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dcast007

 

7회 핵심 요약

 

9월 2주차 베스트셀러 차트
9월 2주차베스트

만골남의 선택
노란구미의 「은주의 방」

이벤트 참여(문자)
010-3001-7506

팟빵 링크: http://www.podbbang.com/ch/9914

아이튠즈 링크:  https://itunes.apple.com/kr/podcast/manhwagollajuneun-namja-mangolnam/id1033727933?mt=2

 

방송 전문 보기
만골남07
“만화 골라주는 남자, 만골남 M씨!”
네- 다시 한 주가 지났네요. 제주도에서 돌아온 만골남 서찬휘 인사 올립니다. 지난주 이맘때 쯤에 전 제주도에 있었습니다. 장모님 환갑 기념 여행이었는데요. 형제도 근처에서 파도소리가 근사해서 녹음해 왔는데 어떠셨는지요. 여느 여행지 바다가 안 좋겠습니까만 제주도는 참 특별한 느낌이에요. 벌써 또 가고 싶어집니다.

제 기억에 제주도는 11월쯤 가도 참 좋은데 혹 여행 계획 있는 분이라면 그즈음에 한 번 가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춥지도 않고, 그때까지도 벌이 날아다니는 풍경을 만날 수 있거든요. 전 이번에 잠자리랑 개미랑 나비랑 벌을 잔뜩 찍었습니다. 운 좋게도 날씨도 정말 맑았어요. 제주를 떠나온 다음날에 비바람이 몰아쳤다길래 정말 잘 골라서 다녀왔구나 싶었죠.

근데 제주도는요. 참 언제 가도 맛있는 먹거리 많고 볼 거리 많고- 생각할 거리도 많이 주는 그런 곳입니다. 언젠가는 제주를 무대로 삼은 만화들도 소개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참 아름다운 곳이지만 한편으로는 참 아픈 역사들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거든요. 4.3도 그렇고. 강정마을도 그렇고. 사실 세월호도 저곳에 가려다 가라앉았거요. 언제고 그 흐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만화들도 이 방송에서 다룰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아름다움만큼 기억해야 할 것도 많은 곳이 제주니까요.

자, 염장이라면 염장일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요. 방송 이야기 좀 해 보겠습니다. 지난 6회에 소개한 작품이 「코럴」입니다. 제주도 일정 때문에 조금 급히 제작하느라 분량이 평소보다 좀 짧았는데요. 자리를 빌려 죄송했다는 말씀 전합니다. 제가 이 방송 타이틀을 ‘바닷속과 현실을 넘나드는 소녀의 자기수복형 사이코 드라마’라고 달았는데요. 사이코 드라마라는 게 다른 게 아니라 자기 안의 억압된 감정과 갈등을 대본 없는 역할극 속에서 드러내게 하는 심리 치료 요법입니다. 세상에 여러 성장 드라마가 있습니다만 「코럴」 같이 스스로 역할극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자기 상처를 치료해낼 단초를 찾아내는 소녀의 성장 드라마는 또 처음이었습니다.

물론, 왜 한 작품 안에서 현실 속 소녀인 산호와 산호가 지어낸 이야기 속 인어 이야기가 같이 들어 있느냐 할 때 작가인 TONO 씨는 마지막 권에서 나름대로 아련한 감상에 젖어 있는 독자들의 여운을 아주 산산히 박살내는 말을 남기긴 합니다. 그거 연재는 시작하긴 했는데 딱히 떠오르는 건 없어서 발버둥치고 있을 때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됐노라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작가 후기나 프리토크가 자세해서 좋을 게 없다는 격언도 있긴 하죠. 예전에 바람의 검심도 사실 캐릭터 제작 후일담이 자세해서 좋았다는 평도 있었지만 감상을 깨먹는다는 이야기도 많긴 했었는데요. 뭐 그걸 감안한다손 치더라도 능청맞게 잘 버무려내는 게 또 작가의 역량 아니겠어요. 그리고 원체 이 TONO씨가 뻔뻔하고 능청맞게 독자를 쥐락펴락하는 편이니까 알면서도 적당히 넘어가주는 게 심신 건강에 도움이 될 듯합니다.

