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에서 평론가까지 – 일본 만화연구의 흐름과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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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이라는 나라로부터 연상되는 대표 이미지의 하나가 만화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우선 만화 시장 규모로는 2위인 미국을 압도적인 규모로 따돌리며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이러한 넓고 두터운 만화 시장을 바탕으로 TV 애니메이션에서도 업계 1위를 여유롭게 지키고 있다. 우리들이 생각하는 만화왕국 일본은 다양한 만화가 있고 그 많은 만화를 소비하는 독자들이 있고 만화를 숭배하는 ‘오타쿠’들의 나라이다. 문학평론이나 연구에 비하면 훨씬 적지만 만화에 관한 논문이나 연구서적의 종류와 양은 꽤 풍부하다.

    일본에서 보통 사람들의 만화에 대한 관심은 평균적으로 꽤 높은 편이다. 연령과 성별과 무관하게 많은 사람들이 요즘 재미있게 보는 만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쉽게 한두 종류의 만화 제목을 대답할 수 있다. 대학교의 구내 서점에도 만화 코너가 있고 웬만한 인기 신간은 구비되어 있다. 한 해에 팔리는 서적의 3분의 1 정도가 만화책이다 보니 일본인의 만화 자체에 대한 인식은 여러 가지로 남다를 수밖에 없다. 편의점, 동네서점, 지하철역의 매점 등 어디서든 부담 없는 가격으로 만화 잡지와 단행본을 사서 볼 수 있다. 서적 정보지, 패션잡지, 문화비평지 등 각종 전문 잡지에서 심심찮게 만화를 주제로 하는 특집호를 발행하기도 한다. 누구든 만화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환경이다. 일본에서는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만화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 버리지 않는다. 만화 자체에 대한 관심과 출판 시장에서 만화의 위상은 만화 연구서와 평론집, 에세이 등을 매년 꾸준히 만들어내는 바탕이 된다. 커다란 만화시장 만큼이나 만화에 대한 책들이 넘친다. 만화를 주제로 하는 이들 서적 중 일부는 만화를 학문의 대상으로 치열하게 분석하고 집요하게 파고든 결과물이지만 일부는 만화에 대한 부드러운 해설서와도 같은 책으로 보통의 독자들도 부담 없이 집어 들 수 있다.

    일본에서의 만화연구는 꽤 다양한 이력의 연구자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의외일지 모르지만 많은 만화 평론가나 연구가들 중 만화를 전공한 연구자는 거의 없다. 일본에서 만화학과가 설치된 대학은 다섯 곳을 넘지 않는다. 미술이나 디자인, 미디어 중심의 학과에 만화 코스가 설치된 경우는 많이 있지만 독립적으로 만화학과가 존재하는 곳은 드물다. 대학원에 만화학과가 따로 설치된 곳은 교토세이카대학교(京都精華大學) 정도이다. 만화학과보다는 심리학, 교육학, 민속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저마다의 연구 영역에서 만화를 바라보고 연구한다. 만화에 대한 연구는 오래 전부터 있었음에도 만화학회 설립의 필요성이 그다지 절실하지 않았던 이유일 지도 모른다. 실제로 일본만화학회(日本マンガ学会)의 설립은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의 설립보다 5년 늦은 2001년이었다. 물론 학회의 설립 이전부터 만화 비평과 연구는 존재했지만 일본만화학회의 설립은 일본만화의 위상을 생각할 때 분명히 늦은 감이 있다. 일본만화학회는 연1회 학회지 <만화연구(マンガ硏究)>를 발행하고 있다. 3~4편의 논문이 실리고 한두 편의 연구노트와 비평문 그리고 매년 여름 한차례 열리는 학술대회의 심포지엄 내용과 발제 내용을 정리한 특집을 기본으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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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만화학회 학회지 <만화연구(マンガ硏究)>

