겠다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아요. 혼자라는 두려움도, 펑크도 한 번 빠져버리면 되돌리기 힘든 습관이 되어버린다고 생각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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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정석호의 화실 풍경

그러다 내가 새로 창간한 만화잡지 하나를 말아먹은 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잡지사를 나오고, 담당을 다른 편집자에게 물려주고 나면서 그와의 인연도 소원해지기 시작했지요. 나는 편집 현업에서 점차 멀어지게 되었고, 그는 그대로 첫 연재작 이후 쉽게 새 작품의 연재를 결정하지 못하는 사이 만화잡지와 단행본의 시절은 훌쩍 지나가 버렸어요. 그 사이 몇 번인가 만남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그에게 시절이 바뀌고 있으니 새로운 방식을 고민해 볼 것을 권해보았지만, 공동의 프로젝트를 갖지 못한 채로 전하는 충고는 그에게 무척이나 헛헛했을 것도 같네요. 무엇보다 그는 그 무렵의 많은 만화잡지 연재 작가들처럼 학습만화나 온라인 같은 새로운 공간을 납득하고 찾아갈 유연함이나 과감함을 가지지 못했었어요. 돌이켜보면 펜과 종이와 스크린톤을 포기하고 만화를 그릴 수 있다는 이야기는 그에게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었을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그는 길지 않은 삶을 마쳤습니다. 만화작가로서 그의 삶은 첫 연재작을 마친 10년 전에 이미 멈춰 섰던 것이겠지요. 작가로서의 시간들이 그 혼자만의 책임이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었지만, 그 시간들이 멈춰 섰을 때 그는 그저 혼자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우리는… 여기 남아 있습니다. 문득 궁금해져요.

작가는 혼자 태어나서 혼자 돌아가야 하는 존재일까요?

 

온라인만화 비즈니스에게 만화작가란?
우리 온라인만화시장이 성장하면서 많은 결실들이 맺어졌지만 한편으로는 빠른 성장에 따른 부정적인 현상들도 나타나고 있어요.

오히려 스타트업 수준의 몇몇 온라인만화 플랫폼들이 불공정한 계약서로 신인급 만화작가들의 원고를 부당하게 활용했다가 문제가 된 경우들은, 플랫폼 자체의 신뢰도가 애초에 높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온라인만화 비즈니스의 공정한 전개를 위한 시행착오 차원의 진통으로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독립 온라인만화 플랫폼 비즈니스를 최초로 정착시켰다는 평가를 들어온 모 플랫폼의 최근 작가 매니지먼트 관련 정책 몇 가지는 사소한 것일 수 있지만 좀 더 본질적인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여요.

그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위태롭게 생각한 정책은 작가들의 마감과 관련된 정책이었어요. 최근 해당 플랫폼에 연재 중인 모 작가가 개인 SNS를 통해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이 플랫폼은 작품 업데이트 2일 전 오후 3시에 원고 접수를 엄수할 것과 이 시간을 지키지 못할 경우 휴재 처리할 것을 내부 지침으로 정하여 시행하고 있다고 하네요. 실제로 모 작가의 경우 기준 시한에 1시간 정도 늦게 원고를 접수하여 결국 휴재하고 말았다고 해요.

이 플랫폼의 경우 오픈 초기 여러 친 작가 정책으로 만화계에 호감을 샀던 터라 이번 정책에 많은 작가들이 실망하고 있는 것 같아요. 만화계의 여론에 따라 이 플랫폼의 마감 지침은 철회되거나 조정될 수도 있어 보이지만, 문제는 이 사례가 작가들의 창작과정을 바라보는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들의 시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걱정이에요.

후배님도 잘 알다시피 창작과정에 따르는 만화작가들의 고민과 에너지 소모는 엄청난 것이잖아요. 그런데 적지 않은 온라인만화 플랫폼 사업자들은 만화 창작과정에 대한 애정 어린 이해 없이,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예외 없이 만들어져야 할 콘텐츠의 생산과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지요. 내가 만나본 어떤 함량미달의 온라인만화 사업자는 심지어 “플랫폼은 온라인만화 비즈니스를 위한 비용을 지불하고, 만화작가는 플랫폼 사업자가 지불한 금전적인 대가를 받아 필요한 용역을 제공하는 사업적 계약 관계”로만 생각하고 있더군요.