TONO씨는 왕국을 그려도 현실을 그려도 판타지를 그려도 결국 인간의 본성과 인간 세상의 적나라한 속살을 참 즐거운 표정으로 던져놓는 장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우화 같기도 하고, 잔혹 동화 같기도 해서 서늘한 기분이 들곤 하는데 그런 것치곤 캐릭터들의 대사나 개그가 또 정말 재밌거든요. 「코럴」은 특히 엄마가 네 아빠 딴 사람이라고 선언하고 도망친, 그런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보니까 한층 더 간극도 크고, 그 주변의 인물들 하며 주인공 소녀인 산호가 창조해낸 인어들 하며 시종일관 자기 좋을 대로 떠드는 군중들의 일면이 매우 강하게 부각됩니다. 사람들은 심지어 주요 인물들이 겪고 있는 너무나 심각할 수밖에 없는 소재를 꽤나 심각한 듯 떠들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다음 입방앗거리가 나오면 어느새 그 이야기로 갈아타고 있죠. 어쩌면 많은 군중에게 어떤 사람이 겪고 있는 현실이란 그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뭐 슬프거나 노여워할 것조차 없는 이야기지만, 그 럼에도 정말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분노해야 할 일에조차 그러고 있지는 않은지, 이 작품을 읽다가 드는 생각이 그렇더랍니다. 자. 우리는 어쩌고 있을까요.

이런 이야기를 좀 더 했어야 하는데, 지난주에 제주도 가느라고- 부럽죠? 「코럴」 이야기가 너무 짧았나 싶어서 약간의 애프터 서비스를 했습니다.

자 그리고 팟빵에 올라온 피드백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제가 팟빵 만골남 M씨 덧글란에 그동안 6회 동안 소개한 작품들의 책 표지 사진을 쭉 올렸는데요. 만화인 쪽에선 그동안 쭉 올려 왔는데요. 그 가운데 만화만담 시절부터 애청자셨던 시라노 님이 이렇게 적어주셨어요.

“현재 6회 코럴편까지 잘들었습니다. 이전 골리앗편은 볼수없는거가 했는데 이번에 댓글에 링크해주셔서 국내 정발한걸알았네요 좋은 작품 소개해주셔서 감사합 니다”

시라노 님 고맙습니다. 일단 만골남 M씨에서 소개하는 작품은 지금 현 시점에 어떻게든 읽을 수 있는 작품을 소개하려 하고 있습니다. 구할 수 없는 작품 가운데에서도 소개하고 싶은 건 정말 많은데 소개하는 보람이 아무래도 적으니까요. 「골리앗」은 정말 짧고 굵은 맛을 보여주는 작품이죠. 얼마 전 2015년 부천만화대상 해외만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었고 지금도 구입할 수 있어요. 그리고 글로 남기진 않으셨는데 조재호 작가님. “방송에서 소개받은 책들을 사서 읽어봤다, 뭘 봐야 할지 몰랐는데 다양하게 소개해줘서 좋았다”라는 말씀을 건네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박인하 교수님. 잘 듣고 있다고 전해주셨습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그 감사한 마음 그대로 이어서 전하는 말씀 들으시고 이어서 베스트셀러 차트 소개 받으시겠습니다.

만화 골라주는 남자, 만골남 M씨는 만화 비평 전문 웹진 크리틱 M에서 제작합니다. c r i t i c m .com, 크리틱 엠.

 

“지난주 베스트셀러”

9월 2주차베스트

9월 첫 주에 이어 9월 둘째 주 베스트셀러를 전하겠습니다-라고 말하려니 벌써 9월도 중순이구나 하는 생각에 치를 떨게 되네요. 시간 참 빨리 갑니다.

자. 10위부터 1위까지 쭉 훑겠습니다. 10위는 지난주 공동 5위였던 요네다 코우의 지저귀는 새는 날지 않는다 3권. 9위는 마피아 가문 딸내미와 야쿠자 가문 아들내미의 조직 건사용 위장연애담을 그린 코미 나오시의 니세코이 16권.

