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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어떤 표정일까? 아마도 우리가 떠올리는 슬픔의 표정은 미간을 찡그린 채 얼굴을 떨구는 모습이거나 오열하며 눈물을 쉴 새 없이 쏟아내는 모습일 것이다. 아니면 두 모습 사이 어딘가에 위치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물고기가 보이는 남자>는 흥미롭다. 이 작품 의 주인공은 사람들 머리 위에 떠 있는 ‘물고기’를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그를 믿지 않으며 심지어 미친 사람 취급한다. 그는 전형적인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다양한 슬픔의 표정들이 그려질 것 같다. 하지만 주인공은 독특하게도 슬픔의 표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카툰 형식으로 그려진 주인공의 얼굴은 슬픔을 담아내기에 적절한 표현 수단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물고기가 보이는 남자>는 오히려 ‘레고 장난감’을 닮은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주인공 내면을 생생하게 형상화하고 더 나아가 작품 주제를 더욱 또렷하게 만든다.

 

온전히 드러낼 수 없는 내면
<물고기가 보이는 남자>의 첫 장면은 교통사고 후 주인공이 어떤 가상공간에 놓여있는 것으로 시작된다. 주인공은 이곳에서 물고기 얼굴을 가진 심판자를 만난다. 그리고 심판자는 주인공에게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 관해 이야기할 것을 요구한다. <물고기가 보이는 남자>는 이 과정에서 ‘과거 이야기’와 ‘심판자와의 대화’가 번갈아 가며 진행된다. 주인공은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 머리 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고기가 보였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 눈에 물고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주인공을 이상하게 생각했고, 그가 테스트를 통해 그 사실을 증명할 때조차도 상황 자체를 부정해버렸다. 주인공은 어머니를 잃는 등 많은 아픔을 겪고 나서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거짓말은 꼭 필요한 거야. 그저 자기네들 잣대로 거짓말인지 아닌지 판단할 뿐이기에. 남들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말들만 하면서 살아가야겠다.” 주인공은 이제 마음의 문을 닫는다.

 

명료한 선과 미디엄 샷을 통한 내면의 표현

TINTIN3<물고기가 보이는 남자> 작화는 <땡땡의 모험> 작가 ‘에르제’의 ‘명료한 선(Clear Line)’을 떠올리게 한다. <물고기가 보이는 남자> 캐릭터의 윤곽선은 단순하고 명확하다. 여기서 선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선은 만화 표현의 중심으로, 한 줄의 선은 그 안에 감정과 정서를 담아낸다. 명료한 선의 경우 감정을 그려내지 않으며 또한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이 선은 기본적으로 객관적인 선이다(1). 명료한 선으로 그려진 주인공의 표정 역시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데 그래서 그의 감정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그려진 명료한 선은 감정 표현을 제한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내면 표현의 단점으로 작용하기보다, 주인공의 억제된 내면을 섬세하게 재현하는 강점으로 작용한다. 주인공은 “나는 거짓말을 통해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라고 생각하는 인물로서, ‘반동형성(2)’ 형태의 방어기제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그에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은 드러내서는 안 되는 것이며 감춰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거짓말로 자신을 보호하듯, 명료한 선으로 이루어진 단단한 ‘가면’을 쓰고 자신의 표정을 제거해버린다.

명료한 선 2작가가 작품을 이끌어 나갈 때 선택해야 하는 것은 ‘그림’만이 아니다. 적합한 거리와 각도와 관련된 ‘프레임’도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물고기가 보이는 남자>에서는 명료한 선과 어울리는 프레임을 선택하여 작품의 통일성을 부여한다. 감정 표현이 절제된 이 작품에서는 극적인 연출을 위한 촬영 구도의 급격한 변화를 자제한다. 그리고 만화의 장면들은 주로 인물의 허리 윗부분을 주로 담는 미디엄 샷으로 그려져 안정감을 준다. 여기서 미디엄 샷은 이 작품의 분위기와 주제를 재현하는데 적합하다. 이 작품의 기본적인 이야기 구도는 주인공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심판자와의 대화이며, 이 과정에서 주인공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진다. 이런 점에서 미디엄 샷은 두 존재의 대화를 담아내기에 유용한 틀이며, 주인공 과거 역시 차분하고 건조한 시선으로 그려낼 수 있다. 또한 미디엄 샷은 주인공 후방에 여백을 제공하기 때문에, 독자에게 여운을 제공하며 동시에 차분한 작품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 작품은 이렇게 급격한 카메라 이동이 없이, 주로 미디엄 샷의 직사각형 프레임을 차례로 나열하며 담담히 이야기를 풀어간다.

<만화의 이해> 저자 ‘스콧 맥클라우드’는 ‘탈바가지 효과(masking effect)’를 설명하면서, 독자들은 카툰화된 이미지에 감정이입하기가 쉽다고 주장한다. <물고기가 보이는 남자>의 주인공의 경우 전형적인 ‘카툰’ 캐릭터이다. 캐릭터를 이루는 단순한 선, 둥근 형태는 독자들이 주인공에 다가서기에 부담 없다. 그러나 스콧 맥클라우드의 주장과 달리, 한편 이러한 카툰화된 주인공은 ‘감정이입’이 어려울 수도 있다. 감정이입의 대상이 되어야 할 주인공의 표정 즉 감정이 감춰져 버렸기 때문이다. <물고기가 보이는 남자>에서는, 하지만, 주인공의 제한된 표정이 감정 이입의 방해가 되지 않는다. 주인공의 무표정과 억눌린 내면이 적절하게 겹치면서, 카툰 캐릭터는 주인공의 마음을 담는 적절한 그릇이 된다. 주인공의 비어있는 표정에서 독자들은 슬픔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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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인하, http://blog.naver.com/enterani
(2) 무의식적인 욕망과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그 욕망의 반작용으로 구성되는 심리적 태도나 습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