    일본만화학회의 학술대회는 여타 학회에 비해 일반인들의 참가가 활발하다는 특징도 있다. 만화에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는 대학원생이나 전문가들의 참여뿐만 아니라 만화에 대해 흥미를 갖고 있는 개인 회원이 학회 모임과 심포지엄, 학술대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은 일본의 여타 학회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다. 특히 일본만화학회는 분회의 활동도 활발하다. 현재 학회의 정식 허가를 받아 활동하는 분회는 카툰, 저작권, 차세대 연구자 네트워크, 해외만화 교류, 소녀만화잡지, 젠더 섹슈얼리티, 자료 수집보존, 만화교육 등의 연구 분회와 간사이 교류, 큐슈 만화교류, 나고야 만화문화연구 등 지역 분회가 있다. 특히 지역 분회는 만화를 취미로 즐기는 회원들의 참여도 눈에 띈다.

    그러면 일본 만화연구의 흐름에 대해 한 번 살펴보자. 일본 최초의 만화 연구는 1924년 출간된 호소키바라 세이키(細木原青起)의 책 <일본만화사(日本漫画史)>이다. 만화가이자 삽화가로 활동했던 호소키바라는 일본 만화의 원류를 ‘조수인물희화(鳥獣人物戯画)’에서 찾고 있다. 조수인물희화는 12~13세기경 그려진 에마키모노(絵巻物, 두루마리 형태의 그림)로 원숭이, 토끼, 개구리 등을 의인화해 그린 것이다. 현재에는 조수인물희화와 만화와의 직접적인 관련성을 말하진 않는다. 그러나 붓으로 그린 간결하고 희화화된 동물의 표현이 다른 지역이나 시대의 미술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함이 있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이후 만화에 대한 연구논문이 좀 더 많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중반부터의 일로 이 무렵의 만화 연구는 주로 어린이 만화에 나타난 언어의 특징 혹은 만화가 어린이들에게 끼치는 영향-정확히는 악영향-에 대한 것이었다. 1950년대에는 주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잡지에 실리는 연재만화와 대여점을 통해 유통되던 단행본 만화가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만화는 어린이들의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시기였다. 만화에 대한 연구가 어린이 만화와 만화의 독자인 어린이들에게 주목했던 것은 당연했다.

     

    만화시장의 급성장과 함께 일어난 만화연구 붐
    1950년대 말부터 주간만화 전문지가 창간되기 시작했고 현재의 잡지 연재 중심의 만화 시장이 형성된 것은 1960년대 초의 일이다. 1960년대 일본은 고도경제성장기로 출판 산업규모도 팽창했던 시기이다. 소년만화주간지에 이어 1960년대 초에는 소녀만화에도 주간지 체제가 도입되면서 만화잡지 체계가 자리 잡았다. 주간 발행부수가 100만 부가 넘는 주간지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만화 시장의 성장과 함께 1960년대 말에는 보다 깊이 있는 만화 평론이 시도되었다. 독자의 연령대도 높아졌고 만화잡지의 종류도 연령대와 성별에 따라 다양해졌다. 성인층 독자를 대상으로 개성 강한 작가주의적 작품을 주로 실었던 <가로(ガロ)>와 같은 잡지가 창간된 것도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가로>의 편집부에서 일했던 곤도 스스무(権藤晋)와 미술평론가 이시코 준조(石子順造, 1928~1977), 영화평론가 야마네 사다오(山根貞男) 등이 주축이 되어 1967년 만화평론지 <만화주의(漫画主義)>를 창간하면서 만화 평론에 대한 새로운 시도도 있었다. 이 시기 <만화주의>에 실린 주요 논문으로는 이시코 준조의 <시라토 산페이의 회화성과 극성(白土三平の絵画性と劇性, 1967년 6월 제2호)>, <사일런트 만화의 가능성(サイレント・マンガの可能性, 1967년 7월 제3호>을 들 수 있다. 이시다 준조는 1970년대에도 활발히 활동하며 만화표현론 연구의 초석을 놓은 연구가로 꼽힌다.