8위는 언제나 한없이 전면 성애물에 가까운 청소년 만화의 선을 보여주는 하세미 사키와 흑화 야부키 켄타로 선생의 투 러브 트러블 다크니스 13권. 선생자 붙여줘야 하는 과거가 돋보이는 작가분이긴 한데 사실 전 요즘 이 작품 책 구입을 좀 망설이게 되긴 하네요. 신기에 가까운 에로함만으로 보기엔 패턴이 너무 반복이라서요. 7위는 대원씨아이의 BL브랜드인 B愛코믹스 레이블로 나온 유사의 적의 심장, 그를 가지다 7권. 작가분 블로그에 따르면 8권이 11월, 완결권인 9권은 내년 1월 이후 나올 예정이라고 하는군요. 어쨌든 국내 BL로 화제를 모은 작품입니다.

6위가 우라사와 나오키, 나가사키 다카시 의 빌리배트 16권. 지난 주 5위였다가 한 계단 내려왔고요. 5위는 오다 에이이치로의 원피스 77권. 4위 ONE과 무라타 유스케의 원펀맨 3권. 곧 애니가 나온다고 하는데 예고 영상에서 다들 오오오 하는 분위기입니다. 역시 지난주보다 한계단 내려왔습니다. 3위 전극진 양재현 콤비의 열혈강호 67권. 이 작품도 지난주보다 한계단 내려왔고요. 공동 1위는 오다 에이이치로의 원피스 78권과- 지난주 4위였던 삼촌 작가의 이런 영웅은 싫어 12권입니다. 야금야금 순위를 잡아먹으며 위로 올라왔네요. 신간이 나올 때마다 무서운 상승세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한편 열혈강호는 정말 꾸준합니다. 이러기도 쉽지 않아요. 특히 한국 작품으로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BL작품들의 차트 진출이 지난주에 이어서 흐름을 타고 있는 9월 둘째 주 상황 전하면서 차트 해설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지난 주 베스트셀러 차트였습니다.

 

“만골남의 선택”
이번 만골남의 선택 시간에 소개할 작품은 노란구미 작가의 신작, 「은주의 방」입니다. 노란구미 작가님은 재일교포 2.5세 출신으로 한국과 일본 양쪽을 겪은 이로서의 경험과 시선을 작품 속에 녹여내 오다가 「은주의 방」으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소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선택하고 있는 소재는 다름아닌 셀프 인테리어입니다. 말 그대로 자기가 직접 방이나 집의 인테리어를 바꾸는 걸 말합니다.

저 같은 곰손…… 알파카 손인가? 어쨌든 솜씨가 영 없는 사람은 기껏해야 화분 하나 놓으면 고작이거나 기껏해야 벽에 못 박고 거울이나 달력 정도 거는 게 고작이죠. 뭐 형광등 정도 가는 거야 하긴 하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아예 등 자체를 떼어내고 다른 제품으로 교체한다거나, 싱크대 색을 바꾼다거나, 벽지 위에 페인트를 칠한다거나, 욕실 모양새를 고쳐 본다거나-하면 그야말로 딴 세상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대체로 세상에 전문가가 왜 필요하겠냐는 주의거든요. 제 아내는 이해를 못하죠. 손 솜씨 좋은 사람은 이해 못해요. 아내가 만약 임신을 안 했다면 저희집도 지금 어찌 변하고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근데 셀프 인테리어는 이걸 직접 하는 겁니다. 가볍게는 소품부터 본격적으로는 집안 공간 자체를 재구성하는 데에까지 말이죠. 물론 전문가가 해야 할 영역이 있고 부품이나 공구를 잘못 다루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자기 공간을 자기가 꾸며 본다는 데에 매력이 있는 작업이죠. 전 못합니다. 냉큼 말하는 건데 저는 못하지만, 어쨌든 셀프 인테리어는 그런 일입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하는 「은주의 방」은 그런 셀프 인테리어를 하는 여주인공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매 에피소드마다 노란구미 작가님이 남편분과 함께 직접 이런저런 방들을 개조한 결과물을 공개하기도 합니다. 와 그럼 셀프 인테리어 교본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그게 아니란 게 포인트입니다. 이 작품은 주인공 ‘심은주’가 우연히 셀프 인테리어를 접하게 되고 이를 통해 자신을 바꿔가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는 일종의 셀프 힐링 만화입니다. 말하자면 셀프 인테리어로 셀프 힐링하는 만화인 셈이죠.

