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에 하나를 더해도 여전히 하나, <원 뿔러스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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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보리 작가의 네이버 연재 작품 <원 뿔러스 원>은 뿔 두 개를 가진 것을 ‘정상’으로 간주하는 가상의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선천적 특이 뿔장애인 한도림과 사고로 인해 후천적으로 한쪽 뿔을 잃은 원산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만화는 이 둘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외뿔 테러 사건을 다루는 학원 스릴러물이다. 마트 매대 위에서 자주 봐 온 ‘1+1 (원 플러스 원)’ 행사 상품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은, 각자 뿔을 하나씩밖에 가지지 못한 한도림과 원산을 비유한 것처럼 보인다.

원 플러스 원 상품은 하나를 사면 같은 제품 하나가 덤으로 따라오지만 한도림과 원산은 조금 다르다. 그 둘은 모두 ‘뿔 장애인’이지만 다른 기질과 다른 환경을 가지고 있다. 각자가 가진 능력과 뿔 장애인으로서 살아가는 태도도 무척 다르다. 반대로 이 둘을 대하는 주변 인물들은 하나같이 비슷하다. 있어야 할 뿔이 하나밖에 없으므로, 오로지 그 이유로 비하하고 조롱하고 하대하고 마치 조선시대 돌쇠가 양반들에게서 받았던 온갖 야멸찬 차별은 다 당한다. 장애인 대 비장애인의 구도가 너무 명확하고 작품 속에서 원산과 한도림에게 가해지는 차별이 오히려 비현실적이라는 댓글이 자주 달릴 정도이지만 작가는 오히려 이게 순화시킨 수위라고 말한다.

이렇게 대놓고 ‘장애를 주제로 한 학원 스릴러’라고 소개하고 있는 이 만화를, 그러나 나는 여러 번 장애와 비장애 그 어디쯤의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로 읽는다. 취업과 실업 사이에서 늘 면접관과 썸 타는 내 친구의 이야기로, 유독 내 얼굴에만 많이 붙어 있는 못생김과 남의 얼굴엔 잘도 붙어 있는 잘생김으로, 그런 이야기로 읽는다. 우리는 정말 더럽게 못생겼거나, CG처럼 잘생겼을 뿐인가? 장애인이거나 비장애인일 뿐인가?

처음 원산이 한도림의 학교로 전학 왔을 때 선생들은 원산을 한도림 옆에 앉힌다. 둘 다 뿔이 하나뿐인 장애인이니까 서로의 처지를 잘 이해하고 금방 친해질 것이라고 생각해서이다. 정작 둘은 그럴 생각이 없다. 원산의 대사에서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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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원래 8반에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너 때문에 1반에 오게 된 것 같다. 갑자기 1반으로 가라길래 왜인가 했더니만 외뿔인 녀석들끼리 동질감으로 친해지기라도 하라는 건지 웃기지도 않아. 너도 딱히 나랑 억지로 친해지려 할 필요 없어.”

우리는 자주 이런 필터로 세상을 본다. 모 아니면 도, 때론 이렇게 세상을 이분하는 게 아주 쉽고 편리하기 때문에. <원 뿔러스 원>은 옳고 그름을 따지거나 상식과 도덕에 대해 훈계하는 대신 원뿔테러라는 엽기적인 사건과 원산의(아직 밝혀지지 않은) 복수극, 한도림이(자신이 가진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과 밀고 당기는 과정을 그려낸다.

어떤 것들은 단순하지 않아서 무 자르듯 두 부류로 나누어지지 않는다. 뿔 전문 외과의 임가헌을 봐도 알 수 있다. 전국에 많은 체인을 두고 있는 천석병원 원장의 아들인 임가헌은 자신의 한쪽 뿔을 감은 붕대를 풀면서 흑반증을 앓고 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그는 장애인이 아니다. 아직 ‘장애인’ 판정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의사 일도 할 수 있다. 이렇게 장애와 비장애, 그 사이에 마치 해질녘 하늘처럼 호명할 수 없는 수만 가지 색들이 농담의 경계 없이 자연스럽게 섞여있다. 어느 한쪽을 ‘정상’이라는 말로 선점하고 그와 동시에 다른 한쪽을 ‘비정상’으로 만들기엔 우리는 너무 ‘다양하다’.

독자들의 뒤통수를 치는 가장 큰 반전은 프롤로그와 1화 사이에 있다. 프롤로그는 두 남학생의 비디오 인터뷰로 시작된다. 둘은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질문을 받으며 대답하고 있다. 언제 가장 힘들었는지, 비장애인이 된다면 제일 먼저 뭐가 하고 싶은지……. 그런데 아무리 봐도 그 둘에게 특별한 뭔가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두 팔이 멀쩡히 붙어 있고 질문을 알아듣고 말을 하고 있다. 1화에서야 이들이 뿔 장애인이라는 설정이 나온다. <원 뿔러스 원>이 재미있는 건 가상의 신체인 뿔을 통해 (역시 뿔을 하나도 가지지 못한 독자들이) 우리가 암묵적으로 합의한 장애와 비장애에 대해 편견 없이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뿔이 있던 자리에 ‘머리가 큰’, ‘키가 작은’, ‘최종학력 고졸’, ‘일하다가 다친’, ‘길이가 다른 다리’, ‘녹아내린 피부’, ‘가난’… 무엇이든 넣어보라. 우리는 전부 누군가에 비한다면 언제나 상대적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 질문이 남았다. 정말 우리는 더럽게 못생겼거나, 신이 실수로 잘생김을 과하게 넣은 사람만 있을 뿐인가? 그래서 어느 하나는 옳은 가치이고 다른 하나는 필요 없는 가치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우리 각자의 매력만큼 생겼다. 잘생김과 못생김 사이에 많고 많은 점이 있다. 그 점을 이으면 끝을 알 수 없는 선이 생긴다.

그 위엔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 아니라 그냥 ‘사람’들과 <원 뿔러스 원>의 두 주인공 한도림과 원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