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장난으로 ‘몸’이 떨린다 – 히라모토 아키라 <나와 악마의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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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떨림에서 예술이 나왔다
음의 높낮이가 갑작스럽게 변화하면 뇌는 순간적으로 변성의식상태(트랜스 상태)에 빠진다. 변성의식상태는 통상적인 의식 상태에서 벗어난 상태를 말하며, 흔히 최면이나 영화 등에 몰두하고 있는 상태 혹은 종교적 법열이나 오르가즘, 격렬한 감정 변화 등을 경험할 때의 상태가 해당한다. 기타 연주 기법인 벤딩, 초킹, 비브라토 등은 감정을 움직이기 위해 우리에게 최면을 거는 셈이다.

도올 김용옥은 <아름다음과 추함>에서 감정(특히 웃음과 울음)이란 ‘몸(mom)의 떨림’이라 불렀다. ‘몸’은 도올의 미학 개념으로 유전적, 역사적, 문화적 흐름 등 거시적인 흐름과 개인의 삶과 감정과 같은 미시적인 흐름이 교차하는 지점을 말한다. 나라는 몸에는 나의 감각, 감정, 경험, 기억, 사고, 역사, 문화 등이 모두 함축되어 있다는 의미다. 그는 동물적인 본능과 문화가 서로 충돌을 일으켜 몸이 떨릴 때 감정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우리나라나 일본 음악 업계에는 ‘사비(혹은 싸비)’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어원을 두고 영어의 ‘verse’, ‘subject’ 같은 말을 일본식으로 잘못 읽은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일본의 전통적인 미학 개념에는 ‘사비(サビ)’라는 말이 있다. 본래 녹슬었다는 말인데, 화려하지 않고 수수한 고즈넉한 멋을 말한다. 그런데 일본 전통 가창에서는 감정이 격해지는 후렴구에서 음의 높이를 뚝 떨어뜨린 목 쉰 소리로 부른다. 그래야 격정을 억누른 느낌이 나기 때문인데 이때 ‘녹 슨 목소리’가 난다 해서 ‘사비’라 부른다. 이 말이 국내에 들어온 것이다. 음 높이를 갑자기 변화시키면 감정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일본인들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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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입 미국 남부에서 블루스가 발달할 때, 사람들을 ‘미치게’ 만들었고 목사가 ‘악마의 소리’라고 주장한 것은 다름 아닌 ‘보틀넥 주법’이었다. 현 위를 미끄러진다고 해서 ‘슬라이드(slide) 기법’이라고도 부르는 이 주법의 이름은 유리병 목을 잘라 손가락에 끼워서 연주한 데서 유래했다. 지금은 유리나 쇠로 된 관을 손가락에 끼워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음의 높이를 바꾸기 위해 다른 현을 튕기거나 다른 위치를 짚어 높이의 변화가 단속적이다. 손가락을 “슬라이드” 하는 것도 가능하나, 기타 현은 쇠줄이라 오랫동안 강하게 누르기 어렵다. 보틀넥을 이용하면 음이 끊어지지 않고 자유로이 높낮이를 바꿀 수 있다.

 

인간의 길에서 벗어난 방랑자, 알제이와 클라이드
당시 미국 남부 교회는 인간의 ‘동물적 감정’을 악마의 산물이라 여겼다. 그래서 금주법을 주장했고, 마찬가지로 보틀넥 소리도 금지했다. 당시 남부는 청교도 윤리뿐 만이 아니라, 흑인 노예선과 함께 넘어온 아프리카 대륙의 정령신앙이나 속신도 강했다. 그들에게 악마는 추상적 윤리개념이 아니라 실체가 있는 존재였고, 사람을 한순간에 삐끗하게 만드는 존재다. 인간의 길을 벗어난 곳에 악마가 있다.

히라모토 아키라의 <나와 악마의 블루스>는 “로버트 존슨이 십자로(=크로스로드)에서 만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음악을 얻었고, 그 음악이 로큰롤이 되었다.”라는 도시전설에 기반하고 있다. 로버트 존슨은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델타 블루스’라는 장르의 음악가였는데, 많은 로큰롤 음악가가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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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악마의 블루스>의 주인공은 모두 인간의 길을 벗어나 악마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다. 알제이(RJ)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십자로에서 악마와 계약해 기타 실력을 얻는다. 제물은 아내와 아직 태어나지 못한 뱃속의 아기였다. 그는 인간의 길을 벗어난 음악에 빠져버렸고, 악마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또 다른 주인공 클라이드는 동시대인 금주법 시대의 유명한 강도 ‘보니와 클라이드’ 중 한 명인 클라이드 배로다. 그 또한 인간의 길을 벗어난 사람으로 우연한 기회에 로버트 존슨과 함께 다니게 된다.

 

인간의 길을 강요할 수록 악마의 그림자는 커진다
남부의 가혹한 환경과 속신이 강한 문화는 ‘남부 고딕(southern gothic)’이라는 문학 장르를 만들 정도다. 남부 고딕은 마술적 리얼리즘처럼 현실에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모든 것이 부정형으로 움직이고,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품는 백일몽과 환상이 눈앞에 현실로 나타나며, 미약한 개인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다.

히라모토는 치밀하면서도 뒤틀린 ‘남부 고딕’의 이미지를 충실하게 그림으로 옮긴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신경질적으로 보이고, 배경과 인식은 열병에 시달릴 때처럼 ‘떨린다.’

남부 고딕 요소가 <나와 악마의 블루스>에서는 작화와 서사로 표현된다. 비현실적이고 모순에 찬 인물들은
인간의 길을 강요하고, 강요당한다. 알제이는 신비한 체험을 하고, 기타를 치는 손가락이 열 개가 된다. 클라이드는 자기가 죽인 남자의 매형(맥도널드)에게 환대받는다. 맹인 맥도날드는 지역 유지이며 금주법의 나와악마의블루스-04열렬한 신봉자로 마을의 신망을 얻는 인물이다. 동시에 당뇨병임에도 설탕에 집착하고, 몰래 문샤인(밀주)를 만들어 부를 이뤘고, 처남을 죽였다며 흑인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며 공개린치를 볼거리로 만드는데다 소아성애자로 어린 남자아이를 노리개로 삼아온 인물이다. 문화적인 인간의 길을 강요하며 마을을 공포로 지배하는 그는 그 자신이 이미 인간이 아닌 악마가 되어있다. 노자가 말했듯, 인위를 강요하면 뒤틀리고 만다. 강요할수록 몸의 떨림은 강해지고, 결국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파국(catastrophe)이 일어난다.

이 작품은 2007년 이후 4권으로 연재가 중단된 상태다. 국내에서도 번역은 4권까지 이어졌다. 그 사이 히라모토는 산뜻해진 작화 스타일과 노골적인 섹시함이 돋보이는 코미디 만화 <감옥학원>을 성공리에 연재중이다. 최근(2015년 7월) 일본에서 새로 5권이 나왔다고 한다. 8년을 기다린 나도 아직 보지 못했다. 알제이와 클라이드가 걷는 악마의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기대된다.

손지상

소설가, 만화평론가, 칼럼니스트, 번역가.

주요 출간:
단편집 [당신의 苦를 삽니다], [데스매치로 속죄하라 - 국회의사당 학살사건], [스쿨 하프보일드], [일만킬로미터 너머 그대. 스토리 작법서 [스토리 트레이닝: 이론편], [스토리 트레이닝:실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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