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 엔딩의 세계_ <청년 데트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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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어린 시절부터 기억해 왔거나, 살아가면서 나에게 일어났던 놀라움에 가득 찬 이야기들을 버리고 싶지 않다. 누가 천금(千金)을 준다고 하더라도…. – 마르틴 루터(1)

남자들이 싫어하는 모든 걸 갖춘 저주받은 작가 권교정
한국 남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깃거리 중 첫째는 축구, 두 번째가 군대인데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남자들끼리 군대에서 축구 얘기 나누는 것이란 우스갯소리가 있다. 남자들은 어떨까? 최소한 만화에 국한해보면 남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 첫째는 그림체부터 익숙하지 않고, 10등신 캐릭터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하는 순정만화, 둘째는 미완성인 채 언제 완결될지 모를 만화를 기다리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재현 선생의 만화평론집 <만화 세상을 향하여>(푸른미디어, 1999)를 보면 직업이 만화평론가임에도 불구하고 순정만화 읽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대목이 나온다. 굳이 이재현의 고백이 아니더라도 젠더적 취향과 선택이 만화만큼 명확하게 구분되는 분야도 드물다. 순정만화는 여성국극(女性國劇) 이후 현재까지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유일한 여성 중심 장르이기 때문에 ‘여성들의 정서적 문화동맹’(2)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최근 인기작가 강풀이 부친상을 맞아 잠시 연재를 중단하겠다는 공지를 올리자 불과 2주 만에 6천 건이 넘는 댓글이 달렸다. 물론 대부분은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작가를 위로하는 글이었지만 일부 댓글은 도를 넘어선 것들이었다. 결국, 참다못한 작가는 “법적 절차”를 밟기로 했다. 이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한국의 만화 독자들은 기다리고 참는 일에 서툴다.

만화가의 연재 중단 사유에는 강풀의 경우처럼 개인적인 것도 있지만, 한국 만화의 슬픈 역사와 무관치 않다. 허영만의 장편 데뷔작 <각시탈>(1974)은 유사한 작품들이 속출할 만큼 대단한 인기를 끌었지만, 당시 도서잡지윤리위원회는 (당신 때문에)“탈 쓰는 만화가 너무 나온다. 그만 그리라”라고 해서 중도에 연재를 멈춰야 했다. 이제 고인이 된 고우영의 <수호지> 역시 극 중 위정자들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 때문에 정부 압력으로 연재가 중단되었다. 이후 모 스포츠신문을 통해 다시 연재에 들어갔지만, 이것도 완결에 이르지 못했다.(3)

과거의 연재 중단이 이처럼 권력의 외압 때문이었다면 IMF 외환위기 이후부터는 주로 경제여건의 악화 등으로 연재하던 매체가 폐간되면서 본의 아니게 연재가 중단되는 상황이 잦아졌다. 권교정은 여기에 본인의 건강 문제까지 겹치면서 연재 중단을 밥 먹듯 하는 ‘불운한 연재 중단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러나 권교정의 경우, 단순히 그런 이유만이라고 하기엔 석연치 않은 측면들도 있다. 왜냐하면, 단편으로 출간된 일부 작품을 제외하곤 오히려 완결된 작품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작품 대부분이 미완성인 채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권교정 자신이 이야기를 매듭짓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권교정은 남성 독자들이 싫어하는 순정만화가일 뿐만 아니라 만화 독자라면 누구나 싫어할 ‘연재중단의 아이콘’이다. 그런데도 그의 팬 중에는 남성들이 적지 않으며 스스로 “게으름뱅이, 뻥쟁이, 겜광, 어린중년(1974년생)”이라고 하지만, 독자들은 그를 ‘교(Gyo)월드의 교주’ 또는 ‘킹교 전하’로 열렬한 팬심으로 떠받든다. 과연 권교정은 어떤 작가이기에 그 같은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미완의 서사, 판타지만화 <청년 데트의 모험>

