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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만화입시 전문 A학원 강의실. 10여 명의 학생은 국영수 문제집을 푸는 대신에 만화를 그리며 일대일 첨삭지도를 받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최지영 양(18·경기여고 3년)은 “웹툰 작가가 꿈이라 만화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다니고 있다”며 “학교에서도 반에서 5, 6명은 장래 희망이 웹툰 작가”라고 말했다.
– 동아닷컴 2015년 5월 6일자 기사 “웹툰 붐 따라… 강남 간 만화학원” 중에서 인용

바야흐로 만화가 주목받는 시대가 도래 했다. <미생>의 성공사례와 눈에 띄는 스타작가의 탄생 그리고 고소득에 대한 언론기사 등이 한꺼번에 어우러지며 만화에 대한 긍정적 시선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그러니 강남 학원가에 만화학원이 자리 잡고 있다는 소식은 만화의 위상이 과거에 비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불과 수십 년 전, 만화에 대해 곱지 않던 사회적 시선을 떠올려 본다면 실로 격세지감이라 할 만하다.

바뀌지 않은 사실은 만화가가 되는 길이 예나 지금이나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다만, 과거에는 만화에 대한 우리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았던 이유로 인해 만화가를 떳떳하게(?) 꿈꾸기가 어려웠다고 한다면, 최근에는 너무 많은 이들이 만화가를 꿈꾸면서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바뀐 상황은 주요 포털에 올라오는 지망생들의 작품 수를 헤아려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가령,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베스트 도전’에 올라온 작품의 수를 살펴보면 어림잡아도 수백 건이 넘는 듯하다. 그러니 당신이 희망하는 만화가의 길은 어쩌면 우리가 보고 즐기는 만화만큼 재밌고 유쾌한 일이 아닐 수 있다.

 

도제식 교육 VS 정규 교육
과거에 비해 만화가가 되기 위한 방법도 다양해졌다. 친절한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시대에 독학도 수월해졌고, 학원이나 사회교육원을 통한 수련 과정도 있다. 게다가 대학에서도 전공으로 가르치고 있으니 자신이 처한 현실과 상황에 맞게 최적화된 방법을 찾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렇다면, 예전에는 어떻게 만화가가 될 수 있었을까.

1960-1970년대를 거치며 만화가라는 직업은 통상적으로 도제식 교육, 즉 문하생 시절을 경험해야 정식 만화가로 데뷔할 수 있는 것이 일반적이라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가(大家)’들도 그런 시기를 거쳤으니,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현세는 고교 졸업 후인 1974년 서울에 올라왔다. 첫 상경 때는 만화가 화실이 많았던 모래내(남가좌동) 근처에 둥지를 틀었다. (중략) 만화를 좋아했고 그것 밖에 잘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이현세였지만 만화계 입문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스무 살인데도 몸에 털이 많아서 나이가 더 들어 보였는지 늙었다고 안 받아줬어요. 진짜 스무 살이라니까 ‘금방 군대 가야 되니까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고 독자라 군대도 파주에서 6개월만 있었는데…. 아마도 부리기 힘들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순정만화를 그리는 나하나 선생님이 받아줬어요. 그 뒤로는 하영조 선생님과 이정민 선생님 문하에 있었고.” 이현세는 자신이 애타게 쫓던 활극만화가 아닌 여성의 섬세함을 담아야 하는 순정만화와 아기자기한 아이디어로 승부해야 하는 명랑만화로 출발했다.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다고 믿었던 만화였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부족한 곳에서 출발했다. 그 부분을 채우자 자기만의 만화를 갈망하게 된다.
– 네이버캐스트 “불멸의 까치를 만들다: 만화가 이현세” 중에서 인용

이와 같은 이현세의 회고담은 만화가는 물론 문하생이 되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당시의 상황을 잘 설명해준다. 여기에 “과거 만화계는 카르텔이 굉장히 강해 데뷔하기 어려웠다며 3년 안에 승부를 내야겠다는 각오로 입시공부하듯이 달려들었다”고 데뷔시절을 기억하는 허영만의 이야기를 더하면 데뷔의 어려움은 단순히 도제식 교육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열악한 만화산업 환경에서 비롯됨을 익히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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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CCA 창의인재동반사업 세종대학교 산학협력단 워크숍 중 강풀 멘토의 특강_제공 KOCCA