    이러한 연구 성과들을 토대로 1980년대에 들어서부터는 본격적인 만화 연구가 시작된다. 발표되는 논문의 수도 비약적으로 늘었고 논문의 주제는 만화의 장르적 특징, 만화 표현 방법의 변화, 만화의 심리묘사 등으로 다양하면서도 깊어졌다. 1980년대에는 다케우치 오사무(竹内オサム, 1951~), 쿠레 토모후사(呉智英, 1946~), 요네자와 요시히로(米沢嘉博, 1953~2006), 요모타 이누히코(四方田犬彦, 1953~), 오츠카 에이지(大塚英志, 1958~) 등 2000년대 이후로도 활발히 활동하는 만화 연구가들이 등장하면서 만화 논문의 전문성은 더욱 높아진다. 이들은 만화에 대해 개괄적이고 종합적이던 연구 스타일에서 한 발 나아가 좀 더 세분화된 주제로 만화를 논하고 평가했다. 다케우치 오사무는 <테즈카 만화의 영화적 수법의 연구(手塚マンガにおける映画的手法の研究, <만화신비평대계(漫画新批評大系)> 1980년 12월)를, 요모타 이누히코는 비평전문지 <유레카(ユリイカ)> 1983년 2월호에 <테즈카 오사무의 성흔 연구(手塚治虫における聖痕研究)>를, 쿠레 토모후사는 <표현구조를 위한 이론(表現構図のための理論, <현대만화 전체상(現代マンガ全体像)> 1986년 )>, 요네자와 요시히로는 <만화 비평선언(マンガ批評宣言, 1987년)>, 오츠카 에이지는 <‘만화’의 구조 – 상품·텍스트·현상(‘まんが’の構造-商品·テキスト·現象, 1987년)>을 통해 본격적인 만화 연구를 시작했다.

    1990년대는 만화 비평의 저변이 확대된 시기로 이 시기의 만화 연구를 말하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나츠메 후사노스케(夏目房之助, 1950~)이다. 나츠메 후사노스케는 1980년대를 거치며 다져진 만화연구의 토대 위에 대중적인 만화 평론의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나츠메 후사노스케는 자칭 만화 칼럼니스트로 1992년 발행된 <테즈카 오사무는 어디에 있는가(手塚治虫はどこにいる)>를 통해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1990년대에는 특히 일본 만화의 독특한 표현 미학에 대한 다수의 논문과 서적이 출간되었고 교육학, 사회학, 심리학 등의 학문을 베이스로 한 만화 분석과 비평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2000년대 이후는 만화연구가 세분화되고 기존의 만화 이론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 이루어지는 등 만화에 대한 학문적 접근이 심화된다. 90년대 이전의 논문들이 만화의 전체적인 표현에 대해 다뤘다면 2000년대 이후의 논문은 인물의 표현, 시점의 변화, 빛의 표현 등으로 세분화되었다. 또한 연구 대상도 넓어진다. 일본 만화에 머물러 있던 연구는 일본 이외 지역의 만화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고 기존에 별로 다뤄지지 않았던 장르의 만화로 눈길을 돌린다. 최근 몇 년 사이 발행된 만화 연구서적 중 눈에 띄는 것이 소녀만화 혹은 여성만화에 대한 담론과 해외 만화에 대한 관심의 증가이다.

