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_ 당신은 잘못되지 않았어요. 단지 그 자리에 놓여 있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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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초상>은 신화에 관한 이야기다. 여기서 신화란 특정 현상들이 익숙해져 너무나 당연하고 의심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 ‘무엇’이다. 그렇다면 작가 ‘오사 게렌발’은 이 작품을 통해 어떠한 신화를 보여주고 있을까? 그것은 바로 ‘가족’이라는 신화다. 그것도 따뜻하고 사랑이 가득한.

TV 드라마를 보자. 드라마 속 가족의 모습은 단란하다. 물론 그 가족들 역시 갈등은 존재한다. 하지만 종국에 그 갈등은 해소되고 가족은 다시 안정적 상태로 회복된다. 과연 이러한 신성한 ‘가족’의 모습은 현실의 정확한 반영일까? 이에 작가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작품 속 ‘눈을 부릅뜨고 인상 쓰는 주인공의 표정’에서 알 수 있듯, 그녀는 어떠한 소통도 불가능하며,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가족의 모습을 날것으로 생생히 보여준다.

가족의 초상 1가족의 초상 2가족의 초상 3가족의 초상 4

주인공 가족에는 부모의 따스한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 속담 중 ‘내리 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들은 보통 이 말을 굳게 믿으며, 부모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 한편이 아려온다. 하지만 <가족의 초상>에서는 가족의 사랑 즉 부모의 사랑이 ‘신화’임을 냉소적으로 보여준다. 작품 속 주인공 부모는 자식을 낳았다는 이유로, 또는 키웠다는 이유로 자식에게 애정을 느끼지 않는다. 어머니는 자식보다 자신의 애인이 더 중요하다. 아버지 역시 자식이 고민을 털어놓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지기 싫다며 대화를 피한다. 그들은 무엇보다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존재로서, 설사 자식일지라도 자신의 삶에 개입하기를 원치 않는다.

 

분노를 넘어 내면의 치유로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는 <가족의 초상> 다음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작가의 가족문제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작품의 결은 다르다. <가족의 초상>은 가족에게 상처 받은 주인공의 분노를 거침없이 터트린 작품이라면,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는 10년의 세월이 암시하듯 보다 관조적인 작품이다. 그래서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는 가족의 원망을 넘어, 그들로 인해 생긴 상처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또한 그것을 치유하는 과정을 차분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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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서 나타난 부모의 무관심한 모습은 분명 문제적이다. 하지만 그들이 냉담한 성격 이외에는 어느 정도 정상적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행위를 일방적으로 비난하기에 어려운 점이 있다. 주인공은 안정적으로 경제적 지원을 받는다. 또한 어떠한 폭력에도 노출되지 않는다. 이같이 주인공 부모는 자신들의 기본적인 의무를 충실히 수행한다. 어쩌면 주인공의 모든 상황은 심각한 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1). 하지만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객관적’ 상황보다는, 당사자가 실제로 어떻게 받아 들였는지에 관한 ‘주관적’ 상황이 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얼핏 사소해 볼일 수 있는 부모의 무관심이 어린 주인공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그리고 이것은 방치되고 쌓여 결국에는 그녀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가 됐다. 결국 주인공은 ‘어릴 때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줄만한 대상이 아무도 없을 때’ 겪게 되는 ‘정서적 방치’라는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주인공의 황폐화된 내면은 부모의 존재론적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들은 단순히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부모가 되었을 뿐이다. 그들 역시 준비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어린 아이들과 큰 차이가 없다. 보다 이상적인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부모 역시 아이처럼 그 자신에 관해서 그리고 자신의 아이에 관해서 배워 나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작품의 부모처럼 자식에게 무수한 상처를 남기면서도, 그 사실을 전혀 지각하지 못하는 무감각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무너져 버린 가족이라는 신화의 잔재를 보고 불안하거나 또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할 필요는 없다. 가족이라는 거대한 의무감에 짓눌리는 대신, 차라리 가족 존재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그 모자란 점을 채워나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세상에는 수많은 가족만큼 수많은 사연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현재 나의 생각은 순진하다. 하지만 이러한 거친 결론을 도출했음에도, ‘내면의 아이’와 화해하며 자신의 상처를 치유한 주인공처럼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위안을 얻기를 조심스레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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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인공과 부모가 결정적으로 갈라서게 된 원인 주인공의 성희롱 피해에 대한 부모의 방관이다. 이 글에서는 성희롱이 사소한 문제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작품 말미에 독립된 장으로 그려진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처럼 주인공은 이미 성희롱 이전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의 부정적인 애착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