이처럼 문하생 시절을 경험했던 만화가들에 비해 최근 ‘웹툰작가’들의 수련기는 각양각색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순정만화>의 강풀은 독학으로 웹툰 시대를 개척했고, <스쿨홀릭>으로 유명한 신의철은 잡지만화 시대에 문하생 생활을 경험하고 웹툰 작가로 연착륙했다. <삼봉이발소>의 하일권, <송곳>으로 유명한 최규석 등은 대학에서 만화를 전공한 경우다. 특히, 1990년 공주전문대학에서 한국 최초로 만화 전공이 개설된 이후 20여 년 간 진행된 대학교육의 성과는 최근 들어 관련 전공자들의 데뷔가 눈에 띄게 늘었다는 사실로 검증된다.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만화가를 꿈꾸는 청소년들 가운데 만화를 전공으로 택해 대학에 입학하는 경우도 점차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 그런 측면에서 만화가가 되기 위해 꼭 대학을 가야 하는 것인지 다음처럼 고민하는 어느 청소년의 이야기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만화에 관해서는 책으로든 학원이든 뭐로든 배우면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만 최근에 만화학원을 다니면서 여태 봤던 만화 관련 서적에 나온 내용이랑 별반 다를 게 없어서 (물론 배울 점도 있지만요) 설마 대학도 그럴까… 그런 생각도 들고요. 또 제가 배우려는 내용이랑 뭔가 이가 안 맞으면 돈과 시간낭비가 될 수도 있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 ‘고1 만화가 지망생입니다. 대학 어떻게 생각하세요’(작성자: JIN) – 인터넷카페 ‘방방곡곡 창작을 배우는 사람들’ 중에서 인용

고민의 핵심은 만화가라는 꿈을 이루는데 있어서 시간과 돈을 들여 대학에 꼭 가야하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하지만, 소설가가 되려면 꼭 문예창작학과를 나와야 하는 것도 아니며, 법학 전공자가 모두 법관이 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고민에 대한 정답을 제시해주기란 쉽지 않다. 다만, <궁>으로 유명한 박소희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그에 대한 답을 대신해줄 수 있을 듯하다.

무엇보다 주위에 저보다 잘 그리는 사람들이 넘쳐나면서 엄청난 자극이 되었죠. 가령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그림에 대해서는 칭찬을 받을 수 있었는데, 대학에 와서 보니 다들 저보다 잘 그리는 거예요. 테크닉적인 부분은 물론이거니와 만화에 대한 다양한 접근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죠. 그때까지 순정이나 개그만 알고 있던 제게 그건 일종의 쇼크였습니다. 그 때까지 굉장히 활달한 성격이었던 제가 대학 때는 고민도 많이 하고, 우울하게 지냈던 적도 있었던 것 같아요.
– <계간만화> 2005년 여름호, “박소희의 스토리 비법” 중에서 인용

요컨대, 만화가 지망생에게 대학 교육은 시험문제에 대한 정답을 얻을 수 있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며, 자신과 같은 꿈을 공유한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가 있어 보인다. 습작시절을 함께 보내고, 또한 데뷔 이후 작가의 길을 걷는 데 있어서 어쩌면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동지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창작자로서 대학교육을 거치게 될 때 얻을 수 있는 더욱 큰 장점이 아닐까. 그러니 도제식 교육이든 대학 교육이든 중요한 것은 만화가를 위한 개개인의 바람과 마음가짐 그리고 실천력이 제일 중요한 동기부여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특화된 데뷔 무대, 대학만화 최강자전
최근 들어 대학생들에게만 기회가 부여되는 차별화된 공모전이 있어서 색다른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바로 네이버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주최하고 있는 ‘대학만화 최강자전’이 그것이다.

