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체가 곧 괴물_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화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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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는 그 안에 담긴 엄청난 내용에 비해 그림체는 소박한 편이다. 복잡한 줄거리와 미스터리, 반전으로 나를 놀라게 했던 <몬스터>에서 요한이 자기를 쏘라고 이마를 가리키는 장면에서도 나오키의 그림체는 동요하지 않는다. 내용은 엄청나게 진동하지만 그림체는 고요한 것이다. 그래서 나오키의 만화는 더 기괴하게 다가온다. 만약 이토 준지의 만화처럼 그림들이 동요하고 있었더라면 나오키의 만화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그림체에게 힘을 빼앗겨 별 역할을 못 했을 것이다. 나오키의 만화에서 나에게 제일 무서운 사람은 <몬스터>에 나오는 룽게 경부였는데, 그가 범행 현장에서 손가락을 딸각 거리며 범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읽다 보면 혹시 내 마음에 들어오면 어쩌나 겁이 나기도 했다. 물론 룽게 경부는 째진 눈, 넓은 이마, 굳게 다문 입, 어떤 미세한 소리도 놓치지 않고 들을 듯한 귀 등 무서운 사람이 갖추고 있어야 할 특징들을 갖추고는 있으나 그것들을 묘사하는 나오키의 그림체는 차분하기만 하다. 좀 더 선을 흩트려서 룽게 경부를 더 무서운 사람으로 묘사해도 좋으련만 그는 딱 룽게 경부 역할만 하고 끝난다. 이상한 괴물도, 수수께끼의 인물도 아니다. 그저 본업에 충실한 경찰관일 뿐이다. 그래서 더 내 속으로 들어와서 나에 대해 다 파악해 갈 것만 같다.

 

사진체그런 나오키의 그림체는 굳이 분류하자면 ‘사진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그런 말이 있는 것은 아니고 나오키의 그림체를 분석하기 위해 임의로 만든 말이다.) 사진체는 사진같이 대상의 형태를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그림체다. 따라서 나오키의 그림체에는 감정이 실려 있지 않다. 인물은 포효하고 있지만 인물을 묘사하고 있는 선은 포효하지 않는 것이 사진체다. 사진체는 일본 만화에서는 많이 볼 수 있는 스타일이다. 디테일에 강한 일본 만화답게 어떤 기계류가 나오면 대강 그리는 것이 아니라 특정 기종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편이다. 옛날에 본 어떤 만화에서는 카메라가 나오면 그냥 카메라가 아니라 니콘 F3라고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게 카메라의 각 부분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총이 나오면 M16A1이라고 분명히 인식할 수 있다. <미스터 초밥왕>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생선살의 질감의 특질을 분명하게 구별하여 인지할 수 있게 그린 것이었다. 초밥 그림만 봐도 이것은 도미, 이것은 광어, 이것은 전어, 하고 구별할 수 있도록 사실적으로 그린 것이다.

그런데 만화에 나오는 사진체는 실제 사진의 특성과는 다르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만화의 사진체는 사실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대상의 특징을 잘 파악해서 강조할 것은 강조하고 생략할 것은 생략하는 선별적인 묘사방식이다. 즉 실제의 광어를 사진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광어’ 하면 떠오르는 선입견적 특징들을 개념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그것은 흡사 생물학 도감에 나오는 것과 같은 그림체이다. 그 그림체가 사진과 다른 것은, 대상의 모든 디테일을 남김없이 포착해 버리는 사진과 달리 (그런 점에서 사진은 묘사가 아니다) 만화의 그림체는 대상의 주요한 도상적 특징만 묘사한다는 점이다.