일단 작품 줄거리를 간단하게 소개해 보겠습니다. 「은주의 방」의 주인공은, 모종의 이유로 다니던 회사를 퇴직하고 이직을 시도했지만 실패하면서 백수 생활을 하기 시작한 프리랜서 편집 디자이너 심은주입니다. 은주의 나이는 30대에 한없이 가까워진 20대 후반. 나이가 적잖으니 면접을 보면 퇴짜요, 엄마는 허구헌날 전화해선 애인 없냐는 부모님 고정 레퍼토리를 늘어놓습니다. 얼마 전에 나혼자 산다 보니까 그 하정우조차도 아버지한테 이 레퍼토리로 당하는 모양이더라고요. 어쨌거나 그런 마당이다 보니 백수인 기간이 길어질수록 의욕은 떨어져 가고, 은주는 그저 하루하루 방안에서 무기력하고 우울하게 찌그러져 갑니다. 쓰레기는 물론이거니와 곰팡이까지 창궐하는 방 안에서 은주는 사방천지 오만가지 일이 다 망가지고 꼬여 갑니다. 속이 속이 아닌 마당이다 보니 졸지에 분풀이까지 나옵니다.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는데, 일이 잘 안 되는 걸 어떻게 하냐고, 더 이상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라고.

그런 은주를 쳐다보던 소꿉친구면서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민석은 문득 짚이는 게 있어 은주네 집 옷장을 걷어내 봅니다. 아니나 다를까 옷장 뒤는 새까맣습니다. 단지 벽지를 타고 천장에 끼어 있는 정도를 넘어 아예 옷장 뒤를 완전히 잠식했습니다. 놀란 은주에게 민석이는 말합니다. 네가 지금 안 풀리는 원인 중 하나는 곰팡이 때문일 수 있다-라고요. 은주는 민석의 조언에 따라 차근차근 집 청소와 곰팡이 제거를 하며 집의 문제점들을 고쳐가게 됩니다.

그야말로 쓰레기장 같던 집안 꼴이 눈에 들어오자 청소를 하게 되고, 청소를 하니 이번엔 쓰레기와 설거지 더미 뒤에 묻혀 있던 싱크대와 선반이 보이고- 은주는 어느 사이엔가 이런 곳곳을 저렴하게 직접 바꾸어 보는 재미에 맛들리게 됩니다. 민석이가 하래서가 아니라, 또는 세면대가 박살났는데 돈 아끼려고가 아니라, 뭔가 직접 바꿔봐야겠다는 의욕을 품게 된 거죠. 은주로서는 정말로 오랜만에 품은 의욕입니다. 그리고 그런 비포 애프터 과정을 블로그에 올리면서 은주는 좋은 평가와 칭찬, 그리고 자기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작은 변화의 계기를 원하는 목소리들을 만나게 됩니다.

여기까지 줄거리를 쭉 들으셨으면 아시겠지만 「은주의 방」은 단지 셀프 인테리어를 배우는 학습 만화가 아닙니다. 셀프 인테리어는 작품에서 중요한 소재지만, 사실은 은주가 셀프 인테리어와 블로그 덧글 소통으로 한차례 완전히 박살나고 부러졌던 자기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모습에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공간과 사람의 관계에 관한 관점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집이나 방이라고 하는, 자기가 계속해서 살아가고 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공간은 사실 여러 면에서 삶의 태도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삶의 범위를 규정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 작품 보면서 예전 생각이 계속 나더라고요. 제가 지방에서 살다가 20대 중후반경 해서 서울로 독립해 올라왔는데요. 처음으로 둥지를 틀었던 곳은 홍대 근처에 있던 두 평짜리 고시원이었습니다. 사실 여러 이유가 있긴 했지만 결정적으로 아버지와 타협할 수 없는 관점차로 대판 집안을 뒤집어 엎어놓고 난 다음에 그동안 모아놨던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들고 나왔는데, 보증금 없이 월세만으로 살 수 있어서 저에겐 별 다른 고민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한 달에 35만 원이면 밥 무제한에 김치 무제한에 달걀이랑 라면이 무제한에…… 음. 나름대로 좋기야 했죠. 2년에 걸쳐서 온갖 외주를 해댔는데, 그 두 평짜리 공간 안에 책이 천 단위로 쌓일 수도 있더라고요. 좁기도 좁고, 햇빛은 거의 안 들어오고…… 그나마 창가 방을 얻었는데 바로 옆이 도로여서 매연 참 끝내주고요. 그 와중에 마침 행정수도를 만들어 내려가자고 하니까 당시에 어느 높으신 양반들인지는 막 홍보 트럭 동원해서 서울시민 여러분 우리의 권익을 뺴앗으려는 무도한 자들이 있습니다 가만 놔둬서야 되겠습니까 하면서 극악무도한 선동을 하고 다니고요. 지방민 출신이다보니 정말 하나하나가 다 서럽더라고요 이놈의 서울살이가.