대학만화 최강자전
대학만화 최강전이 여타의 공모전에 대해 더욱 매력적인 이유는 데뷔와 함께 연재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2012년부터 시작되어 올해로 네 번째를 맞이한 이 공모전은 다른 공모전과 비교해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우선, 스승과 제자가 한 팀을 이뤄 참가하는 방식을 꼽을 수 있다. 즉 전국 대학만화관련 학과의 현직 교수 혹은 강사가 멘토로 참여하게 되는데, 참가자가 작품 등록 시 교수를 멘토로 지정하여 멘토동의서를 제출해 팀을 구성하게 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참여하는 이들 대부분은 실제적으로 만화 관련 전공자들이며, 그로 인해 다른 공모전과 달리 지망생 개인의 데뷔 문제뿐만 아니라 대학 및 교수들의 참여를 통해 학교 대항전이라는 의미도 부여된다.

이러한 특징은 곧 대학만화 최강자전을 다른 공모전과 차별화된 무대로 만든다. 즉, 대부분의 만화공모전이 일반인 누구라도 응모할 수 있는 반면, 대학만화 최강자전은, 공모전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학생들에게 응모의 기회가 주어진다. 그런 이유로 보기에 따라서 ‘왜 대학생만?’라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만화 관련 전공자 졸업생이 한해에만 5백 명이 쏟아지고, 애니메이션, 게임 등 유사 인접 학과까지 포함하면 무려 100여 곳의 대학에서 만화 관련 전공이 존재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이 무대는 만화전공자들에게 있어서 일종의 입사시험과도 같다. 가령, 기업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응시조건에 특정 전공을 조건으로 제한을 두는 것처럼, 대학만화 최강자전이 지니는 의미는 만화에 대한 좀더 ‘전문창작인’이 실력을 겨루는 무대로 이해된다. 일반기업이 업무에 최적화된 인재를 찾는 것처럼, 만화계에서도 만화라는 장르에 최적화된 고도의 인재를 찾는, 말하자면 일종의 ‘공채’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러한 개념이 성립될 수 있는 것은 이 공모전이 보여주는 또 다른 특징, 즉 연재기회 부여와도 연결된다. 알다시피, 만화가로 데뷔할 수 있는 공모전은 알게 모르게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올해로 열세 번째를 맞이하는 대한민국 창작만화공모전을 비롯해 몇몇 이름이 알려진 공모전은 이미 수년간 진행되면서 나름의 역사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화공모전 대부분은 일회성 이벤트에 가깝다. 즉, 입상자들에게 상금을 주고 격려할 뿐, 작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지는 않는다. 이에 반해 대학만화 최강자전은 우승자를 비롯해 상위 입상자에게는 상금과 더불어 정식 연재의 기회도 주어진다. 재학 기간 동안 데뷔는 물론 작품 활동에 대한 지속성까지 보장해주는 꽤 매력 있는 기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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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제 2회 올레마켓웹툰 공모전에서 최종 수상자들이 모였다_제공 KT

수년 전만 하더라도 양대 포털이 연재 무대의 전부라고 할 만큼 만화가의 데뷔 공간은 좁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불과 수년 사이 꽤 많은 매체와 플랫폼이 등장했다. 포털에 비견될 만큼 여러 작품들을 연재하고 있는 만화전문 사이트도 등장했으며, 해외 독자를 바로 만날 수 있는 한국산 플랫폼도 등장했다. 근래의 이러한 상황을 접하며 1990년대 잡지만화의 황금기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잡지를 통해 반짝이는 신인작가들이 등장한 것처럼 최근 새로운 신인들의 등장이 계속 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끊이지 않는 새로운 작가의 탄생, 그것은 또한 한국 만화의 미래가 그만큼 밝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김성훈

편집, 기획 등 만화와 관련된 것이라면 뭐든 즐겁게 일하고 있으며, 관련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만화 속 백수이야기>, <한국 만화비평의 선구자들>, <한국 만화비평의 쟁점>, <한국만화 미디어믹스의 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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