데트3 사본‘순정(純情)’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①순수(純粹)한 감정(感情) ②순수(純粹)한 애정(愛情)”을 뜻하지만, ‘순정’과 ‘만화’가 결합할 때는 장르를 불문하고 여성작가가 그린 만화작품 일반을 가리킨다. 여성작가도 무협과 판타지, SF, 역사만화를 생산하듯 남성작가도 순정을 다룬 멜로만화를 만들지만, 남성 작가의 작품은 순정만화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순정만화란 남성중심의 한국사회에서는 ‘여성 또는 여류’를 의미하는 말로 그 가치가 폄훼되었던 용어였다. 그런 순정만화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 변화가 시작된 것은 1988년 순정만화 전문지 <르네상스>의 창간과 무관하지 않다. 이때부터 한국의 순정만화는 생산, 잡지에 의한 매개, 여성전용 만화방(소비 공간)에 이르는 순환구조를 갖추면서 시민권을 확보해 나갔다. 그러나 여성전용 장르로만 인식되던 순정만화의 시민권은 저절로 부여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여성 만화가들의 분투와 사회화된 경험을 확보한 여성 독자의 등장 그리고 순정만화의 독법을 이해하고, 습득하기 시작한 남성 독자의 출현과 무관하지 않다.

1980년대 중후반을 주름잡았던 김혜린 등은 순정만화의 장르를 <북해의 별>, <테르미도르>, <불의 검> 등 대하 역사물과 판타지로 확장해 나갔다. 비록 순정만화 특유의 도식화된 성별 캐릭터와 로맨스 플롯의 어법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일정한 한계를 지적할 수는 있겠으나 이들의 연구와 노력 덕분에 순정만화의 독자는 여성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독자층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순정만화는 비록 여성적 시각에 맞춰져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낭만적 사랑에 대한 동경과 대리 만족적인 스토리 라인, 다시 말해 로맨스 플롯이 중심을 이루는 구조에서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페미니즘을 의식해 강한 여성 서사를 품은 작품들 <레드문>, <리니지>, <바람의 나라> 등이 등장해 여성적 자의식을 의식적으로 드러내려고 노력했지만, 도리어 그와 같은 강한 의식성이 서사의 저편에 혈연 중심이라는 남성적 가부장제의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했다.(4) 그러나 1990년대 후반에 등장한 권교정은 여성성을 드러내야 한다는 의식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작가였고 로맨스 플롯이 존재하지만, 그것이 서사 전체를 끌어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완전히 새로운 작가군에 속한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권교정은 당시 많은 작가가 붐을 이루던 순정만화 잡지로 데뷔한 것과 달리 중세 유럽(독일)을 배경으로 한 장편 <헬무트(Helmut)>(대화미디어, 1996)를 출간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유행하던 만화가 주로 학원물이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중세 판타지였던 <헬무트>가 독자들에게 크게 주목받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른바 서사적 판타지(Epic Fantasy)의 효시로 알려진 J.R.R.톨킨의 <반지의 제왕(The Load of the Rings)>이 국내에 <반지전쟁>(예문서관)이란 제목으로 처음 번역되었던 것이 1991년의 일이었고, 국내 판타지 문학의 시작을 알린 이우혁의 <퇴마록>이 PC 통신에 연재되었던 것이 1994년의 일이었다. 일본 만화를 통해 판타지 장르를 좀더 손쉽게 접했으리라 추측할 수는 있겠으나 국내 독자는 물론 창작자에게도 판타지는 여전히 SF(Science Fiction)보다 친숙하지 않은 장르였다. 작가 본인의 말에 따르면 이후 돈을 좀 벌기 위해 1997년 <어색해도 괜찮아>를 출간했지만, 이때도 출판사로부터 원고료를 제때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혜선(2007)에 따르면(5) 판타지의 유형은 다음의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시대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시대, 초역사적인 시공간을 무대로 검과 마법사(Sword and Sorcery)가 펼치는 영웅담, 둘째는 암흑 판타지로서 악마, 괴물, 흡혈귀 같은 괴기스럽고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오컬티즘적 요소를 다룬 작품, 셋째는 J.R.R.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기본 모델로 하는 이른바 서사적 판타지이다. 이것은 검과 마법의 영웅담과 암흑 판타지가 결합한 형태로 대개는 북유럽 신화나 설화를 바탕으로 중세풍의 이국적인 배경 속에 다채로운 인물들이 선과 악의 투쟁을 벌이는 역사를 다룬다. <청년 데트의 모험>은 판타지 장르의 문법을 철저하게 해체한 뒤 자기만의 방법으로 소화해낸 작품으로 서사적 판타지에 해당한다.