근데 재밌는 건요. 그땐 잘 몰랐는데 이 2평짜리 공간이 저에겐 꽤 많은 걸 주기도 했고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주기도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당시의 제 모든 발상이나 생각이 이 두 평 남짓한 공간만큼을 넘질 못했다는 겁니다. 특히 프리랜서인 제 입장에서는 마감이나 외주 걸리면 외출도 못하고 박혀 있게 마련인데, 이를테면 한 일 주일 정도를 그 공간 안에서 노트북 한 대 놓고 일하고 있는 거예요. 박카스 빨면서요. 뭔가 새로운 생각을 하려 해도 고개를 돌려보면 바로 눈 앞에 벽, 뒤를 돌아봐도 바로 앞에 벽입니다. 물론 그 안에서도 할 건 다 합니다. 사람들은 정말 대단해요. 방에 누구 데려오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는데도 사람 데려오고, 연애질도 하고 섹스도 하고 다 해요. 벽이 얇아서 다 들려서 문제지.

맘에 드는 사람 있으면 반찬도 건네주고 그러고 그 안에서도 터줏대감이 있어서 안면을 익히기도 하죠. 근데, 어쨌거나 그런 저런 건 어떤 형태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차원의 문제지 사실은 공간 자체가 한계인 건 변하지 않죠. 사실 거기선 자기 소품은 아무 것도 들여놓을 수 없습니다. 노트북이랑 책 정도죠. 그리고 옷 정도. 전 2년간 산 책이 좀 많아서 나중에 이사할 때 용달트럭이 넘치는 대참사가 나긴 했는데 그건 별외로 놓고 치더라도 그 안에서 무슨 인테리어를 하겠습니까. 자기 게 없는 거예요. 대체로 두세 달이면 사람이 갈리게 마련인 공간이고요. 그 공간의 주인조차도 못 되는 거죠.

그래서 사람이 점차 굉장히 좁아지더라고요. 자신감도 떨어지고. 누군가가 같이 밥 먹자고 부르면 어째 좀 움츠려드는 것도 없지 않고. 안 그래 보이려고 애는 썼죠. 하지만 같은 월세라도 자기 공간이 있는 사람과 자기 공간이 아닌 사람은 차이가 있게 마련입니다. 전 거기서 서울 살이의 기초를 닦았고 여러 경험도 했지만 그래도 조금 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던 건 그래도 자기가 자기 걸 들여놓고 조정할 수 있을 만한 공간을 얻게 된 다음이었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자연스레 옷차림에도 신경 쓰고 외모에도 신경 쓰게 되더라고요. 물론 월세는 버거웠습니다만 말입니다.

그래서 「은주의 방」을 읽으면서 공간과 그 공간에서 살아가야 할 사람의 관계성에 관해 큰 공감을 하게 되더라고요. 뭐 그렇다고 제가 청소를 아주 열심히 하느냐, 집이 아주 넓고 좋느냐, 그렇지만은 않습니다만 최소한 주거공간이 나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생각했던 입장에서 굉장히 많은 걸 생각하게 합니다. 그건 꼭 넓이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고시원은 좀 특이 케이스죠. 거긴 2평 이상 되는 공간이 거의 없는 기형적인 공간이잖아요. 그러니까 넓이 가지고 힘들다 하는 거지만, 원룸 정도만 되어도 이제 앞뒤로 벽에 눌려 살지만은 않으니까 거기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를 고려해야 하죠. 그 공간을 어떻게 인식하고, 인정하고, 대하느냐에 따라 그 안에 무얼 들여놓고 배치하느냐, 어느 정도의 짐을 넣을 것인가가 다 결정이 납니다.