 

사진체 vs. 비사진체
사진체와는 대비되는, 과장과 왜곡, 생략이 심한 체도 있다. (이를 ‘비사진체’라고 부르기로 하자.) 마후네 카즈오의 <케이투(K2)> 같은 만화가 대표적인 경우다. 인물의 표정은 전혀 사실적이지 않으며, 만화적일 뿐이다. 이 만화를 보는 독자들은 그림체가 가진 비사실성을 즐길 것 같다. 멋대로 뻗친 머리, 극단적으로 뾰족한 코와 턱, 맞지 않는 인체비례 등, 이 만화에서 사실성을 기대한다면 그건 넌센스다. 그에 비하면 우라사와 나오키의 선은 철저히 절제돼 있다. 인물을 묘사하는데 쓸데없는 터럭 하나도 더하지 않고, 단 하나의 선도 이유 없이 추가되거나 생략된 것이 없다. 그것은 흡사 그림을 그리기 전에 어떤 선들을 그을지 설계도를 그려 놓고 그린 듯 철저하다. 그의 그림체는 과장 없이 사실적 묘사에 충실하기 때문에 거의 스타일이 없다고 할 수도 있다. 독자는 그의 만화에서 나오키라는 스타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산된 그림체가 전달하는 무시무시한 이야기 사이의 긴장을 본다.

K2

‘만화 같다’고 할 때 황당무계하고 비현실적인 설정과 그림체를 말하는데, 나오키의 만화는 복잡하고 기괴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별로 만화 같지 않다. 인물들은 사진을 갖다 놓고 그린 듯 대단히 객관적인 필체로 묘사돼 있다. ‘만화 같은’ 만화의 그림체에는 생략이나 비약이 많은데 나오키의 그림체에서는 그런 것도 별로 없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를 읽다 보면 흡사 영화의 스토리보드를 보는 듯하다. 영화로 나온 <20세기 소년>이 그리 흥미롭지 않았던 이유는 만화가 훨씬 완벽했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영화가 완벽했더라면 그의 만화는 영화를 위한 한낱 스토리보드 정도로 취급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만화를 보는 것은 엄청난 미스터리를 품고 있는 복잡하고 난해한 스토리와, 그와는 대비 되는 냉정하게 사실적인 그림체 사이의 긴장 사이를 누비는 경험이 된다.

줄거리가 너무 복잡해서 과연 우라사와 나오키 자신이 저걸 다 외울까 싶은 <몬스터>부터 <20세기 소년>을 거쳐 <플루토>에 이르기까지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를 공통적으로 꿰뚫고 있는 주제는 인간의 깊은 속에 숨어 있는 악마성이다. 그런데 그 악마성을 너무 드러나게 괴물로 묘사해 버리면 재미가 없다. 현실에서도 실제 사기꾼은 얼굴에 ‘사기꾼’이라고 쓰여 있는 사람이 아니라 겉은 멀쩡한 대학교수나 기업인인 경우가 많다. 나오키의 만화에 나오는 악마들이 그런 표상이다.

픛추토

즉, 보통 사람의 착한 얼굴 뒤에 악마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에서 수많은 유태인을 학살한 나치의 전범인 아이히만에 대한 전범재판을 참관한 얘기를 쓰고 있는데, 거기서 유명해진 말이 ‘악의 평범성’이다. 재판장에서 본 아이히만은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 더 무서운 사실이 숨어 있다.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착해 보이는 사람의 속에 악마가 숨어 있을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에 나오는 악마들이 그런 형상이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사진체로 묘사된 악마들은 선한 얼굴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나오키의 악마는 한 번도 탈을 찢고 악마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사진체 뒤에 숨어 있을 뿐이다.