 

끝없이 이어지고 확장되는 권교정의 세계
<청년 데트의 모험>(2007)은 1부 5권만 완결된 상태이기 때문에 이후의 이야기들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지만, 현재까지 완결된 작품(제1부)만 보면 크게 두 개의 이야기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판타지 장르 특유의 ‘세계관’을 일반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이자 이후 전개될 이야기의 전체 얼개를 가늠해볼 수 있는 프롤로그 <페라모어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본편 <청년 데트의 모험>이다. <청년 데트의 모험>은 J.R.R.톨킨의 중간계 대륙처럼 작가가 창조한 대륙 ‘라라미드’의 시골뜨기 청년 데트 일행이 어둠의 화신 ‘노이긴’을 물리치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것에서 출발한다. 판타지에서 ‘세계관 설정(convention)’은 작가에 의해 창조된 초현실적 공간과 요정과 마법사 등의 캐릭터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독자들이 수용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작가가 창조한 설정들은 하나의 규칙으로서 작가 자신도 엄격하게 준수해야 할 규칙이자 제아무리 초월적인 능력을 지닌 주인공도 극복할 수 없는 딜레마이자 핸디캡이다.

본편 <청년 데트의 모험>이 시작되기 80년 전의 이야기인 <페라모어 이야기>는 특수한 능력을 지닌 개더린 종족의 여성 마법사 ‘페라트’와 인간 종족의 남성 마법사 ‘라자루스’의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간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인 ‘구시대’에 존재했던 개더린 종족(또는 페라모어)은 보통의 인간보다 1.5배 정도 되는 키를 가진 외모와 미래를 정확하게 예언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존재들이었다. ‘미래를 보는 자’라고 불리는 페라모어들은 보통의 인간보다 뛰어난 마법과 예지력을 가지고 있으며 마법능력을 배가시킬 수 있는 ‘프레야’란 신비한 열매를 재배해 인간 종족에게 배분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보통의 페라모어들보다 월등한 예지력을 갖춘 페라모어의 수장 페라트는 80여년이 흐른 뒤 라라미드 대륙에서 절대악 어둠의 용 노이긴이 소환될 것이란 예언을 한다. 지금까지 페라모어의 예언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80여년 뒤의 이야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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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더린들, 특히 페라모어들은 신념이 없는 존재야.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을 미래를 위한 도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자신들이 본 미래를 이루기 위한 부속물에 불과한! 그들에게 있어 자신의 존재 이유는 오로지 그뿐. 예언을 증명하기 위한 삶이라고. 즉, 그들은 예언을 실현하기 위해 움직인다. 미래를 보는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냐. 그들의 행동에서 최우선 목적은 미래를 자신이 본 그대로 재현하도록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는 거란 말이야. 페라트가 어둠용을 봤다고 하면 페라모어들은 어둠용을 소환하는 행위를 바로 목전에서 본다 해도 막지 않을걸. 왜냐하면, 어차피 어둠용은 소환되게 되어 있으니까. 물론 그들이 막으려 해도 미래는 이미 보여진 그대로 이루어지겠지만 그들에게 노이긴의 강림을 막아야 할 이유가 달리 있겠는가?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 시간 속에 사고 있어서 자신들이 미래로 가는 흐름을 방해해선 안 된다고 믿고 있어. (<청년 데트의 모험> 2권, 6~7쪽)

<페라모어 이야기>의 딜레마이자 핸디캡은 페라모어의 예언이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는 것이다. 예언은 이루어질 것인가? 예언이 이루어진다면 인간들의 세계는 어찌 될 것인가? 공포에 질린 인간들은 어둠의 용 노이긴을 소환할 수 있는 엄청난 마법 능력을 가진 존재는 페라모어, 그중에서 가장 높은 마법 능력을 지닌 페라트 이외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페라모어,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마법을 지닌 페라트를 살해할 음모를 꾸민다.