물론 공간의 크기가 곧 돈이기 때문에 무조건 넓게만 할 수도 없고, 또 심지어는 돈이 있다고 무조건 넓은 데로 가면 그게 좋은 것만도 아닙니다. 한 때 저희 본가가 조금 잘 살던 시절이 있었는데, IMF로 박살나기 전엔 40평대였거든요? 가족 네 명에요. 지금에 와서 하는 말이지만 네 가족이면 20평대 후반 방 세 개여도 어떻게든 살고 30평대면 넉넉합니다. 그 정도로 넓으면 가족끼리 종일 얼굴도 안 마주치게 돼요. 그래서 이건 넓이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간을 뭘로 정의하느냐, 어떻게 대하느냐의 문제 같습니다. 집은 남에게 자랑하기 위한 공간도 창고도 아니고 사람이 살아가야 할 생활 공간이란 말이죠. 좁으면 좁은대로 배치와 조명으로 분위기를 만들 수 있게끔 하는 게 인테리어의 묘미고요.

「은주의 방」에서 은주는 어떠했냐면, 사실상 자포자기한 시점에서 공간에 관한 제어를 완전히 포기하고 짐은 쌓여가고 쓰레기도 쌓여가고 곰팡이는 치울 생각도 안 했습니다. 「은주의 방」에서 공간은 그저 아무 것도 아닌 듯이 되고 만 은주 자신이나 마찬가지였죠. 그렇다면 그 공간은 창고나 다름 없습니다. 그러던 은주가 셀프 인테리어를 통해서 조금씩 공간을 자기 스스로 바꾸어가게 됐죠. 은주는 방을 바꾸어 가면서 자기도 바뀌어가지만, 반대로 말하면 은주가 바뀌는 만큼 방도 바뀌어간 셈입니다. 자기의 생활을 오롯이 담아내는 공간은 사실은 곧 자기 자신이기도 하다는 점을 이 작품은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공간에 관한 태도가 곧 자기 삶의 태도기도 하다는 점도 보여주지요.

작품이 진행되면서 은주는 다른 이들에게 응원과 관심을 받게 되는데, 그러면서 은주처럼 뭔가 바꾸고 싶어하는 이들의 요청을 받기 시작하죠. 그렇게 해서 만난 남자의 집을 은주는 남자 만난다는 게 신경 쓰여서 따라온 민석이와 함께 바꿔주게 되는데, 여기서 재미난 장면이 나옵니다. 짐이죠. 빌렸을 뿐인데다가 벽도 얇아서 결로가 잔뜩 생기는 집을 공사하기도 어려우니 형편에 맞춰 보수할 수밖에 없는데, 그 공간 안에 있던 짐들 가운데에서 상당수를 버릴지 말지 고민합니다. 이건 앞서서 은주도 겪은 건데, 이에 관한 해답은 버릴 건 버 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게 자기에게 정말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나눠 정리해나가는 과정을 거칠 때 비로소 필요한 것을 빈 공간 안에서 필요한 만큼만 채울 수 있고, 필요한 게 묻혀 있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묻혀 있지 않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인물이 될 수도 있다. 공간이 창고가 아니고, 자기 삶에 스트레스가 되는 곳이 아니어야 한다면 그에 맞게 비우고 채우고 꾸며야 한다. 작품은 이렇게 은주의 변화를 통해, 그리고 셀프 인테리어를 통 해, 또 블로그 덧글이라는 피드백 과정을 통해서 사람들이 지금 시대에- 요즘은 조금 철이 지나간 테마일 수도 있긴 한데 힐링의 방법을 제시합니다. 자기가 생활하고 쉬어야 할 공간을 대하는 방법, 꾸미는 방법이 곧 힐링을 위한 테라피일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죠. 셀프 인테리어는, 사실은 그 과정일 뿐입니다.