    이전에도 소녀와 여성 독자들을 주요 독자로 하는 장르만화와 여성만화가에 대한 연구는 있었지만 다른 장르의 만화에 비해서는 그 수가 많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최근 몇몇 여성 연구자들의 활발한 활동과 함께 기존의 만화연구에서 소외되었던 소녀만화와 여성만화가 만화 연구 영역 안으로 더욱 깊이 들어갔다. 2011년 이후 출간된 서적 중 소녀만화와 여성만화에 대한 연구 서적을 살펴보면, 우선 자신들의 박사 논문을 책으로 엮은 스기모토 쇼고(杉本章吾)의 <오카자키 교코론 소녀만화·도시·미디어(岡崎京子論 少女マンガ·都市·メディア, 2012년)>, 나카가와 유미(中川裕美)의 <소녀잡지로 보는 ‘소녀’상의 변모 – 만화는 ‘소녀’를 어떻게 그렸는가-(<少女雑誌に見る‘少女’像の変遷―マンガは‘少女’をどのように描いたのか―, 2013년)>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이와시타 호세이(岩下朋世)의 <소녀만화의 표현기구 열린 만화 표현사와 <테즈카 오사무>(少女マンガの表現機構 ひらかれたマンガ表現史と<手塚治虫>, 2013년)>, 오오기 후사미(大城房美)를 비롯한 11명의 연구논문을 묶은 <여성만화연구 구미·일본·아시아를 연결하는 MANGA(女性マンガ研究 欧米·日本·アジアをつなぐMANGA, 2015년)>가 출간되었다. 이 밖에도 소녀만화에 대한 리뷰와 에세이로 문예평론가 칸 사토코(菅聡子)의 <“소녀만화” 원더랜드(“少女マンガ”ワンダーランド, 2012년)>, 코나가이 노부마사(小長井信昌)의 <나의 소녀만화사 별책 마가렛에서 하나토유메, LaLa까지(わたしの少女マンガ史 別マから花ゆめ、LaLaへ, 2011년)>, 오오이 나츠요(大井夏代)의 <동경하던 소녀만화가를 만나러 가다.(あこがれの少女まんが家に会いにいく。), 2014년> 등을 들 수 있다.

    일본이 세계 최대의 만화 생산국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일본의 독자들은 일본 만화 이외의 만화에 대한 관심은 그리 높지 않다. 자연히 외국 만화의 번역 출판과 연구 작업도 적은 편이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일본의 만화는 일본 이외의 국가에서 널리 읽히고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는 만큼 오랫동안 해외 연구가들과의 학술교류가 이루어졌다. 그러한 연구가 천천히 축적되면서 최근에는 일본인 연구가들에 의한 해외 만화 연구가 늘고 있다. 프랑스 만화와 미국 만화 등 서구 만화에 대한 연구 서적이 출판되는 한편, 학회, 평론지 등에서 해외 만화에 대한 언급의 횟수도 늘고 있다. 만화연구의 시야가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일본의 만화 연구 경향을 이야기할 때 한 가지 더 소개하고 싶은 것이 소규모로 제작되는 전문비평지의 존재이다. 미니코미지(ミニコミ誌, 메스 커뮤니케이션의 반대 개념으로 만들어진 조어. 소규모로 제작, 판매되는 잡지)를 표방하고 1년에 두 차례 8월 10일과 12월 29일에 발행되는 <만화논쟁(マンガ論争)>과 만화 연구가인 다케우치 오사무가 매년 3월과 9월에 자비로 출판하는 만화·아동문화 평론연구지인 <비란지(ビランジ)>가 대표적이다. <만화논쟁>은 2009년 8월 발행된 1호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만화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시도하고 있다. <비란지>는 1997년 이후 1년에 두 차례씩 간행되고 있는데 책의 간행과 운영은 전적으로 다케우치 오사무 개인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홈페이지에서 신청하고 소정의 배송료를 지불하면 책을 받아 볼 수 있고 몇몇 도서관에 지속적으로 기증되고 있어 열람도 손쉬운 편이다. 자비 출판이지만 매 호 다양한 필진의 흥미로운 칼럼들이 실리고 있고 긴 시간에 걸쳐 질적, 양적 성장을 해 오고 있어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다. 이와 같이 소규모의 평론지 출판도 꾸준히 이어질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탄탄한 만화 시장을 기반으로 한 많은 만화 애호가들의 존재 때문일 것이다. 일본은 만화책도 독자도 팬들도 연구가도 많다. 연구의 폭에 있어서 자국의 만화만큼이나 넓고 탄탄한 토대를 가지고 있는 나라임에 틀림없다.

    김소원

    유치원 때부터 동네 만화가게를 들락거리다 중학교 때 읽은 만화 [비천무]에 꽂혀 역사 만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사학과에 들어갔다. 서교동의 모 만화 학원에서 기본기를 다진 후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유학을 감행했다. 스토리 만화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한일 소녀만화의 비교 - 순정만화의 성립과 발전을 중심으로’라는 개성 없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청춘을 일본 교토에서 보냈다. 다양한 분야의 얕고 넓은 ‘덕질’에 능하며 현재는 대학에서 만화이론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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