그로부터 8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본편이 시작되면 ‘미래를 보는 자(페라모어)’들은 사라지고 예언만 남겨진 시대, 어둠의 용 노이긴의 등장을 알리기라도 하듯 새로운 몬스터들이 출현하기 시작한다. 청년 데트는 외딴 시골 마을에서 전혀 주인공답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 전혀 비범해 보이지 않는 주인공은 일상에 대한 섬세한 묘사를 주특기로 하는 권교정 특유의 설정(대부분의 작품들이 서두인 1부만 간신히 마무리된 상황이라 예측하는 일 자체가 무리지만)이다. 게임광이라는 작가 권교정은 마치 롤플레잉 게임(RPG)을 시작하듯 주인공 데트에게 엘프의 보검도, 난쟁이의 갑옷도 없이 혈혈단신(孑孑單身) 맨몸으로 게임의 세계, 아니 모험의 세계로 들여보낸다. 모험이 진행되고 새로운 동료들을 만날 때마다 작가는 게임의 한 대목을 연상케 하는 개그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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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이기에 청년 데트와 그 친구들이 펼치는 모험담의 세세한 측면을 살필 수는 없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이 작품의 완결을 2007년에 나온 <왕과 처녀 – 모든 모험의 마지막 이야기>(길찾기, 2007)를 통해 이미 알고 있다. 우리에게 <은하철도999>로 잘 알려진 마쓰모토 레이지(松本零士)는 <천년여왕> 이후 <은하철도999>에 이르기까지 모든 작품들이 서로 만났다가 헤어짐을 반복하는 외전(外傳)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렇게 구축된 하나의 세계를 이른바 ‘레이지버스(마쓰모토 레이지의 유니버스)’라 부른다. 권교정 역시 완결된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서로 연결된, 또는 앞으로 연결될지도 모를 이야기들을 통해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청년 데트의 모험>의 외전인 <왕과 처녀>이고, <헬무트>의 외전은 단편집 <붕우>에 수록된 <마법사의 화장실>이다. 이 작품에는 ‘헬무트’의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인 리텐갈트 후작과 마법사 굴라스의 첫 만남을 외전의 형태로 그려내고 있다. 권교정의 세계는 앞으로 <청년 데트의 모험>은 물론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거대한 월드를 이룰 가능성이 열려있다.

프롤로그 <페라모어 이야기>가 본편으로부터 80년 전의 이야기라면 <왕과 처녀>는 본편으로부터 50년이 흘러 청년 데트가 어느덧 유테일렌의 늙은 국왕이 된 시대의 이야기이다. 시골 청년 데트는 4명(오센, 포어, 체칠, 데어고어)의 동료와 함께 어둠의 화신 ‘노이긴’을 물리치는 데 성공했다. 데트는 잿더미로 변한 땅을 복구하여 유테일렌 왕국을 세우고 국왕이 되었다. <왕과 처녀>에서 권교정은 마치 별거 아니라는 듯 <청년 데트의 모험>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이후 행적에 대해 “지혜와 지식으로 일행을 조율했던 포어는 국왕 데트와 결혼했고, 용맹과 신의의 기사 오센은 유테일렌의 대장군의 자리에 올랐고, 치료와 안식의 체칠은 템포로 돌아가 대치유사가 되었으며 마법사 데어고어는 다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모든 것이 여전히 평화로웠다.”라고 천연덕스럽게 적고 있다. 특히 작가의 짓궂음과 이야기에 대한 사랑이 돋보이는 대목은 <왕과 처녀>의 주인공 청년 헨지의 입을 통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해설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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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트와 네 명의 동료들의 이야기는 여러 가지 제목으로 라라미드 전역에 책으로, 연극으로, 시로, 노래로, 구전되는 이야기로 퍼져나갔다. 대부분의 책과 이야기 속에서의 그들은 대체로 영웅적이었고 보통사람과는 다른 능력과 불굴의 의지, 용기 이런 것으로 둘러싸인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중에서 이녹이라는 시인이 쓴 ‘데트와 친구들의 이야기’라는 책이 가장 좋았다. 그 책에서의 데트와 동료들은 보통 사람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실수도 저질렀고 때때로 약했으며 겁에 질리기도 하는 그런 평범한 인간이었다. 나는 다른 이야기 속의 완벽하고 영웅적인 그들보다 한결 이해하기 쉬운 이녹의 그들이 훨씬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그 책을 도서관에서 훔쳐서 조각조각 떨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던 것이다. (<왕과 처녀>, 9~10쪽)