사실 은주는 편집 디자이너로서 이상과 목표가 굳건했지만 그 탓에 주변을 전혀 채 보지 못하다 한 차례 완전히 부러진 인물입니다. 생활 공간이 그 공간의 주인을 반영한다 할 때 은주의 방은 자포자기한 은주 그 자체였습니다. 은주는 그렇게 자기 방처럼 방치해뒀던 자기 자신을 일으켜 다시 세상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백수지만, 조금씩 변하면서 남에게도 영향을 주게 된 현재의 은주는 더 이상 상황을 원망하지만도 않고, 남을 부러워하지만도 않습니다. 이제 자기 발로 다시 서는 데까진 온 거죠. 여기까지가 1부. 2부에서는 이제 그런 은주가 자기 안이 아니라 바깥 현실에서 맞닥뜨려야 할 여러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어 보입니다. 과연 어떻게 전개될지 흥미진진합니다. 근데…… 작품에서 최강 보스에 가까울 사람이 은주 엄마인데, 이 분만큼은 보면서 좀 쩜쩜쩜-입니다. 엄마가 대체 딸들을 소유물로 아는 건지, 잔소리를 넘어서서 딸의 미래가 얼른 혼인해서 애 낳는 게 최고의 행복이라는 양 간섭에 가까운 행동을 하니 말이죠. 아, 엄마가 무어라 하시든 민석이도 은주도 어쨌든 그 자체로 빛나는 청춘을 알아서들 불태우길 바랄 따름입니다. 혼인과 출산이 꼭 그 전제는 아니니까요. 인생은 대충 한 편당 3/4 지점부터만 보면 침대 위에서 일 치르고 행복해하는 걸로 해피엔딩 나는 에로 영상이 아니니까요.

아, 그리고 보면 얼마 전에 방영됐던 나 혼자 산다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이 셀프 인테리어가 등장한 적이 있습니다. 강남이라는 연예인이 지금 혼자 살고 있는 집이 예전에 엄마가 살던 집인데, 다 엄마 취향이고 해서 강남이 취향으로 깔끔하게 바꾸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모셔온 사람이 제이쓴이라는 인테리어 블로거인데, 설비업자가 아니고 블로그를 통해서 셀프 인테리어를 돕고 다니는 사람이더라고요. 보면서 「은주의 방」이 생각이 안 날 수가 없었습니다.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공간을 바꾸어 보며 위로를 받았던 경험을 남과 공유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지요. 8월 14일자였던가요. 셀프인테리어가 어떤 형태로 진행되어 어떤 결과물로 나오나를 보고 싶으시다면, 은주의 방과 더불어 나혼자 산다의 해당 회차를 시청해 보시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작품 이야기를 하면서 자꾸 이입하게 되는 게, 남 이야기가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버릴 걸 버려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할 때엔 굉장히 뜨끔했어요. 혼인하고나서 얻었던 신혼방도 그렇고, 둘째 집까지도 사실 제 짐덩이인 만화책 때문에 책 수납이 최우선이 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거든요. 게다가 물건을 잘 못 버리는 성미기도 하고요. 지금 사는 집에 오면서야 책도 많이 내보내고, 인테리어라 할 만한 걸 할 수 있었습니다. 공간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또 그 시각이 나를 어떻게 만드는가. 고시원에서 나오면서 잘 알게 됐다고 생각했는데 갈 길이 여전히 참 멀었다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 이제 저희 부부는 애를 낳을 때가 다가와서 짐을 더 버리고 애 공간을 만들어야 하거든요. 제가 손이 곰손이니 셀프 인테리어는 어렵겠지만, 단순히 될 대로 되겠지 할 일이 아니라는 점을 작품을 보면서 새삼 다시 일깨우게 됩니다. 저에겐 집이 일터기도 해서 더더욱 공간에 관해 잘 생각해야 하겠지요. 덕분에 많이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방송 마치고 집 정리를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오늘 방송 마칠까 합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모두들 만골 만골한 한 주 보내십시오.

서찬휘였습니다.

서찬휘

만화 칼럼니스트이자 만화정보저널 사이트 '만화인' (http://manhwain.com) 운영자. 글쓰기와 만화를 좋아하던 프로그래머 지망생이었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만화와 얽힌 글을 쓰면서 만화 정보를 묶어내는 컴퓨터 프로그램들을 짜고 있다. 자생한 1.5~2세대 한국형 오덕으로 덕업일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내츄럴 본 프리랜서. 칼럼, 연구, 비평, 강의, 방송, 캘리그라피 등 만화와 관련해서는 오는 의뢰 안 막는 자판기형 용병의 삶을 구가 중이다. 최근엔 열심히 애 아빠로 클래스 체인지 시도 중. 봄이야,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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