낮은 온라인만화의 저작권료 문제도, 불공정한 계약 관행의 문제도, 잦은 작가 기망의 문제도, 근본적으로 창작과정과 창의력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가볍게 보는 데서 비롯된 문제가 아닐까요?

물론 이 플랫폼도 나름의 고충이 있을 거란 걸 편집자 출신인 우리는 알고 있어요. 제한된 인력으로 양대 포털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작품을 진행하다보면 독자들과 약속한 스케줄에 대한 부담도 만만치 않을 거예요. 하지만 작가라는 존재를 일반인들과 같은 사고 프로세스를 가진 존재로 인식하면서 효율과 표준의 잣대를 내세우는 것은, 오히려 플랫폼에게 마이너스가 되는 결과를 초래할 거라고 생각해요. 효율과 표준으로 창의력을 고무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대중문화의 역사가 가르쳐주고 있잖아요.

개인적으로 이 플랫폼에 기대했었던 것은 작가들과 동반자 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온라인만화 비즈니스의 성공사례가 되는 것이었어요. 성과는 나누되 실패나 실수는 책임지려 하지 않는 대형 사업자들과는 달리, 성과와 실패 모두 작가들과 나누는 모습을 동반자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은 창작의 과정을 작가 혼자만의 책임으로 두려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고도 생각해요. 왜냐하면 만화는 매뉴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 함께하는 모든 주체들의 말과 태도에 민감하게 영향 받는 작가의 감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니까요.

아쉽게도 일련의 상황들이 SNS를 통해 알려진 이후에도 이 플랫폼의 완고한 입장은 아직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기왕에 있어왔던 심의문제나 청보법문제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양대 포털들의 속내도 이와 많이 다르지 않다고 느껴져요. 고락을 함께하는 동반자이기보다는 만남과 헤어짐을 심플하게 할 수 있는 사업적 계약관계이기를 선호한다고 의심하는 것은, 한물 간 퇴물 만화잡지 편집자의 삐딱한 시선일까요.

이쯤 되면 오늘날 우리나라 온라인만화 비즈니스를 주도하고 계신 사업자분들의 솔직한 대답이 듣고 싶어집니다.

여러분에게 만화작가란 어떤 의미인가요? 그리고 여러분은 그들에게 어떤 존재이고 싶으신가요?

 

콘텐츠 비즈니스? 미디어 비즈니스? 온라인만화 비즈니스의 정체성은?
작가는 탄생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고, 작가는 발굴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탄생과 발굴은 미묘하게 같고 미묘하게 다른 의미인 것 같아요. 탄생한다고 이야기하는 의미가 작가의 창의력이 형성됨을 의미한다면, 발굴한다고 이야기하는 의미는 비즈니스 차원에서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겠지요. 탄생이 작가 주도적인 함의를 담고 있다면, 발굴에서는 사업적 매니지먼트라는 함의가 느껴져요. 사실 산업 전체로 보면 탄생과 발굴은 상호보완적인 관계이겠지요. 스스로의 노력으로 역량을 갖춰 작가 인생을 시작한 만화작가를 사업자가 기획적 판단으로 발굴하여 최선의 창작여건을 제공하고 매니지먼트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시스템이 아닐까 싶어요.