권교정의 세계는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있고, 이야기 속에 다시 이야기로 연결된다. 결말을 모두 드러내고 있지만, 권교정이 <왕과 처녀>에서 끝까지 감춰두고 보여주지 않는 인물은 <페라모어 이야기>에서 페라모어의 수장 ‘페라트’이자 동시에 ‘라자루스’이기도 한 인물의 행방이다. 권교정은 이미 앞의 예언에서 라자루스의 역할이 데트 일행을 펄 계곡의 마법사 데어고어에게 이끌어 가는 것까지란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데어고어는 1부엔 등장하지 않는다. 그가 아예 등장하지 않는단 말은 틀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본편이 시작되는 2권의 속표지에 데트와 함께 장차 모험을 떠날 4명의 인물 중 하나로 얼굴은 등장했기 때문이다.

 

짧은 사랑, 기나긴 이별, 도달할 수 없는 사랑의 저주
<페라모어 이야기>는 기능적으로는 작가의 설정을 개연성 있는 현실로 수용하게 만드는 서사 전략이지만, 주인공 라자루스와 페라트의 짧은 사랑과 기나긴 이별은 권교정의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특유의 로맨스 플롯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주제이다. 순정만화로서 권교정의 작품에도 로맨스와 사랑이 등장하지만, 그의 작품에서 다뤄지는 로맨스와 사랑은 남녀 간의 자잘한 연애 이야기가 아니다. 권교정의 작품에서 사랑(에로스)은 언제나 죽음(타나토스)과 자웅동체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권교정의 데뷔작인 <헬무트>부터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 <청년 데트의 모험>, <왕과 처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변주되고 반복된다.

드래곤 노이긴의 소환을 두려워한 인간들은 페라트를 제거할 음모를 꾸민다. 그러나 다가올 비극을 알지 못하는 인간족 마법사 라자루스와 페라모어의 수장 페라트는 서로에게 빛과 어둠의 마법을 가르쳐주면서 사랑을 확인한다. 페라트의 마법을 봉인하고 목숨을 빼앗으려는 인간들의 음모로 생명의 빛이 사라지려는 순간 페라트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최후의 마법(캐스팅)을 펼쳐 라자루스를 보호한다. 그 순간 라자루스 역시 빛의 마법을 소환해 죽어가는 페라트의 영혼을 자신의 몸으로 옮겨오고 그 대신 자신의 영혼은 소멸된다. 최후의 순간 연인을 보호하고 죽음을 택했던 페라트는 어둠 속에서 자신이 라자루스의 몸에 남겨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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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너는 그때까지 나 혼자 이 확정된 미래 속을 살아가라는 거냐…. 아, 생각을 멈추자. 제발 잠시만이라도 아무 생각도 말고 지금은 제발 네 생각도 하지 않겠어. 절대로 떠올리지 않을 거야. …… 나는 너만 무사하다면 이 세상 따위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었는데. (<청년 데트의 모험> 2권 증에서)