사실 <몬스터>는 제목이 시사하듯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괴물이 나오는 만화다. 혹은 괴물이 나올 것이라고 짐작하게 만드는 만화다. 그러나 그 만화에 괴물같이 생긴 인물은 나오지 않는다. <20세기 소년>에서 괴물 같은 성격을 가진 만죠메 인슈나, 짓궂은 형제 만보와 야보 등이 고약한 외모로 묘사돼 있으나 그들이 이 만화가 설정해 놓은 진짜 괴물은 아니다. <몬스터> 20권을 다 읽는 동안 괴물은 어디 있을까 아무리 찾아봤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 독이 든 사탕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인 요한이 괴물로 설정돼 있는 듯이 보이나 요한은 아이돌 가수같이 곱상하고 예쁜 용모를 가지고 있다. 막판에 엄마에게 아이 둘 중 하나를 포기하라는 동독 관리의 강압에 너무나 쉽게 한 아이를 줘버리는 엄마의 행동이 괴물스럽기는 해도 외모는 그냥 여인일 뿐이다. 필자의 짐작은 요한이 괴물이 된 것은 엄마의 그 행동을 보고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괴물스러움은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함 속에 숨어 있는 나약함의 다른 면모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미묘한 사실을 묘사하기에는 나오키의 사진체가 더없이 알맞다.

 

극한까지 절제되어있던 표현선의 폭발
어쨌든 나오키의 그림체에서 괴물은 철저히 억제돼 있다. <플루토>가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실적인 사진체를 유지하는 나오키의 그림체는 <플루토>에 와서 폭발한다. 마치 그 동안 참고 참았는데 이제는 더 이상 억누를 수 없다는 듯 <플루토>의 괴물들은 속에 깊이 품은 성격 때문에 괴물이 아니라 외모 때문에 괴물이 된다. 그리고 그림체는 광폭한 선과 두텁고 칙칙한 선 등, 대단히 감정적으로 변한다. 물론 <플루토>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고 괴물이 나오는 부분에서만 그렇다. 나머지 부분들에서는 여전히 사진체가 지배하고 있다. (괴물을 그린 스타일을 편의상 ‘괴물체’라고 부르기로 하자.) 결국 <플루토>는 사진체와 괴물체의 대결인 것 같다. 크게 보면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과 인간성의 대결인데, 그림체에서는 얌전하게 묘사된 인간과 광폭하게 묘사된 괴물의 대결로 나타난다.

숲속 괴물

숲 속의 괴물이 “으아아아아아아!“하고 포효할 때 그림의 선들도 포효한다. 화면을 찢어발길 듯, 모든 선들은 날카롭게 위쪽을 향하고 있다. 이 부분은 이토 준지의 괴물체를 연상시킨다. (우라사와 나오키와 이토 준지가 실제로 어떤 관계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정작 100만 마력의 괴력을 가지고 다른 로봇을 죽이는 악마 로봇인 플루토를 묘사할 때는 그림체 자체는 차분한 쪽으로 돌아간다. (아폴로 11호를 달에 보낸 새턴 5호 로켓의 출력이 100만 마력이다. 118톤의 달 궤도선과 달 착륙선을 38만 킬로미터 떨어진 달까지 보낸 괴력의 로켓이다. 로켓의 총중량은 3000톤 정도 나간다. 플루토를 100만 마력으로 설정했을 때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하여간 둘의 출력은 비슷하다.) 어둠 속에서 두 눈만 빛나는 장면은 섬뜩하지만 그림체 자체는 냉정하다. ”슈우, 슈우“ 소리를 내는 괴물은 무섭지만 그림체가 끔찍해서 무서운 것이 아니라 저놈이 과연 어떤 놈인지 알 수 없어서 무서운 것이다. 만일 플루토를 요란하고 광폭한 괴물체로 묘사했다면 너무 일찍 본성을 드러내 버리는 것이 되어 일찍 김이 새버렸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인공지능 로봇의 개요도를 미리 차분하게 그려본 듯한 스타일이다. 플루토는 생김새가 기괴하기는 하지만 끔찍하지는 않다.