한발 물러선 퇴물 편집자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우리나라의 초기 온라인 만화계는 거의 전적으로 자연발생적인 작가의 탄생에 기대왔던 것 같아요. 많은 좋은 작가들이 등장하기도 하였지만, 축적되지 못하고 소모되는 창작역량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온라인만화 사업자들도 공모전 형식의 작가 발굴 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하였지요. 대표적인 것인 네이버의 대학만화 최강자전이겠네요. 온라인만화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포털과 대학의 만화학과들이 연계한 이 프로그램은 이제 국내에서 가장 유력한 신인 만화작가 등용문으로 성장한 듯해요. 특히 만화학과 교수님들이 멘토로서 작품 내용에 대한 조언을 맡으며 출판만화 시절 편집자의 역할을 상당 부분 대신해 주고 있는 점은 높게 평가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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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일련의 제도들도 엄밀하게 말하면 발굴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기보다는 탄생에 책임의 상당 부분을 미루고 있다고 생각해요. 발굴이란 단순한 캐스팅의 의미보다도 매니지먼트와 육성의 의미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매년 많은 신인 만화작가들이 대학만화 최강자전을 통해 캐스팅되고 있지만, 등단 이후 체계적인 매니지먼트를 받는 일은 매우 제한적인 것인 것 같아요. 등단 이후의 과정은 당연히 사업자인 포털의 업무영역이라고 생각하지만 포털들의 실질적인 역할은 연재공간의 제공까지인 듯해요. 대형 포털이 아닌 중소규모 플랫폼 사업자들의 경우는 대부분 아예 이런 제도를 시행할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고, 만화작가 전문 매니지먼트를 표방하는 회사들 가운데에는 몇몇을 제외하면 작가와 플랫폼 사업의 계약 업무를 진행하는 에이전트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요.

조금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우리 온라인만화시장은 어렵사리 탄생의 과정을 통과한 만화작가들에게 생존의 책임까지 떠안기고 있는 것이지요. 사실 이런 지적들은 수년 전부터 제기되어 온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걸까요?

나는 포털과 독립 플랫폼을 포함한 모든 온라인만화 서비스 사업자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서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출판만화 시절부터 만화는 콘텐츠이자 미디어의 속성을 동시에 갖는 특성을 가졌었지요. 때문에 만화잡지의 비즈니스도 콘텐츠 비즈니스와 미디어 비즈니스를 병행해야 했지요. 콘텐츠 비즈니스의 토대는 좋은 콘텐츠 한 편의 저작권이기 때문에 좋은 콘텐츠를 창작하는 작가들에 대한 투자가 우선이지만, 미디어 비즈니스는 다수의 콘텐츠를 소비자에게 보다 많이 공급하여 수익을 내기 때문에 콘텐츠의 질보다는 양과 가격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마련이지요.

당시의 만화잡지의 인력들은 스스로를 콘텐츠 비즈니스 종사자로 자각하면서 비즈니스의 중심추를 다잡았었어요. 특히나 1990년대 후반 대여점용 단행본이 우후죽순 시장에 쏟아질 때, 나와 후배님을 비롯한 만화잡지 편집자들은 많은 작품을 공급해서 매출을 올리기보다는 좋은 작가의 작품 한 편을 기획해서 독자들에게 선택받는 것이 만화시장을 살린다는 믿음을 놓지 않았었지요. 늦은 밤까지 작품의 방향을 결정하기 위한 술자리를 갖고, 마감 때는 함께 화실에서 밤을 새우고, 신인작가들의 원고 상담이 끝나면 부득이 거절하는 경우에도 사무실 문 밖까지 정중하게 안내하고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을 편집자의 기본이라 생각했던 이유이기도 했어요.

지금 우리 온라인만화 서비스 사업자들이 스스로의 비즈니스를 규정하는 정체성은 콘텐츠 비즈니스와 미디어 비즈니스 사이 어디쯤일까요? 우리 온라인만화 시장이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만화콘텐츠의 발굴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창작인력의 육성과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많이 콘텐츠 비즈니스 쪽으로 걸음을 옮겨와야 하지 않을까요? 온라인만화 시장의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서도 뚝심 있게 작품에 투자하고 아티스트를 육성하는 만화계의 YG, JYP의 등장이 절실하다는 생각이에요.