<헬무트>와 <청년 데트의 모험>,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 그리고 <왕과 처녀>는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있다는 것 이외에도 사랑하는 이를 상실한다는 지독한 고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비록 사이사이 권교정 특유의 일상에 대한 섬세한 묘사와 개그적 요소들이 녹아있지만, 이야기의 전체 구도는 짧은 사랑과 기나긴 이별에 대한 작가의 성찰을 담아내고 있다. 데뷔작 <헬무트>(2015년 현재까지도 1부 5권만 완결된 상태이고 나머지 부분은 미완성)에서부터 이미 그런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이 작품 역시 시작부터 두 편의 이별 이야기가 자리하고 있다. 하나는 요정 왕과 왕비의 이별, 다른 하나는 젊은 날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모험을 떠났던 청년기사 율겐의 이별 이야기이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마흔 무렵에 이른 율겐 백작은 “내가 그를 만난 것은 내가 막 스무 살이 되었을 해의 늦은 봄이었다. 나는 그때 내가 본 중 가장 현명하고 사랑스러웠던 지금은 내 곁에 없는 나의 아내 이름갈트를 위해 어떤 임무를 수행해야 했고, 그리하여 그의 이름 석 자는 내 아내의 이름과 더불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되어버렸다.”라고 회고하고 있다.

후일담인 <왕과 처녀>에서도 국왕 데트는 모험을 함께했던 동료이자 사랑하는 왕비 포어를 잃고 비탄에 젖어 잠들 수 없는 불면의 밤을 보낸다. 그때 데트에게 옛 동료 데어고어가 나타나 말한다. “애정을 쏟을 만한 것을 찾아야 해. 네게 필요한 것은 그런 존재야.” 국왕 데트는 “그런가. 그러나 지금 와서 그런 것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무언가를 사랑하기엔 나는 이미 너무 늙었고 지쳤다.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빛나고 소중한 것은 노이긴의 죽음과 함께 급속도로 저물었다.”고 힘없이 읊조린다. <청년 데트의 모험>(4권)에서 청년 데트는 미래의 왕비가 될 포어가 어째서 고향의 연인과 함께 모험을 떠나지 않았는지 묻자 “라시나가 같이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면 난 아마 데려왔을 거예요. 하지만 라시나는 그러지 않았고 그러니 우리는 거기까지가 끝인 거예요.”라고 답한다. 그러자 포어가 다시 묻는다. “그렇게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는 게 진짜 애정이라고 생각해요, 데트?” 사랑의 상실, 죽음과의 대면 그리고 기억을 통한 사랑의 불멸이란 주제는 권교정의 판타지뿐만 아니라 SF물인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된다.(6)

서구 역사에서 ‘디오티마(Diotima)’란 이름은 크게 두 번 등장한다. 한 번은 고전 중의 고전인 플라톤의 대화편 <향연>에서 소크라테스에게 지혜를 가르쳐준 만티네이아의 여사제로, 다른 한 번은 독일의 천재 시인 휠덜린의 영감의 원천이자 불멸의 연인이었던 주제테 콘다르트의 애칭이었다. 권교정의 작품 속에서 ‘디오티마’는 2092년 우주 쓰레기(space debris) 수거와 조난 우주선 구조를 목적으로 라그랑주 포인트에 위치한 우주 정거장의 이름이며, 동시에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 사서였던 아리스타르코스의 연인, 2066년 달 탐사위성 아르테미스호의 선장의 별명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름과 생년월일 말고는 경력도 프로필도 베일에 가려진 젊은(26살) 여성 함장 ‘나머 준’이다.