<플루토>는 데츠카 오사무의 명작 <철완 아톰>의 에피소드 중 하나인 <지상 최대의 로봇>을 토대로 그린 것이다. 사실상 <철완 아톰>에 대한 오마주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상 최대의 로봇>과 <플루토>가 다른 만화인 만큼 데츠카 오사무와 우라사와 나오키의 그림체에도 많은 차이가 있다. 1961년생인 필자는 어릴 적 <우주소년 아톰>을 보고 자랐다. 당시 한국의 저녁 텔레비전 시간은 온통 일본 만화들이 채우고 있었는데, 필자는 특히 <요괴인간>을 좋아했으나 그중 에이스는 단연 데츠카 오사무였다. 그의 만화는 아톰 뿐만 아니라 <사파이어 왕자>, <밀림의 왕자 레오>, <손오공> 등 매우 많았고 그것들이 다 한국의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그것들을 보면서 필자 또래의 어린이들의 눈에는 데츠카 오사무의 만화체가 각인된다. 설사 내용이 아무리 심각하다고 해도 데츠카 오사무의 만화는 결국은 만화였다. 아톰은 출력 100만 마력의 괴물스러운 힘을 가졌지만 결국은 귀엽고 깜찍한 인형 같은 로봇일 뿐이다. 그리고 어떤 악당이 나타나도 그것들은 다 귀엽고 동글동글한 선으로 묘사돼 있어서 친근감 마저 준다. 그래서 아톰을 보는 우리들은 결국 모두 다 재미있는 오락으로 끝날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다. “착하고 올바르게~ ”하는 아톰 노래가 정말로 착하고 올바르게 살라는 교시가 아니라 그저 오락노래로 들리듯 말이다. (도쿄에서 JR 야마노테선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아톰의 고향인 다카타노바바(高田馬場)역에서 그 노래의 멜로디가 시그널로 나오는 것을 듣고 뭉클했던 적이 있다.)

그에 반해 우라사와 나오키의 그림체는 대단히 심각하다. 그의 사진체는 지구가 멸망할 것 같은 암울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담고 있다. 그 그림체가 만화적인 판타지를 거의 담고 있지 않은 냉정하고 사실적인 묘사 방식이기 때문에 만화를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하다. 영화로 치면 계속해서 무겁고 암울한 음악이 흐르는 것 같은 분위기다. <플루토>의 마지막 장면에서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증오의 로봇 보라는 폭풍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사실 필자의 생각에 이렇게 엄청난 기능을 가진 로봇이라면 굳이 사람의 형상으로 돼 있을 것 같지 않다. 필자가 그런 내용의 SF만화를 그린다면 로봇의 형상은 극도로 추상적으로 그려서 우리가 이제껏 알던 어떤 존재와도 다른 기이하고 독특한 존재임을 시사할 것 같다. 어쨌든 사람, 혹은 큰 곰의 형상을 한 보라는 폭풍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데, 그 장면은 숭고미를 풍기기까지 한다. 형상을 이루는 선들은 ‘쿠웅’ 하는 소리의 울림 속에 죄다 해체되 버리는 것 같다. 그래서 보라는 사라지는 순간까지도 공포스럽고 암울하다.

보라

<20세기 소년>에 나오는 괴물 로봇이 그랬듯이, 아마 우라사와 나오키만큼 만화로 숭고미를 묘사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이런 숭고미의 묘사는 사진체에서 벗어난 것이다. 어쩌면 괴물은 우라사와 나오키의 그림체 자체인 것 같다. 수시로 꼴을 바꾸며 보는 사람의 마음속 반응마저도 바꿔 버리는 그림체는 우리가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괴물이다.

이영준

아마도 한국에서 유일한 대형 선박 오타쿠이다. 그에게는 양샨 딥 시 포트나 탄중 펠레파스 같은 항만의 이름이 고향의 이름처럼 포근하게만 들린다. 몇 차례 대형 화물선을 타고 항해하여 책을 냈으며, [페가서스 10000마일] (2012 워크룸 프레스)이 가장 최근의 결과물이다. 앞으로의 꿈은 더 큰 배를 타고 더 먼 항로를 항해하여 바다를 누비는 온갖 종류의 선박들과 전세계의 항만에 대한 책을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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