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이 “하냐앙~”이 이해가 안간단 말이냐! – 야마다 요시히로의 <효게모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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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려고 환장한 놈들: 효게모노, 가부키모노, 스키모노
효게모노(へうげもの)란 ‘웃긴 놈’이란 뜻이다. 없어도 사는 데 지장 없는 풍류(数寄)에 몰두하는 모습이 웃기다고 해서 그리 부른다. 풍류란 옛 일본어로 ‘스키’라고 부르는데, 현대에는 ‘좋아한다’는 의미로 확장되어 쓰인다. 풍류를 ‘스키’하는 효게모노는 다른 말로 가부키모노(傾奇者), 스키모노(数寄者)라고도 한다. 만화 중에 효게모노를 다룬 다른 만화인 류 케이이치로 원작소설, 하라 테츠오 작화의 <花の慶次>는 효게모노를 가부키모노의 관점에서 그린다. 반면 <효게모노>는 스키모노의 관점에서 그린다. 요즘 식으로 (거칠지만) 전자는 패션리더, 후자는 명품 오타쿠다.

효게모노-01

가부키모노는 다른 사람과 달리 튀는 것을 좋아하는 호들갑스러운(=가부키) 사람(=모노)으로, 연극 가부키는 과장된 연기와 화려한 패션이 ‘가부키’해서 붙은 이름이다. 효게모노에 등장하는 일본 전국시대 무장들은 가부키모노다. 동시에 스키모노다. 가부키모노가 되려면 명품의 가치를 알아보고 ‘스키’해야 하기 때문이다.

효게모노-02나는 풍류란 정상 범위에서 벗어나는 인위적인 힘의 진폭으로 정의하는데, 야마다 요시히로는 그간 효게모노한 풍류 있는 작품을 발표해왔다. 그림의 개성이 가장 두드러진다. 판화처럼 딱딱한 선, 치밀하다 못해 과한 디테일 묘사, 맥락도 없이 인용되는 유명인의 얼굴이나 노래 제목, 역사적 사실의 대담한 해석 등이 소위 ‘정상 범위’에 있는 만화와는 다르다.

무엇보다도 그의 모든 작품에 공통된 극단적인 구도는 원근법도 인체비례도 무시해 얻은 파워가 있다. 거의 르네상스 이전 서양 회화나 토착미술이다.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을 가장 크고 세밀하게 그린 뒤, 주변으로 확장해나가는 식이다. 그림 그 자체가 ‘효게모노’인 셈이다.

풍류의 두 극: 화(華)와 와비(侘び)
‘효게모노’ 야마다는 <효게모노> 풍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화(華)의 박(箔)”과 “간소함(侘び)의 진중함(渋い)”으로 나눈다. 화의 박은 가부키처럼 황금빛으로 튀고 특이하고 과장된 길이다. 반면 간소함의 진중함은 노처럼 검은색으로 수수하고 작고 투박하다. 지배자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은 가부키모노로서, 권력을 박으로 삼아 나라의 정신을 ‘화’로 통일하려 한다. 이에 대항해 센 리큐는 간소함의 미니멀리즘으로 나라를 정복하려고 한다. 언뜻 모순되어 보이나, 결국은 남을 지배하거나, 영향력을 미치거나, 혹은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효게모노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타인의 기준을 넣은 풍류는 수컷 동물이 서로 몸 부풀리기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효게모노-03

주인공 후루타나, 차의 선인 헤치칸은 근본적으로 자기의 감각, 자기만족, 그리고 직관을 더 중시한다. 작가 야마다 특유의 과장된 작화 스타일은 남들이 보기에 효게모노라 할 지라도 자기 감각과 직관이 납득한 결과지 독자를 의식한 결과가 아니며, 그 자체로 “풍류냐 무공이냐”, “박이냐 진중함이냐”로 계속 흔들리는 후루타의 ‘직관적 풍류’와 일치한다. 그리고 그 도달점에는 문자를 초극한 헤치칸의 “직관으로 자기 완결한 노장사상 풍류”가 있다.

 

언어 너머의 세계와 불필요한 박 하나 : “너는 이 ‘하냐앙~’이 이해가 안간단 말이냐!”
리큐가 검은색으로 도달하려고 한, 그리고 후루타가 본 헤치칸의 “자기완결적 풍류우주”는 “구분과 이름이 없는 언어 너머의 직관세계”로, 오직 이미지(감각)으로만 도달 가능하다. 노자는 이 세계를 ‘타오(道)’라 불렀고 여기에 도달하는 방법을 ‘테(徳)’라 불렀다. 후루타는 이를 “하냐앙~”이라 불렀다. 리큐는 간소함으로 타오에 이르려 하고(정식발매 5권 기준), 오다는 화와 박으로 여기에 도달하려 했다. 후루타와 야마다는 흔들린다. 만화 매체와 자신의 작화 스타일 상, 오직 그림 만으로 “하냐앙~”에 도달할 수 없다는 자각과 갈등이다. 이 진폭이야말로 역사적 사실도, 미감도, 독자의 감정도 흔드는 힘의 원천이다.

효게모노-04

헤치칸과 후루타가 만났을 때 그는 리큐의 다실은 “여전히 문자로 가득해 시끄럽다.” 라며, 리큐가 화단의 나팔꽃을 모두 따 한 송이만 남긴 일화처럼 자신의 다실은 ‘물건 몇 개만 둔 조용한 곳’이라 소개한다. 후루타는 여기에 자기 감각에 맞도록 칼을 뽑아 나무 벽을 베어 구멍을 내, 빛이 들어오게 한다. 박을 입힌 것이다. 진중함도 박의 일종이며, 둘은 다 같은 풍류고, 도달점인 “하냐앙~”은 결국 자기만족이라는 선언이다. 그림으로 완벽히 표현하지 못하는 효게모노한 작화 스타일이라도, 풍류에는 자기 감각에 맞는 “박”이 없이는 거짓말이라는 것이 야마다의 주장인 셈이다.

 

 

여담
고정된 완벽은 거짓이라는 말은 노자의 <도덕경> 1장에도 나온다. “풍류”로 초역하면 다음과 같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非常名, 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 故, 常無欲以觀, 其妙, 常有欲以觀, 其徼,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완벽한 “하냐앙~”을 추구해도, 모든 시도는 결국 “하냐앙~”이 못된다. 풍류는 유행에 의존해, 영원히 튀지 못한다. “하냐앙~”에서 풍류가 나오고, 박을 입혀 명품이 생긴다. 따라서, 풍류를 즐길 욕심이 없으면 모든 게 다 같은 풍류로 보이고, 풍류를 즐길 욕심으로 견주어보면 모든 게 다 다른 명품로 보인다. 풍류와 “하냐앙~”은 같은 풍류에 다른 박을 붙인 셈이고, 모두 같은 뿌리다.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풍류는 다 같은 신묘한 “하냐앙~”에서 출발한다.

손지상

소설가, 만화평론가, 칼럼니스트, 번역가.

주요 출간:
단편집 [당신의 苦를 삽니다], [데스매치로 속죄하라 - 국회의사당 학살사건], [스쿨 하프보일드], [일만킬로미터 너머 그대. 스토리 작법서 [스토리 트레이닝: 이론편], [스토리 트레이닝:실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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