권교정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여장 남자 또는 타인의 신체에 깃드는 빙의(憑依)적 요소의 출현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올란도>의 주인공이 엘리자베스 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300년에 이르는 동안 성별을 바꿔가며 존재하듯 ‘디오티마’ 역시 변화하며 계속 등장한다. 남장 여자의 등장은 사실 권교정이 아니라도 순정만화에 빈번히 등장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 같은 성 역할의 변화는 순정만화의 독자들인 여성들이 남장여자에 보내는 지지와 호응 때문인데, 순정만화에서 남장 여자가 가지는 의미는 대체로 다음 두 가지이다. 첫째는 남장을 통해 여성에게는 불가능한 사회적 지위나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고, 둘째 여성성을 은폐해 여성 자신이 성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주장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즉 남장여자들은 여성이라서 당할 수밖에 없는 불이익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회 속에서는 여성이 아닌, 남성과 똑같은 능력을 갖춘 당당한 존재이기를 원했다는 것이다.(7) 하지만 권교정의 작품에서의 변신 코드는 위의 일반적인 사례들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헬무트>의 율겐 백작은 남성이지만 여성으로 꾸몄고, 그 과정에서 남성이었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여성의 감성과 세계를 경험하게 되며 <청년 데트의 모험>에서 페라트(여성)는 라자루스(남성)의 몸에 깃들지만, 애써 중성성을 강조하는 남장여자의 그것이 아닌 여성성 그 자체를 내면에 고스란히 유지하는 형태다. 이것은 ‘디오티마’에서 더욱 강렬해지는데 이때의 변신 또는 불멸이란 단순히 로맨스 플롯의 전개를 위한 남성성, 여성성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에서는 영원히 볼 수 없는 달의 뒷면으로 상징되는 절대적 세계(그것이 ‘남녀 간의 사랑’이던, ‘앎에 대한 사랑’이던)에 대한 추구를 위한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행했다는 일련의 가르침들을 정리한 것이 이른바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인데, 이 중에서 <향연>은 특이하게도 소크라테스가 여성 사제 디오티마에게 배운 지혜를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형식이다. 그리스에서 여성의 지위가 노예보다 별반 나을 것이 없었고, 여성 사제가 수행한 역할이 ‘창녀’에 가까웠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매우 놀라운 일이다. 소크라테스에게 디오티마는 철학적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에로스(사랑)’가 도움을 주러 와야만 한다고 가르친다. 철학(지식)은 에로스를 하인으로 둘 수 없으며 ‘지(logos)’에 대한 사랑의 조력자로서 ‘에로스(사랑)’만이 진리에 이르도록 북돋울 수 있다는 것이다.

망각은 지식이 떠나가는 것인데, 학습은 떠나가는 기억 대신 새로운 기억을 주입하여 같은 지식으로 보이도록 우리의 지식을 보존하니까요. 모든 필멸의 존재는 이런 식으로 보존되지요. 신적인 존재처럼 모든 면에서 영원히 같은 존재로 머무름으로써가 아니라, 늙어서 소멸하는 것이 자기를 닮은 젊은 것을 뒤에 남김으로써 보존된다는 말이에요. 소크라테스, 필멸의 존재는 몸이건 그 밖에 다른 것이건 이런 방책으로 불사에 참여하며, 불사의 존재에게는 다른 방책이 있지요.(8)

권교정의 작품 속에서 디오티마는 달의 어두운 면으로 상징되는 ‘알고 싶다는 마음(지에 대한 사랑)’으로 삶과 죽음을 반복하며 영혼의 진화를 거듭하는 존재다. 그러나 이런 사랑이 아무리 간절해도 그 주변의 인간들은 단 한 번의 생밖에 살 수 없는 유한한 존재들이다. 디오티마, 즉 권교정에게 있어 사랑이란 간절할수록, 사랑하면 할수록 만날 수 없는 디오티마(주제테)를 연모하며 미쳐가는 ‘휠덜린’처럼 더욱더 고독해지는 것이다. 사랑은 죽음에 이를 만큼 깊은 상실에 도달한 뒤에야 비로소 설명될 수 있다. 살아남은 사람은 떠나버린 사랑의 추억을 오랫동안 반추하고, 그 과정을 통해서만 비로소 온전한 사랑에 도달할 수 있다는 듯 권교정의 사랑은 혜성처럼 잠시 머물다 사라진다. 떠나간 혜성이 남긴 긴 꼬리처럼 사랑은 남겨진 사람에게 되새겨야 할 기억으로 남는다. <청년 데트의 모험>에서 라자루스가 80여년의 세월 동안 어둠을 배회하며 청년 데트를 기다린 까닭은 어쩌면 헬리 혜성의 주기가 76년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디오티마가 육체를 갱신하며 끊임없이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존재라면 청년 데트는 전설(이야기)을 통해 시대를 넘어 이름을 남기는 불멸의 존재이다. 그것은 인류 역사가 쌓아 온 ‘지식’과 ‘지혜’에 대한 경외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 권교정이 품고자 하는 세계이며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나는 권교정의 작품들을 보면서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대와 역사에 대한 치밀한 연구와 설정에 여러 차례 놀랐다.