나는 과거 출판만화 시절의 편집 시스템이나 흔히 회자되는 일본 만화잡지의 프로듀서 시스템을 우리 온라인만화에 바로 적용하자고 하고 싶지는 않아요. 만화잡지의 시스템은 일장일단이 분명한 것이기도 하고, 오프라인 출판시장과 많은 점에서 상이한 온라인시장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시스템 적용은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다만 우리 온라인만화 서비스 사업자들이 만화라는 장르를 감성적으로 이해하고, 만화작가들의 창작활동을 애정으로 응원하며, 무엇보다 기획과 흥행의 모든 과정에서 공과 과를 함께 나누고 책임지는 것이 만화 비즈니스의 기본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기를 바라요. 이러한 인식의 토대 위에서라면 분명히 우리 온라인만화시장에 적합한 고유의 프로듀싱 시스템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온라인만화만의 프로듀싱 시스템의 고안과 정착을 위해서는 작가분들도 열린 마음으로 기획자들과 협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도 이야기하고 싶네요. 온라인만화시장이 독자들의 변별력과 좋은 작품들 간의 선의의 흥행경쟁을 통해 성장하는 문화콘텐츠산업이라는 점에 동의한다면, 작가분들도 과학적인 기획시스템과 합리적인 제작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해주어야 하겠어요. 과거 출판만화 편집 시스템이 부분적으로 과도한 작품 개입을 했다는 측면에서 비판받았던 점을 반성하면서, 만화작가의 창작 역량을 지원하는 균형 잡힌 프로듀싱 시스템의 개발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온라인만화 비즈니스 현장의 젊은 ‘프로듀사’들에게
오늘 내 글이 한창 온라인만화계에서 활약하는 후배님에게 듣기 거북스러운 것이었을 것도 같아요. 어쩌면 만화잡지 편집자 출신으로서 내 글의 문제의식을 시장 한가운데서 깊이 느끼고 벌써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아!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젊고 패기 있는 여러분이 온라인만화 비즈니스를 위한 변화의 중심이었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뉴 미디어를 자임하며 온라인 미디어 비즈니스를 주도하는 대형 포털들의 온라인만화 서비스의 변화는 상대적으로 더딜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오히려 그 점이 후배님이 일하고 있는 회사 같은 독립 플랫폼들에게 온라인만화 콘텐츠 제작 비즈니스로 시장의 새로운 흐름을 선도할 기회가 될 거라고 믿어요. 스타트업 기업들의 경우에 적지 않은 규모의 투자들을 유치하게 되면, 투자자들을 의식한 정량적 성과 도출과 비용 관리의 압박이 커지게 마련이지만, 콘텐츠 비즈니스의 중요성과 성장 가능성을 경영진에게 설득할 수 있는 것은 현장의 기획자들이에요. 대중음악이나 영화 같은 대중문화 장르들의 경우를 보더라도 크리에이터들의 신뢰를 얻고 저작권을 확보한 기업이 시장을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경영자와 투자자들에게 꼭 상기시켜주세요.

 

프로듀사

 

요즘 온라인만화 비즈니스를 하는 분들을 만나보면 직책의 명칭으로 PD라는 호칭을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듯해요. PD라면 프로듀서를 줄여 이르는 것이겠지요. 듣기 좋아요. 문득 얼마 전 방영을 마친 ‘프로듀사’라는 TV 드라마가 생각나네요. 온라인만화계의 많은 젊은 프로듀서분들이 온라인만화 비즈니스를 위해서, 그리고 만화계의 소중한 자원인 작가분들을 위해서, 드라마 속 여주인공 신디에게 우산이 되어주던 신입PD 백승찬 같은 존재가 되어주시길 부탁하고 싶어요. 승찬이 신디를 혼자 두지 않았던 것처럼, 거친 시장 속에서 만화작가분들이 혼자이지 않도록 마주 손 잡아주세요. 그렇게 우리 온라인만화 비즈니스를 건강하게 성장시키는 주역이 되어주세요. 만화작가의 삶이 ‘작가로울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은 독자들과 오직 여러분 온라인만화계의 ‘프로듀사’들 뿐이란 걸 잊지 말아 주세요.

이것이 현장에서 물러난 선배가 어쭙잖은 편지를 보내는 이유입니다.

 

● 지난 8월 12일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만화작가 박인수님을 기억합니다.

박성식

대원CI [소년챔프] 공채 1기로 만화계에 입문하였으며, 학산문화사에서 편집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소년찬스], [부킹] 등을 창간하였다. 성인만화잡지 [웁스]를 말아먹은 후 한국콘텐츠진흥원 만화산업팀장으로 옮겨 만화진흥정책과 수출정책을 주도하였다. 그 후 BICOF와 SICAF 등 국제 행사의 디렉터를 거쳐 현재는 용인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초빙교수로 재직하면서 1인 브랜드 ‘나무가의 사람들’로도 활동하며 스토리텔링과 콘텐츠기획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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