예를 들어 <헬무트>에서 율겐 백작의 회고가 시작되는 1권(16~17쪽)에 보면 중세 특유의 독경대(lectern) 앞에 앉아 한손엔 깃털 펜을 들어 글을 적고, 다른 손엔 중세의 필경사(Amanuensis)처럼 펜촉을 다듬거나 잘못 썼을 때 지우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는 작은 칼을 쥐고 양피지를 누르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중세의 글쓰기 장면을 묘사하는 대목인데, 국내는 물론 해외의 어떤 만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철저한 고증으로 재현된 모습이다. 이 한 장면 보더라도 중세사 덕후로 알려진 작가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저주의 봉인이 풀리길 희망하며
J.R.R.톨킨은 첫 책 <호빗>을 출간하기 전 10년 동안 ‘중간계’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 매달려 있어야 했다. 그는 어린 아들을 위한 판타지였던 <호빗>를 출간한 뒤 그 세계를 확장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비로소 <반지의 제왕>을 쓸 수 있었다. 이것은 <호빗> 출간 이후로부터 또다시 10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어린이문학 연구가 존 로 타운젠드는 톨킨의 작품들을 읽기 위해 독자들은 다음과 같은 마음가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 작품은 아주 긴 이야기(톨킨은 너무 짧다고 하지만)로, 독자들은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는 시간의 척도에 느긋하게 매달려 있기보다 긴 중세의 시를 읽을 때와 같은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좋다. 빨리 읽어 치우려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지워야 한다.”(9)

이 말은 권교정의 독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네버 엔딩의 세계, 권교정의 완성된 우주를 보기 위해선(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 현재로서는 미지수이지만) 일단 독자들이 작가보다 오래 살아야 한다. 물론 그보다 먼저 권교정 작가가 작품을 완결할 수 있는 주변 여건과 건강이 허락되어야만 한다. 권교정은 한국 만화의 미래를 낙관할 수 있게 만드는 소중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나는 권교정에게 드리워진 저주의 봉인이 어서 풀리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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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칼 러이셀, 김서연 옮김, <민족 메르헨의 발생과 파생>, <한국아동문학연구> 2, 한국아동문학학회, 1992.8, 138쪽 재인용.
2. 권김현영, <순정만화, 여성들의 정서적 문화동맹>, <여성과 사회>, 제12호, 2001. 3.
3. 임지희, <한겨레>, 2015. 1. 25. –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675136.html
4. 권김현영, <순정만화, 여성들의 정서적 문화동맹>, <여성과 사회>, 제12호, 2001. 3. 127쪽.
5. 한혜선, <한국형 판타지 소설의 교육방법 가능성 – 고전소설과 관련성을 중심으로>, 세명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8.
6. 이 작품은 권교정의 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열쇠 구실을 하고 있지만, 현재 4권까지만 출간되고 연재가 중단된 상태에 있다.
7. 곽선영, <여성장르로서의 순정만화의 특성에 관한 연구>, <만화애니메이션연구> 통권 제5호, 2001년, 2001.11, 258쪽.
8. 플라톤, 천병희 옮김, <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파이돈·향연>, 숨, 2013, 314~315쪽(208a4~b4).
9. 존 로 타운젠드, 강무홍 옮김, <어린이책의 역사>, 시공주니어, 2004, 228~229쪽.

전성원

어린 시절 보았던 [요괴인간]의 “숨어서 살아가는 요괴인간, 사람도 짐승도 아니다, 빨리 사람이 되고 싶다”던 외침을 마르크스적으로 전유하고 있다. 한때 인터넷 공간에서 본명보다 전방위문화비평가 ‘바람구두’란 닉네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었다.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현재는 성공회대 교양학부 겸임교수로서 비판적 잉여인간 재생산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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